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딕》 읽기 (26장-35장)
《일러스트 모비딕》
(26장-35장, 197-263)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오늘 읽은 부분은 ‘적막한 대서양으로 운명처럼 무작정 내던져진’ 피쿼드호의 구성원들에 대한 소개와 고래학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모비딕》 이 출간된 지 정확히 120년이 지난 해에 커피전문점의 상호명으로 다시 세상에 주목을 받게된 일등항해사 스타벅. 그는 ‘양심적이고 자연에 깊은 경외심을 가진’ 퀘이커 교도 집안의 남자이다. 아울러 상당히 조심스럽고, 고래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고래사냥 철학은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포경 보트에 태우지 않겠다”(198면)라고 한 말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키가 큰 호리호리한 체격에 단단한 살집으로 묘사되는 스타벅의 모습은 록웰 켄트의 상상력으로 재탄생했다(199면). 그는 이슈미얼과 단짝이었던 퀴퀘그를 작살잡이로 선택했다.
다음 이등항해사 스터브 역시 미국 코드 곶 태생으로 침착하고 쾌활하며 파이프 담배를 잠시도 놓치 않는 골초로 묘사된다. 멜빌은 스터브라는 인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스터브의 담배연기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시련에 대한 일종의 소독약 역할을 해주었을지 모른다.”(205면) 스터브는 순수 혈통 인디언인 타시테고를 자신의 작살잡이로 뽑았다. 타시테고는 길고 가느다란 검은 머리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검고 둥근 눈을 가진 ‘게이헤드 사나이’로 설명되어 있는데, 록웰 켄트의 그림으로는 207면과 왕성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253면)이 등장하고 있다. 207면에서는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스터브의 모습도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항해사인 플래스크는 미국 마서스비니어드 섬 출신으로 키가 작고 다부진 몸집에 혈색이 좋은 남자다. 성격은 스타벅과 매우 상반된 인상을 주는데, 자연을 경외하는 스타벅과 달리 재미로 고래를 추격하고 고래에 호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에 가까운 대담무쌍함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며, 그에게 고래사냥은 장난거리인 셈이다. “그의 짧은 소견에 의하면, 경이로운 고래란 일종의 커다랗게 확대된 생쥐이거나 고작해야 물쥐 정도에 지나지 않은 존재이므로, 고래를 죽여서 끓이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계략으로 그 고래를 속인 후 약간의 시간과 수고만 더 들이면 되었다”(205면)라는 표현에서 플래스크의 고래사냥 철학과 그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적어도 켄트가 상상한 플래스크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찾을 수 없었다. 플래스크는 자신의 작살잡이로 흑인 다구를 선택했는데, 귀에 커다란 황금귀걸이(링볼트라고 불리는)를 한 다구의 모습은 203면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독서에서 드디어 에이해브 선장이 등장한다. 향유고래의 턱뼈를 갈아 만든 의족을 한 그는 얼굴에 줄무의의 낙인이 있다. 선장의 음울한 모습을 잘 묘사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34면, 264면의 그림 참조)
“기분이 매우 언짢은 에이해브는 무슨 십자가에라도 매달린 사람같은 표정으로 그들 앞에 서 있었는데, 그 강력한 비애는 뭐라 말할 수 없이 장엄하고 압도적인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213면)
에이해브 선장에 대한 이슈미얼의 묘사는 역시 관찰을 통해 다양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번은 그를 “헐벗고 울퉁불퉁하고 벼락에 쪼개 진 늙은 참나무”(214면)에 비유하기도 하면서, “에이해브야말로 갑판 위의 칸, 바다의 왕, 리바이어던의 위대한 지배자”(220면)라고 언급하며 모순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추운 크리스마스날 밤 낸터킷을 떠난 피쿼드호가 적도부근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여러 주요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멜빌은 제32장에서 ‘고래학’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고래들에 대해 서지학적인 체계로 분류를 시도하고 있다. 멜빌은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자신이 포경선을 타본 경험 뿐만 아니라 상당한 문헌들을 조사하려고 노력했던 정황을 소설에도 남겨놓았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들을 헤엄쳐 다녔고 대양을 항해하고 다녔다. 나는 내 이 두 손으로 고래들과 명백히 관계를 맺었다.”(228면) 허먼 멜빌은 《모비딕》 을 쓸 당시(1850년), 자신의 방에 두문불출하며 하루종일 책을 읽은 정황을 알 수 있는데, 이 때 항해와 고래, 린네의 분류학, 포경업 등에 대한 수많은 도서들을 함께 읽었음이 분명하다. 《모비딕》 이 다른 영미 소설들과 다른 특징을 꼽으라면 이런 ‘괴팍한’ 장들을 우선 떠올려볼 수 있겠다.
