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편집장》 관행에 균열을 내는 사람, 어느 편집장의 에세이

 

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기존의 전통과 관행에 균열을 내는 사람’


 

언론분야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분야다. 이 굿바이, 편집장을 읽고나서 저자에 대한 인상을 한 마디로 이야기해보면 그는 ‘기존의 전통과 관행에 균열을 내려고 노력해온 사람’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언론인으로서 저자는 일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회 조직이나 어떤 형태의 시스템이든 집단에 속해있다면 나서서 ‘일을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이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이 되고 안정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이 고착화된 관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조직에서 저자 같은 구성원은 ‘일을 벌이고 튀는’ 유형의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일을 만드는’ 유형의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도 ‘일을 만드는’ 사람이 지금 보다 많아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기자이자 편집자/편집장의 역할을 맡았던 저자가 일을 만들지 않았다면, 한겨레 ‘토요판’의 모습은 분명히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고, 한겨레의 몇 가지 굵직한 이슈들이 나오지 않았거나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결과했을 것이다.

 

 

예를 한 가지 들면 저자가 기획했던 동물 기사가 있다. 바로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훌라후프를 돌리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던 남방돌고래 ‘제돌이’ 삶에 관한 기사였다. 저자가 토요판을 책임지고 있을 때 진행되었던 취재와 보도의 결과, 제돌이가 다시 자유를 얻어 제주 앞바다로 나갈 수 있게된 일련의 과정들이다. 이 이야기는 개별 동물의 사례를 통해 동물권에 대한 관심과 주목을 요구하였고, 다시 이것이 인권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통찰을 주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저자가 일을 만들지 않았다면, 제돌이는 여전히 동물원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당시 대선을 앞둔 긴박한 시국에 토요판 1면을 돌고래 이슈로 채워넣으려 했던 저자의 시도는 내부에서도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고경태 대표는 당시에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돌이 문제, 보다 크게는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 중요성에을 감지했던 것이다. 저자는 사회에 묻혀있던 굵직한 이슈들의 징후를 예민하게 느끼고 감수하는 능력을 지닌 것 같다. 나는 이런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예민한 감수 능력을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술가적 감수성을 가지고 ‘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느꼈던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일을 만드는’ 편집장에게는 이러한 예민한 예술가의 감수성 또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은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역사 100년 중에서 저자가 언론에 몸담았던 지난 30여 년간의 경험이 녹아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엄숙, 근엄, 진지’하기만 했던 언론 매체의 분위기를 ‘김규항과 김어준의 쾌도난담’ 코너를 통해 바꿨던 시도는 단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한겨레신문의 ‘토요판’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내외에서 비판과 마주했던 일들은 또 다른 인상적인 예이다. 진보 언론사의 성격임에도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이니만큼 견해 차이도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몸 담았던 조직에서 특히 ‘일을 만드는 것’은 이 책에서 기획을 의미한다. 기획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때 이미 여러 가지가 유치하게 다가올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남의 흉내를 내고 따라하는 것’이야말로 유치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획단계에서 ‘좀 튀는’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데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상황은 보수 언론사에서도 다를바 없을 것이다. 다만 데스크를 누가 지키느냐의 차이일 것 같다. 그런 점에서보면 저자가 편집의 책임을 맡은 자리를 지키며 씨끌벅적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관철해낸 일들을 따라가다보면 신기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본인은 ‘뚝심’이라고 판단할 지라도, 남들에게는 ‘아집’으로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정답이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반듯한 결과를 얻더라도 기껏해야 칭찬도 진부할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저자가 들려주는 지난 날의 경험들은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공존하는 민주사회, 직장에서 책임을 진 사람의 자리지킴과 물러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의 물음을 추가로 내게 던져주었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더 인상적인 사건을 들자면,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과 작가 서해성 선생이 만들어나간 ‘한홍구와 서해성의 직설’ 코너에서 생긴 ‘필화’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하여 칼럼의 제목을 가감 없이 지은 것이 발단이었는데,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저자는 매 분마다 울리는 전화와 욕설, 협박에 한동안 시달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너의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글의 맥락을 차분히 따져보는 사람이라면 신문사에 욕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기사 이후 8일간 260명의 ‘독자’라는 사람들이 절독선언을 했다고 한다.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다음날 신문 1면에 사과문을 게시한 사례는 다시봐도 아쉬운 사례이긴 하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고 화를 냈다고 해도 모든 사례에 대해 사과를 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정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실제로 쉽지는 않은 문제다. 이 사건은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저널리즘 분야의 종사자들 뿐만 일반 독자들에게도 생각해볼만한 꺼리를 준다고 본다. 나아가 강준만 교수의 언급에도 주목해보게 되는데, 일종의 ‘팬심’을 가지고 특정인에게 ‘충성’하려는 행동을 하려면 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작 본질적인 ‘이슈’를 갖고 싸우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특정인에 대한 ‘팬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미디어 컨트롤에 대한 경계를 ‘경계’하는 말이었다. 저널리즘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도 귀담아 듣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할 때 염두에둘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구성에 대한 부분을 한 가지 언급하자면, 저자가 각 챕터 뒤에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이 내게는 읽기에 아주 불편하다는 점이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딴 생각으로 빠져들곤 하지만, 책의 구성만큼은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구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짧은 주석이라면 해당 페이지의 하단에 ‘각주’로 처리하여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보다 긴 주석이라면 책의 맨 뒤에 ‘미주’로 한꺼번에 모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 습관에 따라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주석도 살펴보면서 확인까지 해보며 읽기 때문이다. 매번 각 챕터의 주석이 있는 부분의 페이지를 찾아 확인하며 읽는 과정은 내게는 고역이다. 책을 읽는 흐름을 깨뜨림과 동시에 손이 분주해져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책의 구성에 정답은 없을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 독자의 읽는 방식에 따라 독서를 하기에 불편을 느낄만한 부분이 있다. 이따금씩 주석에 나온 2차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처럼 주석의 내용이 많은 저자의 글쓰기 방식의 경우, 책의 뒷면에 주석을 한꺼번에 모아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집자, 편집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일해온 저자의 개인사를 따라가보았고, 나아가 언론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묻혀 있던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공론화하였고, ‘걱정’을 입에 달면서도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저자의 기획 원칙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여러 사건 중에서 역사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항상 가져야 결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사람살이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나온 ‘유치한 생각’, ‘아이디어’들에 꽂히면 즉각 실행해나갔던 것이다. 기획자로서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자기 계발서’같은 뉘앙스를 띨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일단 ‘해보라’는 것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특정인이 관여된 경우라면 일단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걱정많은 사람들에겐 귀담아들을만한 조언이다. 사람이 모든 일에 전문가가 아닌 만큼 함께 만들어갈 사람을 잘 찾고 섭외하는 일도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굿바이, 편집장을 읽으며 30여년간 언론분야에서 숨가쁘게 지켜왔던 저자의 업에서, 편집장의 자리에서 길어올린 삶의 통찰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의 어디엔가는 편집장으로서 저자의 궤적을 잘 보여주는 시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이 시는 워낙 많은 맥락에서 인용되고 활용되어 식상할지로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며 느끼는 감정은 이 시가 그래도 ‘일을 벌이는’ 사람의 고단함에 대한 위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대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158면, 재인용 부분)

 

 

그러므로 저자가 지니고 실천해온 철학을 한 마디로 뭐라고 묻는다면, 나는 ‘기존의 관행에 균열을 내기’라고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