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인간의 무기 경쟁 진화사 – 우리의 위치 확인하기
<동물의 무기(Animal Weapons)>
더글러스 엠린(Douglas J. Emlen) 지음 | 데이비드 터스(David Tuss) 그림
승영조 옮김 | 최재천 감수 | [북트리거]
조선의 명문장가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온 후 <열하일기>를 남겼다. 여기에 연암이 열하에서 코끼리를 처음 보고, 비정상적인 코와 어금니(상아)에 대해 그 이유를 따지는 대목이 나온다.
“어금니를 길게 만들어 놓고 코에 의지하여 덕을 보라고 할 바엔, 차라리 어금니를 없애 버리고 코를 짧게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김혈조 옮김, 돌베개)
“말하기 좋아하는 자는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빨을 주지 않았다’고 하여 조물주가 물건을 만들 때 무슨 결함이나 있게 만든 것처럼 말한다. 이는 망발이다.” (김혈조 옮김, 돌베개)
연암의 시대에는 조물주가 코끼리 한 종에 의도한(?) 이치를 설명할만한 실마리가 없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수련을 거친 생물학자가 아니더라도 더글러스 엠린의 <동물의 무기>를 읽고나면 누구나 연암이 당시(1780년대) 궁금해하던 코끼리의 어금니를 둘러싼 의문들을 간결하고 우아하게 설명할 수 있게될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저자 더글러스 엠린 교수에 주목해보자면, 엠린 교수의 배경은 남다르다. 평화스러운 퀘이커 집안의 전통 속에서 저명한 생물학자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을 접하며 자랐다. 흥미로운 것은 엠린 교수가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커다란 무기”에 꽂혀 지냈다’라고 언급한 대목이다. 동물의 (대형)무기에 대한 어린 시절의 관심이 평생동안 지속하게 될 학문 활동의 한 가지 주제로 자리잡았다. 책의 앞부분에선 감수자인 최재천 교수와의 학문적 인연으로 저자를 독자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동물의 무기>는 동물의 무기 진화에 대한 책이다. 저자가 간결히 정의하는 ‘진화’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물 형태의 변화로 이어지는 ‘점진적’인 교체 과정’(25면)이다. 여기서 ‘점진적’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진화를 바라보는 한 가지 틀을 기반으로 한다. 보다 오랜 시간의 틀에서 ‘연속적’으로 동물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주류 생물학의 입장에 기반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 책은 ‘무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물 세계에서 유독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로 큰 무기를 가진 생물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생물들이 지불해야하는 대가와 속임수 그리고 균형의 문제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다만 저자의 관심은 동물의 세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행동양식과 비교하여 그 유사성을 밝히는 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이 책의 독특한 색을 더해주고 있다.
엠린 교수는 책의 전반부를 통해 동물이 거대한 무기를 지니기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우선 개체끼리의 치열한 ‘경쟁’이 전제가 되어야하는데, 저자는 다윈이 제시했던 개념인 ‘성선택’의 관점에서 동물들의 무기 경쟁을 설명한다. 수컷들이 암컷에 접근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바로 ‘성선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으로 생태환경의 조건이 있다. 바로 이용가능한 자원이 산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존재하여 경제적인 방어가 가능한 환경이어야 하는 ‘경제논리’의 환경조건이다. 동물들에게 가치있는 자원을 간직한 한정된 영역을 경제적으로 방어할 경우 큰 편익(번식의 기회)을 얻을 수 있다면 동물들은 기꺼이 큰 무기 경쟁에 뛰어 든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조건은 이러한 수컷 내지는 암컷 사이의 경쟁 형태가 자원을 놓고 다수의 개체들끼리 벌이는 ‘쟁탈전’의 형태가 아니라 ‘1대1’의 대결 형태가 되어야한다는 조건이다. 