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종 인간의 위치를 알려주는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원제 Spillover: Animal Infections and the Next Human Pandemic)

데이비드 콰먼 (David Qaummen)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생태계의 트로이 목마를 찾아서

 

바이러스들이 20세기 아프리카에 살던 인구집단 내에서 전파되고 있던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시사한다.(524면)

 

이 대목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던 한 연구팀에서 발표한 연구논문의 주요 결론 중 하나다.

 

도도의 노래, 신중한 다윈씨 등으로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이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전염병에 관한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전문가와 취재를 하고 연구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발로 뛰어녔던 기록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 인용된 내용이다.

 

이 책에는 콰먼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에이즈 바이러스의 지리적·역사적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정리한 부분(8장 참고)이 나온다. 연구자들은 진화에 대한 오래된 상식과 생태학적인 폭넓은 시각,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DNA구조 발견 이후 큰 진전을 이룬 유전생물학등에 힘입어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책에서 바이러스에게 ‘최근’이라는 의미는 바이러스에게 새로운 숙주로 기능하게 되어 그 영향력이 빠르고 심각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자들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대략 ‘1908년 즈음, 카메룬 남동부에서 한 마리의 침팬지로부터 한 명의 인간이 감염되어 시작되었다는 질병의 기원을 알아낸 것이다. 이번 독서에서 과학의 발달과 과학자의 지혜가 모여 바이러스의 기원을 찾은 이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의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1981년 6월 5일, 에이즈 증상에 대한 첫 공식 발표가 있은 이후 에이즈로 2,900만명 이상 사망했고, 저자 콰먼이 이 책을 펴낸 2013년 이전까지 이미 3,300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상황이었다.

 

