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경계를 넘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 일러스트 《모비 딕》(2019), 그래픽 노블 《모비 딕》(2019)

《야만인을 기다리며》(2019)을 읽고

 

‘경계를 넘다’

 

문학사에서 간결하고 매력적인 첫 문장을 지닌 소설을 꼽으라면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이 소설은 출간 이후 ‘신성 모독적이고 불경한’ 소설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비주의적이고 이교도적인 분위기와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설 여기저기에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멜빌이 일종의 ‘경계 넘기’를 시도한 소설로 읽었다.

 

이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작가의 시대부터 시작해야한다. 멜빌이 이 소설을 썼던 1850년 즈음, 미국사회는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온갖 모순이 뒤섞인 혼돈 상태였을 것이다. 이때는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고, 기차가 건설되어 대륙 양안이 연결되었고, 때마침 캘리포니아 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골드러시’가 시작된 시기였다. 여기에 ‘문명화된’ 자본주의 사회는 고질적 병폐인 공황의 후유증을 앓으며, 노예제도라는 ‘야만’을 기반으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모비 딕》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소설을 복수심에 불타는 포경선 선장이 카샬로 블랑슈(흰 향유고래)를 스토킹하다 파멸하는 이야기로만 읽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한 층위가 존재한다. 이슈미얼은 배를 타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뛰어 들었다. 화자의 공간적 경계 넘기는 인종에 대한 편견을 넘는 ‘인식의 경계 넘기’로 이어진다. 작가는 1장에서부터 “이 세상에서 노예 아닌 자 그 누구란 말인가?(39)라고 당시에 민감했던 문제를 건드린다. 하지만 멜빌은 백인 사회의 모순이 초래한 긴장을 한 에피소드에서 위트 있게 해소한다. 이슈미얼은 배를 타기 전 머물게 된 여인숙에서 ‘머리를 팔러 다니던’ 식인종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이슈미얼은 편견과 무지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편집증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관찰한 화자는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에는 담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가 된다. 이슈미얼이 “저 남자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내가 그를 무서워하는 것만큼 그도 내가 무서울 것이다. 술 취한 기독교인이랑 자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게 낫지(67), 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가 사회의 관습과 편견이 만든 경계를 넘은 사건으로 읽었다. 멜빌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 에피소드에서 솜씨 있게 드러냈다. 백인 문명이 피부색으로 규정했던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포경선 안에서처럼, 한 이불 아래에서도 그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이번엔 조금 다른 ‘경계 넘기’로 그래픽 노블 《모비 딕》을 읽어본다. 일러스트 판에서 판화가 록웰 켄트는 간결한 선으로 인물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냈다. 반면 크리스토프 샤부테가 각색하고 그린 그래픽 노블에서는 소설의 주요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담겨있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차이점 하나는 ‘모비 딕’이 물어뜯은 에이해브의 다리가 서로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러스트 판에서 에이해브가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댄 곳이 ‘왼쪽 다리’인 반면, 그래픽 노블에서는 ‘오른쪽 다리’에 나무로 만든 의족을 대고 있다.

 

원작에서는 ‘모비 딕’이 선장의 어느 쪽 다리를 물어갔는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의 여러 대중 매체에서 묘사되는 에이해브를 살펴보니 모두 일러스트 판처럼 왼쪽 다리에 의족을 대고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이 현상이 내겐 꽤나 흥미롭고, 결코 사소하게 보이지 않았다. 대서양을 경계로 두 작가는 에이해브가 의족을 댄 다리를 다르게 선택한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프랑스의 작가 샤부테가 한쪽 사회에서 통용되던 관습의 경계를 넘고, 보다 자유로운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읽었다.

 

그림1  (왼쪽) 일러스트 《모비 딕》, 록웰 켄트가 그린 에이해브,  (오른쪽) 그래픽노블 《모비 딕》, 크리스토프 샤부테가 그린 에이해브

 

마찬가지로 ‘경계 넘기’의 관점에서 J.M.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어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작가 쿳시는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법률로 공식화된 1948년보다 조금 이른 1940년에 태어났다. 이 소설은 야만적인 인종차별 정책이 한창이던 1980년에 출간되었다. 외견상 소설의 시간 및 공간적 배경은 배제되어 있지만, ‘작가의 시·공간’을 염두에 두고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은 제도의 경계 밖에 있는 존재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정복했던 ‘문명’의 제국주의적 맥락에 닿아 있다. ‘백인’ 작가 쿳시는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문명과 야만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고, 화자의 입으로 문명의 야만성을 고발한다.

