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andum - Henri Cartier-Bresson


거리에서 더이상 사진을 찍지 않기로한 Henri Cartier-Brasson은 그의 친구
Sam Szafran에게 편지를 보낸다.


'My Leica sleeps most of the time...'   (Dec. 1988, by HCB)


그는 초기 멤버로서 자신이 참여했던 사진 에이젼시 Magnum의 상업화에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있었던 듯하다. 인터넷에서 Ansel Adams의 사진 포스터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의 사진 엽서나 포스터를 구하는 것은 힘들다. 그는 (자신이 내는 책 이외)상업적인 목적으로 자신의 사진이 자신의 의도(예를들어, 그는 최종 인화한 사진들의 크로핑cropping을 안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와 달리 이용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있었다. 그의 사망이후에 그의 뜻을 기려 만든 HCB 재단이 이런 사진의 이용에 관여하고있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의 사진은 프랑스의 68혁명 이후에 프랑스 국민들에게 가져온 커다란 사고의 전환/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로인하여 그의 사진을 비판하는 세력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19세기의 '만들어진' 살롱 사진을 비판하는 신진 세력에 의해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사진 기풍이 20세기 초에 자리 잡으면서 살롱 사진을 하는 작가들을 비판했듯이...

사진의 방향과 흐름은 분명 시대의 물줄기를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시대, 그 당시의 패러다임과 상호작용 끝에 결과한 기조가 있을 뿐일 것이다.

학창 시절에 배운 역사들을 되돌아보아도, 개개인의 인간은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개개인의 구성원 사이에, 개인과 집단 나아가 사회와의 상호작용이란 맥락속에
서 규정되고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68혁명 당시에도 새로운 젊은 사진 작가들은 HCB의 사진이 이 변혁의 시대에 프랑스 교외의 풍경이나 담는 사진가 즈음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분명 그는 프랑스 최초로 러시아에 들어가 공산주의 사회의 모습들을 담아오고, 50년대 쿠바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담아온 프랑스 최초의 사진작가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유명 작가 따라하기에 바쁜 나같은 뜨내기 사진가들과는 달리 분명 본인 나름의
독특한 사진 활동의 방향을 스스로 창조했고 많은 좋은 사진들을 찍어온 것만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공식적인 사진 활동을 접고, 가까운 지인들이나 딸의 사진을 찍곤했다던 Cartier-Bresson.
노년에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어릴 적 자신의 열정의 대상이던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나온다.
루브르 박물관에 앉아서 그림들을 감상하는 모습, 집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습들...

지금보니 그가 95세의 일기로 사망한 2004년 8월 3일은 내가 처음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날이라 더욱 의미있는 날이다.

다음에는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메모하곤하던 그의 몇 가지 기록들을 준비해보려한다.
Cartier-Bresson에 관심이 있거나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생각해볼만한 그의 사진관이
담겨있는 몇 가지 메모들이 될 것 같다.


"Photography is an immediate reaction, drawing a meditation

                                          Henri Cartier-Bresson (04.27,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