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일탈 사이에서 만난 깨달음 -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Petit Philosophie des Oiseaux)

필리프 J. 뒤부아(Philippe J. Dubois) & 엘리즈 루소(Elise Rousseau) 지음

맹슬기 옮김 | [다른]


 

 

얼마전에 새로운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실내 공기를 환기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창문을 여는 순간, 가까이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느낄 있었다. 바로 뒤에는 작은 공원이 있는데,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아침마다 새들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새에 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내게도 새에 관한 짧은 인연이 있다. 초등학교 아버지가 데려온 십자매 한쌍을 떠올렸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했던 십자매 쌍을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과묵한듯하면서도 가끔씩 지저귈 때면, 무슨말을 하고 있는 걸까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횃대에 앉았다가 분주히 물을 먹거나 물을 튀기며 목욕을 하고, 조를 쪼아먹는 모습을 한동안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조그마한 여러 개의 알을 둥지에서 확인하고는 신비로움에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 작은 몸집에서 이런 알이라니. 비록 새장이라는 좁은 공간이긴 했지만, 내겐 십자매 쌍을 통해 새의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볼 있었던 인연이 있었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조류학자이며 출판사 편집장이기도 필리프 뒤부아와 환경보호에 관한 글을 쓰는 기자이자 작가인 엘리즈 루소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자연에 대한 애정과 오랜 관찰을 바탕으로 새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이들이 보여주는 시선은 인간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새와 자연으로부터 보고 배우는 짧은 철학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따라서 사변적으로만 끝나는 철학적 단상들이 아니다. 책의 제목을 보고 나는 어린 시절 십자매와 맺은 짧은 인연을 떠올렸다. 새들은 한때 어느 어린아이가 감탄의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던 것을 느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일상과 일탈 -지금 여기 여행사이에서

 

저자는 새들이 오로지 지금을 산다라고 말한다. 알듯 모를듯한 문장은 곧바로 저자가 제시하는 새들의 삶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우리가 아는 진실은 하나다. 새는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 새는 그저 행복을 경험할 뿐이다.(138)

 

현대인은 우리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행복에 대한 물음을 하며 우리는 곧바로 불행할 이유를 찾는 존재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곧바로 우울해지곤 하니 말이다. 사랑에 관해서도 새들은 인간들처럼 사랑에 대한 상처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의 심장은 한순간도 멈추는 일이 없다(76면) 깨달음을 전한다. 카르페 디엠 철학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 지금 순간,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새들과 같이 행복에 대한 물음대신 행복을 경험하라 말한다. ‘행복을 경험하라 표현은 간결하지만 내게는 매우 강력한 진술로 다가왔다.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경험하는 소박한 전복의 기술일 터이다.


지금 여기 대한 가르침은 사실 모든 존재가 지니는 유한성 다른 표현으로 이해된다. 서양의 그림에 그토록 많은 죽음 유한성 상징(해골, 시계, 썩어가는 음식 ) 텍스트가 존재하는 이유는 죽음을 기억하라 주문을 통해 자신의 삶을 환기하라는 숨은 제안일 것이다. 저자는 새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보유한 삶의 양태를 반추해보고 있다.

 

우리는 후회로 가득한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새들처럼 강렬한 현재를 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새들은 미래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 단지 현재의 삶을 위해서 움직이고, 열심히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190)

 

새들에 관한 짤막한 생태에 이어지는 저자들의 깨달음은 내겐 아주 생소한 것이 아님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는 복잡한 철학보다 죽비로 내려치는 순간의 깨달음이 일상에 필요한지 모르겠다. 새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동물에 대해 어떠한 (지적, 도덕적) 우월감이라도 느낀 적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인간본위의 생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고찰을 통해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일상에서 작은 습관들 마련해두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바로 기운을 돋우는 오전의 커피 주말에 보는 영화 같은 소소한 습관을 자신의 바쁜 속에 마련해두라고 말이다. 복잡한 현대인의 , 예기치 않은 인생살이에서 습관 일상의 중요한 버팀목이 있다는 조언은 우리가 눈여겨볼만 하다. 습관의 범주에는 각자 취향이나 관심에 맞는 취미 규칙적으로 향유하는 일도 포함될 같다. 우리의 일상을 단단히 붙들어줄 있고, 버틸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의식하고 적용해볼 있는 삶의 기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상만 있다면 지구 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든일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듯 새나 인간이나 개중에는 고집스러운 여행자도 있지만 환경의 변화를 싫어하는 유형도있기 때문이다(121면). 다시 말해 바다의 부름 답하는 유형과 익숙함과 편한함 좋아하는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할 필요없이 후자이다. 저자에 따르면 올빼미가 자신이 태어난 숲을 평생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올빼미 형이다. 반면 유럽칼새와 제비는 날수 있게 되자마자 모험을 떠나는 방랑자 형이다. 나는 여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을 멀리 떠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 과거보다 더해지는 중이다. 하지만 여행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다. 우리는 여행지에 나를 조금 내려놓고, 돌아올 많은 것을 가져온다. () 여행 중에는 불편한 일이 많고, 잠도 부족하며, 적응하고 인내해야 것이 넘쳐난다. 모든 피로함과 함께 습관처럼 조이고 있던 긴장의 끈이 풀리고, 쓰고 있던 두꺼운 가면이 어느 순간 벗겨진다.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골들이 드러나면서 우리는 자신의 맨얼굴을 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떠난다.(122-123면)

