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서양화 감상법 안내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
(원제: Art Essentials: Looking at Pictures )
수잔 우드포드(Susan Woodford) 지음 | 이상미 옮김 | [시그마북스]
2018년-2019년 두 해(?)를 걸쳐 만나게 된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은 미술 감상에 관한 안내서이다. 나는 학창시절 미술성적이 좋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미술과 상당한 거리를 둔 채 지내왔었다. 그나마 미술관에 갈 기회가 되면 미술 감상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더 궁금했다. 오늘 만난 책은 그림 문외한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흥미롭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우선 미술-그림은 시각 예술이므로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기호라고 할 수 있는 문자-언어라는 텍스트와는 다소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문자는 세부적으로 약속된 기호를 통해 우리에게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지정해주지만, 그림에 드러나는 시각 이미지들은 간접적이고 추상적으로 그 의미들을 제시한다. 예술사를 가르치며 예술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저자 수전 우드포드는 미술 감상 초보자들에게 간결하고 핵심적인 그림 감상법을 안내한다. 특히 현대 미술에 대한 감상법보다는 고전 및 근대 미술에 대한 그림 감상법에 초점을 맞추어 감상 초보자들에게 흥미로운 미술 감상 방법을 마련해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가 끊임없이 여러 관점에서 그림들을 비교 분석하는 점이었다. 특히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그림 스타일을 여러 그림을 통해 비교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이 부분은 책의 후반에 나오는 ‘형식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양식 사이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느끼며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들어 라파엘로 산치오의 그림 <성인들과 함께 왕좌에 앉아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콜로나 제단화)>(136면) 및 <아테네 학당>(141면 위)과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 <레오나르도 로레단 총독>(142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 하나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르게 분산된 르네상스 그림의 광선은 구성 요소를 잘 분리해주기 때문에 개별 부분의 다수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 (…) 느슨한 광선은 또렷한 윤곽선을 만들고, 조각 같은 모델링은 요소를 분리하고 국부적 색채들은 뚜렷하게 만든다.”(140면)
그림 감상 초보자의 말로 다시 표현해보자면 르네상스 그림 양식에서 빛은 비교적 고르게 그림 속의 개별 요소(정물/인물)를 비추어주기 때문에 각 구성요소의 윤곽선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심지어 조각과도 같은 느낌, 그림 전체적으로는 다소 안정적이면서 정적인 느낌을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는 성가족>(138면), 렘브란트 반 레인의 그림 <야경(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민병대)>(141면 아래)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자수 놓는 여인>(143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르네상스 그림 양식과는 다른 바로크 양식만의 특징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바로크 그림의 경우 강력한 비직선 광선은 형상들을 혼합하고 국부적 색채들을 조정할 뿐만 아니라 표면을 가로지르면서 깊숙한 곳으로 후퇴하는 대각선의 연속적 성격에서 나오는 통일성을 부각한다.”(140면)
다시 나의 언어로 이해를 해보자면, 바로크 그림의 경우 그림 속의 대상에 비춰지는 빛이 인물 등의 요소에 고르지 않고 특정 대상에서 밝기가 분명히 차이가 나 그림 속의 요소들이 배경과의 구분이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다는 점이다. 곧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혼재하므로 평면 상의 그림에 깊이감을 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부적으로 비추는 빛이 동일한 색에 비춰지더라도 색채의 느낌이 부분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크 그림 양식의 특징 중 하나는 그림 속 요소들로 드러나는 분명한 대각선의 구성적 요소로 인해 르네상스 양식처럼 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의 요소를 주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림에 대해 저자는 보다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여지는 많겠지만 보다 간결하게 설명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다만 책에 설명되어 있는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을 비교하며 설명한 대목만 보더라도, 그림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작업에 그림들 사이를 비교하며 파악하는 일이 얼마나 강력한 감상법이 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또 한 가지 저자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림 감상에 도움이 되는 배경 지식으로는 성경에 대한 이해, 기독교 문화에 대한 이해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나아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더욱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저자가 예를 든 그림들 중에는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일화를 재현한 그림, 십자가형을 당하는 예수의 모습, ‘최후의 만찬’을 모티브로 그린 여러 점의 그림들,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수태고지’를 기반으로한 여러 그림들 등 풍부한 예시는 모두 서양의 기독교 문명에 대한 이해가 서양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교양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너스와 아도니스에 얽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장면이나 마르스와 비너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은 그리스-로마 신화 또한 고전 시대 그림의 주요 모티브였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현대 미술이 아닌 고전 및 근대 미술에 대한 이해에는 적어도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이해가 그림 감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로서 한 가지 아쉬운점은 있었다. 저자가 미국인이기에 이 책에서 ‘그림’이라고 하면 보다 명확히는 ‘서양화’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목을 ‘서양화 보는 법’이라고 옮겼으면 어땠을까하는 점이다. 우리가 ‘그림’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서양화’를 암묵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관점 및 자세가 어떠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이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서양으로부터 유입되는 문화에 대해 우리는 서양인들의 관점을 거침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굳이 구분하여 동양화를 이야기할 때, 동양화에도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기법이 실험되고 발전되어왔을 것이다. 동양화를 볼 때 모든 그림들을 서양화를 감상하는 관점에서 이해를 시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가 책에서 동양화를 언급한 것은 일본화가가 그린 두 점 뿐이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우리가 ‘그림’이라할 때 무의식중에 ‘서양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한번 환기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독서 후 한 가지 더 궁금해지는 점은, 저자가 각 장의 말미에 추가해놓은 ‘핵심질문’에 있다. 과연 우리가 ‘좋은 그림’가 ‘위대한 그림’을 구분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저자 수전 우드포드는 호바르트 플린크의 그림 <야곱을 축복하는 이삭>(160면)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며 ‘복잡하고도 섬세하게 전해진 이야기다. 좋은 작품이지만 위대한 작품은 아니다.’라고 마무리 하였다. 책을 덮으며 여전히 저자가 재차 배치해놓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다만 ‘좋다’와 ‘위대하다’는 말은 모두 가치를 담고 있기에 매우 주관적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좋은 화가’와 ‘위대한 화가’에 대한 간결한 설명을 하고 있으나 구체적이지는 않다. 저자의 설명에 좀더 덧붙이자면, 우선 ‘좋은 그림’들은 테크닉의 완성도와 화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재현하여 우리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그림들일 것이다. 반면 ‘위대한 그림’은 이러한 재능의 요소를 넘어 감상자의 정서를 새롭게 환기해주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적 차원을 열어주는 그림이 될 것이다. 다만 ‘좋은 그림’을 우리가 판단하려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재능과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할 것이다. ‘위대한 그림’을 알아보는 일은 우선 ‘좋은 그림’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전제가 된 후 감상자에게 준 영향의 정도, 곧 감상자가 그림에 얼마나 큰 공명을 하는지의 여부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우선일 것이다.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을 읽어가다 보면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과의 비교외에 신고전주의와 로코코 양식에 대한 관련성도 일부 제시되어 있으나, 저자가 해주는 그림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설명을 좀더 해주었으면 하는 상태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아쉬움은 <단숨에 읽는 현대미술사>를 통해 보다 폭넓게 접근하며 달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