 

소설의 화자는 제3제국의 변방에서 30년을 보낸 치안판사다. 이 변방은 제국의 식민지에 요새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 곳이기도 하다. 치안판사는 변방에서 ‘아무 일 없이’, 권태롭지만 조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취미로 유목민들의 폐허를 발굴하고, 이따금 유곽을 들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제3제국 경찰 졸 대령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뀐다. 졸 대령의 임무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몰아내어 야만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문명’ 세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사실 졸 대령이 유목민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고 잡아들였던 이유는 무지로 인한 공포와 증오가 더 컸다.

 

제국경찰의 무자비한 만행을 지켜보는 화자의 시선은 인종간의 편견을 넘나드는 이슈미얼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모비 딕》에서 퀘이커교도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포경선의 이름은 백인들의 정복활동으로 멸종한 인디언 부족 ‘피쿼드’에서 따온 것이다. ‘문명’이 ‘야만’을 몰아내고자 스스로가 ‘야만인’이 되어버린 역설을 두 소설에서 발견한다. 쿳시가 소설에서 구체적인 시·공간을 제거한 것도 제3제국 하수인들의 만행이 특정 시기와 사회의 문제만이 아님을 환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곧 이 문제는 보편적인 문명사회가 지니는 편견과 억압적 관습에 관한 것이며, 작가는 이 문제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쿳시가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인식의 경계 넘기’를 시도한 반면, 소설의 화자는 문명과 야만,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저항한다. 치안판사는 제국의 경계를 넘어가 졸 대령이 잡아들였던 유목민 여자를 유목민에게 넘겨주고 복귀한 후, ‘적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수감된다. 사회의 질서,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계를 지우고, 경계의 ‘안쪽’에 자리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화자는 졸 대령이야말로 ‘문명’에서 온 ‘야만인’이라고 비판하고, 경계의 어느 쪽에 서기를 거부한다. 그는 이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꿈꾸었기에 고초를 당해야 했다.

 

치안판사는 제3제국 경찰들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손이 부러지고, 코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노예처럼 끌려온 유목민들을 보고 “우리는 위대한 생명의 기적이야! (...) 이 사람들을 봐라! (...) 사람들이다!(177)라고 경찰을 향해 항변한다. “나와 졸 대령은 다르다고 주장해야 한다!(76)라고 다짐할 때 그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 제국의 ‘야만인’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야만적인 문명에 의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가 훼손되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이에 저항하는 인간의 ‘꿈틀거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일러스트 《모비 딕》에서도 이슈미얼이 고래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아 ‘경계에서 저항할 것’을 외치는 대목이 나온다. “오오, 인간이여! 고래를 찬양하고 고래를 본받을 지어다! 그대도 얼음 사이에서 온기를 유지하라. 그대도 이 세상에 살되 그곳에 속하진 마라. 적도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극지에서도 계속 피가 흐르게 하라.(483) 자신의 생명력을 위엄 있게 지키는 고래처럼 우리도 ‘인간다움’을 지켜나갈 것을 선언하는 멜빌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담겨 있다. 나는 이 대목을 가장 좋아해서, 《모비 딕》을 언급할 때마다 이슈미얼의 이 외침을 떠올린다.

 

일러스트 《모비 딕》의 마지막 그림은 이슈미얼이 침몰하는 피쿼드호의 소용돌이를 뒤로하고 관-구명부표를 붙든 채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다. 반면 그래픽 노블 《모비 딕》은 이슈미얼이 관을 붙들고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그림 치고는 평범해 보이는데, 작가는 원작의 첫 문장을 마지막 장면에 배치해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원회귀를 떠올리게 하는 이교도적 특징을 강하게 부각한다. 관습의 경계에서 저항하고, 그 경계를 뛰어 넘는다.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리게 하는 ‘경계의 무화’라고 할 수 있을까. 오독일지라도 작가의 신선한 해석과 새로운 시도를 발견하는 일은 이 그래픽 노블을 읽는 묘미다.

