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딕》 읽기 (36장-43장)

《일러스트 모비딕》

​(36장-43장, 265-324)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오늘 읽은 부분은 ‘문제의 그날 아침’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무언가에 홀린듯 갑판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던 에이해브 선장은 돛대 위에서 망을 보던 선원들까지 모두 갑판으로 불러들여 선원들을 부추기기 시작한다. 선동가 에이해브의 모습. ‘이마에 주름이 있고, 아가리는 비뚤어진 흰 고래’를 처음 발견한 이에게 스페인 금화를 주겠노라 공언한다.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한 쪽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피쿼드호의 선원들을 선동한다.

 

이 때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스타벅은 “말도 못 하는 멍청한 짐승에게 복수라뇨!(270면)라며 자신은 선장의 복수를 위해 피쿼드호에 승선한게 아니라며 항변한다. 고래를 수도 없이 잡았을 스타벅에게도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은 신성모독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이렇듯 스타벅은 한 집단 속에서 양심적인 구성원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선원들에게 술을 나눠주고, 특별한 의식을 하듯 작살에 술을 담아 마시게 하는, 의전적이고 연극적인 에이해브의 선동에 피쿼드호의 선원들은 하나의 운명으로 역이게 되었다.

 

모비 딕에게 죽음을! 만일 우리가 모비 딕을 쫓아가 그 목숨을 빼앗지 못하면, 신께서 우리를 모조리 다 죽이실 것이다! (274면)

 

에이해브는 의식을 치르는 그 순간 이렇게 외치기에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모비딕》 의 전반부에서 소설 전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후에 이슈메일은 이 때의 정황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손길에 이끌려 가는 기분을 느끼지 못한 이가 있을까? 대체 어떤 소형 군함이 대포 74문의 군함이 끌고가는데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310면)

 

《모비딕》 의 흥미로운 점은 시대에 따라 이 장면이 다르게 읽힌다는 점일 것이다. 냉전 시대에는 구 소련과의 무기 경쟁을 통해 피쿼드호라는 국가 전체가 에이해브 선장 같은 레이건 대통령의 지휘 아래 인류 멸절의 위기로 치닫는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한 외교철학으로 미국이라는 피쿼드호가 북한과 긴장을 유발하여 북한 주변국들에게 위협을 주거나, 이란에 대한 정당한 공격을 선언하며 전 세계를 또 다시 공포로 몰아넣는 상황에 대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 운영 절차는 그럴듯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독재체제와 다름없는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경우라면 바로 《모비딕》 의 이 장면에 대입하여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이처럼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구심점을 제공하는 열린 소설이다.

 

제41장과 42장에서는 모비딕과 흰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슈미얼은 이 모비딕이 왜 특별할까를 묻는다. 다른 향유고래에 비해 더 큰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모비딕의 흰 색과 이마의 주름, 피라미드와 같이 높이 솟은 혹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고래의 흰 색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고래가 흰색이라는 점이었다.(311면) 오늘 독서의 전반에서는 이 흰 고래가 에이해브 선장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나온다면, 후반에서는 흰 고래가 화자인 이슈미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슈미얼은 이 흰 색이 지니는 고귀한 우월성, 그리고 ‘기쁨’과 같은 상징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흰 색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감미롭고 명예롭고 숭고한 연상들에도 불구하고 흰 색의 가장 내밀한 관념 속에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가 숨어 있어서 공포스러운 피의 붉은 색보다 영혼에게 더욱 극심한 공포를 안겨준다.(312-313면)

 

멜빌은 이슈미얼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북극곰과 백상아리의 흰 색,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지는 앨버트로스의 흰 색, 초원을 달리는 백마가 원주민에게 안겨주었던 위풍당당한 카리스마와 두려움, 그리고 ‘알비노’라고 하는 백색증의 흰 색등 흰 색이 주는 공포의 기원을 탐색한다. 《모비딕》 의 서두에 나온 발췌문에 보면 멜빌은 괴테의 책을 열심히 읽은 정황이 보인다. 멜빌은 색이 주는 심리적 영향 관계를 탐구한 괴테의 《색채론》도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소설에서 멜빌은 흰 색이 전달하는 심리적 효과에 대한 설명하는데, 이는 색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이라기 보다는 《색채론》의 서술의도와 유사해보이기 때문이다.

 

멜빌이 《모비딕》을 출간할 당시에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테지만 ‘흰 색’이 주는 공포감을 멋지게 묘사한 작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톨스토이의 《광인의 수기》를 언제나 떠올린다. 소설에서 지방 지주인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를 매입하러 가는 길에 ‘하얀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덮친 발작 증세를 기억한다. 또 화자가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는 들판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느꼈던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발작에 이르는 장면은 곧 ‘죽음에의 공포’로 이어진다. 이 두 장면은 바로 ‘백색공포’의 ‘백미’(이 단어에도 흰 색이 등장한다)라고 생각한다. 특히 톨스토이의 경우, 《광인의 수기》에서 등장하는 이 경험은 실제로 톨스토이가 경험했던 것들이기에 더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결국 멜빌이 소설에서 이 흰 색이 주는 공포감의 기원은 ‘죽음’의 상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