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하나의 숨‘ -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 사는 ‘작은 삶들’의 이야기
《하나의 숨》
조해진 지음 | [창작과 비평 겨울호(186호)]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 사는 ‘작은 삶들’의 이야기
소설의 화자는 특성화고에서 기간제 영어 교사로 일하는 최씨 성을 가진 여선생이다. 소설은 화자가 계약갱신 2개월을 남겨놓고 직장으로부터 막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후부터 시작한다. 기간제교사로서 매년 재계약을 해야만했던 화자는 이번에 해고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을 기대하고 있는 기현이란 이름의 남자 친구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이 때 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공장에 막 취직한 ‘은하나’라는 이름의 여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하나는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어두컴컴하고 외로운 시골길을 걸어가며 전화기를 통해 다짜고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담임 선생인 화자는 하나에게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아. 그건 남들도 다 똑같아”라며 인내하고 견디라는 말만을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하고 기억해낼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대답은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현대인의 선언이기도 하다. ‘너의 삶은 나와 무관하다는 것’,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순간을 손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문명이 고안해낸 발명품 중에는 바로 타인의 삶에 공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개인이 있다는 생각마저 해본 적이 있다.
소설의 화자는 남자 친구의 어머니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저녁을 함께하는데, 공장에서 다친 하나에 대해 자신이 하나에게 했던 말과 닮은 말을 예비 시어머니로부터 듣게된다. 예비 시어머니는 10대 시절 성수동의 편직물 공장에서 여공(일명 시다)으로 하루 15시간 씩 고되게 일했던 경험이 있다. 예비 시어머니는 70년 대에 많았던 여공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오야지’라고 불리는 공장의 권력(주로 남자 상사)으로부터 욕설과 폭언, 폭력을 당하면서도 잠 안오는 약을 먹으며 일해야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법정기준 근무시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강도로 일하던 시대의 희생자들이었다. 이 여성들의 고단한 삶은 형태를 달리해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젊은 세대인 하나의 추락 사건에 대해 ‘요새 젊은이들은 상황이 과거에 비해 좋아졌는데도 공장에서 일하기 싫어한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화자는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 ‘몸 안의 모든 것이 출렁이는’ 느낌과 함께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희생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 이들 각자의 고통은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화되고 고립되어 있다. 하나의 사고에 대해 담임 선생인 화자와 예비 시어머니 모두 일종의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무력한 현대인들이다.
화자는 사회가 부과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결혼이라는 굴레 때문이다.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화자가 남자 친구 및 예비 시어머니와 저녁을 함께한 자리에서 예비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결혼 준비 이야기를 듣게된다. 결혼 당사자인 화자와 남자 친구는 결혼식의 들러리처럼 배제되어 있다. 그런데 화자는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결정해야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IMF의 여파를 겪어낸 대한민국호는 대다수의 탑승자 들의 삶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전통적인 관례상 남성들이 벌어오는 수입만으로 가정과 자녀를 키우기 힘들어진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여성들의 수익창출활동이 당연시 되고 있다. 화자는 비혼주의자도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기를 바라는 독립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직장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상태다. 그대신 수원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의 영어 교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정교사가 되려면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암시를 실감한다. 일종의 관행으로서 이년치 연봉을 내야한다는 사회의 부조리와 마주하는 것이다. 화자는 사회가 강제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며 선택을 요구받는다. 우리 사회는 각 구성원들에게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나마 머뭇거릴 여유마저 빼앗아버린 듯하다. 결국 화자의 인간적인 관계맺기 역시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 역시 흔히 보아온 결별의 모습과는 다르다. 마치 컴퓨터에 저장해둔 오래된 사진 파일처럼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서히 서로의 존재를 잊으며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헤어짐을 슬퍼하고 때로는 애도하는 것마저 이들에게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단편 소설 ‘하나의 숨’에는 다양한 인물들(여성들)이 겪어야만 하는 현실이 돌 위에 새겨진 십계명처럼 공고히 드러난다. 하나가 마주한 현실은 또 어떤가. 하나는 공장에서 추락하기 전날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하나가 속한 부서의 팀장이 보여준 반응은 사회적 약자가 감내해야만 하는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내준다. 