 

지금까지 세 편의 작품을 ‘경계’의 관점에서 읽어보고자 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속의 세계가 대립하고 충돌하되, 어느 접점 곧, 정지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비 딕》은 이야기가 끝나면 지면의 경계를 벗어나 또 다시 바다에서의 삶이 이어질 것만 같다. 이것은 ‘경계에서 저항하기’를 넘어 ‘경계 무화하기’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마지막에 이르러 요새에는 다시 평온이 찾아오고, 치안판사는 다시 ‘야만인’을 기다린다. 아마도 그 이유는 문명이 기록한 역사의 표면 아래 묻힌 유목민들의 진실한 삶을 다시금 기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계속되는 삶과 질서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이 이러한 삶과 질서를 한 번 더 믿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림2  리뷰한 책들:    일러스트 《모비 딕》, 그래픽노블 《모비 딕》, 《야만인을 기다리며》 

 

한 작가의 《모비 딕》 읽기와 쓰기에 관한 보고서

 

《사악한 책, 모비 딕》

(원제: Why Read Moby-Dick?)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지음 | 홍한별 옮김 | [고유서가]

 

한 작가의 《모비 딕》 읽기와 쓰기에 관한 보고서

- 「사악한 책, 모비 딕」 (2020)을 읽고

 

이 책 《사악한 책, 모비 딕》의 원제는 ‘모비 딕을 읽는 이유’다. 벽돌 같은 소설 한 권을 여러 번 읽고, 그 소설과 관련한 사건에 대해 글을 쓰고, 심지어 그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에서 여생을 살고 있는 덕후 작가가 이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답으로 나아간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은 허먼 멜빌이 쓴 불후의 고전 《모비 딕》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 생생한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작가 멜빌 주변의 인물과 기록들(편지들)을 참고하고 이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창작 과정의 단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상적인 ‘글쓰기’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기와 쓰기’라는 키워드로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허먼 멜빌이 《모비 딕》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읽기와 쓰기’에 대해, 또 후대의 독자로서 우리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독자이기도 한 후대의 작가들이 이 《모비 딕》 ‘쓰기’를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를 구분해서 살펴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앞에서 이 책의 저자를 ‘덕후’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멜빌의 소설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 작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목적은 후대의 독자가 ‘《모비 딕》을 읽게 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작가 자신이 이 책을 읽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독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 책을 얼마나 아끼며, 어떻게 읽었는지를 이 책의 독자들과 나눔으로써 말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4년에 이미 《모비 딕》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낚여버렸다고 고백하는 대목이었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딱 한 권을 읽었던 나와는 매우 다른 행복한 시간을 가졌던 사람 같다. 이렇게 학창 시절에 ‘인생책’을 만나는 일은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최근에 출간된 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의 평전 《수전 손택》에는 그녀가 ‘전미도서상’을 수상할 때 촬영된 사진이 나온다. 이 사진에서 손택과 나란히 서있는 너새니얼 필브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미도서상’에 수전 손택 옆이라니! 게다가 사진에서 필브릭이 들고 있는 책이 바로 《모비 딕》의 모티프가 된 ‘에식스호 사건’을 다룬 논픽션 《바다의 한 가운데서 In the Heart of the Sea》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창작 과정 - 읽기와 쓰기

 

