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에 반문하라‘ - 강양구 기자의 ‘수상한 질문‘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책을 읽지 않는 학생이었으나 우연히 알게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한 마디가 나에게는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이렇다. “모든 가치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의심하는 자유(freedom to doubt)다.” 파인만이 언급했던 ‘의심’은 당연히 ‘합리적 의심’을 말한다. 평생 미신적인 유사과학에 대한 비판을 했던 파인만에게 이 의심의 대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사고의 자유 내지는 정신을 확장하여 적용해보는 것은 사회의 관습과 규범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만나게된 도서는 강양구 기자의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이다. 저자는 사회의 여러 현상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관점을 제시한다.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에 실린 저자의 글들은 청소년 논술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을 다시 수정하여 엮은 것이다. 현직 기자로서 사회와 과학기술에 대한 당대의 현안에 주목하고 우리가 받아들이고 굳어져버린 ‘생각들’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럴까?’, ‘만약 (…) 이런 경우라면?’하고 독자에게는 다른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면 어떨지를 제안한다. 분명 인간 사회의 조건들은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 사람의 삶에도 여러 가지 다른 정치경제적 사안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화제에 더하여 독자로하여금 추가로 생각해볼 연관 주제나 좀 더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한 관련 서적을 제시한다. 다양한 소재를 대상으로하는 만큼 자세한 설명 보다는 관련 주제에 대한 소개 및 깊이 있는 주제 탐구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미세먼지 주범찾기】
최근 한반도는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얼마 전에 미세먼지 기단이 중국에서 서해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하는 위성자료를 공개한 기상청 발표가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 발표에 힘입어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인식이 ‘정말 그럴까?’라고 의문을 표하고 좀더 자세한 정황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봄철만 되면 중국 내륙에서 날아오는 황사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미세먼지보다 입자가 크다. 그리고 중국 내륙의 사막지역에서 날아오고 있다는 점에 크게 이견이 없는 듯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미세먼지라고 부르는 적혈구 수준의 크기(10-20 μm)보다도 작은 입자이다. 미세먼지는 ‘자동차, 난방 등 화석에너지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질소 산화물이 공기 중에서 반응하여 생성된 질산염과 황산염의 성분을 갖는다’고 한다(97면).
그렇다면 과연 미세먼지는 황사처럼 중국에서 대부분 건너오는 것일까? 최근 신문 기사를 보니 야당의 한 정치인은 ‘미세먼지의 원인인 중국에 항의하나 못하고 있다’고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상당수의 국민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미세먼지는 중국탓’이라고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만들어낸 오염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한반도의 미세 먼지가 ‘대기 정체’인 경우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한반도 상공의 대기가 정체되는 시기에 미세먼지 문제가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국내에서 발생되고 있는 오염물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기상청의 발표(중국에서 건너오는 미세먼지)와 야당의 입장과 의도를 여과없이 수긍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기상청은 미세먼지가 전부 중국에서 건너오는 오염물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과 입장 표명에 어떤 정치적 맥락이 개재해있지는 않은지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건너오는 미세먼지를 부인할 수는 없으나 국내에서 유발되는 오염물이 상당한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미세먼지를 중국탓이라고 하는 입장과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건너온 부분과 국내의 오염물에 의한 비율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가 미세먼지의 주범을 중국탓만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정부의 환경 관리 책임에 대해 면제부를 주거나 환경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 있게된다. 미세먼지에 대해 과연 우리는 책임이 없는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세먼지와 관련하여 또 생각해보게된 것은 저자가 언급한 한 마디이다.
“때로는 충남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온 미세먼지가 북쪽으로 확산하면서 수도권 뿐만 아니라 서해 상공이나 강원도로 가기도 합니다.”(97면)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국내 여러 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매년 전기에너지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환경문제에 대한 정책 사안 결정과 관련하여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의 확장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에너지 수급 문제가 특히 수요가 많은 여름에 비상이 걸리는 이유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난방 및 전력 공급(지역 난방 시설, 화력발전 등) 시설에서는 석탄 및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핵발전소에 대한 축소방침을 갖고 있는 현 정부의 영향으로 화력발전소의 가동율과 에너지 의존율은 상당히 높은 상태이며, 이것이 특히 최근 수년 사이에 심해진 미세먼지의 큰 원인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금융 대출제도 및 차량 대여 서비스 등의 다양화로 개개인이 외제차를 비롯한 차량 소유가 대폭 증가한 것도 미세먼지 증가에 속도를 더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에서 건너오는 미세먼지의 오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 증가에 대해 분명히 주목하고 대책을 세워야하는 것이 맞다. 정치권에서 소리 높여 미세먼지가 중국탓이라고 주장하는 사이, 우리 국민들은 국내의 오염 유발 사항에 무관심한체 여러 질병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석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소의 가동율이 높아짐에 따라 발전소의 컨베이어 벨트는 석탄을 쉼없이 나르며 가동중일 것이다. 최근 모 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점검중이던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문제는 미세먼지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미세먼지 문제와 화력발전소 노동자의 죽음은 화력발전소를 매개로 서로 얽혀 있는 문제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쉼없이 컨베이어벨트를 가동하는 환경에서, 미세먼지 오염물을 더 생산해냄과 동시에 현장 작업 노동자는 좀더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안전사고에 더 크게 노출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가공되거나 이송되어 우리에게 오는지 배운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에너지와 환경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사고를 확장하여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고통을 주는 미세먼지 문제는 우리가 고립되어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며, 한 나라를 떠나 지구 전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사안이기도 하다. 사회의 통념에 의문을 던져보는 일은 우리의 삶이 정부의 정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이슈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기회를 마련해주기에 중요하다.