다수의 쟁탈전은 자신의 승리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무기를 만드는 투자비용대비 이득이 모호해진다. 곧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이 동물 집단 내에 만족하는 경우, 경쟁을 위한 무기가 거대화될 수 있다고 저자는 동물들의 사례를 들어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글의 시작에 인용한 연암의 <열하일기> 중 코끼리의 어금니와 긴 코에 대한 언급에 대해 이제 우리는 코끼리의 어금니가 길어진 정황을 ‘성선택’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엠린 교수가 제시한 무기 거대화의 세 가지 조건과 비교해보자. 우선 암컷 코끼리의 임신기간이 2년, 육아를 전담하는 기간이 대략 2년, 총 4년의 임신·육아기간 동안 단 5일 가량의 가임 기간을 갖는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수컷들은 자신의 자손을 낳기 위해 다른 수컷들과 극심한 경쟁을 하여 승리해야한다. 암컷과 수컷이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기회가 극도로 비대칭적이다. 여기서 수컷의 어금니가 가장 길고, 덩치도 크다면 암컷 무리 ‘영역’을 지켜내어 자신의 새끼를 칠 수 있다는 강력한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추동 조건을 찾아볼 수 있다. 수컷 코끼리는 1대1 겨루기를 통해 승리 여부를 가리므로, 코끼리의 무기인 어금니가 거대화되는 조건에 아주 잘 부합한다. 거추장스럽고 막대한 에너지와 영양분을 필요로하는 이 신체의 일부를 만들어내어 번식의 기회를 독차지할 수 있다면, 수컷 코끼리가 지불해야하는 대가에 충분히 보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무기 경쟁을 추동하는 ‘성선택’의 개념은 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 이 ‘성선택’에 의한 진화기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연선택’과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기작은 동물이 주위 환경에서 생존하는데에 최적화될 때까지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엠린 교수에 의하면, 이 ‘환경’이란 조건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어울리는 새로운 크기와 색깔 등의 유전 형질을 ‘발현’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바다 큰가시고기가 민물에 고립되자 몸에 난 가시와 갑옷 판의 수가 변화되고, 이들이 환경에 최적화 상태에 이르러 무기에 변화가 멈춘 사례가 이러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기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성선택은 자연선택보다 그 효과가 훨씬 강력하다. 성선택은 조건만 충족하면 환경에 민감하게 좌우되는 자연선택보다 더 일관성을 가지고 유전 형질을 극한까지 발현하도록 추동한다. 앞서 제시한 코끼리의 ‘성선택’ 진화 기작의 사례와 같이, 소수의 승리자에게 돌아가는 성공의 대가가 충분히 크다면, 무기는 크기가 증가하는 쪽으로 진화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성선택은 환경조건이 아닌 ‘사회적 기능’이 진화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추동 기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는 코끼리의 무기 경쟁만을 언급했지만, 저자는 암컷이 오히려 격렬한 경쟁을 하는 조류인 자카나, 뿔이 있는 장수풍뎅이, 농게, 대눈파리 및 앞장다리하늘소 등의 풍부한 예를 통해 성선택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무기의 거대화 기작을 풍부한 예로 소개하고 있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개념을 조금 다른 언어로 정리하여 이해해본다면, 자연선택은 환경에 의한 진동조건을 통해 양쪽 방향에 제약을 가하는 경계값을 갖는 ‘음의 피드백’구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환경에 최적화되기위해 변화 가능성의 최대치와 최소치 사이의 어느 한 국면에서 조정되고 정착하기 때문이다. 