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삶을 살기위한 고민의 흔적

<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91 5월투쟁과 김은국의 <순교자> 정치죽음진실

강정인 지음 | 책세상

 

[1]

        인생에 있어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의 실체/진실을 이룬다. 생명을 가진 개체에게 죽음은 삶의 종착점이자 완성이라 있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 실존적으로 배태되어 있으며 삶이란 끊임없는 그리고 점진적인 죽음에의 굴복과정이다.”(64)

 

     정치철학서 권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굳이 삶과 죽음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강정인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정치 과정이 죽음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한 책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인간이라는 심연>, 성염 2), 인간이 나이가 들어 죽음에 더욱 다가갈수록, 인간의 삶에 진지함이 더해짐에는 누구나 공감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정치권력의 기원에 폭력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잠복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정치와 죽음과의 밀접한 관계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라는 현장에서 예외일 없다.

 

     저자는 지난 30여년 간의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진실 죽음 관계 또한 헐거워진것으로 표현하는 , 이것은 그동안 대한민국 정치의식과 수준이 향상되어 죽음 이미지가 약해졌다는 의미보다는 정치권력이 정치와 관련된 죽음 탈정치화 꾀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현대의 정치적 거짓말들은 '원래 비밀이 아닌,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들' 다룬다."(144)라고 언급하기도 것처럼, 오늘날 ‘(정치)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거짓말하기는 하나의 국가 통치술이 되어가고 있다’(145, 주석11) 있다. 150 수준으로 인간 최초의 정치집단을 상정하고, 이들이 강한 결속력을 가질 있게한 매개체로서 신화, 이야기,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정치적 공동체란 진리가 아니라 합의에 의해 결속력이 유지된다’(166) 언급한 셸던 월린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크게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책에서는 우선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1987 6월항쟁에 비해 종종 망각된1991 5월투쟁을 시작으로 정치와 죽음과의 관계를 고찰한다. 91 5월투쟁은  시위 도중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군이 전경들의 구타에 숨지는 사건으로 촉발된다.  그리고 박승희를 비롯하여 이어지는 청년들의 분신으로 사태가 더욱 심각해져가는 상황에서 검찰의 주도하에 꾸며진 김기설 유서 대필 논쟁/사건 김지하,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의 자살방조배후설’, 그리고 정원식 총리서리의 봉변사건등의 사태로 인하여 당시 운동권 세력이 와해되어버린 투쟁이다.

 

     저자 강정인 교수는 현상적으로 실패한’ 91 5월투쟁이 안목에서 실패한 투쟁이 아니라 87 6월항쟁 이후에도 지속된 반민중적반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행위였음을 주지하고 있다. 특히 책에 언급된 91 5월투쟁의 소멸에 사회 지도층(검찰, 김지하, 박홍 신부)   보수언론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있었는지를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사례로 있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 저술한 <사법부>에서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민낯을 공개하고 있는데, 책의  말미에 보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함과 동시에 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 대한 간략한 평가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한홍구 교수는 사건을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규정하며, ‘과거에는 정권 핵심이나 안기부가 기획한 사건을 검찰이 법률적으로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면 이제는 검찰이 전면에 나서서 정권의 위기를 돌파했다라고 사건의 본질을 전하고 있다. 사건은 검찰이 권력의 하인/머슴 역할을 자처 사례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규정되는 것도 수긍할만한 해석이라고 있다. 

 

 

[2] 

     5월투쟁이 넓은 의미의 정치적 개념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사 창조에 개입, 참여함으로서 공동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활동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잠복해있는 죽음 진실 관계를 풀어나갔다면, 번째 부분에서는 정치와 종교적 진실사이의 관계로 관심을 제한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미교포 작가 김은국이 1964 출간한 소설  <순교자 The Martyred>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소설은 ‘6.25전쟁으로 많이 통용되는 한국전쟁 배경으로 하여, 공산주의세력에 의해 희생된 12명의 목사에 관한 진실을 중심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번째 장은 개인적으로 이번 독서에서 상당히 흥미를 갖게된 부분인데, 작가의 소설 이전에 작가 김은국에 관한 관심때문이다.

