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 사람은 자신을 만든 과거의 경험을 간직한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원제: THE FACT OF A BODY: A MURDER & A MEMOIR)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레즈네비치(Alexandria Marzano-Lesnevich)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이상한 기억상실이 때때로 나를 급습했다. 나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어떤 것이 있음을 그래서 알았다.”(325면)
미국 최고의 명문 하버드대 법대를 재학중 인턴자격으로 살인사건과 접하게 된 저자 알렉산드리아는 남자 아이를 살해한 가해자 리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의 이러한 선택적인 기억상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특정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경험하는 이 ‘공백’의 경험은 아마도 신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를 완화하려는 신체의 반작용으로 이해된다.
이 책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실제로 있었던 살인 사건과 자신의 비망록이 혼재된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실제 사건에 대해 방대한 자료들을 읽고 검토한 후에도, 생생한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 현장에서 실제로 나누었을 법한 대화를 상상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아울러 이 책, 그리고 그녀의 글쓰기는 너무나 솔직하기에 오히려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비롯하여, 가족의 치부를 담담하고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성추행의 경험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자신을 공개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한 개인의 유일무이한 경험과 아픔의 기억에 기반하기에 독창적이면서 유일한 글쓰기이며 그만큼 인상적인 이유다.
【책의 구조와 중심사건에 대해】
이 책에서 중심이되는 사건은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아동 성추행으로 이미 두 번이나 실형을 살았던 리키 랭글리가 출소 1년 5개월 만에 동네 여섯 살 아이 제레미를 살해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다른 하나는 저자의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겪게된 성추행에 기반한다. 두 사건이 엄연히 별개의 사건임에도 저자가 되새기며 제공하는 양상의 이면에는 밀접한 관계, 다양한 접점이 존재한다.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처럼 현재와 과거의 장면을 번갈아 오가며 별개의 두 사건을 조금씩 드러낸다. 결국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이 두 사건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유사점을 지니고 있음을 독자에게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기본적으로 현재와 과거(살인자와 저자의 현재와 과거)를 왕복해가며 마치 깨져버린 도자기의 파편들을 줍는 과정처럼 기억의 편린들을 모으는 작업이기도하다.
저자가 오랜 시간 써내려가면서 수없이 떠올렸을 기억들은 현대 인간의 삶에 큰 영향력을 주는 굵직굵직한 여러 이슈들을 관통한다.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 및 인권에 대한 주제, 삶의 모순으로 보이는 진실의 문제, 가족이란 무엇이며, 한 개인의 자존감 문제와 같은 우리 삶에서 만나는 보편적인 주제에 폭넓게 맞닿아 있다. 알렉산드리아가 청년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살인 사건의 재판과정과 자신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결국 한 인간이 삶에서 경험하는 폭넓은 경험을 아우른다. 저자는 이러한 성찰을 다양한 국면에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법이란 무엇인가 – 법의 역할과 태생적 한계】
우선 알렉산드리아가 떠올리는 자신의 어릴 적 기억과 리키 랭글리 사건이 맞닿는 접점은 ‘아동 성추행’과 관련이 있다. 살인 피의자 리키 랭글리는 아동 성추행이라는 과거의 흔적 이외에 살인이라는 죄목이 추가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반면 저자의 과거는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바로 할아버지라는 사실에서 리키 사건과의 접점이 위치한다. 이 자각의 순간으로부터 두 사건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특이점으로 수렴하기 시작한다.
