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엔지니어링'을 다시 돌아보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원제: 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
로렌 R. 그레이엄 지음 | 최형섭 옮김 | 역사인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소설 제목과도 같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읽은 후 책을 덮으며 서서히 떠오른 것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이었다. 이율배반적인 삶의 역설과,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 사회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문구를 떠올리며, 아마도 이 문장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어느 시대이든 진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은 한 미국의 역사학자가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 초반 미국 최초로 구소련에 교환학생으로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이후 관심을 갖게된 한 소련 엔지니어의 삶과 스탈린 치하의 사회상을 추적한 기록이다. 저자가 관심을 갖고 추적한 사람은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구소련 엔지니어이다. 그는 1875년 10월 05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2년 전에 태어나 1929년 5월 경 54세의 나이에 ‘산업당 사건’이라는 역사의 한 사건을 통해 다른 엔지니어들과 함께 소비에트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숙청당했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 팔친스키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를 통해 폐쇄적이던 구소련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팔친스키는 어떤 사람이었나】
표트르 팔친스키는 평범한 가정의 12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이혼한 어머니 슬하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도서관의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자랐다. 장남으로서 사실상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자력으로 엘리트 공대에 입학해서도 생활비를 벌기위해 다른 부유한 동급생과 달리 다양한 일을 병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엔지니어로서 정치와 예술에 또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에 이끌려 온건적인 아나키스트였던 표트르 크로포트킨과도 교류를 했다. 러시아 혁명 당시 급진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여 스탈린이 집권한 20년대 이후 소련 공산당과의 마찰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팔친스키의 경우, 지도자급의 엔지니어로서 글쓰기로 정치적 견해를 표출한 행동을 통해 체포와 석방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팔친스키의 엔지니어링 철학을 ‘인간적 엔지니어링’으로 간결하게 요약한다. ‘기술과 노동자 모두 최적의 상태여야 한다’라는 팔친스키의 주장이 보여주듯 기술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삶의 조건에 주목한 점에 주목해야한다. 소련의 중앙집중식 프로젝트에서도 엔지니어의 의사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필요가 충족된 상태를 의미했다. 이 인간의 요소는 나아가 인간을 위한 ‘사회정의’를 기술과 동시에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기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고양하는데 활용되어야한다는 가치에 충실한 철학인 셈이다. 당대에 국가 주도의 소련 산업구조 속에서 개별 인간에 대한 가치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는 점은 현대의 고도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편 팔친스키의 엔지니어링 철학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경험들을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분명 다른 많은 당대의 엔지니어들과 다른 폭넓은 식견과 인간의 가치를 주목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족도서관에서 경험한 독서체험, 그리고 성장해서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성공한 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며 다양한 삶의 양식과 문화를 접한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울러 엔지니어로서의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정치와 예술에 큰 관심을 갖고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인문적 교양 형성의 결과가 아닐까.
【스탈린 치하의 사회변화와 엔지니어의 역할】
1920년대 중반 스탈린이 집권을 한 이후, 숱한 정치적 숙청이 이루어지던 20년대 후반 유능하지만 공산당에 비판적이었던 팔친스키는 스탈린에게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특히나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인문적 교양’을 지닌 팔친스키는 자신의 비판적인 시각을 글쓰기로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후 팔친스키는 스탈린의 비밀경찰에 납치되어 20년대 후반, 비밀리에 숙청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팔친스키의 숙청과 관련한 ‘산업당 사건’은 스탈린 치하의 폭압적인 정부아래 어떻게 지식인들이 억압을 받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례가 된다. 팔친스키의 체포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에 묘사해놓았다고 하니 이후에 보다 자세한 면모를 구소련체제 내에서 바라본 지식인의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많은 지식인과 정적이 숙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도 고통을 받게된다. 30년대에 우즈베키스탄 등의 황무지로 강제이송당한 고려인들의 기억은 팔친스키가 처형당한 이후, 구소련의 암울한 시기와 병치되고 있음도 상기해볼 수 있다.