《사악한 책, 모비 딕》을 읽고나면, 훗날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미국의 성서’라고 불리게 될 《모비 딕》을 쓰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주홍 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필브릭은 호손이 멜빌에게 “문학적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감정적 영감의 원천(59)이 되어 주었다고 그 영향을 보다 세밀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 이유를 찾아보려면, 아마도 멜빌이 《모비 딕》초고를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1850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멜빌의 창작 단계에서 이 시기의 《모비 딕》초고에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 에이해브 선장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성실한 인물로 묘사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같은 인물만으로 고래와 대결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특히 멜빌은 열다섯 살 연상인 호손을 1850년 8월에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이 때는 마침 역사상 마녀사냥으로 유명했던 세일럼이라는 도시 출신 너새니얼 호손이 《주홍 글씨》를 완성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였다. 멜빌은 그의 작품을 읽고, 작품에 대한 비평을 쓴 다음 셰익스피어에 눈길을 돌린 것이 우리가 지금 읽게 되는 《모비 딕》을 빚어내는 방향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게 바로 하나의 ‘우연’이자 ‘신의 한수’가 아니었을까. 물론 멜빌이 젊은 시절에 상선의 선원, 교사, 포경선 선원, 해군으로 일한 경험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저자 필브릭은 《모비 딕》의 ‘진정한 시작점’이 1849년 2월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 즈음 멜빌이 총7권으로 나온 큰 활자판 셰익스피어 희곡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모비 딕》원문을 참고해보면,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표현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멜빌에 대한 호손의 영향이 ‘문학적이기 보다 감정적인’ 이유는 아마 호손의 비밀스럽고 우울한 무언가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운명적인 우울감을 읽어내고 창작에 중요하게 적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모비 딕》초고처럼 ‘에이해브’가 등장하지 않는 《모비 딕》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필브릭의 책에는 멜빌이 창작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책과 논문 등의 읽을거리를 수집하고 닥치는 대로 읽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모비 딕》의 본문 이전에 나오는 ‘인용문’과 ‘발췌록’만 봐도 멜빌이 각종 고전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최신 이론인 진화론에 관한 초창기 버전의 이론까지도 섭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 셰익스피어, 밀턴, 베르길리우스 등의 책을 게걸스럽게 읽었던 점, 구입했던 셰익스피어 희곡집의 뒤쪽 면지에, 에식스호의 생존자 오언 체이스의 기록이 담긴 도서의 뒤에 상당한 메모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 두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따라서 “웅장한 책을 쓰려면 웅장한 주제를 골라야 한다(79)라는 이슈메일의 선언처럼, 멜빌은 이 거대한 ‘카샬로 블랑슈(흰색 향유고래)’ 이야기를 쓰기 위한 준비과정과 노력이 실로 어마어마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음은 멜빌의 집필과정, 그러니까 그의 글쓰기에 좀 더 주목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모비 딕》은 젊은 시절 멜빌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된 작품이다. 하지만 수많은 책을 읽은 만큼, 이 책들로부터 글쓰기에 관한 실질적인 영감을 얻은 것도 물론이다. “멜빌에게 글쓰기 과정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취합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일이기도 했다.(30) 호손이 멜빌에게 큰 (감정적)영향을 주었다는 필브릭의 견해는 아마도 멜빌이 호손의 작품을 읽고 비평을 쓴 것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폭포수처럼 자기 생각을 쏟아놓는’ 멜빌과 달리 호손은 ‘말없이 온화하게 받아들여주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호손은 솜씨좋게 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 상당히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멜빌은 호손의 정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호손의 작품을 면밀히 읽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간파했을 것 같다. 호손의 작품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고 나서야 멜빌은 1년 남짓 전에 사두었던 셰익스피어 희곡집에 다시 관심을 돌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후에라야 《모비 딕》에는 ‘어둠의 힘, 파멸로 나아가는’ 인물 에이해브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필브릭은 이렇게 표현했다. “호손은 멜빌이 셰익스피어의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빠져들도록 추동하는 인물이었다.(59) 그러므로 멜빌의 글쓰기, 특히 《모비 딕》이 세상에 나오게 되기까지 호손(감정적 영향)과 셰익스피어(문학적 영향)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노동이라는 것은 여러 작가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광대한 대양을 배경으로 거대한 리바이어던의 이야기를 쓰고 말겠다는 야심을 지녔던 멜빌에게 글쓰기는 지독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필브릭은 이 책 《사악한 책, 모비 딕》에서 ‘멜빌이 나중에 “내 사악한 예술”이라고 부른 것을 쏟아 붓는 과정은 온 정신을 소모하고 갉아먹는 경험(63)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공감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글쓰기’란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다만 멜빌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일은 집필 과정에서 눈을 크게 상하게 만든 것 같다. 눈을 지나치게 혹사한 나머지 어떤 날에는 눈을 거의 감다 시피한 채로 글을 썼다고도 한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혹평을 하기 전에 작가가 겪었을 법한 창작의 고통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앞으로는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한 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호손과 셰익스피어를 ‘재발견’한 이후, 멜빌은 달라진 눈으로 초고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첫 소설의 대성공 이후 멜빌은 집필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역할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와 부인, 네 자녀를 건사해야하는, 글을 쓰는 가장으로서 느낄 법한 고충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멜빌은 호손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이 일 저 일이 계속 저를 훼방합니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차분하고 느긋하고 조용하고 풀이 자라는 환경이 저에게는 도무지 주어지지 않네요.(130) 지금도 그렇지만 전업으로 글을 쓰는 일이란 20대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평생 여행과 공부에 몰두 할 수 있었던 데카르트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다수의 ‘작가들’에게는 현실적인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모비 딕》이란 엄청난 작업을 한 작가는 이 일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임을 약간의 좌절감과 더불어 말하기도 한다. 멜빌은 호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책도 초고일 뿐 ?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입니다(80)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필브릭의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독자의 《모비 딕》읽기 그리고 ‘쓴다는 것’

