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황정아 외 9명 지음 | [바틀비]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틈틈이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여러 저자들이 쓴 서평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은 모두 물리학 혹은 생물학분야 전공자들이다. 이제는 어느 누가 이과 전공인 사람들보고 필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모두 편견과 달리 인문적인 소양과 필력을 인정받은 필자들이다. 이제는 문과 전공인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도록 요구받는 세상이다. 이과 전공인 사람들 역시 인문적인 소양이 필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꽤 오랫동안 결핍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변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혹은 과학을 싫어하니까 문과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피사유’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과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있고, 문과 공부를 한 사람이 양자 역학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그만큼 다원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이 책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의 출판을 기획한 과학책방 ‘갈다’의 이명현 대표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별을 좋아하던 ‘덕후’였지만 문예반에서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며, 문장을 다듬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저자들도 글쓰기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아는 이공대생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만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이 책의 필자 10명은 각각 두 권 씩의 책을 골라 서평을 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목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지만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책만 고른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과학사에 감춰져 있던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도서도 있다.

 

 

서평은 독후감과는 달리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객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나’라는 주어를 많이 쓰기 보다는 ‘필자’라고 한다던가 하여 스스로를 대상화, 객관화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한 객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 ‘거리두기’라는 방식이 ‘필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떤 글이든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문제의식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책에 실린 20편의 글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서평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과 결부시킨 글들이다. 바로 저자 자신들의 어쩌면 부족했던, 혹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내게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표출하고 독자가 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 각각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통해 사회현상과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이 내게는 피부로 더 잘 다가왔다.

 

 

서평의 기본 목적은 서평을 읽는 이가 해당 책을 읽게 하거나 혹은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울렸던 책’을 고른 만큼, 독자도 이와 같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이미 이 책에 소개된 몇 권의 책을 읽고자 온라인 장바구니에 책 몇 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과학자/과학저술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이들을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문이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나의 무관심과 무능에 대한 변명으로 이 제도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저자들이 부러웠던 점은 이들이 전문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한 부분보다는 각 필자가 감명을 받고 각자 큰 영향을 받은 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 책들을 읽은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 그래서 삶의 의미가 한층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책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