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현대사 <녹두 서점의 오월>
《녹두 서점의 오월》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한겨레출판]
《녹두 서점의 오월》은 한 서점 주인과 그 가족들이 5.18광주 항쟁이라는 역사의 한 국면을 온전히 겪어낸 기록이다. 물론 이 서점은 우연히 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것은 아니다. 서점 주인은 대학 운동권에 재정적, 정신적 도움과 지지를 주던 인물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의 불운한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의 이야기는 녹두 서점의 일가족 3명이 5.18이라는 사건의 전과 후로 나누어 각자 기억을 가다듬어 정리해내었다.
녹두 서점의 주인 김상윤 씨는 광주 대학가 운동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인물로 보인다. 박정희의 유신시절이 막바지에 이르던 1977년, 녹두 서점이 개업했다. 김상윤 씨는 서울의 청계천 중고서점을 통해 사회과학서를 구하여 광주의 운동권과 지식인들에게 공급하는 일을 도맡아 하였다. 그는 5.18 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5월 17일 새벽 예비검속으로 체포되어 줄곧 취조와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며, 수차례의 재판을 통해 1년이 훨씬 지난 1981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된다.
녹두 서점의 또 다른 주인이었던 정현애 씨는 사회운동을 하는 남편 김상윤 씨를 곁에서 돕기로 마음먹고 결혼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여성들이 항쟁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았으나, 아기 포대기 속에 <투사회보>와 같은 인쇄물을 넣고 시민과 지도부에게 전달하거나, 헌혈에 동참하거나 식사를 준비하여 시민군에게 나누어주는 일, 그리고 시민들에게 방송을 통해 힘을 모아달라는 호소를 했던 여성들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이 끝나고 재판 과정에서 남편 김상윤 씨를 비롯하여 사형수들을 살려내는 데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녹두 서점의 오월》 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정현애 씨를 비롯하여 5월의 어머니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구속자 석방운동을 전개하던 과정이었다. 5.18사건을 담은 영화나 다른 기록에서는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을 인정했을지 모르나, 무엇보다 중심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의 눈물어린 노력이 없었다면, 혹은 구속자 5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그대로 주저앉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면 이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현애 씨가 직접 고통스런 기억과 싸우며 남긴 이 기록은 다른 저자들이 남긴 부분 못지않게 소중한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저자인 김상집 씨는 서점 주인 김상윤 씨의 동생이다. 1980년 5월1일 부로 전역한지 일주일도 안된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런데 전역한지 3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건 당시 시민들에게 발포를 했던 헬기 부대 소속이었던 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5.18항쟁이 군인들에 의해 진압이 된 이후, 김상윤 씨와 김상집 씨는 구치소에서 끊임없는 구타와 고문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환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현애 씨는 체포된 지 100일만에 출소하여 가족과 다른 구속자들의 석방을 위해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며 각자의 시선에서 거대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해보는 5.18항쟁의 성격】
우선 5.18 사건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상당수가 일반 시민이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언론의 거짓과 눈앞에서 벌어지던 군인들의 만행에 분노하여 거리로 뛰쳐나왔던 이들이다. 여기에는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퇴근하던 시민들, 그리고 상당수의 중고생들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김상윤 씨가 들은바에 따르면 ‘1980년 5월 19일 당시 금남로에 모였던 시민 시위대 3분의 1일 가량이 중고생’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비율보다 중요한 것은, 5.18당시 상당히 많은 중고생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행동했다는 점이다. 총을 다루지도 못하면서 총을 들고 싸우겠다고 나선 학생들을 포함하여, 화염병을 만들기 위한 기름을 구해오거나, 시신을 수습하고, 헌혈에 동참하기도 하던 이들이 광주에 있었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5.18항쟁을 기억할 때 이 점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할 것은 김상윤 씨가 지적하듯, 이 참혹한 공간을 목숨걸고 지킨 이들이 ‘기층민중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터미널에서 구두닦이를 하다가 공수부대의 만행을 보고 총을 들게 된 시민이 한가지 예이다. 저자는 운동권 세력만으로 부족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때문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나는 기층민중들이 지도부도 없이 이렇게 장렬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339면)
녹두 서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황은 대학생과 이들의 연장선에 있는 운동권 참여자들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초기에는 학생들의 행동에 동감하고 거리로 나선 교수들 및 지식인들의 참여도 눈여겨보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수 사회는 사회문제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끼고 나서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는 대목이다.