 

필브릭의 책에서 우리는 관찰자로 《모비 딕》의 탄생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독자가 멜빌의 소설을 읽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모비 딕》읽기 철학을 전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모비 딕》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만들어낸 개인적 예술의 힘을 이해하려면 이 편지들을 읽어야 한다.(128) 여기서 이 편지들은 멜빌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말하는데, 특히 너새니얼 호손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손은 《모비 딕》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다. 멜빌의 서간집이 나와 있다면,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실 《모비 딕》을 읽어나가는 일도 벅찬 일인데, ‘서간집이 웬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서간집은 작가 멜빌과 그의 작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주홍 글씨》의 과묵하고 은둔자적인 작가 호손과 그 작품을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필브릭은 자신의 ‘의욕’을 다소 누그러뜨리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을 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읽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 긴박하고 긴요한 할 말이 있어 불쑥불쑥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책을 쓰는 동안 멜빌의 몸을 타고 흘렀던 다양한 목소리에 이입해 글을 느끼는 것이다.(19) 실제로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멜빌이 쓴 원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시를 읽는 것처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소리를 들어보고 또 ‘폭포수처럼 자기의 생각을 꺼내놓는’ 멜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모든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군데에서 마치 랩을 듣는 것 같은 리듬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멜빌의 문장을 읽던 순간은 제한적일지 몰라도 문자의 아름다움이 내용뿐만 아니라 짜임새와 소리를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또 내용적인 면에서도 독자에게 한 가지 더 당부를 하는데, 그것은 흰 고래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진짜’라는 점이다. 그래서 백과사전이나 다른 글에서 흔히 말하듯 ‘흰 고래가 무얼 상징하는지 고민하는 일을 그만두기 바란다(131)라고까지 일러주는 것이다. 흰 고래는 실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기로 하자.

 

그렇다면 독자이기도 한 다른 작가들은 멜빌이란 작가 혹은 《모비 딕》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필브릭은 윌리엄 포크너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언급한다. 포크너는 《모비 딕》이 ‘자기가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단 하나의 작품(16)이라는 아쉬움 섞인 극찬을 한 적이 있다. 또 허먼 멜빌이라는 작가는 말년이 다가오던 헤밍웨이에게 ‘넘어서고 싶은 작가’로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이외에도 다른 유명 작가들 상당수는 멜빌과 《모비 딕》에 남다른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 평전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에도 색스가 청년 시절 자신을 사로잡은 소설로 《모비 딕》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모비 딕》만으로도 족하다’(해당 책, 237면)라고 까지 언급했던 것이다. 한 신경과의사에게 멜빌과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허먼 멜빌에게는 셰익스피어와 호손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했던 셈이다.

