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존재의 집, ‘언어’가 만들어낸 경계인의 삶과 낯선 풍경들 – 그러나 쓰기는 계속된다.
《문맹 (L’analphabéte): Récit autobiographique》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 지음 |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이 책을 ‘실수로’ 펼쳐든 후, 단번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밤 무언가를 써야만 했다. 무엇을 써야할지 망설여졌다.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몸소 체험한 경험 어느 하나도 나와 공유하는 것은 없었다. 네 살 때부터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는 저자와 달리 나는 유독 책을 읽지 않았고, 심지어 학교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초중고 학창시절을 통해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책은 단 한권이었다. 요즘처럼 ‘읽기’와 ‘쓰기’ 교육을 공공연하게 강조하는 시대의 관점에서 분명 나는 ‘문맹’과 다름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에 홀린듯 책을 덮을 때까지 저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짧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나에게 생소한 작가다. 헝가리 태생의,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성장했던 작가로서 정치적인 이유로 난민이 되었다. 이에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녀와 가족은 마침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녀는 생을 마칠 때까지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네 살에 이미 글자를 읽기 시작한 이후 ‘독서’라는 치유되지 않는 병에 걸렸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생경한 언어로 환기되는 ‘낯설음’은 성인이 되어 뜻하지 않은 ‘문맹’의 상태로 내몰리게 되었다. 사막처럼 느껴지는 고립된 환경에서 그녀가 느꼈을 고독감과 상실감은 ‘쓰기’에 대한 갈증을 통해 새로운 욕망의 혁명을 일구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모국어를 잃는다는 것 – 언어와 정체성】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모국어는 헝거리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의 가족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로 갔다가 갑작스런 러시아의 점령으로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의무적으로 배워야만 했다. 19세에 결혼을 하고 21살 때에 4개월된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국경을 건너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에 정착하여 평생 이곳에서 지내고 생을 마감했다. 한번도 모국어 사용 금지라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로서 나는 할아버지 세대가 일제 강점기에 경험했을 법한 분열적 체험이 없다. 아가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은 그녀가 시대의 격량에 휩쓸려 조국을 떠나 새로운 공간, 새로운 문화적·언어적 공간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체험의 기록이다. 저자의 가족이 다른 공간(국가)에서 생존을 위해 다른 언어를 배워야했던 경우라면, 노명우 교수가 쓴 <인생극장>에서는 부모님의 식민지 경험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라는 구체적이고 한정된 시공간에서 살기위해 새로운 언어를 접해야했던 식민지 시대 가장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개인이 경험했던 주관적인 기록이 널리 공유되고 이해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기록으로 거듭난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인생극장>에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소학교를 갈 수 있었던 집안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일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던 아픈 현실이 놓여있었다. 반면, 소학교 교육의 기회마저 없었던 가난한 집안의 ‘딸들’은 학교를 가지 못해 일본어 마저도 배우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우리 말과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의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 어떤 의미에선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모국어를 상실한 세대라고 볼 수도 있다. 일본 식민지 세력이 물러나니 곧이어 한반도에는 미군정이 들어서고, 노명우 교수의 아버지는 미군들을 상대로한 클럽을 열었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던 시대가 어느 날 갑자기 영어를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공간, 낯선 언어 환경에 내몰리게 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몇 마디라도 독일어를 해야만 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상상하기 힘들다. 이 언어가 심지어 ‘적국의 언어’였다면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지난 세기 초에 우리의 앞선 세대가 내몰리게 된 이 경험들을 아가타 크리스토프도 분명 다른 방식으로 마주했던 것이다.
“우리, 헝가리 사람들에게 독일어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상기시켰으므로 적의 언어였고, 그것은 또한 당시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외국 군인들의 언어이기도 했다.”(51면)
작가가 적어넣은 여러 국적과 언어의 이름을 일본어와 같이 치환하면 어떤가. 노명우 교수의 부모님이 경험했던 모국어의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이 드러난 정황이 그리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정착하게된 스위스에서 아가타 크리스토프는 프랑스어를 몰라 성인이 된 나이에 또 한번의 ‘문맹’ 경험을 하게 된다.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마주치는 경험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52면)
저자에게 프랑스어는 우리가 생각하듯 아름답고 낭만적인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헝가리어’를 죽이는 ‘적어(敵語)’일 뿐이었다. 30년 넘게 프랑스어를 말하고, 20년 넘게 프랑스어로 글을 썻던 저자는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라고 여전한 낯설음을 고백한다. 한 인간이 극복하지 못하는 언어의 벽은 곧 모국어를 잃는 경험을 통해 체득한 정체성의 상실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작가가 피부로 느꼈던 언어에 대한 이질감은 한 인간이 자각하게되는 최초의 상실이며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결핍의 경험일 것이다.
