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필름을 네거티브로 만들기
슬라이드 필름(positive)을 보통 현상할 경우 E6라고 흔히 일컽는 현상과정을 통해 색이 반전되지 않고 그대로 환등기에 비쳐볼 수 있는 슬라이드 필름 현상이 완성된다. 하지만 일반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는데 쓰이는 C41현상 과정을 통해 슬라이드 필름(positive)을 반전시켜서 네거티브 필름으로 현상해낼 수 있는데, 이를 Cross Process라고 흔히 부른다.
내가 굳이 이 비싸디 비싼 슬라이드 필름을 네거티브 필름으로 만든 이유는 필름 감도 100인 Kodak E100VS 슬라이드 필름을
실수로 400으로 노출을 설정해놓고 필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했기 때문.
슬라이드 필름의 경우, 1 스탑 이상 적정노출에서 벗어날 경우 특히 노출 부족으로 찍었을 경우, 대부분의 이미지는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어둡게 나올 것인데, 내 경우는 2 스탑 노출 부족으로 필름 한 롤을 '일관되게' 찍었기 때문에,
일반 슬라이드 필름 현상과정으로 현상을 하면 대부분의 이미지가 그냥 어둡게 나올 상황이었다.
그냥 뭐 버려야지 하는 주변사람들의 아쉬움을 그냥 삼키기에는 너무 아까운 필름이었기에,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본 Cross Process를 생각해 내었다.
일반 컬러 네거티브 필름의 경우, 노출 오차가 3-4 스탑이 차이가 나도 어느 정도 볼만 하기 때문에 혹시 이 노출 부족으로 찍어 놓은
슬라이드 필름을 네거티브로 만들어서 2 스탑 push를 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주변에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해서, 한가지 실험을 하는 셈치고 현상소에 C41 Cross Process 를 함과 동시에
2 스탑 Push를 해달라고 했던 것.
그 결과, 컨트래스트가 강하긴 하지만 새로운 색의 사진을 얻었다.
아마도 현상 시간이 길어짐으로 인해서 좀더 거칠어지고 색 대비가 증가한 모양.
예를 들어 암부의 디테일은 줄어들고, 구름은 더욱 밝게 나온 것이다.
현상 후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슬라이드 필름을 C41 cross process할 경우,
노출 부족으로 촬영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노출 과다(overexposure: 보통 1 스탑 내지 1&1/3 스탑 노출 과다)로
촬영을 해야한다고 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과정으로 cross-process를 하게 되면, 하늘의 푸른 색은
짙은 푸른색을 띄어야 한다.
반면 내 필름의 경우 색은 마치 오랜 빛바랜 컬러 이미지를 필름에서 보는 듯 했고,
혹은 팝아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새로운(?)류의 색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필름을 모두 버릴뻔한 상황이어서 나름 재미있는 실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