【과학기술과 결부된 인간의 새로운 욕망 – 유전자 변형 그리고 새로운 우생학】
20세기 초반 양자물리학의 성공과 함께 20세기 중반에는 과학자들이 DNA의 존재 및 구조를 규명해내어 미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환원주의적 시각이 큰 힘을 얻었다. 곧 인류는 자연의 근본을 이해하는 일이 곧 자연을 분할하여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크리스퍼’라고 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원하는 유전체 부위의 염기를 잘라내고 다른 염기쌍으로 대체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성형수술로 대변되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욕망의 분출은 이제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어진 배아를 통하여 출생한 인간, ‘GMO사피엔스’까지 확장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자신감과 욕망은 이제 생명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맬서스의 인구론과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한 다윈주의가 결합하여 근대의 우생학이 등장했다면, DNA구조의 해명 이후 유전자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새로운 현대 우생학이 출현할 단계에 있다고 할만하다. 강양구 기자가 소개하고 있듯이, 영화 <가타카>에서 묘사한 상상력의 세계는 이제 보다 그럴듯한 핍진성을 얻게 되었다. <가타카>에서는 ‘유전자 변형(편집)’ 여부가 인간을 우열로 분류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만, 유전자 변형을 통해 태어난 ‘진리치(GenRich)’의 신분도 사고로 불구가된 이는 또 다시 열등한 등급으로 재분류되고 있다.
과학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믿지만, 결국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주체는 (현재까지는) 사람이며, 따라서 적용되고 있는 과학기술은 이미 가치중립적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때 과학기술은 평가 및 분류의 기준들을 제시하는 데, 이 기준 설명이 인간의 가치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전자 변형 인간의 등장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서 ‘정상’ 과 ‘비정상’을 가르는 새로운 시도”(220면)라고 하였다. 나아가 유전자 변형 행위는 유전되기 때문에 성형외과 시술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신분’의 형성과 고착화에 대한 우려는 영화 속 상상만은 아닌 것이다. 영화 <가타카>에서 불구가된 ‘진리치’ 신분의 인간은 결국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도태되고 만다.
지구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온 생명체는 유사한 종(species)이라면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되더라도 대개는 ‘종(bell)’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다. 우리가 폭넓게 분포해있는 종(species)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 ‘우열’을 나누는 행위는 분명 객관적 사실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포함된 규범적 규정에 따른 것으로 봐야만 한다. 현대의 우생학은 가치의존적 개입 활동임과 동시에 생물체의 정규분포 양단에 존재하는 개체들을 제거하려는 극단주의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생명체의 다양성은 진화기작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기도 한데, 우생학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메커니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간의 가치 의존적 개입행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리고 생명체 및 자연에 있어 ‘정상’이란 무엇인가를 반문하고 논의해 봄직하다.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매우 중요한 질문거리가 될 수 있다. 과연 ‘정상’과 ‘비정상’이란 무엇일까?
【다시, 의심하는 자유에 주목하며】
강양구 기자의 질문하는 책,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을 따라 읽으며 다시금 학창시절 발견했던 ‘의심하는 자유’를 생각해보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상당히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주목하고 있지만 우선 현재 나의 관심을 끈 몇 가지 사항들을 다시 추려 생각을 보태보았다. 다양한 문제들이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서로 더욱 긴밀히 얽혀있음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에너지 관련 이슈에는 탈핵 정책과 관련하여 핵에너지 공급 및 유지 문제와 함께 화력발전소 가동 상황, 그리고 미세먼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배경 속에서 노동자, 인간은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핵발전소를 짓는다는 것은 분명 정치적으로 소외된 어떤 장소, 사람들의 희생이 따르게되는 구조를 연관지어 이해를 넓힐 수 있다.
한편 효율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설계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본문에 제시된 마강래 교수의 ‘압축도시’ 개념과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이 등장하였다. 이 두 개념이 서로 상통함을 말할 때, 우리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과연 효율성만으로 ‘압축도시’를 설계한다면, 도시 외곽에서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농민들 혹은 공장 노동자의 삶의 질은 누가, 어떻게 보살펴야하는가 등의 문제도 남게될 것이다. 사고 실험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인간의 삶은 다양하고 수많은 변수가 내재한다. 이론과 실재의 간극을 어떠한 기준으로 보완하는가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될 것이다.
그 밖에도 저자가 기부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할 때, 미국의 철학자 피터 싱어나 윌리엄 맥어스킬의 ‘효율적 이타주의’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곧 ‘기부를 전제한 돈벌이가 남을 돕는 효율적인 방법’(273면)이라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소개하는 ‘효율적 이타주의’ 개념에는 아직 수긍이 잘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윤리의 문제를 판단할 때,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주장하는 ‘윤리적 문제 판단의 상대성’에는 수긍하지만, 윤리적인 문제와 ‘효율성’을 결부시키는 문제는 아직 나의 ‘통념’으로 효율적 이타주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런 나의 의심은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확장해서 읽기를 위한 도서를 이해한 후 다시 점검해볼 수 있겠다.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에서는 사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이해 하려는 태도가 중요함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 현안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보는 문화가 아니기에 개개인의 의견 차이가 종종 감정적인 충돌로 이어지곤 한다. 책을 읽고 개개인이 의문을 갖는 자유를 떠올리면서, 아울러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사안을 결정하는 일이 바로 ‘정치’의 개념이며, 결국 우리의 삶의 조건은 불가피하게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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