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미 우주인이다’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원제: AD ASTRA: An Illustrated Guide to Leaving the Planet)
댈러스 캠벨(Dallas Campbell) 지음 | 지웅배 옮김 | [책세상]
맑은 날 저녁 깊고 어두운 하늘에 촘촘이 박힌 별을 바라보고 경외감이 들지 않은 이가 있을까. 대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이제 도시의 불로 밝아진 밤과 빌딩숲으로 좁아진 시야로 하늘을 보는 이가 드물다. 밤에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만나게 된 책은 영국의 배우이자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댈러스 캠벨의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 하이커>)이다. 책을 읽으면서 받은 저자에 대한 인상은, ‘우주 여행/우주 개발에 관한 진정한 덕후’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는 물론 비난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도 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다. 이 책은 특정 분야의 기술적인 사항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여행과 관련한 ‘얇고도 넓은 잡학 사전’같은 인상을 준다. 책의 원제목을 참조해보면 ‘지구를 떠나는 일과 관계된 가이드’이다. 이 책은 다양한 맥락에서 우주 여행에 관계된 풍부한 그림과 사진을 곁들인 저자의 스크랩북 같다.
책을 읽으며 문득 오래전 기억하나가 되살아났다. 유치원에 가기 전의 나이였으므로 6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할머니 방에 있던 흑백TV를 통해 보았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의 역동적인 이륙 영상이었다. 이 장면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나는 용어는 몰랐지만 ‘과학자’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물론 당시에는 아이들 상당수가 아직은 ‘과학자’가 꿈이라고 말하는 때였으므로 나도 그런 사회의 분위기 탓일 지도 모른다. 내가 과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이 ‘컬럼비아 호’의 이륙 영상으로부터 받았던 가슴 벅찬 감흥의 기억과 분명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이 책 <히치 하이커>에도 나오는 로켓 과학자의 선구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의 인용구를 수첩에 적어 다닌 기억도 났다. 누군가가 어떤 일에 사명을 갖고 평생 매진하는 일에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 한 때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계기가 분명히 있었다고 확신에 가까운 짐작을 해볼 수 있다. 소련 로켓 과학의 시조로 불리는 치올코프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인생이라는 길고도 짧은 여행을 줄곧 의미있게 해주고 나아가는 방향을 설정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젊은 시절에 영향을 받은 영감 및 상상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에게 <히치 하이커>는 이러한 영감을 주거나 하나의 계기가 될만한 책일 될지도 모르겠다.
【도전의 역사 – 탈출 시도】
우리에게 천체의 운동에 관한 ‘케플러 법칙’으로 잘 알려져있는 천문학자 케플러가 소설(<꿈 somnium>(1608))을 쓴 적이 있다는 것도 <히치하이커>를 통해서 처음 알게되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에서 케플러는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을 상상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천체를 관찰하고, 이를 대상화하며 당대(케플러의 시대)에 지배적이던 신과의 관계에 대해 회의했던 소수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아가 지구를 떠나 달에 가는 여행을 꿈꾼 이들은 ‘계몽의 시대’였던 17세기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최근에 읽었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도 이와 관련한 예를 떠올려 본다. 연암 선생이 조선 사신을 따라갔던 열하에서 곡정이라는 청나라 학자와 나눈 ‘곡정필담’편에는 연암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체에 관한 의문을 거내는 대목이 나온다. 연암은 달이 비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있다.
“지금 땅덩어리 겉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비유하자면 큰 유리거울일 것입니다. 만약 달세계에서 이 지구의 빛을 바라본다면 역시 지구의 모양은 응당 초생, 보름, 그뭄이 있고, (이하 생략)… ”
- <열하일기> (김혈조 옮김/돌베게) 2권 402면
이미 연암의 시대만 해도 달에는 ‘옥토끼와 두꺼비’가 살고, 여인이 비파를 타는 인식의 수준을 벗어나 달에서 지구를 볼 때의 지구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치를 따지고 있다. 연암처럼 당대에는 이미 우주를 대면하고 회의하는 지식인들이 있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이 책 <히치하이커>는 16, 17세기에 이런 회의하는 지식인들의 바탕 위에 18, 19세기에는 인류가 우리 자신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정황을 보여준다. 우선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의 사례로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실험(1783)을 들 수 있다. ‘하늘에 오르다’라는 의미의 ‘몽토시엘’이라는 이름의 양을 열기구에 태우고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는 분명 20세기 중반 소련의 우주개발에 여러 동물들을 투입하는데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인간이 지구를 떠나 하늘로 나아가기 위한 꿈과 노력의 발자취를 이 책에서 보여준다.
생명체로서 인간이 우주라는 공간에 노출이 되었을 때 입는 우주복에 관한 대목은 보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저자 댈러스 캠벨이 정리해놓은 우주복 개발의 역사와 요건들, 만화 캐릭터 ‘탱탱’의 애벌레 수트와 같은 자료들에 저자의 ‘덕후’스러움이 잘 묻어난다. 우주복은 기본적으로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내용 기밀복이 있는가 하면, 생명유지 기능이 특히 중요한 선외활동용 우주복은 의복 개발의 첨단을 이룬다. 우주복 개발 연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SF소설 <우주복 있음, 출장가능>(최세진 옮김, 아작)에서는 하인라인의 우주복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이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스토리의 힘은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전반부의 우주복에 대한 여러 사항들을 기술하는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은 우주를 여행하고 싶은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소장 목록에는 반드시 들어있을 법한 책이다.
