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라톤] 《모비 딕》 6장 천천히 읽기

 

 

《모비 딕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6장] 거리(The Street)

 

[6장의 기본 줄거리]

여인숙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슈메일은 산책을 나가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배를 타기로 결정했던 낸터킷에 가려면 다음 배편을 기다려야 했기에, 뉴베드퍼드 항구 거리를 산책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장면이다. 뉴베드퍼드 항구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식인종들, 시골뜨기 및 다른 도시의 풋내기들, 시골 멋쟁이들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포경산업으로 부유해진 뉴베드퍼드의 모습을 묘사하며, 베드퍼드의 여인들에 관해서도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이번 장은 ‘9장 읽기’를 작성하다가 건너 뛴 것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와 남기는 독서기록이다. 제6장은 《모비 딕》 전체를 놓고 볼 때, 잠시 지나치는 매우 짧은 장이긴 하지만, 당시에 활발했던 포경업을 중심으로 한 항구의 특수성과 이런 산업을 기반으로 부유해진 뉴베드퍼드 지역의 특징을 묘사 하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항구는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접점이다. 바다를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항구는 새로운 기회의 출발점이자 그로부터 가장 먼저 영향 또는 혜택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슈메일이 일요일 아침 거리를 걸으며 발견하는 정체모를 수많은 이방인들은 주로 선원들만 보이는 리버풀의 워터거리나 런던의 웨핑 거리보다 더 놀라운 특수성을 지닌다. 거리의 여기 저기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식인종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베드퍼드 항구 지역의 거리는 특이한 이방인 뿐만 아니라 내륙의 흥미로운 사람들로 넘쳐난다. 항구가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접점이라고 표현했듯이, 내륙에 있던 사람들을 물로 끌어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슈메일의 관찰에 의하면 뉴베드퍼드 항구에는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벌목꾼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이들은 숲에서 입던 비버 모피 모자며 털외투를 입고 있기도 하는데, 여기에 어울리지 않게 선원용 벨트를 하고 칼이 들어 있는 칼집을 옆에 차고 있기도 하다. 이슈메일의 입으로 ‘진기한 광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리의 흥미로운 사람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 멋쟁이도 아닌 시골 멋쟁이들도 곧바로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삼복더위에 손이 탈까봐 사슴가죽 장갑을 끼고 풀을 베는’ 그런 촌뜨기들이다.

 

거리를 산책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던 이슈메일은 이제 거리 주변을 발견하며 뉴베드퍼드의 지역적 특색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뉴베드퍼드는 도시 아닌 지역은 척박하지만, 도시 지역은 아마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라고 명시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곧바로 드러난다.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기름이 흐르는 땅이며, 아울러 곡식과 포도주의 땅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특별히 농사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포경산업의 중심지였던 만큼, 고래로 부터 얻어낸 부를 거머쥔 퀘이커교도가 주축이 된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모든 화려한 집과 꽃으로 덮인 정원은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서 왔다. 전부 다 바다 밑바닥에서 작살로 꽂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들이다.”(《일러스트 모비딕》, 80면)라고 이슈메일이 넌지시 이야기하듯 말이다.

 

뉴베드퍼드의 결혼 풍속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딸의 아버지는 결혼하는 딸에게 ‘지참금으로 고래를 주고, 조카딸에게는 돌고래를 몇 마리 씩 준다’고 한다. 화려한 결혼식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기름 저장고가 있어 매일 밤 경뇌유로 만든 양초를 부족함 없이 마음껏 태울 수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화려하고 풍성하게 가꾸어진 대로의 가로수와 꽃으로 가득한 정원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뉴베드퍼드라는 도시다.

 

마지막으로 뉴베드퍼드의 여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붉은 장미처럼 활짝 피어나는 여인들, 카네이션 같은 이들의 뺨은 제7천국에 내리쬐는 햇볕만큼이나 영원하다’고까지 찬사를 보낸다. 제7천국(The Seventh Heaven)은 역자의 주석에 의하면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천국이라고 한다. 허먼 멜빌이 문명을 벗어나 생활했던 경험을 담은 첫 번째 소설 《타이피 Typee》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와 달리 《모비 딕》 이 종교인들, 혹은 독실한 신도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이유에는 아마도 ‘제7천국’과 같은 이교도의 천국 개념을 분별없이 사용했다는 점도 포함될 것이다. 이처럼 뉴베드퍼드는 수많은 이방인과 다양한 문화, 그리고 커다란 규모의 경제가 한데 모여 들끓던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다. 이 곳 여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기운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멜빌은 여기에 하나의 예외를 둔 장소를 언급한다. 바로 지금의 보스턴 시 북서쪽 해안가에 있는 세일럼이란 도시이다. 세일럼은 1692년 미신에 의한 마녀 재판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기도 한데, 멜빌은 여기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는 곳으로 뉴베드퍼드와 비견되는 장소는 바로 세일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내막은 《모비 딕》의 첫 페이지에 쓰여진 헌사와 관련이 있다. 바로 “그의 천재성에 대한 존경의 징표로 이 책을 너새니얼 호손에게 바친다”라는 대목이다. 《주홍글씨》를 썼던 호손과 그의 아내 소피아 호손이 바로 세일럼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멜빌이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뉴베드퍼드와 견줄만한 곳으로 세일럼을 언급한 이유를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겠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 《모비 딕》은 주로 1850년에 집필이 되었고, 같은 해에 호손과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이미 멜빌은 호손에 대해 호의적인 인상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멜빌이 쓴 첫 소설 《타이피 Typee》(1846년 2월)에 대해 호손이 멜빌의 첫 소설을 극찬한 리뷰를 기고했기 때문이었다. 《모비 딕》을 한창 집필하던 1850년 여름, 멜빌은 호손과 친교를 맺으면서 다소 밋밋하던 원고가 비극적 요소를 분명히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번 장에서 멜빌이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뉴베드퍼드 여인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춘 이들이 세일럼 여인들이라고 한 것은 이 글을 읽게 될 두 사람(호손 부부)에 대한 존경과 우정의 표시이자 가벼운 농담으로 여길 만 하다. 멜빌은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따금씩 멜빌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이런 부분을 느릿느릿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것이 내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참고도서]

[1] 《일러스트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록웰 켄트 그림/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2] Moby-Dick or, The Whale Herman Melville [Penguin Class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