나아가 1918년에서 1920년 사이 전세계에 유행하며 약 5천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과학저술가로서 데이비드 콰먼에게는 도대체 이 전염병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인간을 이토록 괴롭힐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지적인 도전의식을 느꼈을 것 같다. 이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서 소개하는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는 여섯 가지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바이러스 외에 세균, 곰팡이, 원생생물, 프리온, 그리고 기생충이 있다. 책에 소개된 목차를 보면 아홉 개의 장이 있는데, 이 중 일곱 개의 장에서 전염병원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로 바이러스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바이러스일까? 저자 역시 ‘바이러스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하면서 책의 대부분을 바이러스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에이즈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동물과 인간이 함께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 감염병(zoonosis)’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이 아닌 생물체만 혹은 인간만 감염되는 감염병이라면 대상을 이해하고 제어하기 보다 용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간과 기타 동물이 함께 감염될 수 있는 병이라면 보다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알려진 감염병의 약 60%가 이러한 인수공통 감염병이라고 한다. 보다 큰 문제는 병원체의 존재를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특히 인수공통 감염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의 경우, 발병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발병 빈도가 높고, 바이러스의 변이 또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하게 정리한 내용을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더불어 이해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이 책의 4장에 소개된 것처럼 2003년에 우리가 겪었던 ‘사스’ 바이러스(정식 명칭은 사스-코로나 바이러스, SARS-CoV)의 가까운 친척쯤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사스’ 바이러스 역시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이 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율이 매우 높은 RNA바이러스에 속한다. DNA바이러스는 유전 정보인 염기배열이 이중나선 구조를 갖기에 유전암호의 복제 과정이 보다 안정적이다. 암호 해독에 ‘실수’가 있더라도 ‘DNA중합효소’라는 존재가 이 실수를 인식하고 수정하기 때문이다. 수두와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떠올리면 된다. 이 바이러스는 어렸을 때 수두를 일으키고 숙주인 사람의 특정 세포(주로 신경세포)에 오래 머무른다. 면역계로부터 자신의 몸을 숨기며 오랜 시간을 버티다가 숙주인간의 면역이 약해지면 숙주를 공격하여 대상포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 RNA바이러스는 무척 거친 녀석들인 셈이다. 단일 가닥의 유전암호 복제 과정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이미 오류가 난 이상 그 부분은 수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19를 비롯하여 모든 감기 바이러스와 모든 독감 바이러스, 그리고 최근에 중국에서 다시 보고된 한타 바이러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에이즈 바이러스도 이 RNA바이러스에 속한다. 유전 암호 부분에 변이가 비교적 빠르기 때문에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상용화가 될 즈음에는 이미 백신이 잘 듣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코로나 19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중국 ‘우한’은 과거에 ‘형주’로도 불리던 지역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에서 유비와 조조가 맞붙었던 적벽대전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중국 대륙의 한 가운데를 동서(서부의 충칭과 동부의 상해를 잇는)로 지나는 양자강의 중간 지점, 북쪽의 북경과 남쪽의 광둥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십자 영역의 교차점에 바로 우한이 존재한다. 우한시에 여러 자동차 회사 공장들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의 제조 공장들이 모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륙의 허리를 지나는 강과 함께 위치해 있으면서 사방으로 물류의 이동에 유리한 지리적 요충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으로 우한의 식육시장이 언급되었다. 일단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병을 일으킨 사례가 보고되면,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의 정체 뿐만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 곧 보유숙주의 정체와 근원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보유숙주로 박쥐와 천산갑이 지목된 바가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박쥐는 이 책에서 소개된 헨드라(Hendra) 바이러스(1장), 광견병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니파 바이러스(7장) 등등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주요 보유숙주로 언급되고 있다. 왜 하필 박쥐일까?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저자도 이 점이 궁금해서 참지 못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궁금증이 생기면 곧바로 자료를 찾아보고,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가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박쥐는 ‘손이 날개가 된’ 익수목으로서 설취류와 함께 주로 야행성 포유동물이다. 이 특징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피터 브래넌의 대멸종 연대기와 같이 지구상에서 존재했던 생물들의 ‘대멸종’을 다룬 책에 흔히 소개되는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멸종이었던 다섯 번째 멸종(약 6,600만년 전) 이후 살아남아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던 동물로 ‘크기가 작고 야행성인 포유동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지구의 자연사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백악기 말의 대멸종은 운석의 충돌과 대규모 화산 폭발로 지구의 환경이 공룡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며 이루어진 사건이다. 바로 멸종한 공룡의 자리를 대신하며 번성한 존재가 바로 야행성 박쥐를 포함한 익수목과 설취류였다. 콰먼은 박쥐가 매우 오랫동안 지구에 존재해왔던 동물로 약 5천 만년 전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익수목은 현재 1,116종으로 종수로만 따졌을 때 포유동물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단서가 바이러스를 이야기할 때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된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바이러스와 박쥐가 오랜 세월동안 폭넓게 공존해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쥐의 종수와 오랜 생존의 역사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 원생생물의 주요 숙주가 될 수 있었던 단서를 던져준다. 이들 병원체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숙주인 것이다. 박쥐는 지구의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종 및 개체수가 많고, 먹이를 찾느라 하루 밤에 무려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갈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서식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단서는 저자가 물었던 ‘왜 그토록 많은 신종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발견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러스는 매우 특이한 존재다. 우리가 정의하는 ‘생명체’의 범주에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일부는 ‘생명체’로서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콰먼은 바이러스가 숙주 몸에서 3천 만년동안 공진화해온 존재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저자가 바이러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바이러스 연구자가 아닌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중요한 통찰을 전해준다. 바로 바이러스를 비롯한 작은 병원체가 ‘내부로부터 우릴 공격하는 맹수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맹수들은 우리 눈에 보이며 생명체의 ‘외부’로부터 공격하고 섭식하는 존재들이다. 반면 이 작은 병원체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며 생명체의 ‘내부’로부터 공격하고 먹어치우는 맹수들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은 5장에서 소개되는 호주 과학자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의 관점과 연결이 된다. 버넷은 감염병 연구분야의 선구자로 바로 이 책의 중심 주제인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창한 인물이다. 1960년에는 면역과 관련한 메커니즘을 밝혀 노벨상의 수상한 인물이기도 하다. 버넷은 기본적으로 ‘미생물이라는 존재 자체와 이들의 특성과 행동이 생물계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어떻게 통합되는지(294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콰먼은 이를 다르게 풀어 표현해준다. 곧 단세포 생물까지 포함한 ‘생명체는 각기 고유한 생활사를 지니고 자연환경에 고도로 적응한 존재’라고 정리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 미생물과 인간 및 기타 동물이 서로 ‘경쟁’하는 존재로서 ‘생태학적 맥락’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각은 특히 미생물 병원체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대상을 이해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과 접근법으로 다가갈 수 있다.

 

 

 

침입종으로서의 인간

 

책의 읽어가면서 인수공통 병원체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놀라운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이 생태학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가장 심각한 대발생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종의 대발생이다.(619면)

 

