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장 읽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장회익 지음 | [추수밭]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장회익 선생님의 60여년에 이르는 ‘공부’의 결실이 책으로 나왔다. 바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이란 이름으로 출간이 되었다. 저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거의 사반세기 전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녹색 평론》이란 잡지의 짧은 글 한편을 읽어 주셨는데, 그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중국을 여행한 사람이 쓴 여행기 성격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나는 이 잡지를 이따금 사서 부분적으로 읽곤 했는데, 어느 호에서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온생명’이란 단어가 보이고, 현직 물리학자가 물리학 이야기가 아닌 생명과 철학 이야기를 쓴 것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막연하게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철학자나 평론가가 기고하는 성격의 잡지에 물리학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내가 군복무시절 갖고 있던 책 몇 권 중 하나가 바로 저자의 《삶과 온생명》(솔출판사, 1998)였다. 내가 특히 이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던 이유는 거의 유일하게 학부 때 배운 지식이 이 책을 읽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학부 1학년 때 생물학 수업을 들으면서 물리학자 슈뢰딩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를 읽어보고 '약간'의 놀라움(이 역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을 경험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넘어선 ‘공공의 발언’과 탐구가 전문가 집단에서는 일종의 ‘오지랖’으로 지탄받기 일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이 책을 다시 펼쳐보면 첫 장부터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따온 문구로 시작하는데, 이제는 슈뢰딩어가 생명 현상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관점과 태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이 유일하게 기대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의 신’은 다시 말해 ‘자연’ 혹은 ‘자연 법칙’으로 볼 수 있겠다. 슈뢰딩어는 물질에 관한 보편 법칙으로서 물리학의 눈으로 그 법칙(신)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피노자의 ‘내재론적 입장’을 탐구의 방법으로 이용하겠다는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슈뢰딩어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1장을 시작하며 데카르트의 명제(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제시하고 있는데, 1장에서 생명에 대한 고전물리학자의 접근방식 내지는 태도를 이 한 마디에 담으려 한 것으로도 이해된다.
이번에 읽기 시작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도 이들 학자들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의 이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양의 학문이 들어와 유학자들에게 전파되고 수용되기 이전에 우주와 사물의 이치에 대한 물음과 방법론을 제시했던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여헌 선생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우주설》과 여기에 실린 글 <답동문>을 지었다. <답동문>은 가상의 아이(동자)를 등장시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화법처럼 동자의 천진스런 물음에 여헌 선생이 답변하는 형식을 취한 글이다. 여기서 동자가 질문에 앞서 하는 선언이 인상깊다.
“이치를 캔다는 것은 모르는 데가 하나도 없게 된 후에야 비로소 캤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천지 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고금의 사람들이 함께 들을 수 있는 것이고, 저 역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50면)
저자 장회익 선생은 이 대목에서 두 가지 근대학문의 정신을 언급한다. 하나는 ‘한 점의 의혹 없이 철저히 지적 탐구를 수행하겠다’는 선언이며, 다른 하나는 ‘탐구 활동에 성역이란 없고, 지식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물을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이 근대 과학, 근대 철학의 ‘인식론과 궤를 같이 하고, 근대 서구 과학의 관심사와 상통’한다고 그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사물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의 격물(格物)에 대한 여헌 선생의 재해석에 주목한다. 먼저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보다 보편적인 원리와 연결 지을 소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주문하고, 이를 위해 ‘자연 세계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귀로 파악해야함을 언급했다. 달리 표현하면 ‘구체적인 현상에 바탕을 두지 않은 앎은 무용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라야 이런 이치를 활용하여 ‘오늘의 상황을 관찰하여 과거의 상황과 미래의 상황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고대의 사고와 근대의 사고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답동문>이 쓰인 해가 1631년이다. 유럽의 물리 및 천문학자 라플라스가 ‘고전 역학을 통해 현재 상태만을 관찰하여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을 산출할 수 있다’고 언급한 때보다 거의 2세기 이전이라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여헌 선생은 《우주설》과 <답동문>에서 ‘이치를 추궁한다는 것’과 그 ‘방법론’을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물음도 제기하고 있어 흥미롭다. <답동문>에서 똑똑한 동자는 땅이 공중에서 하늘의 기(氣)에 의해 둘러싸여 유지되며 떨어지지 않으며 이는 대기를 보호하는 보호벽으로서 ‘구각’이 있어야함을 말하며, 다시 이 구각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장회익 선생은 이 ‘무거운 물체는 떨어져야 한다’는 인식의 틀에 주목하여 2차원의 평면에다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수직축(2D + 1D)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대한 인식과 어느 방향으로도 ‘대등한’(곧 중력을 분리하여 어느 축방향으로나 물리법칙이 동일한) 3차원 공간(3D)의 인식차이를 비교한다. 이 (2D + 1D)의 공간 인식 틀에서는 대지가 ‘왜 떨어지지 않는가’를 묻게 되며, (3D)의 인식 틀 아래서는 ‘사과가 왜 아래로 떨어지는가’하는 반대의 물음을 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데카르트와 뉴턴은 이 고전적인 (2D + 1D)의 공간 인식을 벗어나 (3D)의 공간 인식으로 나아가며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물에 대한 인식의 틀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도 새삼 이해하게 된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충돌하고 과학자 공동체 속에서 논쟁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 극복되는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행되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볼 수 있었듯이 말이다. 그만큼 ‘인식의 틀’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번에 손에 들게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1장에서 한 가지 더 인상에 남는 부분은 여헌 선생이 18세 때 《우주요괄첩》이라는 작은 책자를 만들어 이치를 추궁하려는 대상의 제목을 적어 두고 평생을 지니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참고했다는 점이다. 이 책자는 결국 커다란 학문을 하겠다는 소년의 당돌한 의지이자 학문적인 출사표이기도 할 것이다. 여헌 선생이 《우주요괄첩》을 품에 넣고 다닌지(38세 때 임진왜란을 만난 것도 포함하여) 60여년이 지나 평생 탐구해온 주제들을 엮은 것이 바로 《우주설》과 <답동문>이라고 한다. 학문에 대한 이러한 ‘발심’을 평생 놓지 않고 뜻을 세운 사실은 내가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여헌 선생의 발심을 더욱 눈여겨 보았던 것 같다. 제2장에 나오지만 데카르트 역시 23세의 나이에 군인으로 복무하며 ‘놀라운 학문’의 기반을 발견하고 진정한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점도 여헌 선생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있다. 평생 공부꾼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와 고민의 결과 역시 물리학이란 학문에 뜻을 둔지 60여년이 지난 올해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도 여헌 선생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다. 내 학창시절을 떠올려볼 때, 평생동안 전념할 큰 주제와 뜻을 세우는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사족이긴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부모 카드를 통해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보다 평생 지켜갈 만한 가치와 목표를 찾는 일,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간에 스스로 올바른 뜻을 세우는 일을 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