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의 철학> - 우리의 소박한 삶을 낯설게 보기
《단순한 삶의 철학》
(원제: The Wisdom of Frugality)
엠리스 웨스타콧 (Emrys Westacott) 지음 | 노윤기 옮김 | [책세상]
이번에 읽게된 <단순한 삶의 철학>에 대한 글은 기존의 독후감과 유사한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보다 간결하게, 내가 받은 인상을 ‘이 책은 어떤 책이다’라는 방식으로 정리해보려한다.
▶ <단순한 삶의 철학>은 생각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에 대해 출판사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미국 뉴욕 소재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서 본인 자신은 지독한 구두쇠로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독자에게 ‘검소한 삶만이 길이다’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선배 철학자들이 주장했고, 이를 찬양했다고 하여 우리도 여기에 따라야하는가를 묻는다. 책의 원제(검소함의 지혜)를 고려하면 결국 저자의 입장은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 손을 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을 공개하듯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인상을 받는다. 곧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기, 곧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우리에게 책전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견해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선택은 각자의 논리와 철학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하나하나 따라가며 자신의 견해와 비교해보면 될 것이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 <단순한 삶의 철학>은 천천히 읽는 책이다.
저자가 어떤 관점에 대해 소개할 때, 다양한 견해를 제시해준다고 말했다. 곧 동전의 양면을 모두 면밀히 살펴보듯, 해당 관점에 대해 저자는 반론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뚜렷한 주장이 없이 저자의 논점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반론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은 긴장의 이완이 없이 지속적으로 긴장상태에 있는 것 같아 속도감있게 진행되지 않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소박하고 검소한 삶과 우리의 행복한 삶, 의미있는 삶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소개해주는데, 고대의 철학자 뿐만 아니라 알랭 드 보통과 같은 동시대의 저술가도 소환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제시하는 한 문장의 의미는 저자가 정리한 고대 철학자나 동시대 철학자의 저서에 대한 한 줄 서평이기도 하다. 곧 이 책은 독자의 수준에 따라 저자가 제시해주는 견해들을 이미 잘 알고있다면 빠르게 읽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천천히 읽을만한 책이다. 어떤 점에서는 이 책 <단순한 삶의 철학>은 ‘검소한 삶의 미덕’으로 가기 위해 저자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책들과 삶의 철학이 함께 녹아든 ‘독서에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저자의 폭넓은 독서 경험과 ‘검소한 삶의 미덕’에 대해 생각해온 저자의 고민이 들어있는 만큼 천천히 읽으며 독자 자신의 생각을 부추기는 책이기도 하다.
▶ <단순한 삶의 철학>은 유연한 윤리학을 보여준다.
윤리학/철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나 자신이 책을 읽으며 받은 인상은 이 책이 북미의 실용주의 윤리학의 전통을 잇는 실천윤리학적 맥락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실천윤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피터 싱어의 철학과 그 ‘생각하기의 방식’이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치에 대해 우리의 일상의 실례를 다양하게 고찰하고, 다양한 관점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서양철학사 2000년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는 영국 철학자 화이트 헤드(White Head)의 말을 떠올려본다. 곧 플라톤 철학의 전통은 곧 ‘이데아’의 철학임을 인정한다면, 이 ‘이데아’는 곧 영원불변의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다. 여기서 플라톤을 갑자기 꺼내는 이유는 <단순한 삶의 철학>이 원제가 의미하듯 ‘소박한 삶의 지혜’라는 (저자의) 기준을 가진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전통을 잇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길에 이르기 위한 과정은 상당히 유연하고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 또한 우리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어떤 가치’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기를 실천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경제를 북돋우기 위해 지역 농산물만을 구매하여 섭취하는 것이 좋다’라는 주장을 놓고 볼 때, 피터 싱어가 그의 책 <죽음의 밥상>에서 다양한 입장을 모두 고찰하던 모습을 이 책의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도 유사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 측히 후기 자본주의로 대두되는 이 지구촌에서 물질적 풍요와 소비의 향유는 성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 공허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이 책은 결국 이러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검소한 사람’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게 해주고, 우리의 일상에서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실천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 <단순한 삶의 철학>을 읽고 난 후 옆길로 샌 흔적 – 단상들
저자는 고대 철학자, 사상가들의 시대와 현대 시대는 분명 그 삶의 양태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이 인식하고 제시한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소수의 특권 귀족 계층만이 부를 누리던 고대 사회에서는 귀족 계층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금욕주의’를 칭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금욕주의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다’(49면)라고 저자도 주장하고 있듯이, 저자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고려를 놓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역시 2년에 가까운 숲 속에서의 생활에 기반하여 <월든>이라는 책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전세계가 긴밀히 인터넷과 전화 등의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소로의 실험적인 삶은 사실 접근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2018년 현재, 자본주의적인 경제구조가 지구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잡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구의 자본주의가 지구촌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개성’이란 개념을 발명(?)하고 주입시킨데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생물체로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말이다. 자본주의는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점으로 우리에게 안심시키며, 우리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갖고 이를 추구하도록 독려한다. 저자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른 일일까를 반문해보면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욕망’의 모습이 어떤 양태를 가지며,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따져보라는 것이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 교수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간결히 말하면, 어떤 가치 주장에 대해 단순히 수긍하기 전에 각자가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판단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저자는 끝없이 의심하고 소소한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는 심지어 ‘끝없는 욕망이 불행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127면)라고 까지 주장한다. 곧 ‘어떤 사람에게는 더 높고 강렬하고 광범위한 행복의 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127면)는 점이다.
그러나 책의 후반에서 다루고 있듯 우리 현대인들은 이 ‘개성’의 표출, ‘욕망’의 충족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하는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차혁명이라는 화두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에 기반한 삶의 혁명은 우리의 삶의 질을 보다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우리의 삶을 좀더 편하고 일처리를 빠르게 해주는 자동화 과정에서 현대 기술은 인간의 생산성을 더욱 압박하는 양상도 무시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자동화 설비를 통해 일주일하던 임무를 하루만에 해냄으로써 기존의 작업방식을 혁명적으로 개선했지만, 이는 또다시 노동자로하여금 일주일 내에 일곱배의 일을 완수하도록 강요하는 메카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현대인들, 특히 노동자들의 삶은 노동시간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내에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곧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모순을 가져왔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저자가 ‘소박한 사람’ 또는 ‘검소한 삶’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노동시간을 언급하는 것도 분명 이 ‘검소한 삶’에는 ‘삶의 질’에 대한 고려도 분명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가 보여주는, 혹은 저자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검소한 삶’의 모습을 글로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를 글로 표현하고 타인에게 주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의 가치는 저자가 독자들을 각자 나름의 고유한 점과 보편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한번 면밀히 들여다보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곧 각자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낯설게 보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성찰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라는 주장에 대한 실천적 가능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