 

지금까지 멜빌과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한 작가의 《모비 딕》읽기 그리고 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따라가 보았다. 창작의 고통, 눈을 비롯한 육체의 고통, 가장으로서의 역할 및 현실적인 고충, 아내와의 불화 등등을 겪으면서도 멜빌은 소설과 시를 쓰고, 끊임없이 읽기를 계속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너새니얼 필브릭은 멜빌과 호손과의 관계, 그리고 멜빌이 주변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곁들여 《모비 딕》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필브릭은 《모비 딕》에서 터번을 쓴 마닐라 출신 주술가 페달라의 역할을 깨달았다고 시인했다. 에이해브를 파멸로 이끄는 동인으로서, 또 ‘부추기고 다그치는’ 존재로서 페달라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구도가 멜빌과 호손사이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곧 에이해브에게 악으로 향하도록 추동하는 페달라가 있었다면, 멜빌에게는 우울과 암흑의 심연을 보여준 호손이 있었던 것이다. 필브릭은 “호손의 불가해한 본질이 《모비 딕》사방에 존재 한다(60)라고 언급하며 멜빌의 작품에 대한 호손의 전 방위적인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말년에 뉴욕 26번가의 책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에서 세상을 뜰 때까지 읽고 쓰는 습관을 이어나갔을 멜빌의 그림자를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남아 있다. 바로 이 책의 원제, ‘모비 딕을 읽는 이유’에 대한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의 답변이다. 지금까지 멜빌의 창작과정에서 멜빌의 읽기와 쓰기 과정, 그리고 독자로서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정작 저자의 생각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는 책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발췌문]

[1]

"《모비 딕》도 태평양으로 고래를 잡으러 떠난 항해에 대한 소설이자 또한 남북전쟁을 향해 광분하듯 치닫는 미국, 그리고 그 이상을 말하는 소설이다." (15면)

 

[2]

"이 소설은,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내 안에서 점점 자라난다. (...) 미국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양 문학의 본질이 담겨 있는 책이다." (18면)

 

[3]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읽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 긴박하고 긴요한 할 말이 있어 불쑥불쑥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책을 쓰는 동안 멜빌의 몸을 타고 흘렀던 다양한 목소리에 이입해 글을 느끼는 것이다." (19면)

 

[4]

"멜빌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지만, 다른 작가들의 글을 엄청나게 훔쳐오기도 했다." (30면)

 

[5]

"멜빌은 호손에 대해 글을 쓰면서 셰익스피어를 이용해 에이해브를 위한 초석을 닦은 셈이다." (58면)

 

[6]

"호손은 멜빌에게 문학적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감정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59면)

 

[7]

"에이해브 선장이 이렇듯 강력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세상을 상징적으로 바라보는 에이해브에게서 멜빌이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61면)

 

[8]

"《모비 딕》을 읽는다는 것은 포경선에서 여러 해 동안 강렬한 경험을 하고, 자기가 본 것 전부를 마음에 새기고, 7년쯤 더 지나 셰익스피어, 호손, 성서 등등을 읽고 흡수한 다음, 젊은 시절의 경험을 앞날에 공포할 목소리와 방식을 찾아낸 작가를 마주하는 일이다." (87면)

 

[9]

"이 일 저 일이 계속 저를 훼방합니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차분하고 느긋하고 조용하고 풀이 자라는 환경이 저에게는 도무지 주어지지 않네요." (130면)

 

[10]

"흰 고래는 상징이 아니다. 나나 여러분 같은 진짜다. (...) 그러니까 흰 고래가 무얼 상징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그만두기 바란다." (131면)

 

[11]

"멜빌은 늘 그러듯 신의 섭리와 미래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 그뿐 아니라 인간의 이해 범위 밖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논하며 자기는 ‘소멸될 결심을 거의 굳혔다‘고 알렸다. (...) 그가 줄곧 고집스럽게(나와 알고 지낸 이래로 늘 그랬고 아마 한참 전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그 황무지 위를 헤매려고 하는 게 이상하다. 우리가 앉아 있는 모래 언덕 만큼이나 음울하고 단조로운 곳을. 멜빌은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너무 정직하고 용감해서 어느 한쪽이든 버릴 수가 없다. 그에게 종교가 있었다면 그는 최고로 신심 깊고 경건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고결하고 고귀한 사람이다. 우리 중 누구보다도 불멸을 누릴 자격이 있다." (147면)

- 영국에서 멜빌을 만난 호손이 남긴 일기 기록에서

'Gabriele Basilico 사진전'을 보고

《Gabriele Basilico사진전》

Photography of Italy

2020.10.20 – 12.02 KF Gallery

 

시내에 잠시 나갈 일이 있어 을지로에 들렀다가 KF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사진전을 관람했다.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가 가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출신인 사진작가 가브리엘레 바질리코(Gabriele Basilico, 1944-2013)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12월 2일 까지). 평일인데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그런지,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넓은 공간에 대개 나 혼자 아니면 두 명 정도로 관람할 수 있었다.