 

     김은국 작가는 대학에 입학한지 달만에 한국전쟁’(1950) 발발하여, 자원 군입대한 55년까지 복무하다가 도미하여 역사학과 정치학을 공부한다. 학사를 졸업하고 작가 워크숍 등록, 글쓰기 훈련을 보다 본격적으로 하며, 자신의 번째 소설이자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순교자> 발표하면서, 영문학과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대학생시절 인상깊게 읽고 좋아했던 인류학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 번역한 장본인이 바로 김은국 작가였다는 사실, 나아가 이범선의 <오발탄> 영역했다는 사실도 작가를 다시 보게한 계기가 되었다.

 

     <순교자>에서 재확인할 있는 점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구분한 가지 진실-합리적 진리와 사실적 진실-중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쉽게 왜곡이 가능한 사실적 진실 취약성이었다. 점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정치공학적 전략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례는 앞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규정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던 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 다시 떠올려볼 있다. 저자 강정인 교수는 <순교자> 드러나는 사실적 진실 왜곡문제와 1장에서 언급한 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 연결지으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거짓말 하기는 전쟁 때나 혁명기 뿐만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집권 세력이 이른바 국면 전환 위해 흔히 사용하는 국가 통치술이 되어가고 있다.”(145)

 

     우리가 좀더 실감할 있는 예로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등장할 있었던 ,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있었던 것을 상기해볼 있다. 이러한 실례들은 집단으로서의 정치적 공동체가 분명한 진리보다는 합의에 의해 결속력이 유지된다 월린의 지적을 돌이켜볼 수긍할 있는 사례이다. 집단,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결속이 허구로서의 신화에 의존한다는 통찰은 강정인 교수의 <순교자> 분석을 통해 보다 주의깊게 들여다볼 있는 계기를 나에게 주었다.

 

 

[3]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는 내용은 미국 반전(反戰) 영화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미국의 반전영화가 과연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서구의 동일자중심의 세계관과 이를 착실히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의 서구중심주의 지적하고 있다. 장에서 다루고 있는 미국의 반전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7 4일생> 등은 내가 학창 시절 인상깊게 보았던 영화인데, 저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서구중심주의 시각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주로 베트남전과 관련하여 등장한 반전영화들이 사실은 미국인(주로 백인) 인명피해에만 주로 관심을 갖고 있을 , 베트남 인들은 미국의 아들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미개인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보다 정제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미국 반전 영화의 베트남인들은 미국인 영화 관람자의 지배적 의식 속에서 비인간화(타자화)되어 버린다.”(190)

 

     미국 반전 영화에서 드러나는 시각은 과거에 제작된 카우보이 영화 시각과 다를바가 없다는 말이다. 미국 역사의 주체는 백인 이민자들로서 규정되고 있으며, 저자가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부르는 미국 원주민들은 미국사의 객체나 배경으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반전 영화도 람보 시리즈와 다름없이 서부 활극 다름아니다.

미국의 반전 영화는 전쟁 동기의 타당성이 아닌 수행 방식의 타당성에 의거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있다. 또한 전쟁 방식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상대방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피해만을 고려한 결과로, 집단이기주의를 드러낼 뿐이다. ”(192)

 

점에서 미국의 반전 운동은 일관성 있는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원칙론적 반전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중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있는 최대 공약수로서의 우리의 피해 방지 호소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였다. 결국 이러한 반전 운동이 대중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어떤 면에서는 성공보다도 중요한 반전의 윤리적, 원칙적 의미는 퇴색하게 되었고, 집단 이기주의의 형태인 공리주의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196)    

 

     이러한 시각은 최근 유럽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테러사건들에서도 확인할 있다. 다시말해 서방국가의 무고한 시민들이 겪은 희생에는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비서방국가들의 시민들이 겪는 희생에 우리는 동일한 애도를 보였는지 자문해볼 있다. 과연 그런가? 미국의 2001 9·11사건 이후, 미국 내에 거주하는 무슬림 대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수년 드러나 언론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서로 융합되는 (melting pot) 아니라 여전히 백인들만의 왕국이었음은 저자가 언급한 반전 영화의 사례로 다시금 확인할 있었다.

