Episode: Miss M.L. Funkel

 

<Images by Jean-Jacques Sempe >

 

 

 

 

"이게 올림 바야, 이게 올림 바라구....!"

그리고는 선생님이 옷소매 끝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코를 풀었다.

 

올림 바 건반을 쳐다보던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건반의 앞쪽 끄트머리에 미스 풍겔 선생님이 재채기를 할 때 콧털에 붙었다가, 그곳을 훔쳐낼 때 둘째 손가락으로 옮겨 붙었다가, 둘째 손가락에서 올림 바 음 건반으로 옮겨 붙어 크기가 손톱만 하고, 굵기는 거의 연필 굵기만 하며, 벌레처럼 휘어진 데다가 녹황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기조차 하는 끈적끈적한 코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선생님이 어금니 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하나-둘-셋-넷...."

 

우리는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후의 30초는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고역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있다는 것과, 두려움으로 인해 배어나오는 땀방울이 목 언저리에 맺히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빳밧하게 섰고, 귀는 한 번은 차가웠다가 한 번은 뜨거웠다가 하더니 결국에 가서는 뭔가로 막혀서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안톤 디아벨리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악보도 보지 않은 채 두번의 반복으로 저절로 굴러가는 손가락을 따라 기계적으로 쳐 나갔다. 오로지 내 시선은 마리아 루이제 풍켈 선생님의 코딱지가 붙어 있는 사 음 밑의 가는 검은 건반에만 고정되었다.... 이제 일곱 마디만 지나면, 아직 여섯 마디만.... 물컹한 코딱지를 누르지 않고는 그 건반을 도저히 누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제 다섯 마디, 이제 네 마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올림 바 음 대신에 그냥 바 음을 치는 짓을 세 번째로 한다면, 그렇다면.... 이제 겨우 세 마디 - 오, 하느,님 기적을 이루소서! 무슨 말씀이라도 하소서! 무슨 행동이라도 보이소서! 땅을 쩍 갈라지게 만드소서! 올림 바 음을 칠 필요가 없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주소서.... 이제 두 마디, 이제 한 마디..... 하지만 하느님은 침묵을 지켰고 아무 행동도 보이지 않았으며 마지막 끔찍스러운 마디의 순간은 도래하였다. 그 마디는 - 아직도 내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 라 음에서부터 올림 바음까지 이어지는 여섯 개의 8분의 1 박자를 치다가 그 위에 있는 사음의 건반을 4분의 1 박자로 치고 끝맺는 것이었다..... 마치 황천길을 가듯이 내 손가락이 8분의 1 음표 계단을 비틀거리며 내려갔다.....  라-다-나-가-사....

 

"올림 바!"

 

옆자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나는 정신이 멀쩡한 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죽은 것조차 무섭지 않다는 듯이 바 음을 쳤다. 내가 가까스로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빼내자마자 피아노 뚜껑이 꽝 소리를 내며 닫혔고, 내 옆자리에 있던 미스 풍켈 선생님은 악마처럼 펄펄 날뛰었다.

 

"너 그거 일부러 그랬지!"

 

꽥하며 지르던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소리는 귀머거리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내 귀 속을 파고들었다.

 

"고의로 그렇게 한 거야, 이 꽤씸한 놈! 건방진 놈, 못된 놈! 버르장머리 없는 쓰레기 같은 놈......"

 

그렇게 말한 다음 선생님은 발을 쾅쾅 굴러대면서 방 한가운데 있던 식탁으로 가더니 말을 두 마디 뱉을 때마다 주먹으로 식탁을 쾅쾅 내리쳤다.

 

 

<Die Geschichte Von Herrn Sommer (좀머씨 이야기) written by Patrick Suskind> 中에서

 

 

 

 

책장에 가지고 있는 책들을 한글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정리하는 도중에 보통 한 번 더 책을 읽어보곤 한다. <좀머 씨 이야기>로 알려진 이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읽고 오래간 만에 처음 피아노학원에 누나를 따라서 간 날(유치원때로 기억)이 기억난다(단 하루만 가고 관뒀음). 학원에서 피아노 선생님이 (나의 동의없이) 내 손을 덥석 쥐더니 피아노 건반을 쿵쿵 두드리던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 아름다웠던 그 피아노 선생님이 내게는 괴물 혹은 마녀로 보였을 뿐이었다. 무서웠던 피아노 선생님의 기억이 미스 풍켈이 등장하는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다시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나의 피아노 레슨은 하루만에 끝이 나버렸던 것이다. "코딱지 에피소드"라고 제목을 정하려다가 나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 같아 제목을 바꾸었음.

 

 

번역을 했던 유혜자님의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

 

"....지독히도 순결하고, 극단적으로 완고하게 전생에서부터 저승까지 이어지는 인생길을 끝까지 <걸어서> 가 버린 그가, 살았지만 살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잇는 그가 나에게 던져 준 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살아라>였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 정신과 육신이 혼연 일체가 되어 참으로 살아 있는 자답게 깨어서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의식의 깊숙한 자락에서 꿈틀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