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하는 행위로서 걷기와 철학하기는 공통점을 갖는다

冊 [books] 2017. 11. 22. 21:35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로제 폴 드루아 지음 | 백선희 옮김 | [책세상]

로제 폴 드루아는 <일상에서 철학하기>, <사물들과 함께 하는 51가지 철학 체험>등과 같이 일반독자들이 철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책을 쓴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라고 하면 사변적인 이야기로 책을 꽉 채우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로제 폴 드루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장황하고 어렵게 글을 쓰곤 하는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과 달리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철학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철학에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철학저술가로서 그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하다.

【걷기와 철학하기의 유사성】

머리만이 아닌 온몸으로 철학을 해보는 그만의 철학하기 방식은 결국 저자로하여금 우리의 가장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 다시 눈을 돌려 우리 곁에 철학을 데려왔다. 바로 걷기와 철학을 함께 시도해보는 것이다. 드루아가 독자에게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볼 것을 권하는데, 바로 우리가 ‘걷는다는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주문이었다. 저자가 표현하는 걷기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추락하기’로부터 걷기 행동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추락이 시작되다가 만회되고 다시 촉발되다가 모면되는…”(106면) 행위가 바로 걷기 행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한 발을 내딛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반대쪽 발이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지게 된다. 곧 다른 발의 행동이 보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하나는 이 걷기의 메커니즘을 철학에 비유한다. 곧 “걷기와 철학은 항구적인 추락과 만회라는 유사한 움직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생각은 그 어느 곳보다 철학의 훈련 속에서 스스로 붕괴될 위험을 촉발하며, 새로운 솟구침, 새 도약으로 자신에 저항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아간다.”(22면) 결국 저자는 우리의 걷기와 철학하기가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을 통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철학하기에서 균형을 깨는 계기는 곧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이는 대상이나 사실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 내지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가 철학하는 과정은 바로 사고의 요동, 곧 의혹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뒤흔드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가 곧 걷기의 메커니즘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걷기는 철학자에겐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지구 위에서 이동하는 인간만의 유일무이한 특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제 폴 드루아는 이 걷기 그리고 철학하기의 풍경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동·서양을 넘나들며 걷기와 철학하기의 유비를 이 책에서 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우리 인류가 이동 도구에 보다 더 의존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미래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타고다니는 ‘날으는 보드’의 모습과 유사한 풍경들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엿볼 수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바퀴 하나 또는 두 개 달린 발판 이동기구, 또는 전동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심심치않게 도시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이동기기들을 타고다니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 번씩은 우리의 머나먼 미래 세대의 경우, 걷는 일을 잊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로제 폴 드루아도 분명 우리의 걷기가 우리 인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 자신도 우리가 더 이상 걷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라고 단언 한다. “인간의 걷기가 점차 소멸하는 건 분명 모든 측면에서 인류의 소멸이 될 것이다.”(208면)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걷기행위를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중력에 저항하는 인류의 고유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인류가 지구의 표면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모든 인류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인류는 두 발로도 서야하고, 중력에도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두 다리를 단단한 대지 위에 버티고 서서 걷는 행동을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습득하게 되었다. 로제 폴 드루아가 직립보행하는 인류는 걷기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철학하는 일이 함께 발달해왔다고 보는 것처럼, 나는 인류가 중력에 저항하여 대지 위에 버티고 걷게됨으로써 의지(will)라는 것을 배로소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된다. 바로 자신을 억누르는 무형의 존재에 대한 저항행위로서 인간이라는 개체가 스스로 의지를 발달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걷기란 인간이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고유한 속성이라는 드루아의 표현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곧 걷기의 리듬에 맞추어 우리의 사고도 한 발 한 발 ‘진일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른 교통수단을 타고 순식간에 이동하는 현대인들에게 걷는 행위, 산책과 같은 일은 인류가 ‘인간다움’을 비로소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져 해보게 된다. 우리에게 철학을 친숙하게 만들어준 로제 폴 드루아의 이 책은 ‘걷는행위’를 잃어가는 혹은 잊어가는 듯한 현대인들이 주목해보고 함께 ‘사유의 풍경’을 걸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