저자들 각자 경험한 5.18항쟁의 기록을 읽어나가며 안타까웠던 점은 지방 유지 및 원로들이 중심이 된 재야수습대책위원회의 행보였다. 이들은 시민들이 마련해온 무기를 강제로 회수하고, 도청에서 대거 철수했다는 점이었다. 김상집 씨는 이들이 모두 철수해버린 것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한 이들에게도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킨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상윤 씨는 “남아있던 사람들끼리도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저 사람도 혹시 나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다.”(133면)라고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고 있다. 사건 이후 39년이 지난 지금에야 당시 정황을 검토해보며 무기를 회수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 시간 다르게 전개되고 있던 급박한 상황아래, 이 역사적 현장에서 어느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단 절대적인 힘의 우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기와 시민 참여자가 줄어든 정황은 이미 정해진 결말을 더욱 앞당길 뿐이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무기를 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하며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됩시다】
1980년 5월 21일 낮에 계엄군은 다시 광주시내로 진입하며 대낮부터 시민들에게 발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김상집 씨와 대책회의를 하던 선배들이 더 이상 투쟁을 지속해나가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각자 헤어지며 “꼭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됩시다”(181면)라고 말한다. 이 들 중 윤상원 씨는 몇일 후 도청을 지키며 군인들과 교전을 벌이다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체포되어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받다가 자해를 하기도 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서점 주인 김상윤 씨는 취조와 고문을 받으며 “죽어버리고 싶은데 죽음을 결단할 만큼 독하지 못했다”(242면)라고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아무리 심한 고문을 당해도 이를 악물고 정신츨 차려야 했다”(241면)라고 마음을 다잡고 고문을 버텼다. 동생 김상집 씨도 윤상원 씨의 죽음과 김영철 선배의 자살 기도를 떠올리며 “여기서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나가야 한다”(321면)라고 당시의 다짐을 기록하고 있다. 녹두 서점 가족은 모두 5명이 잡혀서 조사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고 말하고 있다.
개개인이 역사적인 사건 한가운데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을 엄밀하게 기록하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녹두 서점의 오월》 에 첨부된 해제에서 김정한 교수는 이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거대한 사건을 몸소 겪은 ‘당사자들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중에 구성되기도 하며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 이 세사람의 기억도 마찬가지로 사실과 다를 수도 있고 온전한 역사가 아닐 수 있다’(347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어서 당사자들 각자가 경험한 기록을 읽으며 이들이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각자가 기억하는 진실을 통해 우리는 5.18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하면 후세가 이들이 남긴 기록을 볼 때 이 자료들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할지, 5.18을 다른 각도에서 본 진실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염두해두면서도 당사자들에게 진실이었던 5.18항쟁의 모습을 보다 생생히 따라가볼 수 있다는 점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가치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은 이러한 기록들이 후손에게 전해지고 읽히는 일이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라도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넓어질수록 이 사건들을 직접 전해줄 수 있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남는 것은 결국 다양한 당사자들이 남긴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며】
5.18항쟁의 한 가운데에서, 그리고 시민군의 곁에서 큰 역할을 했던 녹두 서점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서점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5.18사적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녹두 서점의 일가족 3명의 저자가 남긴 5.18의 기억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러나 5.18항쟁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도 행방불명으로 남겨진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 및 처우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책임자에 대한 책임규명도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당시 헬기를 조종했던 사람의 증언이 최근 있었으나 여전히 전두환은 그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희생자들을 포함하여 광주 시민들에게 5.18은 여전히 진행형일 것이다.
녹두 서점의 식구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보면서 생각해보는 것은,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기록이 남겨졌으면 한다는 점이다. 월남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온 당시 공수부대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당시 보안대에 잡혀왔던 시민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39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대개 60-70대일 것이다. 이들은 지금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자상한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을까. 짐작컨대 대개는 평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사람이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이들에게도 시민군에게 동정적이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분노한 시민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다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도 결국은 역사의 피해자일 수 있다. 이들도 각자 경험한 5.18사건이 있을 것이며, 이들의 기록도 아울러 남겨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5.18항쟁 당시 광주 시민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버스에 앰프를 설치해주던 전파사 주인도 그러하고, 시민군에게 해줄 밥이라는 것을 알고 후하게 퍼준 쌀집 주인도 그러하다. 하지만 저자는 5월 27일 새벽, 애절한 방송을 듣고도 뛰쳐나가지 못했던 많은 시민들에게는 마음의 병을 지우기도 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광주는 아직도 그(마음의) 병이 완치되지 않아 신음하고 있는 도시”(339면)라고 말이다. 광주가 얻은 병을 돌보는 일은 대한민국 전체가 겪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발췌] |
˝‘어쩌면 교사라는 직업도 잃게 될 것이고, 잘못되면 엄청난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각오는 하지 못했다.˝(정현애)- P103 ˝도청에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저 사람도 혹시 나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다.˝(정현애)- P133 ˝우리는 대한민국 군인이 무장하지도 않은 국민을 향해 대낮에 발포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김상집)- P180 ˝하지만 그 때 나는 작금의 사태가 포고령 위반 정도의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거대한 역사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다는, 그리고 그 파고를 견뎌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엄습하고 있었다. 아무리 심한 고문을 당해도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김상윤)- P241 ˝우리는 뭉쳐서 싸울 때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정현애)- P295 ˝피바다를 이룬 참혹한 공간을 목숨걸고 지킨 사람들은 실로 기층민중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기층민중들이 지도부도 없이 이렇게 장렬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에필로그)- P339 ˝5.18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온몸으로 겪었던 세 사람은 그 경계를 견디며 사람다운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고귀함이다.˝(김정한 교수의 해제)- P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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