반면, 성선택은 (특정 조건—경쟁/경제적 방어 가능성/1대1대결—을 충족한다면) 사회적 기능에 의해 무기가 한 방향으로 증가하도록 추동을 받는 ‘양의 피드백’구조와 닮은 진화 메커니즘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방향으로 일관성있게 추동되는 성선택은 진동하는 자연선택보다 더 강력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후반부에서는 동물들이 무기 경쟁을 하게 된 다음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코기리의 사례처럼 일반적으로 동물의 무기는 인간의 무기(신체와 별개)와 달리, 신체의 일부이다. 따라서 거대한 동물의 무기를 만들어내려면 그에 따르는 비용은 개체가 감수해야한 한다. 저자는 동물의 무기가 거대화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무조건 무기가 거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에서 제한을 가해주는 변수를 언급한다. 쇠똥구리의 사례를 보면 보다 이해가 쉽다. 대부분 뿔이 없는 이 곤충에도 유독 뿔이 크게 자라는 종이 있는데, 이 종은 무기 경쟁이 가속화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에 잘 부합한다. 쟁탈전을 벌이는 대부분의 수컷 쇠똥구리와 달리, 뿔을 갖는 종들은 1대1 대결을 하여 번식의 기회를 차지하거나, 암컷이 있는 굴을 지킴으로써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이 뿔이 무작정 커지지 않는 것은 뿔있는 쇠똥구리 종이 지불해야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큰 뿔을 가진 개체 일수록 다른 신체의 발육이 더디다. 예를 들어 뿔이 클수록 눈의 발육이 부진하여 크기가 작거나, 날개, 촉수, 생식기, 정소 등의 성장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열하일기>로 돌아가서 “말하기 좋아하는 자는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빨을 주지 않았다’고 하여 조물주가 물건을 만들 때 무슨 결함이나 있게 만든 것처럼 말한다. 이는 망발이다.”라는 대목을 주목해보자. 연암은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빨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뿔이 있는 개체에게 이빨을 주지 않았다’는 진술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으나, 조상들은 그래도 뿔이 있는 동물이 지불해야하는 비용에 대한 상관관계를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엠린 교수가 제시한 다마사슴이나 북미 순록의 사례를 보자. 수컷 사슴은 거대한 뿔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절성 골다공증에 시달릴 정도로 상당한 뼈의 성분을 동원하는 반면 수컷끼리의 극심한 전투로 큰 부상을 입거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다음 해 봄까지 생존가능한 개체가 대폭 감소한다. 연암 박지원은 동물의 뿔과 이빨 사이의 관계가 무관하다는 점은 옳게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동물이 뿔을 가짐으로써 지불해야하는 비용을 연암이 이해했다면, 뿔을 가진 동물에게 나타나는 ‘결함’이 ‘조물주가 의도한 결함’이 아닌, 생물들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존하는 한 가지 방식임을 이해했을 것이다.
무기의 거대화 국면에 변화를 줄만한 또 다른 요건으로, 저자는 동물들이 경쟁을 회피하는 기작과 속임수 작전을 지적한다. 무기를 가진 수컷끼리 만나 대결을 하는 일은 대결을 하는 개체들에게 큰 대가를 요구함은 물론이다. 부상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면 패배를 하는 개체는 영원히 자신의 자손을 나을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곧 수컷끼리 만나 상대를 파악하고 불리한 조건을 회피하는 것은 무기가 갖는 억제력의 효과를 가져온다. 대신 물러난 수컷은 생존을 유지하여 보다 만만한 다른 수컷과 경쟁을 하거나 훗날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수컷의 전략은 우량 수컷의 눈을 피해 우량 수컷의 암컷과 밀통하는 방법을 구하거나, 아예 자신을 암컷과 비슷하게 외모를 가꾸어 암컷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속임수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들을 구사하여 자신의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거대한 무기를 만들 이유가 무색해진다.
