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fine day

I-90E, near Rochester(NY), 2008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오래간만에 이은미의 노래를 밤새 듣다가 혼자 울컥하는 그런 날..

어느 덧, 이은미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나도 나이들어간다는 걸..깨닫는다.

혼자 방황하던 무수한 밤이 떠오른다.

이은미의 가시나무 새를 듣다가 눈물나는 날...

내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가끔은 가슴에 쌓아둔 무언가를 토해내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다.

밤새 눈물을 삼키고 나면

다음 날 후련해지는 그런 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이은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 릴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할 때가 있다.

내가 그런 정서를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여기 팝송을 들으며 지나가는 노랑머리 친구들은 이런 정서를 경험하지 못하리라...

 

어린 시절 차가 있는 집이 부러웠더랬다.

부모님은 당시 두 분이서 아침 8시즈음부터 밤 12시가까이 일하셨고 가족이 함께

어디를 간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한 대 갖고 계셨는데,

가끔 누나와 나를 데리고 오토바이를 몰고 지금은 어딘지 기억도 나지 않는

코스모스가 즐비하게 피어있는 한 적한 도로를 따라 달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닌 위험하다며 우리가 오토바이를 타는걸 마음에 안들어하셨지만,

아버진 아랑곳 없이 우릴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갔었다.

내가 어려서 앞에 타고 누나는 주로 아버지 뒤에서 아버지를 꼭 안고 가곤 했는데

난 주로 앞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기대어 시속 60킬로미터의 스릴을 느끼곤 했다.

그 때는 그 정도의 속도도 왜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난 언제나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있는 힘껏 꼭 붙들고 가곤 했다.

하지만 내 뒤엔 아버지가 계셨고 그게 날 안심시켜 주었던 것이다.



제대를 3주 남겨놓은 어느 날 아침 8시경,

어머니의 울먹이던 전화 목소리를 통해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전날 밤 이상하게도 점호가 끝난 후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난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서 밤새 소리없이 나혼자 울었던 날이었다.

평소에도 말이 그다지 없으셨던 당신은 가실때도 말없이 가셨다.


어느 새 태평양을 건너 이곳은 날이 밝아오고, 꿈꾸던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실험실 장비의 기계음에 문득 정신을 차리니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 가시나무 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도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도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