앨런 베리먼이라는 곤충학자가 언급한 이 말은 내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여기에서 대발생(outbreak) 은 ‘단일 동물종의 개체수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오는 엄청난 수의 메뚜기때가 마을을 덮쳐서 곡식을 약탈하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상황을 연상하면 된다. 아니면 본문에서처럼 숲천막모충나방의 애벌레 수가 급증하여 마을을 덮친 사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지구라는 환경에서 보았을 때, 우리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마을을 덮친 메뚜기떼나 나방의 애벌레떼와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위협하며 스스로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다. 다윈이 인류를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나란히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면, 한 곤충학자의 시각은 지구상에서 인류가 안으로는 미생물과 경쟁하거나 싸우고, 밖으로는 눈에 보이는 맹수들을 비롯한 생물종들과 경쟁하는 자연계의 한 구성원으로 바라볼 기회를 주었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빠른 속도로 숲을 파헤치고 도시를 건설하며, 이동 수단을 발달시켜 전세계의 연결성을 확보했다. 이를 ‘생태학적 맥락’에서 말하면 수많은 동식물과 미생물이 점유하고 있는 영역을 인간이 침범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것도 너무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말이다. 지구 생태계에서 지나치게 갑질하고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서의 인간인 것이다. 전염병 연구자들과 콰먼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 병원체가 앞으로 더욱 빈번히 그리고 절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과도한 대발생 상태로 지구 생태를 점유하게된 ‘침입종’에 다름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숙주 몸에서 3천 만년 전에 공진화한 존재다. 반면 인류의 조상은 길게 잡아도 500-700만년 전이다. ‘바이러스의 관점’에서 우리 인간은 새롭고 매력적인 숙주가 되고 있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런데 과학자의 관점에서 이런 생태학적 시각은 모호한 진술이다. 과학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더 중요한 관점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종이 다른 동물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변화나 교란이 일어나고, 결과는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324면)이라는 점이다. 5장에서 진드기가 매개하는 라임병 연구학자 릭 오스트펠트의 언급이다. 이러한 포괄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관점에서 생태계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인간의 과도한 활동은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하기까지 한다. 이런 활동이 인간 자체에게 위협이 되는 이유는 생태계 내에서 균형을 맞추며 형성된 자체 제어 기작이 생물종의 멸종 혹은 감소를 통해 그 기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현재 13년 마다 10억 명 정도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성장만을 추구하며, 인구를 증가시키고 다른 생물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이 우리 인간은 마을을 덮친 숲천막모충나방의 애벌레처럼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녹아버려’ 거의 전멸하다시피 할 수 있지 않을까? 콰먼이 이 애벌레를 덮친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시카고 대학의 연구자 그렉 드와이어에게 다소 조급하게 물었던 질문은 바로 이러한 애벌레의 대발생과 인간의 대발생이라는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최근에 많이 언급하는 ‘인류세’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인간이 유발하는 이런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하나는 라임병 연구자 제시 브루너가 과먼에게 말한 단서다. 바로 ‘생물 다양성이 ’이라는 것. 이 말은 인간에 의해 다른 생물종의 멸종되는 사건이 우리 인간에게 왜 그토록 절박하고 위험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바로 생태학적 공동체로서 생태계가 각 생물종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 책의 3장에서 저자는 ‘말라리아’에 대해 소개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가 1950년대 중반에 한 ‘짓’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당시에 WHO가 말라리아의 완전 박멸을 위해 강력한 살충제인 DDT를 사용했던 것이다. DDT는 성분이 오래 남아 초기 모기 박멸에 영향을 주었지만, 모기 집단은 곧 이 살충제에 내성을 갖도록 진화했고, DDT는 대지에 남아 여전히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인간중심’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결과다. 우린 말라리아 연구자 제닛 콕스-싱의 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토록 많은 서식지를 빼앗고 있으니 모기들은 숲이 줄어드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겠어요?(203면) 이 견해 역시 우리 인간이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원충의 매력적인 숙주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언제나 새로운 숙주와 복제(번식) 기회를 찾는 병원체들에게 인간은 너무나 자주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책을 덮고 우리가 ‘바이러스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저자인 콰먼은 책의 서두에서 ‘바이러스가 가장 큰 문제’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어쩌면 이 세계에서 진짜 ‘문제’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바이러스가 문제’라는 관점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미생물 병원체는 인간을 전멸시키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저자도 수차례 언급하고 있지만, 진화는 어떤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 미생물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자연과 인간이라는 시스템 속에서는 수많은 요인이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변한다(639면)는 점을 더불어 기억해야 한다. 콰먼과 감염병 연구 과학자 버넷의 표현대로 이 병원체들은 아프리카의 맹수들처럼 생태계에서 각자의 생활사를 가지고 생존을 위해 인간과 경쟁하는 ‘맹수들’일 뿐이다. 이 병원체들은 단지 인간과 주변 생태계 사이를 매개해주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일깨워줄 수 있다. 인간을 제외한 이들 구성원들은 ‘불필요한’ 문제를 굳이 야기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는 구성원은 오직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5천 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도, 290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만든 에이즈 역시 이런 상황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행한 일’을 반영할 뿐이다. 저자는 생태학적인 관점과 더불어 개개인들의 인식과 노력도 함께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염병의 전파를 줄일 수 있는 개개인들의 분별있는 행동들이 모여 파국적인 상황을 회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수공통 병원체로서 이들 미생물은 사실상 인간이 멸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과 가능한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저자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을 읽고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끝없는 성장만을 추구하며 이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감염되다가 애벌레처럼 ‘녹아버릴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감염은 불가피하지만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지, 그 해결의 열쇠는 결국 우리 안에 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