 

바질리코는 대형 카메라로 도시의 풍경을 주로 찍는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영상을 보니 말년에는 컬러 작업도 했던 모양인데, 전시된 사진은 모두 흑백 사진 작업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은 1978년에서 2010년 사이에 작업한 사진을 고르게 선별했다고 나온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바질리코의 사진 작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은 ‘베이루트’를 찍은 풍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국내 전시에는 이 사진이 빠져있었다. 아쉽지만 영상에서 보는 몇 장의 이미지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 8월 4일, 항구에서 항구에 몇 년간 저장되어 있던 질산 암모늄이 폭발하여, 400여 명이 죽고, 6500 여 명이 부상했다는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바질리코는 바로 이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찍은 사진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1991년에 여러 사진작가들과 함께 15년 간 지속된 내전으로 파괴된 도시 베이루트에 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도시의 건물에 유리창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고, 모든 건물은 앙상한 구조만 남아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터질 때 순간 발생한 엄청난 열로 사람이 증발한 흔적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진다.

 

요즈음 그림 전시회나 사진전에서 많은 관람자들이 작품을 보면서 폰이나 카메라로 사진 찍기 바쁜 모습을 본다. 모든 사진을 담아가려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이전에 그렇게 하곤 했지만, 찍어두고는 다시 들여다 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촬영이 허용되는 한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한 두 장만 찍어오는 것으로 그치고, 대신 넉넉히 시간을 들여 그림이나 사진을 눈에 담아오는데 집중하는 편이다. 게다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떠밀리듯 감상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작품의 특징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메모해두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집에 와서 메모를 봤을 때, 머릿속에서 제법 생생하게 그림이나 사진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관람자가 거의 없어서 메모와 함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전공인 친구는 바질리코의 사진에서 어떤 ‘인성’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안타깝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바질리코의 사진은 대부분의 대형 카메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처럼 조용하다. 하지만 그의 사진이 조금 색다른 점은 도시의 건물을 찍을 때 어떤 패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건축전공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치밀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균형감’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평면의 영역 속에 관람자의 관습적인 기억에 의존하는 전경과 후경의 배치, 도시의 수직 구조 같은 기하학적인 느낌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라고 했던가. 바질리코의 사진 역시 여러 사진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보이는 듯 했다. 영상에서도 작가가 언급하지만, 건축을 전공한 바질리코가 사진을 시작할 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사진 역시 브레송 사진의 흔적들이 보인다. ‘트리에스테 1985’사진 들 중에서 해질 녘의 바닷가/부두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전망대처럼 보이는 위쪽의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가드레일은 기하학적인 구조를 하고, 화면의 가운데를 에워싸면서 화면을 중심과 외부로 분할한다. 한 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시선 위로는 멀리 바닷가에 배 한 척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반면에 오른쪽 아래 어둑한 그늘 속의 회랑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연인이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처럼 바질리코는 대형 카메라로 화면을 구성하고, 프레임 속의 동적 요소가 나름 균형있는 지점에 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작업을 했을 것이다. 하루에 한 장을 찍을까 말까한 대형 카메라 작업에서 그는 기하학적 요소와 동적 요소가 적절한 배치나 그림자의 위치가 나올 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린 정황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조용한 그의 사진에는 대개 사람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보면 사람이 없는 듯 하다가도, 자세히 보면 어딘가에 사람이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영상에서 폐허가 되다 시피한 베이루트의 건물 잔해들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가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프레임을 구성하고, 빛과 동적요소가 만족스럽게 혹은 적절하게 배치가 될 때까지 기다린 사진들이다. 시원한 도시의 풍경 속에 무너저내릴 법한 건물 잔해들, 그 사이를 외롭게 걷는 사람으로 인간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고요한 피렌체 사진들 중에서도 적막한 도시 공간의 어느 구석엔 자세히 보면 대개 사람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가본적은 없지만, 이탈리아에서 광장은 삶 그 자체를 규정하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은 바로 광장에서 시작해서 광장에서 끝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바질리코가 기록한 오랜 도시의 흔적,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현대 문명의 모습을 보다보면 수직선은 언제나 문명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은 수평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명은 <밀라노, 공장들의 초상>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수직으로 올라가는 공장의 굴뚝을 낳았다. 혹은 건물 위로 나 있는 계단, 가로등 그리고 건물의 외벽에 조각되어 있는 그리스 신전 모양의 부조, 이오니아 양식의 신전 기둥을 닮은 가짜 기둥 조각과 같은 구조물을 통해 화면의 수직선을 구성하는 것이다.