<동물의 무기>가 다른 진화생물학 서적과 다른 독특한 점은, 엠린 교수가 어렸을 때부터 큰 관심을 갖던 동물의 무기 진화에서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온 무기 경쟁에 대한 유사성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 사회에서 무기의 발달과 무기 경쟁의 양상은 동물 세계의 경쟁과 진화 기작과 매우 닮아 있다. 저자는 수많은 사례를 들어 동물의 무기 경쟁과 인간의 무기 경쟁의 유사성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 갤리선은 1500년 넘게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청동 주조 기술의 발달로 청동 공성추가 배에 도입되자 점차 배에도 근접해전의 1대1 격돌 조건이 가능해지게되고, 이어서 배의 거대화 경쟁이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혹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성선택’의 관점에서 남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흥미롭다. 중세의 ‘마상창경기’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기사들의 용맹을 시험하는 실제 전투가 많지 않으므로 창경기를 통해 이들은 자신의 용맹을 귀족여인들 앞에서 뽐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동물의 1대1 대결과 마찬가지로 기사들의 기본조건, 곧 좋은 말, 튼튼하고 좋은 갑옷과 창, 훌륭한 선생 등의 조건을 잘 갖춘 기사가 마상창경기 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높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도 무기 경쟁을 무색하게 하는 변수들이 존재하면 무기 경쟁이 가속화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무기를 무력화하거나 속임수 내지는 대결 회피와 같은 방식을 취함으로써 무기의 거대화에 제동을 가하는 효과가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세 기사들의 사례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석궁, 장궁이 도입되고 널리 사용되면서부터 기사들이 ‘우수한 수컷’의 신호로 사용한 값비싼 값옷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현대 사회로 돌아와 현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무기로 핵무기를 생각할 수 있다. 엠린 교수에 의하면 핵무기의 경우 치열한 무기 경쟁을 위한 조건은 냉전시대에 이미 충족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세계 강대국이 핵을 보유하고 핵무기 경쟁을 하던 대결구도의 시대에 제동을 건 것은 핵무기 제조단가의 하락 및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와 같은 변수로 설명할 수 있다. 곧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강대국이 가공할만한 무기를 독점적으로 보유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분명한 억제력 효과를 갖고 있었다. 반면, 탈냉전 시대인 오늘날 우리의 운명은 억제력의 근본 논리를 무색하게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엠린 교수는 진단한다. 이미 냉전 시대에 인류는 최소한 두 번의 핵전쟁 발발 위기를 겪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나라에서 핵무기를 비롯하여 화약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쉽게 보유하게 되어 인류의 운명은 더욱 취약해졌다. 대량살상무기는 동물의 세계와 비교하여 유사성을 찾아볼 수도 없고, 인류의 역사에 견주어 보아도 그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최종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량살상무기는 전투의 이해관계와 논리를 변화시킨다. 또다시 무기 경쟁을 하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311면)
책을 마무리하며 전하는 엠린 교수의 메시지는 매우 직설적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보니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저자의 의도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된다. 3차 대전은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구에는 오랜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 새로운 생명의 발현을 반복하고, 인류와 유사한 종족이 등장하게 된다면 인류는 또다시 역사가 반복하여 돌멩이로 전쟁을 하며 인류의 역사를 반복하게될 것이다.
<동물의 무기>를 읽으며 몇 가지 아쉬웠던 부분은, 인간의 무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부분에서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인 무기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미국 군대의 무기체계 위주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항공모함이 무기와 억제력으로 기능함을 설명하면서 분쟁지역을 안정화시키는 군사력의 휴대용 신호로 기능한다’고 함으로써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한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대목은 다소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저자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러한 논리는 한 국가가 전쟁 억제력을 가지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추구해야한다는 논리로도 이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류의 ‘각인’현상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동물행동학의 시조 콘라트 로렌츠를 떠올려본다. 그는 ‘인간의 공격성을 본능으로 간주함으로써 억압을 수단으로 삼는 권위적 사회를 정당화한다’라는 논리로 인문·사회학자들로 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동물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내린 이들의 질서에 대한 결론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 오해와 악용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정치인들이 ‘대의를 위한 차악의 선택’으로서 핵무기 혹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및 보유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엠린 교수는 <동물의 무기>에서 동물의 무기 경쟁을 통해 다양한 생물들의 진화 전략을 쉽고도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인간의 무기 경쟁을 동물들의 무기 경쟁과 결부지어 유사성을 찾아낸 데에서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대목은 ‘우리에게 억제력이 있다고 해도 무기가 절대 사용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308면)라고 경고하는 대목이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간에 ‘어떠한 대립도 고조시켜서는 안된다’(309면)라고 말하는 대목도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엠린 교수가 고찰한 동물과 인간이 보여준 극한 무기의 진화사는 결국 우리 인류가 현재 어디에 서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