 

여행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보는 일탈로 있겠다. 여행은 낯선 대상과 접촉하게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새로움과 조우하고, 자신을 흔드는 경험을 하게되면 분명히 여행을 마친 나는 여행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것이다.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행위도 여행과 일면 유사한 면이 있을 것이다. 한편 불편을 감수하고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따르던 자신의 습성과 습관을 바라볼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과 내가 익숙한 문화가 지배적인 환경에서, 나와 다르고 나에게 생소한 문화가 주를 이루는 환경에 서보면 나의 고립감과 고독은 극대화될 것이다. 때야 비로소 자신을 의식하고 새롭게 바라볼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여행을 통해 우리 자신의 참모습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한 여행의 의미를 속에, 일상에서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에서 작은 일에 새로이 관찰하고 낯설음을 경험하는 . 바로 일상으로의 일탈이다. 특히나 방법은 나처럼 집을 멀리 떠나기 싫어하는 올빼미 유형의 사람들에게 괜찮은 방법이 같다. 앞의 화단에 있는 관목의 형태나 나뭇잎의 무늬를 들여다보고 감탄하거나, 아침에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의 패턴을 구별해보는 일과 같은 소소한 것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봄엔 야생화에 대한 책을 읽고, 숲길 구석에 있는 야생화를 발견하고 감탄하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 작아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내게는 숲길을 걸을 조심스럽게 걷게 경험이 있다. 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수풀 구석에서 바람에 작게 떨고 있는 야생화를 발견하는 순간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존재들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또한 일상을 새롭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 있음을 알았다. 우린 때때로 이런 일상으로의 일탈이 필요하다.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저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느 출연자가 예술은 전적으로 인간에게만 속하는 이라는 발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은 일견 옳은 점이 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인간이 정해놓은 기준이며, 여기에 한해서 진실이다. 내게는 말이 어느 외국인을 가리켜 한국어를 못하니 야만인이며 무식한자들이라고 폄훼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놓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둔 기준으로 인간만이 여기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오류다. 예술은 전적으로 인간 본위의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 인간 고유의 것은 아니다.

 

새를 관찰해보면 아름다움이 새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있다. 비록 아름다움이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일 때에도, 바로 아름다움의 ‘수단’으로 선택되었다는 의미심장한 것이다.(87면)


여기에서 저자는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극락조의 예를 들고 있다.

 

춤과 몸의 장식으로 극락조는 예술을 극대화한다. 물론 춤은 ‘창조’한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듯, 모든 것은 진화의 결과다. 또한 자연의 선택이기도 하다.(88면)

 

여기에서 극락조가 보여주는 예술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사유하거나 착안한 예술의 범주에 드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진화과정 속에서 형성된 생존 수단이다. 하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자연선택이론만으로 극락조의 진화를 설명할 없다. 화려한 깃털과 춤은 천적에게 쉽게 발각되기 쉽고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컷 극락조가 목숨을 걸고자신을 화려하게 돋보이려 노력하는 데는 바로 기능적인 또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일명 성선택 이론이 요구된다. 극락조는 성선택 이론 표본이 된다. 이론은 다윈이 이미 자신의 저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제시한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자연선택론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성선택 중요성이 한동안 가려져 있었다. 심지어 다윈은 자신의 성선택이론으로 다른 진화론자들의 숱한 비난을 받았다. 성선택이론이 현대에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것이다. 가지 주의할 부분은, 저자가 극락조의 춤이 진화의 결과이며 자연의 선택이기도 하다 표현이다. 저자가 말한 자연의 선택 자연선택설의 영향을 받은 진화이기 보다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성선택 염두해둔 자연의 선택으로 보아야 옳을 같다.

 

화려한 깃털에는 대체로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깃털이 화려한 데에는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다. 바로 암컷을 유혹해 번식을 하는 것이다. 암컷은 깃털을 가장 과시하는 수컷을 선택한다. 그게 수컷의 생명력과 건강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 자신을 보여주는 수컷이 좋은 수컷이란 이야기다.(182면)

 

커크 윌리스 존슨의 《깃털 도둑》에도 극락조의 성선택이론을 염두해둔 언급이 나온다. 극락조는 1 내내 거의 짝짓기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필리프 뒤부아와 엘리즈 루소가 언급했듯이, 화려한 장식(깃털) 춤으로 암컷 극락조를 유혹하는 것이다. 극락조가 보유하는 화려한 깃털과 춤의 리듬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 범주에 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들 역시 아름다움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으며,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최대한의 번식 기회를 누리는 것이 모든 생물의 최대 명제라고 한다면, 극락조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사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하나의 선택기준이 되는 성선택 기작에는 진화의 경제학(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번식을 추구하는 ) 숨어있는 셈이다. 결국 모든 생명체는 자연 성선택 어느 기작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모든 존재는 또한 미적욕구로 가득한 성적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한편 저자는 새들의 생태로부터 우리의 삶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술가만이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터이다. 예술을 창작해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마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적 감수성 대한 문제다.

