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딕》 읽기 (16장-25장)

《일러스트 모비딕》

(16장-25장, 133-196)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오늘 읽은 부분은 낸터킷 섬에 도착한 이슈미얼과 퀴퀘그가 타게될 포경선을 고르고 마침내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부분이다. 출항 전 이슈미얼은 포경업에 관련된 모든 이슈를 다룰듯한 기세로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미국의 포경업을 일군 퀘이커 교도들에 대한 이야기나 이를 중심으로 종교와 현실세계의 충돌과 화해의 문제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 《모비딕》 만을 놓고 보면, 작가 멜빌은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예언적 징후들

어쨌든 이슈미얼과 퀴퀘그가 세 척의 포경선 중에서 선택한 배는 ‘피쿼드 호’였다. 본문에 따르면 ‘피쿼드’는 “고대 메디아왕국처럼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 이름(134면)이었고, 이 배의 선장은 성경에서 아합(Ahab)이라고 하는 에이해브 선장이었다. 《구약성서》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폭정을 일삼았던 아합왕을 떠올리게 하는데, 피쿼드 호의 선주 펠레그 선장과 대화하던 이슈미얼은 눈치없이 아합왕에 대한 진실을 내뱉는다.

 

그는 에이해브란 말이지. 그리고 그대도 알다시피 옛날에 에이해브는 왕관을 쓴 왕이 아니었겠나!

게다가 몹시 나쁜 왕이었죠. 그 사악한 왕이 살해됐을 때 개들이 그의 피를 핥지 않았던가요?(149면)

 

한편 이슈미얼과 퀴퀘그가 피쿼드 호에 승선하기 전에 에이해브 선장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하며 횡설수설하기도 하는 낯선 사람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일라이자라고 말하는데, 일라이자는 역시 《구약성서》에서 아합왕의 파멸을 예언했던 엘리야를 가리킨다.

 

내가 말했다. ‘이리 와, 퀴퀘그. 이런 미친놈한테서 벗어나자고. 그런데 잠간, 당신 이름이 뭐요?

일라이자(169면)

 

이쯤하면 이미 여러 곳에서 피쿼드호의 운명에 대해 불길한 징후를 심어두었다고 의심할만하다. 피쿼드호에 오르는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또 하나의 실마리는 뉴베드퍼드에서 만난 적이 있던 벌킹턴이란 사람에 대해 기술하는 장(제23장)에 등장한다. 이슈미얼은 피쿼드호의 키잡이로 자리잡고 있는 벌킹턴을 다시 보며 “이 짧은 장()이야말로 벌킹턴의 비석 없는 무덤이다.(186면)라며 또 한번 불길함의 실마리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가 멜빌은 앞으로 피쿼드호 사람들이 맞게 될 거대한 비극적 사건에 대한 복선을 예비하고 있다.

 

낯설게 보기의 대가, 허먼 멜빌

앞선 읽기에서 작가 멜빌은 어느 하나의 대상, 혹은 현상에 대해 표면적 모습과 이면의 모습 모두를 대등하게 놓고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언제나 하고 있었다. 오늘 읽은 범위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할 성경 속 구절을 비틀어서 소설 속 장면을 설명 또는 묘사하곤 한다. 또 퀘이커 교도들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보내고 있는 반면, 종교와 현실세계와의 모순적인 현상을 언급하기도 한다.

 

빌대드 선장에게는 평범한 일관성이 조금 결여되어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이유로 육지에서 온 침략자들에게 무기를 들고 맞서길 거부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끝도 없이 침략했다. 또한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은 하지 않겠노라 맹세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일자형 코트를 입고 리바이어던의 피를 몇 통씩이나 끝도 없이 흘려보냈다.(142면)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고래잡이들을 ‘백정’이라고 무시하지만, 정작 군대 사령관들은 ‘가장 피비린내나는 훈장을 단 백정’이라고 표현하며 인간 사회의 모순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전체 소설 중 거의 4분의 1의 분량이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나가고 있으면서도, 작가 멜빌은 여전히 인간과 사회에 대해 비틀어보고 낯설게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슈미얼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 문제를 온갖 종류의 저울에 달아서, 우리 고래잡이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지금껏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190면)

 

내가 볼 때 이러한 시도는 《모비딕》 이 지니고 있는 보이지 않는 형식 내지는 작품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작가 허먼 멜빌이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의 근간이라고 말이다.

 

 

기타 흥미로운 구절들

 

이 점을 명심할지어다. 인간의 모든 위대함이란 한낱 질병에 지나지 않음을.(141면)

 

지옥이란 사과 덤플링을 먹고 체한 사람이 처음으로 떠올린 개념이며, 그 후로 라마단 때문에 대물림되는 소화불량을 통해 불멸의 개념이 되었다고.(158면)

 

포경선이야말로 나의 예일대학이자 나의 하버드대학이었으므로.(1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