 

     책의 군데에서 저자가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단정적인 표현들은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들게하는 표현들이 간혹 나온다. 이런 부분은 자신감의 발로일 수는 있지만, 동일한 대상에 대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혹은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바라보고 결론을 것이 아닌가하는 부분들은 미미하지만 눈에 띄기도 한다. 이런 가지 점들을 제외하면 미국의 반전 영화를 중심으로 우리 안의 서구중심적 가치관 지적하고 있는 3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기도하다. 흔히 걸프전으로 불리는 미국-이라크전당시 학생으로서 나는 부끄럽지만 미국의 첨단 무기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는 상당히 열중했던 일을 상기해본다. 이번 독서는 어린 나에게 이미 내면화 되어 있던 강자의 세계관 안으로부터 꺼내어 살펴볼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저자가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에 대해 미국내 반응이 정반대였던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을 던지는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분명히 뚜렷한 명분을 갖지 못하고, 밀림에서 보이지 않는적을 제거해야 햇던 베트남 전과는 달리 걸프전에서는 버튼 하나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첨단 무기의 실험장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모호한 주적을 대상으로 베트남전과는 달리 걸프전에는 후세인이라는 분명한 미국의 () 상정되어 있던 점도 무시할 없다고 본다. 말하자면 걸프전의 경우는 보다 컴퓨터 게임적인 요소가 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후세인은 게임에서 물리쳐 제거해야하는 난이도 높은 으로서 드러나고, 전쟁을 질질 끌면서 미국의 아들딸들의 희생을 증가시키는 보다는 백악관에서 버튼 하나로 미군의 희생을 최소로 하면서 단기간에 전쟁을 끌어 나갈 있었던 것도 반전(反戰)여론의 반전(反轉)’ 현상에 영향을 것으로 이해할 있다. 걸프전은 게임적 요소로서 화면을 통해 재구성되는진실은 베트남전과는 달리 피해자(희생자)들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희생자들의 고통에 더욱 둔감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세력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인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배운 교훈을 다양한 각도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에게 비춰지는 미국의 모습은 걸프전 이후 미국내 전쟁에 대한 여론이 진실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미국의 정치 세력이 주력하는 바는 구성원들의 비판적 기능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으로 진리/진실’ – ‘정치’ – ‘죽음 상호관계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책을 읽으며 메모해둔 것들, 책을 덮고 옆길로 새며 끄적거렸던 나의 생각들을 모아보았다. 저자의 여러 학술 논문을 다듬고 정리한 책은 정치철학서로서 이해할 있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찰하지 않는 삶은 무가치하다라고 까지 언급한 플라톤의 통찰처럼 책은 참다운 살기위한 통찰을 주고 있기도 하다. 삶의 대척점을 이루는 죽음은 책의 전체를 통해 언급되고 있으며, 죽음 우리에게 삶을 제대로 살도록 절실하게 요구한다. ‘참다운 대한 기준은 매우 개별적일 것이다. ‘죽음 각자에게 매우 개별적인 현상인 것처럼 말이다. 중세 판화가이자 화가였던 알프레드 뒤러의 그림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지도(화가 홀데인의 그림 버전) 숨어있는 두개골( 죽음) 이미지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죽음 문제는 인류 생존의 문제와 떨어질 없는 인간의 조건이기도 것이다. 나는 책을 저자의 참다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하겠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정치 세계에서 진리/진실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듯하다.’(8)라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최래되는 죽음 왜곡된 진실 앞에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진실과의 관계를 바로 잡는 동인은 죽음 염두해준 참다운 대한 욕망이 아닐까 생각하며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