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유, 평등 및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다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원제: National Dignity: Freedom, Equality, and Justice)
짜우포충 지음 | 남해선 옮김 | 더퀘스트
‘우리의 자유, 평등 및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다’
많은 이들에게 ‘정치’란 환멸을 불러오는 대화 주제가 된듯하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는데 반해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 스캔들이 터지고, 정치인들의 비리나 뇌물 수수 또는 악습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 소개하게 된 짜우포충 교수의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하 <국가의 품격>)는 나의 우려보다는 보다 더 명쾌하게 ‘정치’에 대한 나의 편견를 되돌아보게하고,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라 생각한다. 짧은 시간에 상당한 정치철학 개념들이 나오는 이 책을 소화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책을 처음 만난 인상은 분명 다시 읽어보고 좀더 명료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이 책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인 짜우포충은 정치철학자이자 홍콩중문대학 정치행정학과 교수로서 홍콩의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정치상황을 언급하거나 홍콩의 시민행동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홍콩의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2014년의 ‘우산혁명’을 반복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 책이 홍콩에서는 베스트셀러이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금서’ 목록에 올라가 있다는 소개만 봐도, 이 책과 저자의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특히나 책의 후반에 나오듯 중국의 SNS에 해당하는 웨이보에서 시민들과 온라인 상에서 대화를 하고 시민들이 올리는 질문에 대해 꼼꼼이 답변을 하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고, 저자가 중국인들, 특히 홍콩의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국가의 품격>의 처음부터 저자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정치라는 영역에서 ‘도덕’은 왜 필연적인가?’를 묻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증을 해나간다. 저자가 피력하는 정치사상의 큰 줄기는 존 롤스의 <정의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특징이다. 물론 존 로크 이래 장 자크 루소와 임마누엘 칸트, 뱅자맹 콩스탕, 존 스튜어트 밀을 거쳐 이사야 벌린과 존 롤스 등의 사상을 면밀히 연구하고 이들의 차이점을 명료하게 정리해내는 모습에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고민의 흔적들이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 책이 이 책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정치에 왠 ‘도덕’을 끌여들여 논의를 하는 것인지 시작부터 의아해할 즈음, 저자는 미리 나의 의혹을 간파했는지 저자가 ‘정치에서 도덕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이상주의적이지 않은가’라는 의혹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아니더라도 저자는 국가의 존재가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다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제가 필요한데, 바로 국가가 이러한 공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질서 유지를 위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 권력의 행사에 바로 ‘도덕적인 기준’에 기반해야한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주요사항이다. 다시말하면 ‘도덕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정당성을 획득한 국가만이 그 공권력 행사에 대해 국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우리 사회의 사례에 견주어볼만하다. 특히 작년 후반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의 사례는 대한민국의 정치역사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 시민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누누히 언급하는 대로 국가의 존재는 결국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위한 것이다. 국민의 선택으로 등장한 정부가 그 공권력 행사에 국민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시민은 그러한 정부를 불신임하고 정치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교과서의 이론대로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의 손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닌가. 촛불집회가 10여 차례 진행되고 시간이 지나면서도 정부의 불소통과 안하무인의 모습을 볼때면 나도 다시금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되기도 하였는데, <국가의 품격>을 읽으면서 나의 성급함과 정치적 미성숙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아울러 저자가 잘 설명해준 ‘민주’의 개념 또한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개념과 사뭇 다른 점도 눈길이 갔다. ‘자유’와 ‘민주’의 개념이 이사야 벌린의 주장대로 서로 무관한 개념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저자의 논증은 제쳐두고라도, 내게 부족했던 기본 정치의 개념과 편견들을 이 책은 상당히 바로잡아 주었다.
이 글의 첫 문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치는 우리의 ‘환멸’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짜우포충 교수는 오히려 “우리는 태어나면서 정치 속에 산다”(347면)라고 말한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나름 열심히 참여했으나, 선거가 끝나고 다시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을 경험하곤하는 이런 무한 반복 패턴 속에서 정치를 경원시하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권력을 갖는 자들을 뽑는 것에서 우리의 정치참여가 끝난다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는 아니었던가하는 반성도 해본다. 우리의 지도자를 뽑았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 짜우포충 교수의 조언일 것이다. 곧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권력을 수행하는 집단(정부)이 도덕적으로 집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하는 일은 곧 시민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치를 우리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우리가 관리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정치는 우리의 환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야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열린 자세를 보여주었던 웨이보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의 모습은 책을 덮고나서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여기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슷하게 자유 토론에 참여한 일부 중국인들은 우려한바대로 정치에 대한 불신을 지적하고 심지어는 중국인의 열등함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에서도 토론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과,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는 점에 매우 놀랐다. 우리 같으면 짜우포충 교수와 같은 시도를 할만한 교수들이 있어도, 이렇게 성숙한 온라인 상에서 자유토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분명 계획되었던 공개 자유토론의 기회가 정부나 이를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제제를 받았을 터인데, 이에 굴하지 않고 짜우포충 교수와 시민들이 참여해서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나가는 모습에서 짜우포충 교수가 느끼는 한 올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홍콩사람들이 보통선거와 자유를 쟁취하기위해 우산혁명을 시도한 것처럼, 우리도 촛불혁명을 통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물고 시민의 힘으로 지도자를 교체해내었다. 짜우포충 교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선택’한 지도자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시민을 위한 나라살림살이를 해나가는 모습을 우리가 지켜보고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를 데려다 놓았다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해결될리는 없다. 사회의 여러 명사들이 ‘스펙쌓기를 하는 대신 밖으로 나가 시위하라’라고 일갈하는 이유가 짜우포충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가장 단순화된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