259면에는 소설의 화자인 이슈미얼이 돛대 꼭대기에서 망을 보는 그림이 나온다. 이슈미얼은 켄트의 상상에 의해 돛대 꼭대기에 설치된 나무 발판에 올라서서 돛대와 철제 링난간에 기대어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있다. 이슈미얼은 자신을 형편없는 망꾼, 눈이 퀭한 젊은 플라톤주의자(얼빠진 철학자)로 표현하고 있다.
“이 얼빠진 젊은이는 파도와 상념이 만들어낸 운율에 취해 멍하고 무의식적인 몽상이 가져다주는 아편 같은 나른함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하여 급기야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발아래 펼쳐진 신비로운 대양을 인류와 대자연에 충만한 깊고 푸르고 끝없는 영혼의 가시적 이미지로 받아들여버린다.”(262면)
록웰 켄트는 바로 이러한 멜빌의 묘사를 간결한 선으로 표현했다. 잔잔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지닌 이슈미얼이 망망대해의 외딴섬인 피쿼드호의 꼭대기에 올라 명상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한편 선원들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짧게 지나치는 인물 중에는 앨라배마 출신의 흑인 소년 ‘핍’이 있다. 그런데 핍 역시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암시를 작가는 잊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겁쟁이로 불렸으나, 저 세상에서는 영웅으로 찬양받는구나!”(209면) 멜빌은 피쿼드호와 구성원들의 운명을 이렇게 곳곳에 보물찾이 놀이하듯 숨겨두고 있다.
《모비딕》 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은 멜빌이 소설의 곳곳에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자칫하면 글의 진행이 지루해질 우려도 있겠지만, 역시나 사회에서 길어내고 있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피쿼드호의 나머지 선원들에 대해서는, 오늘날 미국의 포경업계에 평선원으로 고용된 수천 명의 사람들 중 미국 태생은 둘 중 하나도 채 되지 않는 반면, 간부 선원들은 거의 다 미국인이라는 사실만 말해두도록 하자. 이 점에서 미국 포경업계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상선, 미국의 운하와 철도 건설을 위해 고용된 토목 기술자들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서 미국 토박이들은 관대하게 머리를 제공하고, 나머지 나라 사람들은 아낌없이 근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208면)
재미있는 대목
선원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겁많은 ‘찐빵’이라는 인물이 거친 작살잡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희화하 한 대목이다.
“아아! 찐빵이여! 백인 웨이터가 식인종의 시중을 들다니, 이 얼마나 모진 운명인가. 그는 팔에 냅킨을 걸칠 게 아니라 둥근 방패를 들어야 한다.”(262면)
노예제를 찬성하던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거슬리는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빌이 누구인가. 성경의 문구든, 이교도의 역사이든 아니면 셰익스피어나 바이런의 시든지 간에 자기 나름대로 비틀고 패러디해버리는 ‘낯설게하기의 대가’가 아닌가. 당대의 현실에서와 반대로 소설 속에서는 백인과 이교도 식인종의 지위를 뒤바꾸어 버렸다. 오늘 읽은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모비딕》 읽기에 중독성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지점들이 아닐까 한다.
또 흔들리는 돛대 꼭대기에서 망을 보고 있는 이슈미얼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지금 그대가 지닌 생명이란 부드럽게 굽이치는 배가 나눠준 흔들리는 생명일 따름이다. 배는 바다에서 빌려왔고, 바다는 신의 헤아릴 길 없는 조류에서 빌려온 바로 그 생명 말이다.”(263면)
소설 속 화자는 망을 보다 잠시 졸아 떨어지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이고 있다. 바다로 떨어지면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