팔친스키가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 인하여 숙청된 이후, 스탈린은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들을 ‘생각하지 않는’ 기술자들로 만드는 국가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스탈린 시대에 비로소 엔지니어의 인문 교양의 습득 전통이 소멸해버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었다. <타임머신>의 작가 H. G. 웰스가 스탈린을 인터뷰한 아래 대목에서 스탈린의 생각을 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생산 조직가인 엔지니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받은 대로 따라야 한다. (…) 기술 지식 계급이 독립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84면, Bailes, <Technology and Society>에서 재인용)
더욱 경악스러운 부분은 스탈린 집권 이후 엔지니어 양성과정이 지나친 전공 세분화라는 특징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계 공학 전공’ 엔지니어가 아니라, 기계 종류별 압축기 담당 엔지니어를 양성한다던지, 구리와 구리합금을 다루는 전문가가 별개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저자가 모스크바에 자료조사차 갔을 때, 근교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가 자신을 ‘제지공장 볼베어링’ 엔지니어라고 소개한 상황을 믿기지 않는 듯이 묘사한 대목도 이런 소련의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 스탈린의 목표대로 과도한 전공 세분화는 팔친스키와 같은 ‘생각할줄 아는’ 엔지니어가 아닌 거대한 전체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기술자를 양성해내었다. 저자는 스탈린이 뿌린 이러한 씨앗의 재앙이 여전히 ‘팔친스키의 유령’으로 소련 내에 출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스탈린의 중앙집중식 산업화 방식은 기본적으로 이전의 레닌이 도입한 미국식 산업경영기법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에 기반한 경영방식)과 결합되어 이루어졌다고 이해해볼 수 있겠다. 곧 이 시기의 사회 건설 실험은 노동자를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기계 부속품으로 만들어 효율성(생산성)만을 추구하게 하는 강력한 추동을 제공했다. 나아가 금융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하나의 상품으로,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버렸음을 상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스탈린이 성취(?)한 중앙집중식 산업화의 사례를 한 가지 떠오려보자면, 나는 ‘백해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겠다. 발트해-백해를 잇는 운하 건설은 스탈린 치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선전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그 이면은 참혹한 진실이 가려져 있었다. 백해운하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는 거의 대부분인 정치범인 죄수들이었기에, 이들의 인권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듯하다. 표트르 팔친스키와 그 동료 엔지니어들이 제시한 엔지니어링 원칙이 철저히 무시되었고, 폭압적으로 인권이 유린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2년 미만의 공사기간 동안 약 20만명이 사망하여, 매달 평균 만 명씩 사망한 참혹한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스탈린식 산업화와 사회주의의 진실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전문가/엔지니어들이 정치적 폭압으로 인하여 전문가로서의 소견 표명의 기회를 포기하거나 차단되는 경우, 또는 폭압적인 정치체계나 정치가들의 견해에 심지어 동조하게 되는 경우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생각하는’ 엔지니어의 역할로서 팔친스키는 어떤 국가의 프로젝트에 대한 결정을 할 때, 경제적·사회적·윤리적 관점 등 포괄적으로 검토를 거쳐야하며 특히 ‘산업에서 노동자와 지역주민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팔친스키의 유령은 국내에서도 여기 저기 출몰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제주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과정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그리고 성주 사드 배치 과정 등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인간, 특히 지역 주민을 고려한 사회 정의는 아예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특히 지역주민이 완전히 배제된 의사결정 과정과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 관점 등에서 검토되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된 엔지니어링이 초래하는 대가는 우리의 후손들이 짊어지고 갈 부담이 될 것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건설이었나? 결국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졸속 국가 프로젝트의 엔지니어링 양상은 스탈린의 무리한 중앙집중식 산업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찾기 힘들다.
【책을 덮으며】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은 나에게 하나의 큰 주제를 던져주었다. ‘인간’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기술’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생각하는’ 엔지니어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하는 주제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주제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모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팔친스키가 엔지니어들은 정치와 경제를 반드시 알아야한다는 점과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 오늘날의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인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과학기술인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면 왜 안되는가? 과학기술인들도 역시 정치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이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더욱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스탈린 치하 국가 주도의 거대한 실험은 분명히 실패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행여나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일방적 우월이라는 엉뚱한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물론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왜 소련이 근대 산업국가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언급하듯 국가의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수혜자로서 입장을 대변하는 듯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은 물론 거슬리긴 하지만 나는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통해 스탈린 치하의 사회상을 잠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사상에 동조하는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결국은 정치적 숙청을 당한 팔친스키의 삶과 당대의 사회상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는데 시사하는 바가 많음을 상기해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