팀장은 고등학생일 뿐인 하나에게 ‘공장에서 일할 거면 미리 운동해서 힘 좀 길러놓지 않고 뭐했는냐, 그 살이 다 근육이면 내가 왜 일을 안주겠냐, 가방끈 짧은 애들이 자기 관리도 잘 못한다’고 으름짱을 놓고, 모욕감을 주고 있다. 이런 반응은 내가 경험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으며 이를 매우 실감나게 묘사한다. 팀장의 말은 특히 ‘경제적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비인간화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우선 인격이 거세된 불모의 구성원들이다. 하나의 팀장이 보인 반응은 경찰이나 군인들을 뽑는 과정에서 남녀 모두 동일한 체력기준을 강요해야한다는 인터뷰를 실은 뉴스를 떠올리게 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인간으로서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성숙도가 아직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추락은 어쩌면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인식이 추락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등이라는 명분 이전에 우리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한편 하나가 사고를 당한 이후, 하나의 어머니는 공장을 방문하는 날 하나의 담임 선생인 화자에게 동행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나의 어머니는 대한민국 사회라는 굴레가 낳은 또 한 명의 사생아이다. 미혼모로 하나를 낳고 홀로 키워온 그녀는 사회의 하층부에 자리잡고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다. 하나의 어머니는 하나가 다치고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을 때, 딸을 간호하기 위해 일하던 마트를 관두고 병원 근처 모텔 방에 장기 투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져볼 기회마저 차단된 삶 한가운데에 있다. 그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잊혀지는 작은 삶들을 대변한다. 이런 처지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분노란 이미 철지난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체념’은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의 선언과 같이 느껴진다. 하나의 어머니는 하나의 추락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못나서 하나가 저렇게 된거예요. 고등학교 중퇴에 미혼모에, 나 좀 못난 거 맞잖아요.” 사회의 부조리하고 메마른 구조 속에서 이들은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다. 나아가 이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고통은 등장 인물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각자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로 변형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 어머니의 말은 사회로부터 배제된 개별 존재로서 우울증세에 가까운 무기력증을 반영한다. 이들 각자는 부조리한 삶의 무게를 감내해야하는 현대 사회의 시시포스들이다.
이 소설에는 마치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서 살고 있는 듯한 4명의 여성들을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너무나 투명하게 노출되어 취약하다. 한편 이들의 삶은 사회가 강제하는 굴레에 둘러싸여 있다. 사회의 굴레를 벗어나 살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들을 치밀하게 엮어두고 있다. 특히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녹녹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문제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문제와 이들의 산업재해 문제, 여공의 역사가 보여주는 노동 및 인권의 문제, 결혼 문제(결혼의 굴레), 미성년자 문제 등 우리가 보아온 묵직한 주제들이 날줄과 씨줄처럼 엮여 있다. 독자로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계층이 부쩍 증가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화자와 하나 어머니가 평택의 공장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부터 제지당한 것처럼, 등장 인물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이다. 이들은 각자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이라는 속박에 허우적대면서도 생존에 취약한 계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이 여성이 주가 되지만 사회의 굴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포함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모두가 거대한 대기 속에서 사는 존재들이란 자각이다. 내가 들이 마신 공기 분자는 수 억년 전 공룡이 들이 마신 적이 있었던 공기 분자이기도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가 내쉰 숨은 대기로 퍼져 우리 모두 그 일부를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등장 인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사회에서 보다 취약한 여성들을 대표로 부각시키고 있지만, 남녀노소 모두 우리는 대기를 통해서도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처럼 취약 계층을 묘사하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모순적인 방식을 각자에게 강요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아가 소설은 인물들이 느끼는 이 ‘고통’의 기원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답을 명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이 사는 곳은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피해자들은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사회의 부조리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소설은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는 현대인의 삶의 양태를 밀도있게 보여준다.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일까? 소설을 읽은 후에는 내게 이 커다란 물음이 남았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에서 살아가며 하나의 숨을 쉬는 작은 존재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