법이란 이 지구상에 한 개체만이 존재하고 살아갈 경우에는 전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러 인간이 모여 살아갈 때 각각의 구성에게 각각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 개별적인 진실이 구성원 간에 상호인정이 안되고 충돌이 발생할 경우 문제가 된다.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법이란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법은 인간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준거가 되는 장치란 생각을 한다. 다만 법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그 한계를 인지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의 근현대사를 잠깐만 살펴보더라도 권력을 가진 사법부의 수장이 정치 권력에 복종할 때 국민들이 어떤 고난을 겪을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집행은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법을 알고 이를 활용할줄 아는 이들만을 위한 사회를 조성하는데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포함한다. 사법부가 독립적이어야하며, 법이 제시하는 기준과 법관의 양심에 충실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저자 알렉산드리아는 리키 랭글리 사건과 같은 큰 사건이 사회를 휩쓸고 간 후 제정된 새로운 법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실효성을 갖는지 반문한다. 성범죄자의 신상을 지역사회에 공개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지역사회에 전달/공지되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한편 저자 자신에 대해 성추행을 일삼았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법의 제재를 받지 않고, 혹은 경계의 대상에서 빠져버린 사람들이 있게 마련임을 지적한다. 나아가 사회가 엄한 법을 적용한다고 해도 범죄율이 줄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된다. 법의 제정이 범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현재 음주운전 사건으로 음주운전자에 대한 법률을 더 엄하게 정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움직임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법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제제를 가하는 힘보다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제재하는 기능이 더 크다는 점을 인지해야할 것 같다. 보다 중요한 일은 근본적인 원인을 차단해나가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음주운전자 처벌관련한 법이 더 엄하게 변경되는 것과 함께 그 취지에 대한 공감대, 그리고 희생자 가족에 대한 공감대도 함께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제레미의 사후 제정된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관련한 ‘법률이 시행된 후 20년이 지나도 성학대율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대목은 분명 법의 본질과 관련한 중요한 고찰임을 염두해두어야 할 것같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우리는 기억이란 현상이 뇌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여러 장면만 보더라도 한 사람의 삶에서 기억이라는 것은 뇌 뿐만 아니라 온 몸 전체를 통해 각인되고 저장된다는 점을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실체로서의 몸은 여기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정신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몸전체를 통해 기억이 전해지며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리키의 어머니 베시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리키를 임신하고, 리키는 베시가 받아 먹는 각종 약과 치료용 엑스레이에 숱하게 노출된다. 게다가 베시가 임신 중 마신 상당한 위스키도 리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리키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형 오스카의 교통사고 현장에 대한 꿈을 리키는 어린시절 계속하여 꾸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살인자 리키는 어쩌면 어머니 베시 뿐만 아니라 가족의 모든 아픔을 몸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태어난 사람이기에 조금 다른 관점에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내가 ‘나’임을 인식하는 출발이되기에 내가 ‘나’라는 자기동일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반면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은 시간을 거듭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알렉산드리아가 할아버지로부터 당한 성추행 때문에 몸에 난 흉터는 성인이되어서도 그녀를 붙들어 매고 있다. 거식증 같은 증세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가한 성추행의 기억은 오히려 저자에게 이를 잊게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완화하려는 몸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인턴으로 루이지애나 로펌에 갔을 때, 리키의 이름을 듣고도 곧바로 잊는 장면은 아마도 리키의 사건이 자신의 과거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 몸의 망각기작이었을 것 같다. 리키의 이름은 잊고 싶은 할아버지의 기억과 만나는 접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흉터가 남았다. 내 흉터가 통증을, 칠흙 같은 기억 상실을 뛰어 넘는 증거가 아닐까? 끝나버린 내 기억 너머의 증거가 아닐까?”(392면)
저자가 법조계를 떠나 오랜 세월 후 다시 루이지애나로 돌아와야만 했던 이유가 루이지애나라는 지역이 주는 느낌 때문이라 언급했다. 이 특유한 장소성과 기후 등이 저자에게 주는 모든 느낌과 감정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했던 저자의 언급은 분명 자기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자신이 쥐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머리가 아닌 몸에 각인된 느낌들은 현재의 저자와 과거의 저자를 연결하는 매개체였다. 마찬가지로 ‘리키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읽고 난 후 알렉산드리아는 비로소 리키와 그의 가족을 상상할 수 있었고, 또 그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414면)라고 기록했다. 곧 자신의 몸에 각인된 흉터로 할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로부터 리키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출발점은 바로 한번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여러 장면들】
나 자신도 저자처럼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하지만 저자의 고백을 읽으니 나도 그녀처럼 사형제도를 반대한다는 착각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 가족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나도 사망한 제레미의 어머니인 로렐라이처럼 아들을 살인한 리키를 위해 구명운동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알렉산드리아의 독백처럼 나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은 부족한 모양이다. 한편 로렐라이는 리키를 용서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다만 자녀를 가진 어머니의 입장에서 리키의 어머니 베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된 자로서 자녀가 죽는 일을 리키의 부모가 맞이하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심경은 실제 한 사형수의 구명운동을 벌인 노력을 담은 영화 <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에서 수잔 서랜든이 연기했던 인물인 헬렌 프리진 수녀의 마음가짐과도 다르지 않을 것같다.
