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라톤' - <모비 딕> 2장 천천히 읽기

‘모비 딕 마라톤’ - [2장] 여행가방(The Carpet-Bag)

 

지난 1장을 읽고 쓴 두서 없는 글을 보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걱정스럽긴 하다. 다시 변명을 해보자면 앞으로 적어 나갈 나의 독후 기록들은 결국 그때 그때 《모비 딕》을 천천히 다시 읽으며 내가 반응한 결과의 모음일 뿐이다. 훗날 내 글을 보고 내 유치한 생각들에 새삼 부끄러움이 든다면 또 그 나름대로 의미있지 않을까. 그동안 그만큼 생각이 달라지거나 자라났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아무튼 이러한 작은 바람을 가지고 계속 해보려고 한다.

 

지난 1장을 다시 떠올려보자면 1장은 독자가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중요한 정보들을 많이 담고 있다.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의 내러티브가 곧바로 시작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공간적인 정보를 풀어 놓는다. 1장의 제목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자신이 왜 고래잡이배를 타려고 바다로 향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설명하는데, 물이 내포하는 근원적인 마력을 포함하여 자신이 책임 있는 자리가 아닌 일개 선원으로 배를 타려는 이유에 주목해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고래잡이 배를 타려고 하고 당시에 포경업의 주도권을 육지에 있는 뉴베트포드에 건네주고 쇠락해가는 낸터킷 섬에서 굳이 출항하려는 이유를 ‘신의 섭리’에 기대고(청교도적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있기도 하다. 아울러 1장을 마무리하며 멜빌은 눈 덮인 거대한 산처럼 거대한 유령 같은 고래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는 대목에서 소설 전체의 방향, 소설의 어조를 어떤 느낌으로 설정할 것인지를 살짝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흰 색’이 주는 공허함, 무지 혹은 무지에 대한 공포, 숭고함, 불가항력적 신비와 섭리와 같은 이미지와 오버랩되며 모비 딕의 숨결을 미리 느끼게 해주고 있다.

 

2장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본다. 이슈메일은 맨해튼을 떠나 코넥티컷주 뉴베드퍼드에 도착했다. 이 때는 12월의 어느 겨울 날,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미국 동부의 겨울 밤이었다. 이슈메일은 당시에 포경산업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기 시작하며 번성하던 뉴베드퍼드에서 고래잡이 배를 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쇠락해가던 낸터킷 섬으로 건너가서 고래잡이 배를 타기로 결심한다. 이슈메일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낸터킷은 “오랜 역사를 지닌 포경업의 발상지이며, 미국에서 최초로 고래의 시체가 해안에 떠밀려 온 곳”이었다. 게다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통나무배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처음 출격한 곳”이었다. 실제로 멜빌이 20대 초반에 포경선을 탔을 때 뉴베드퍼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낸터킷 주민이자 작가인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의 《사악한 책, 모비 딕》에 보면, 멜빌이 낸터킷 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낸터킷 섬에 와보진 않았으리라 말한다. 따라서 멜빌의 경험은 뉴베드퍼드에서 출항한 것에 기반하지만, 소설 속의 극적인 묘사를 위해 자신만의 낸터킷섬을 구상했으리라 보는 편이 설득력이 있다.

 

다시 줄거리로 돌아와서 늦은 밤에 도착하여 낸터킷섬으로 떠나는 배를 놓친 이슈메일은 이틀밤을 더 머물고서야 다시 낸터킷섬으로 떠나는 배를 탈 수 있기에, 가벼운 주머니를 의식하며 저렴한 숙소를 찾기 시작한다. 흑인 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이슈메일이 발견한 여인숙은 피터 코핀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물보라 여인숙’이었다. 이 코핀이 ‘관’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을 멜빌은 다시 일깨우며 소설의 불길한 전조를 예고하는 듯하다. 2장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슈메일이 여인숙에 들어와서 겨울 외풍이 휙휙 느껴지는 초라한 여인숙에서 옛날 어느 작가가 남긴 말을 떠올린다.

 

유로클리돈이라는 그 폭풍에 대해서 생각할 때, 바깥쪽에만 성에로 덮인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느냐, 아니면 안팎에 서리가 내려 있고, 민첩한 죽음의 사자만이 유리를 끼울 수 있는, 창틀도 없는 창문으로 밖을 관찰하고 있느냐에 따라 놀라운 차이가 있다.”(42면)

 

붉은 비단옷으로 몸을 감싼 부자 영감 다이비즈는 말하겠지. 유로클리돈?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서리가 내려서 정말 멋진 밤이군. 오리온자리의 별들은 얼마나 밝게 빛나는가. 북극의 오로라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42면)

 

옮긴이의 주석에 따르면, 유로클리돈은 ‘지중해의 강한 북동풍’으로 매섭고 차가운 바람을 의미할 테다. 바깥쪽에만 성에로 덮인 유리창은 난방이 잘 되는 방을 뜻할 것이다. 안팎에 서리가 내려 있는 방은 난방이 거의 안되는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법한 그런 방을 뜻한다. 따라서 추위로 거동도 하기 힘든 사람이 아닌 죽음의 사자만이 유리를 끼울만한 그런 방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과의 차이를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멜빌은 여기서 인간의 보편적인 한 습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따뜻한 방에서 추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하지만 난방이 안되는 곳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사람들에게는 이럴 겨를이 없다. 흥미롭게도 멜빌은 이슈메일의 입을 머리 속에서 추운 겨울 난방이 안되는 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도를 한다. 혹은 추운 겨울 집 밖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의 입장을 떠올려보고 있다.

 

하지만 나사로는 무슨 생각을 할까? 푸르뎅뎅하게 언 손을 웅대한 오로라쪽으로 들어올린다고 해서 손을 녹일 수 있을까? 나사로는 여기보다 수마트라 섬에 있고 싶지 않을까? 적도를 따라 길게 몸을 눕히고 싶지 않을까?”(42면)

멜빌은 유복한 상인집안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스코트랜드 계, 어머니는 데덜란드 계의 명문가였다. 하지만 멜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유복한 집안의 자녀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12세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가족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가족은 외가로 옮겨가 살게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멜빌은 우리의 나이로 따지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의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19세 때 상선의 선원으로 바다로 나아가는 멜빌의 삶을 떠올려보면, 청소년기에 거친 사회로 나가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배워야 했던 그가 바라본 사회의 모습들은 《모비 딕》의 구석구석에 각인되듯 드러나고 있다. 말 그대로 그 자신이 난방이 잘 되어 ‘창문 밖에만 성에가 끼어있는 집’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창문 안팎에 서리가 내리는 환경’에서 지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멜빌에게 사회의 다양한 층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던 것 같다. 멜빌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처해있는 입장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작가였고, 그래서 내게는 더욱 놀랍고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주는 것이 바로 《모비 딕》이기도 하다.

 

이어 이슈메일은 “신발에 얼어붙은 얼음을 털어내고, 이 ‘물보라 여인숙’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로 하자.”(43면)라고 3장의 내용을 예고하며 독자를 여인숙 안으로 끌어들인다.

 

 

[참고도서 및 자료]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홍한별 옮김, [저녁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