 

베네치아 1998’의 어느 사진은 인적이 없는 광장에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고, 아래 광장 바닥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있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광장에 동상과 비둘기 한 마리가 외롭게 서 있다. 이 장면이 오히려 이미지가 제시하는 장면의 비현실적인 느낌을 배가한다. 베네치아 골목을 찍은 바질리코의 사진은, 파리 골목을 찍은 앗제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라는 것은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앗제의 느낌과는 다르게 화면을 꽉 채우는 건물이 무게감과 동적 느낌을 더해준다. 이건 아마도 화면 구성상의 소실점 배치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가끔씩 이렇게 사진의 특징을 메모해놓곤 한다. 그런데 바질리코의 사진은 화면의 구성 뿐만 아니라, 흑백 톤 그 자체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다. 특히 영상에서도 작가가 설명하고 있던 현대적인 건물의 곡선 외양과 계단에서 보여주는 톤의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이 점은 ‘밀라노 1989’ 작업 중 밤에 두오모처럼 보이는 건물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둥근 지붕의 위에 나온 구조물이 지붕과 함께 밤의 암흑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세심한 톤의 표현이 인상적이 었다. 가운데 중심적인 건물을 양쪽에서 에워싸는 듯한 배치는 작가의 도시 사진 프레임 구성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이런 유형의 작업 중에서 양쪽 건물, 담벽 사이의 톤이 주는 미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업들이 있기도 하다.

 

건물의 정면을 찍으며 화면을 가득 메우게 만든 구성은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사진가 워커 에반스의 작업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또는 김아타의 작업처럼 오랜 노출로 부동의 건물을 제외한 사람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버린 도시 풍경을 닮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진 역시 창밖으로 빨래를 널어 놓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바질리코의 사진은 자세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사람의 자취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작가의 영향이 느껴지는 사진들 역시 소형 카메라가 아닌 대형 카메라로 작업을 하니 또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도시의 풍경을 담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기독교 문화에서 세레자 요한의 탄생을 즈가리아에게,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동정녀 마리아에 고지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을 딴 사진작가 바질리코. 그는 관람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을지 궁금하다.

 

 

이번 바질리코의 사진전은 그가 컬러 사진 작업을 한 말년의 작업들, 이를테면 샌프란시스코 사진이나 상하이, 이스탄불 시리즈 처럼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다.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이탈리아의 사진’이듯,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촬영한 사진들만을 대상으로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것으로 보아, 이탈리아의 도시와 이탈리아가 낳은 유명 사진작가의 홍보를 겸해서 하는 전시로 보인다. 바질리코의 다른 사진들은 국내 사진 전문 출판사 열화당에서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Gabriele Basilico》(2002)라는 제목의 사진문고판이 나와 있으므로, 작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나 작업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마찬가지로 열화당에서 출간한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2020)라는 책에도 바질리코의 이름이 스치듯 지나간기도 한다.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대규모 사진전에 대한 주석에 가브리엘레 바질리코를 참여 작가로 언급하는 대목이 한 군데 나온다. 이 책 《사진 수업》은 이탈리아의 사진가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 기록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흔히 보는 사진 관련 서적처럼 미국 중심의 혹은 유명한 (미국인 위주의) 사진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루이지 기리 자신의 사진, 그리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수업에 많이 활용하는 점이 신선하게 보인다. 게다가 책의 서두에 사진 장비에 대한 설명부터 진부하게 설명하는 사진학 수업 서적이 아니라, 보다 인문학적인 이야기로 주제를 이끌어내는 점이 흥미롭다. 오늘은 미국 위주의 사진가가 아닌 이탈리아의 유명한 두 사진가의 이야기를 주목해서 메모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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