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라톤] <모비딕> 5장 - 천천히 읽기

 

 

모비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5] 아침식사(Breakfast)

 

 

[5장의 기본 줄거리]

 

물보라 여인숙에서 침대, 이불을 덮고 하루 밤을 지낸 이슈메일과 퀴퀘그는 여인숙의 술청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한다. 술청에는 간밤에 들어온 투숙객들로 가득 있었다. 아직 선원용 재킷을 입고 있던 사내들로서 입항한 포경선의 선원들이었다. 이슈메일은 식탁에서 이들과 퀴퀘그의 식사예절을 관찰한다.

 

 

 

 

 

5장의 배경은 물보라 여인숙의 아침식사가 준비된 술청이다. 이번 장도 매우 짧은 장이며 이슈메일이 본격적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 전의 풍경, 포경선원들의 모습, 퀴퀘그의 식사법 등에 관한 관찰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밤새 만원을 이루던 여인숙에서 주인장 코핀의 장난으로 한 침대, 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된 퀴퀘그와 이슈메일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하러 술청으로 내려간다.

 

 

히죽거리는 주인에게 이슈메일은 원한을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슈메일의 독백이 흥미롭다.

 

실컷 웃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기 드물게 좋은 일이다. (…)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유쾌한 웃음거리로 제공한다면, 사람이 부끄러워서 꽁무니를 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게 해주어라. 자신에 대해 실컷 웃을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을 분명하다.

 

 

이 부분은 스치듯 지나가는 부분이며 작품을 이야기할 때 어떤 역할을 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내면에 보관되어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불쑥 드러나는 저자의 이런 생각들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런 행동은 저자인 멜빌이 수긍하고 동의하는 행동양식일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도 이런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에 잠시 멈춰가게 되는 부분이다.

 

 

나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유머’라고 하는 것의 기본적인 정신이자 자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희화화 과정에서 시작한다’는 것 말이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유쾌한 웃음거리로 ‘대상화’하고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슈메일의 독백대로 스스로 타인에게 웃음거리가 되게 제공하면, 기꺼이 남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행위는 성경의 가르침과 닮아 있기도 하다. ‘누군가 나의 왼쪽 뺨을 때리면, 나의 오른쪽 뺨도 대주어라’와 같은 논리의 성경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유머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며, 유머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울러 도덕적인 관점에서도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의 전개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겠지만, 멜빌이 생각하고 공감하는 바를 170년이 지난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런 부분은 천천히 읽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한다.

 

 

여인숙 주인이 ‘식사들 해!’라는 말에 술청의 투숙객들은 모두 아침을 먹기 시작한다. 이슈메일은 아침 식사가 이루어지는 식탁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흥미로운 관찰을 한다. 그런데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은' 이들의 태도가 성숙한 사교술이 아닌 깊은 침묵으로 일관된 아침 식사 풍경을 보고 희한한 광경이라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특히 같은 식탁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예의바르지 못한 사교술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갓 귀항한 포경선원들로부터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들을 기대에 부푼 이슈메일에게 이런 깊은 침묵은 마뜩잖다. ‘처음 보는 고래를 수줍음도 없이 죽이는 노련한 포경선원들이 식탁에 앉아 목장의 양들처럼 서로 바라보기만 하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슈메일은 이들을 ‘수줍어하는 곰들! 겁쟁이 전사 같은 고래잡이들!’이라고 생각한다.

 

 

퀴퀘그 역시 날카로운 작살을 식탁에 올려놓고 설익은 비프스테이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말없이 먹는 데 집중한다. 이슈메일은 고드름처럼 차가운 그의 예절을 높이 평가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물론 오지를 여행하는 과거의 탐험가들처럼 사교술을 터특하기에 어울리지 않은 환경에 있던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교술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고 평한다.

 

 

다시 보면 서양에서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침묵으로 서로를 무시한 채, 음식을 먹는 행위에만 몰두하는 일은 예의바르지 않은 행동이다. 다시 말하면 이 행위가 예의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배운 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곧 깊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아침식사 풍경은 오히려 이들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교양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이슈메일은 카토와 피타고라스를 이야기하고, 성경에 익숙한 교양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에 교양인이라면 으레 하게되는, 혹은 갖게되는 행동양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면을 이슈메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식탁에서의 침묵행위를 예절바르지 못하다고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일 것 같다.

 

 

이번 5장에서는 아침식사 풍경을 통해 포경선원들의 일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퀴퀘그의 세세한 행동양식을 보여주기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포경선을 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전에 소설의 장면은 이들이 다니는 뒤를 밟아 퀴퀘그의 면모를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슈메일이 퀴퀘그를 관찰하는 부분은 당분간 간간이 더 나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