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우리 인생에 주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

冊 [books] 2017. 8. 28. 21:10

<내 인생 최고의 책>

(원제: The Book that Matters Most)

앤 후드 지음 | 권가비 옮김 | 책세상

출근 전 이른 샤워를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소시민으로서 나의 인생을 언젠가 돌이켜볼 때, 내 유산(legacy)라고 할만한 것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유산은 어떠해야할까?’ 물론 여기서 내가 생각했던 유산은 단순한 재산의 개념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반영된 유무형의, 내 인생을 통해 형성된 무엇을 말한다. 앤 후드의 <내 인생 최고의 책> 을 읽으면서 뜽금없이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이 소설에 나오는 북클럽에서 멤버들 각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 한 권을 읽기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과연 내게 가장 중요한 책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인 에이바는 아들과 딸을 가진 중년 주부이다. 아들은 모범적으로 문제없이 지내지만, 딸은 마약과 섹스로 삶을 소진하는 중이다. 한편 에이바는 치매증상으로 요양원에서 나날이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 시절 사랑하던 동생을 바로 눈 앞에서 잃었던 기억을 평생의 아픔으로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에이바는 외도를 한 남편으로부터 이혼통보를 받아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고통스럽지만 누구에게든 인생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는 에이바에게 가장 친한 친구 케이트는 북클럽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북클럽에 참여를 하고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이 멤버들 역시 각자 나름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에 나오는 북클럽은 매달 한 번씩 도서관의 한 장소에서 10명의 멤머가 모인다. 각자가 전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선정한 책 한 권씩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임에서는 그 달에 해당하는 책에 대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고, 각자가 책에대해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거나 특정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해나간다. 대화에 참여하는 멤버들이 책에서 느낀점들을 언급하는 부분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듯이, 멤머들 각자는 나름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책을 통해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멤버들은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그리고 모임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한 깨달음을 공유하게 된다. 아마도 책을 읽는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치유의 힘을 전해준다면 바로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일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북클럽에서는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의 멤버들이 소탈하게 모여 같은 책을 읽고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과 견주어보기도 한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고, 삶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타인의 얼굴을 바라봐주고, 환대해주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북클럽 멤버들은 서로를 돌보고 위로하거나 격려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나가는 힘을 얻게된다. 북클럽을 둘러싼 이야기는 각자가 지나고 있는 여정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결국 이 책은 인생의 고통과 상처로부터 ‘회복되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책 때문에 제가 달라졌습니다.”(120면)

북클럽의 멤버 루크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책으로 정하고 이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혹은 어떤 책을 읽으며 독자가 크게 공명을 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최고의 영미 소설 중 하나라는 이 <위대한 개츠비>를 아직도 읽어보지 않았냐며 수업 중 학생들을 무시하던 영어 선생님의 말에 오기가 나서 읽어보았던 나는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했다. 사실 일말의 내용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검은’ 글자들을 단순히 따라가며 스캔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이 소설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나의 인생은 모든 면에서 미숙하던 때였으므로, 나는 이 책과 ‘공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일 수 있는데 반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개개인의 인생에서 ‘최고의 책’은 단순히 오랜 기간동안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고전’이거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그 독자가 가장 크게 공명하고 반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평생 한 권의 책이라도 내가 진정으로 공명하여 읽고 또 읽게되고, 힘들 때 나를 일으켜주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줄 책을 만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책을 덮으며]

우리는 평생 타인과 관계를 맺고, 부대끼는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도 하고 서로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서로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도 하고 서로 익숙해지는 습관의 시간을 살기도 한다. 배우자나 부모님, 자녀가 사망했거나 부재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과거 함께했던 순간을 함께했던 시간 속의 습관으로부터 소환해 내곤 한다. 북클럽은 단절된 인간관계, 가족해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동아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각자 나름의 독서 경험과, 과거의 체험, 그리고 기억들을 통해 책과 반응하게 된다. 책에서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젊은이들의 소설이라는 말을 하지만,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인 홀든 콜필드가 맨하탄의 밤거리를 방황하던 그 모습이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큰 인상에 남아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겪던 처지를 나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나 또한 격려를 받았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