“로렐라이는 베시에게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여서 리키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인의 아들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447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의외의 인물이 있는데, 다름아닌 영국인 변호사 클라이브 스태퍼드 스미스이다. 그는 평생 미국의 사형제 폐지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서 그 공로로 영국 여왕의 훈장도 수여받은 인물이다. 정황상 그는 살해당한 제레미의 어머니와 함께 리키의 구명운동을 위해 헌신하여 살해사건이 일어난 지 10년만에 형량을 교수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리키의 형 감소를 위해 변호하는 일을 하게된다. 법은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테두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언제나 그러한 바램에 맞추어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법도 나름의 역할 외에 틈새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새로 무고한 사람들이 제재를 받거나 나아가 사형과 같은 중한 벌을 받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러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균형은 클라이브 변호사와 같은 인물들이 담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인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는 저자가 말한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몸에 각인되는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어떤 삶을, 어떤 경험을 과거에 했는지에 따라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질 수 있다. 곧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란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동원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지은 죄가 무겁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로렐라이가 리키의 구명운동을 하기 시작한 시점은 아들이 살해당한 후 8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리키와 그의 과거, 그리고 리키의 가족에 대한 사실들을 끊임없이 돌이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숙고의 시간 이후 로렐라이는 마침내 리키를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계기가 있었을 것이며, 그를 용서는 아니더라도 화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저자도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기억, 할아버지의 추행과 자기 가족과의 유사성을 비교하며 자신의 과거와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준비를 마련해나갔던 것이다.
【나가며 – 자신과 화해하기】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어보자면 저자 알렉산드리아가 어린 시절 몸에 남겨진 오랜 상처를 발견하고 아픈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이 과정은 자신이 접했던 살인 사건을 통해 실마리를 찾고 이 두 사건이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자기 안에 ‘해결이 안된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 정체를 파악하는 여정에 오른다. 결국 자신의 내면에 상처받고 꽁꽁 숨어 있던 ‘내면의 아이’를 찾아내고,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번역자가 사용한 표현인 ‘팩트로서의 몸(fact of a body)’은 실재하는 신체, 외부의 자극에 왜곡없이 기억하는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의 뇌는 과거에 경험했던 내용을 왜곡하여 기억할 수 있지만, 고통이라는 자극을 몸이 겪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바로 우리의 몸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는 거짓없는 저장매체로서 기능하며 이것이 엄연한 ‘팩트로서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알렉산드리아가 살인사건을 접하고, 로렐라이의 사형수 구명운동을 보면서 느꼈을 혼란스러운 심정을 떠올려본다. 또한 가족의 침묵 속에 법의 제재를 받지 않고 삶을 마감하였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그 후유증 등 은 결국 저자 자신의 흉터와 함께 남아 무언가 ‘해결이 안된’ 존재로서 여전히 남아있던 것이다. 저자는 결국 자신을 돌아보며 이 흉터와 아픔의 기억에 주목하였다.
“내게 과거는 땅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는 내 몸에 있었다.”(383면)
저자의 할아버지 역시 어렸을 적 성추행 피해자였다는 것, 결국 할아버지 역시 피해자이자 가해자 였음을 알게된 후, 할아버지를 좀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알렉산드리아가 리키의 가족과 리키에게 들었을 감정의 동요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 움직임은 할아버지와 자신에게로 확장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덤 앞에서 젊고 앞날이 창창했을 두 커플의 모습부터 나이 든 모습, 그리고 지금은 땅속에 묻힌 모습을 상상하며 강한 놀라움의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모두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여러 시간의 중첩을 통해 자신을 관통해 나간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적 사건이 시간과 공간의 이질적인 요소들의 중첩 속에서 순간 강하게 알렉산드리아를 관통해 나갔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받는 상처, 특히 외상이 아닌 모든 이들의 내상은 결국 각 개별자의 기억과 벌이는 싸움에 다름아닐지도 모른다. 몸에 각인된 기억의 상처는 두뇌에 기억되는 왜곡될 수 있는 상처와 달리 ‘살아있는 한’ 평생 몸의 주인과 함께할 것이다. 저자는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한 살인사건 재판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기억과 조우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내밀하고 아픈 기억을 밖으로 꺼내 놓고 대면했다. 이 책은 저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의 비망록이자 저자가 살아가는 생에 가장 중요한 국면을 다룬 ‘저자의 분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픔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마주대하고 손을 내밀어 과거와 화해하는 일만 해도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다독거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수 있게 힘을 주는 일이 아닐까. 책을 덮으면서 저자의 짧은 독백 한 마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자기를 자기로 만든 경험을 지니고 다닌다.”(492면)
#나는기억하지못합니다
#에세이추천
#범죄실화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