【우주 개발의 흑역사】
우주 개발의 역사는 상상력으로 촉발된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과 동물이 희생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우주인을 태우기 전에 여러 동물들을 우주발사체에 태워 우주 공간으로 내보내었고, 많은 동물들이 그 과정에서 희생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모르기 때문에 ‘해봐야 안다’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침팬지나 원숭이, 강아지를 비롯하여 쥐, 거북이, 고양이, 심지어 달팽이를 비롯하여 ‘완보동물’로 불리는 미세한 벌레 또한 실험의 대상이 되어 우주로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희생되었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우주로 나간 우주인이 불의의 사고로, 복귀할 때 예기치 못한 문제로 목숨을 잃은 사건들도 있었다. 누군가가 처음 시도해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더 나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발전 과정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위험을 대면하는 일은 어쩌면 인간만이 감수하는 특징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멩웨이가 ‘인간만이 위험을 (알면서도) 감수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위험에 직면하고 이를 감수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기울인 노력을 통해 우주 개발은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또 하나 주목해보는 항목은 우주 개발 과정에서 존재했던 성별에 따른 참여와 기회의 불평등의 문제다. ‘여자가 우주에 갈 수 있을까?’란 소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글을 쓴 당시를 기준으로 우주로 나간 우주인 553명 중 여성이 60명이었다고 한다. 60년대 이미 머큐리 프로젝트에 참가할 여성 우주인으로서 베티 스켈턴 등의 훈련 기록이 있으나 실제로 주요한 우주 개발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것은 분명해보인다. 단순히 수적인 차이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는 우주 개발 분야에 국한된 사항도 분명 아니다. 특히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백인지식층에 의해 구조적으로 이루어졌던 미국이 우주 개발의 역사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만큼 그 배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탓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컨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성비를 놓고 개발도상국과 미국의 사례를 비교분석한 자료(코렐리아 파인 <젠더, 만들어진 성>)를 보면 개발도상국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평균 50% 이상인 데 반하여, 미국에서는 한 때 15%수준에 머 불과하였다. 이 결과는 미국에서만 유독 여학생들이 컴퓨터 공학을 선택하지 않는 비율이 높고, 이것은 여성이 이러한 분야를 선택하는 일을 꺼리는 사회심리 구조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물론 이러한 여학생 비율은 최근 50%에 육박하는 구조를 보인다는 최근의 조사결과와 비교해보아도 이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러한 ‘성구별적’ 사회심리가 보다 완화되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더글러스 캠벨에 의하면 가장 최근 우주로 올라간 우주인 여덟 명 의 성비는 남녀 모두 절반씩이었다고 하니, 앞으로는 우주인을 여러 명 태울 수 있는 우주왕복선의 시대에 보다 다양한 배경과 성비에 따라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음 히치하이커를 기다리며】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있는 우주인이다.’ 책에 나오는 유럽우주국장 요한‐디트리히 ‘얀’ 뵈르너 교수와의 인터뷰 중에서 인용한 대목(309면)이다. 인간이 이 한 문장을 입밖으로 낼 수 있게되기까지 오랜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어려운 삶을 살았을까. 이러한 인식은 분명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만이 우주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인류는 이전의 상태로 더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다. 지구를 떠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시각의 전환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다른 인류가 되도록 해주었다. 우주에 진출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어쩌면 우리는 한층 더 거대한 우주 앞에 겸손해졌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인류는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화성을 거쳐 토성이나 목성의 위성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소수의 인간만이 지구 밖 우주에서 지구를 볼 수 있는 정도의 기회를 갖는다. 어려운 우주인 자격을 취득하거나, 우주여행 경비를 지불할 경제력이 있거나. 그리고 인류의 나머지 대다수는 어쩌면 사뮤엘 베케트의 부조리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마지막 대목처럼 그러한 운명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 사뮤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오증자 옮김, 민음사) 158면
지구에서 ‘움직이지 않는/못하는’ 대다수의 인간은 그러므로 끊임없이, 그리고 ‘여전히’ 기다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우주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우주 발사체 이륙 과정을 보러가거나 우주 캠프에 참여하는 일, 심지어 우주복을 제조하는 회사에서 실제 우주복을 구입하는 일 등의 ‘덕후스러운’ 노력들을 앞으로도 누군가는 계속 이어갈 것이다. 한때 소련의 강력한 로켓 엔진 ‘에네르기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로켓 엔진을 개발하거나, 우주여행을 위한 자이로스코프, 관성자동항법 장치 등의 개발하는 꿈을 가졌던 나의 젊은 시절은 지나갔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히치하이커>를 들여다보며 새로운 관심분야를 발견하고 꿈을 갖게될지 모를 일이다. 작가 리처드 바크의 청소년 소설의 고전 <갈매기의 꿈>에서와 같이 다른 갈매기보다 좀더 높이 날고자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과 같은 사람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나아가 높이 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주로 나아가고 싶어했던 사람도 언제나 존재해왔음을 알게되었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할 또 다른 ‘히치하이커’를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우주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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