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는 우리 안에 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고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원제 Spillover: Animal Infections and the Next Human Pandemic)
데이비드 콰먼 (David Qaummen)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열쇠는 우리 안에 있다’
한 해의 시작을 신종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했다. 전염병 유행을 저지하기 위한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삶은 일 년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이 위축된 상태로 흘러가버린 것 같다. 그 와중에 관심밖이었던 전염병에 대한 도서를 접하고 일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던 저자 데이비드 콰먼의 책이라 지나칠 수 없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 데이비드 콰먼은 오지를 탐사하고 밀림을 헤메이면서 생태계 및 자연사 분야에 관해 무척 흥미있게 대중독자에게 소개하는 과학저술가이다. 생물학 분야, 진화론과 관련한 주제로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글을 쓰는 저자가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도도의 노래》와 《신중한 다윈씨》를 보면 대개 콰먼의 책은 두꺼운 편인데, 그의 글은 읽는 동안 누가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저자는 자신이 취재하고 조사한 방대한 자료들을 마치 추리소설을 쓰듯 만들어내는데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콰먼의 책은 분량이 많아도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번에 손에 들어온 콰먼의 책은 전염병에 관한 취재와 조사기록이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의 원제목인 ‘spillover’는 질병생태학에서 ‘종간전파’라는 의미를 갖는 개념인데, ‘어느 생물종을 숙주로 삼았던 병원체가 다른 생물종으로 전파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오늘은 이 책의 1, 2장을 읽었다. 저자에 따르면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세균, 곰팡이, 원생생물, 프리온, 기생충, 바이러스 이렇게 여섯 종류이다. 이 중 지구적 규모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병원체가 바이러스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대유행(팬데믹)’을 겪고 있는 바이러스를 떠올리면 피부에 바로 와 닿는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병을 옮기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이 인수공통 감염병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저자는 현재 알려진 감염병의 60%정도가 바로 인수공통 감염병인데, 이 병원체의 존재가 사람과 동물 모두를 숙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병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숙주가 되는 동물 속에서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또 인수공통 감염병의 경우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나서 상대적으로 빨리 환경에 적응하기 쉽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은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힉 힘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신종 전염병의 대부분이 인수공통 감염병이라고 한다.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대부분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특징도 빼놓을 수 없겠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수공통 감염병’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야생 동물 중에서 이 바이러스의 보유숙주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도시 주변의 숲으로, 야생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연구자들을 통해 발표된 기사를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동물은 박쥐와 천산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 종류의 동물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동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로 불리고 있는 이 바이러스의 완전 퇴치가 거의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바이러스라면 감염된 이들에 대한 의학적·사회적 치료과정을 진행하면 퇴치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인수공통 감염병’의 경우는 지구상의 모든 보유숙주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퇴치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만일 이 보유숙주로서 야생동물을 멸종시킨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또 하나의 파괴적인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완전 퇴치냐 생태계 보전이냐의 문제만 해도 어느 쪽으로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 읽은 1장과 2장은 호주에서 발생한 일종의 말홍역의 일종인 헨드라 바이러스의 사례와 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친 에볼라 바이러스의 ‘종간전파(spillover)’ 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자세한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떠나서 이 ‘인수공통 전염병’의 큰 전제는 인간이 생태계에 가하는 교란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인간은 지구 어느 곳에도 흔히 존재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개발’, ‘문명’이라는 이름아래 야생동물들이 거주하던 야생지역을 점점 더 침범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활동이 자연 생태계에 점점 더 침투해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인간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지의 존재, 병원체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병원체’의 관점에서 인간은 매력적인 이동체이자, 숙주인 것이다.
2013년에 출간된 이 책(원서)에는 ‘(인수공통 전염병의 경우) 다음번 대유행이 불가피하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면 중국 남부의 한 시장에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나는 ‘코로나19’의 출현이 이미 예견된 수순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져 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금을 캐던 광부와 가족이 생계를 위해 숲에서 죽은 고릴라를 가져와 나누어 먹고 시작된 1994년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이번 ‘코로나19’의 사례와 비교하면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 역시 숲의 생태계와 생물들을 인간이 교란시킨 것이 화근이었다는 말이다. 더울 놀랍고 두려운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는 40년 넘게 여전히 보유숙주를 명확히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박쥐류에서 단서가 되는 ‘흔적’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 살아 활동하는 바이러스를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호주에서 발생한 종간전파 사례를 다루는 1장에서는 그나마 보유숙주가 박쥐로 명확히 밝혀진 사례다. 하지만 이 헨드라 바이러스가 특이한 점은 야생의 박쥐를 직접 돌보던 연구자들, 봉사자들은 단 한 명도 감염되지 않은 반면, 이 바이러스에 전염된 말과 접촉했던 여러 명이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 현상을 저자는 몇 가지 단서로 이해를 돕는다. 우선 호주의 말은 모두 1788년 이후 유럽에서 도착한 외래종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바이러스가 야생에 존재하지만 숙주동물 속에서 오래 기생해온 바이러스는 숙주동물과 서로 큰 문제 없이 공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호주’라는 공간에 외래종인 말과 인간이 도착한 것이다. 어떤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건 박쥐 혹은 박쥐의 분비물과 접촉한 말은 전염되어 빠르고 심각한 증상을 유발했고, 일종의 ‘증식숙주’로 작용하게 된 셈이다. 박쥐와 인간이 직접 접촉했을 경우 인간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이, 말의 몸 속에서 일종의 증폭기처럼 대량의 바이러스가 마련되어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이해된다.
1장, 2장만을 읽어봤지만, 역사상 인간 사회를 덮쳤던 흑사병이나 에이즈 등등의 인수공통 전염병이 무엇보다 인간 자체의 활동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관점은 이미 분명히 배울 수 있었다. 보다 직접적으로 저자는 인간이 야생동물의 영역을 침범하고 이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그리고 저자는 암울한 예견을 한 가지 남겨놓는다. “더욱 주목할 것은 가축에 의한 질병과 달리 야생동물과 관련된 발병 건수의 증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점이다.”(57면) 전염병의 역학 기초를 이해하게 되면, 인수공통 전염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완전한 퇴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의 또 다른 소설 《최후의 인간》처럼 21세기 후반의 세계에서 치료법도 없는 전염병이 발생해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 인류가 멸종하는 이야기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이 소설의 결말이 더욱 암울한 것은 남녀도 아니고 남자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사람의 인류를 살려두었지만, 사실상의 종말을 선언한 셈이다. 마치 교수형을 당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끔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하는 모습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가, 연구자들이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채 밀림에 들어가서 전염병을 조사하는 이유는 이 거대한 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 일이다. 그리고 저자 데이비드 콰먼의 입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에게 해결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달리 말해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 이 책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 점이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분명히,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