 

인간의 예술은 두말할 없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그런데 시작은 소리, 리듬, 빛깔, 물질과 관련된 모든 아름다운 것에 대해 감탄하는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예술가가 된다는 무엇보다 관찰할 아는 것이다.(91면)

 

예술은 인간중심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예술의 기원에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관찰행위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대상에 대한 반응이 예술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고찰을 따라가다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 내지는 인식이 인간 고유의 본성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든, 사유를 통해 창조된 것이든 우리 외부에 있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고 이해해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저자들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창조성 일깨우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분명히 무한한 창조성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며 - 새로움으로 가득한 우리의 일상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책에서 저자들은 가볍게 사랑과 가족, 여행과 일상, 아름다움과 예술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주제는 사실 가볍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암탉이 날씨 좋은 모래땅에 뒹굴며 햇볕을 즐기는 것처럼 행복을 경험하는 일이 아닐까. 행복을 의심하기보다 지금 순간, 행복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오로지 지금을 사는 새들처럼 우리도 현재를 사는 일이 저자의 깨달음이자 독자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새들에게 배워야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우리의 삶을 자연과 다시 연결하고, 그리하여 다양한 감각과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찬 삶을 사는 거라 답할 것이다!(38면)

 

저자의 결론에 가지 유념해볼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보라는 조언이다. 그러고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과 호기심에 눈으로 우리의 일상을 관찰할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들]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뜻밖의 사건들로 채워진다. 바로 이렇게 삶의 모험 한가운데에 있을 때 작은 습관들을 심어두는 게 좋다. 기운을 돋우는 오전 11 시의 커피 한 잔, 일요일 저녁을 느긋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처럼 말이다.” (P37)

“예기치 않은 경험으로 꽉 찬 삶을 살고 있을 때 습관은 버팀목, 표지판, 좌표의 역할을 한다. 위대한 모험가들도 지극히 사소한 자신만의 습관을 지니고 있다.” (P37)

 

“만약 우리가 새들에게 배워야 할 단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우리의 삶을 자연과 다시 연결하고, 그리하여 다양한 감각과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찬 삶을 사는 거라 답할 것이다!” (P38)

 

“새들은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애정, 존중, 끌림, 호의, 그리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섬세한 마음이 모두 합쳐진 것이라고. 좋은 것만 주고, 상처는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P73)

 

“가장 숭고한 사랑조차 우리의 동물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동물적인 측면을 부정적으로 볼 때가 많지만, 동물성은 바로 멧비둘기 연인의 부드러운 애정과 회색기러기의 상부상조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P74)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은 사랑하기를 거부한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애정을 품지 않기로 다짐하고, 사랑에 빠질까 봐 그리고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새의 심장은 단 한순간도 멈추는 일이 없다.” (P76)

 

“새를 관찰해보면 아름다움이 새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그 아름다움이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일 때에도, 바로 그 아름다움이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일 때에도, 바로 이 아름다움의 ‘수단’으로 선택되었다는 게 의미심장한 것이다.” (P87)

 

“예술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창작하는가’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단순한 마음, 이것도 예술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P90)

 

“인간의 예술은 두말할 것 없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그런데 그 시작은 소리, 리듬, 빛깔, 물질과 관련된 모든 아름다운 것에 대해 감탄하는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에술가가 된다는 건 무엇보다 관찰할 줄 아는 것이다. ” (P91)

 

“그리하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다. 우리는 여행지에 나를 조금 내려놓고, 돌아올 때 많은 것을 가져온다. (…) 여행 중에는 불편한 일이 많고, 잠도 부족하며, 적응하고 인내해야 할 것이 넘쳐난다. 이 모든 피로함과 함께 습관처럼 조이고 있던 긴장의 끈이 풀리고, 쓰고 있던 두꺼운 가면이 어느 순간 벗겨진다.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골들이 드러나면서 우리는 자신의 맨얼굴을 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떠난다.” (P122)

 

“우리가 아는 진실은 하나다. 새는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새는 그저 행복을 경험할 뿐이다.”- P138

“새들의 관점으로 보면 깃털의 아름다움은 기능적인 것이며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다. 즉, 새들에게 깃털은 소통과 구애를 위한 수단이다. 물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아름다움을 뽐낼 때도 있지만 말이다.” (P180)

 

“우리는 왜 후회로 가득한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새들처럼 강렬한 현재를 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새들은 미래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 단지 현재의 삶을 위해서 움직이고, 열심히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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