【상실의 시대/상실의 기억】
스위스 뇌샤델이라는 곳에서 시계 제조 공장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은 저자는 언어 이외에 자신이 결핍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기 시작한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 스위스 노동자들은 난민지위를 거쳐 정착하기 시작한 헝가리인들에게 진심어린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정작 낯선 환경에 고립된 헝가리 노동자들은 이러한 환경이 새로운 사막(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이 되어 다가온다.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 및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그리움은 저자 뿐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했던 동료 디아스포라들이 느끼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내면의 상실감, 결핍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물질적으로 보면 우리는 에전보다 조금 더 잘살고 있다. 우리는 방 하나 대신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석탄이 충분하고 음식도 넉넉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비하면 너무 비싼 값을 지불한 셈이다.”(90면)
저자가 느끼는 이런 소박한(?) 상실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강한 생존의 욕구만 소유할 수 있었던 저자의 가족은 자신의 몸을 누일 집과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게 되자 또 다른 결핍의 자각이 따른다. 여기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것들’은 분명 언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스위스라는 아름다운 나라가 자신에게는 하나의 사막과 같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자신의 삶이, 필요충분한 자기 삶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뀐 경험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러한 상실의 체험을 이미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였다. 가족과 헤어져 허름하고 낯선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여기서 그녀가 이별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이 바로 글쓰기였다. 한 인간에게 주어진 결핍과 상실의 체험이 글쓰기의 욕망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치유의 글쓰기, 그리고 작가가 되는 길 】
글쓰기에 대한 아가타 크리스토프의 욕망은 그녀가 14살 때 가족을 떠나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면서 보다 분명해졌다고 고백한다. 절대 침묵을 강요당했던 학습실에서 긴 시간동안 일기 같은 것을 쓰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일기에 담은 내용은 자신이 겪고 있던 상실의 감정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었다.
“나는 일기에 나의 불행,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를 밤마다 침대에서 소리 죽여 울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적는다.”(32면)
역사적·정치적 이유로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진 오빠를 보러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한 상태다. 무엇보다 소녀는 차비가 없어서 자유가 있더라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시대를 살았다. 대신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상실의 감정이 그녀가 만들어내는 문장을 통해 보살핌을 받게되었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34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분명 치유의 효과를 가지는 모양이다. 글쓰기란 어쩌면 자신이 마주한 고통, 슬픔, 상실감, 고독감, 두려움, 이따금씩 찾아오는 행복감 등의 모든 감정이라는 ‘나의 얼굴’과 마주대하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글을 씀으로써 나의 요동하는 감정들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내 안에 굽이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잦아들면, 보다 진실되고 깊은 힘이 문장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학교를 다니게된 딸아이와 함께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저자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희곡을 완성했다. 그녀의 희곡은 아마추어 배우들에 의해 장기공연을 성공적으로 하고,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기도 하면서 진짜 저작권료를 받게 되기도 했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103면)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적어(敵語)’로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이 언어로 남은 평생 글을 썻던 아가타 크리스토프의 의지는 이미 자기 암시로 본문의 어딘가에 드러나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82면)
【이제 우리의 할일은 쓰기, 그리고 계속 쓰기】
나는 이 책을 한 번 정독하고, 다시 출퇴근 할 때 읽어보았다. 작가가 경험했던 삶의 풍경들, 작가가 남긴 진실한 문장들에서 처음 느꼈던 인상이 여전히 강렬한 상태로 줄어들지 않는다. 네 살때부터 읽기를 시작한 한 소녀의 삶은 소녀가 사용하던 언어와 일체를 이룬다. 그녀의 언어는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상실과 결핍의 상태를 메워주는 집짓기 행위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저자와 내가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어떤 체험이 아니라 근원적인 ‘결핍에 대한 자각’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무언가를 쓸 수 없었다면 위로를 받지 못하는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란 의미이다. 작가에게 쓰기란 그녀에게 내려진 의연한 삶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장석주 시인이 어느 글에서 ‘졸렬한 글이라도 쓸 용기를 내고, 계속 쓸것’을 주문했던 문장을 다시 기억해 내었다. 졸렬한 나의 글은 이렇게 또 한번 살아남게 되었다. 아가타 크리스토프는 이 책을 덮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자신의 책에 살짝 숨겨놓았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