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종의 기원》 2장 - 자연상태의 변이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또는 생존 투쟁에서 선호된 품종의 보존에 관하여)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지음 | 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독서일기] 2장 - 자연상태에서의 변이
지난 1장에서 다윈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경우(사육과 재배를 통해)에 동식물에서 나타나는 변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2장에서는 자연 상태에 있는 동식물들의 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개입(사육과 재배)하여 특정 품종의 선택과 개량을 만들어 냈다. 그 효과를 빠르고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자연 상태에서 나타나는 동식물의 변이는 느리게, 그리고 어떤 환경적인 조건에 의해 우연히 진행되기 때문에 그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찰스 다윈은 20년 가량 동식물 종이 변화하는 기작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왜?’, 그리고 ‘어떻게?’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다윈이 사육과 재배를 통해 나타난 변이와 자연에서 발견한 변이들의 사례를 놓고 그 설명의 순서나 방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논리른 주장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써내려나간 정황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종의 기원》의 제2장에서 다윈은 질문 하나를 독자에게 던지며 시작한다. ‘유기체들은 과연 변이를 겪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면서 당시에 통용되던 ‘종(species)’과 변종 대한 개념이 학자들마다 다르다는 것에 주목한다. 다윈은 이런 분류상의 개념이 그 자체로 모호하며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치밀한 다윈이 이 주장을 아무런 검토없이 내놓지는 않았다. 옮긴이 서문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다윈은 사망 전 나이 70대에 이르는 동안 거의 2,000명과 수만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20세부터 70세까지 거의 매일 한 통의 편지를 쓴 셈이다. 다윈은 몸이 좋지 못했던 점과 중간중간 일의 진행이 미루어지기도 한 정황을 고려하면, 컨디션이 좋은 날, 혹은 바로 서신에 대한 답변을 보내야 했던 상황을 참작할 때, 하루에 편지 2-3통 정도는 일상적으로 썼을 것이다.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결혼하며 정착하게 된 집 ‘다운하우스(Down House)’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않고 지냈던 다윈은 자신의 집을 실험실을 겸비한 지적 중심지/연구 센터를 구축했던 셈이다.
다른 의미에서 《종의 기원》은 당대 지성들이 구축해 낸 집단 지성의 결정체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다윈의 기여와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윈의 지적 성장에 영향을 주고 받은 이들을 인정하자는 의미다. 다윈은 이 작업을 주도하고, 자신의 통찰을 담아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은 대표 저자인 셈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윈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은 당대의 지성들과 끊임없이 대화와 토론을 거쳐 세상에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동료 지성들과의 토론과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상당히 신중했던 다윈이 생전에 출판까지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작가 허먼 멜빌은 자신의 대작 《모비 딕》에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와 고래의 진화, 그리고 라마르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과학자도 아닌 멜빌에게 까지 초기 진화론에 대한 언급을 소설에도 담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미 서양의 지성 사회에서는 이 ‘진화론’이 등장하게 될 조짐을 전반적으로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미 다양한 사실과 논의를 거친 사항들이 확보되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터뜨릴지’가 중요했을 것이란 의미다. 2천년 가까이 그 영향력을 지녀온 서양의 종교가 제시해온 세계의 기원에 대한 의문에 도전장을 내는 셈이었는데, 어설프게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공고한 분열을 일으키고 충격을 주기위해 다윈은 20년 가까이 자신의 ‘비밀노트’에 증거와 통찰을 담아가며 준비했다.
다윈은 제2장에서 자연상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동식물들의 ‘차이’에 주목한다. 심지어 곤충의 애벌레가 ‘제각기 다른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지인으로부터 듣고 이를 언급한다. 개인적으로 활짝 핀 벚꽃을 보다가 살구나무 꽃을 보고 놀라움을 느낀 적이 있다. 심지어 매화꽃과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 세 나무의 꽃은 모두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벚나무만 관찰하더라도 여러 벚꽃을 보다 보면 꽃잎의 색이나, 가지의 형태도 조금씩 다른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어떤 벚꽃은 수양버들처럼 축 쳐지는 가지가 있는 벚나무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비슷하게 보이는 식물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머리가 아플정도로 복잡해보인다. 분류의 기준에 수학 공식처럼 불변하지 않은 어떤 전제나 법률조항처럼 분명한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개체 차이’는 다윈에게도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다윈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다변적’ 또는 ‘다형적’인 속에 관한 것이다”(97면)라며 분류에 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내비치고 있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개체들의 이 ‘차이’에 주목하게 되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다윈은 종들에 차이를 만드는 요인으로 우선 ‘거리’라는 변수를 고려한다. 이 경우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어느 종에서 차이를 보이는 별개의 종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고 반문한다. 결국 ‘거리’라는 요인을 고려해보아도 뾰족한 실마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 다윈은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진 변종 또는 의심스러운 종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검토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101면)라고 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증거를 통해 “그것들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왔으며 따라서 변종으로 분류되어야만 한다는 데 무게를 실어 준다”(102면)라고 덧붙였다. 아마도 이 문장은 제2장의 중간 단계의 결론으로 삼을 수 있겠다. 이 주장의 배경이 되는 단서는 아마도 창조론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을 따르는 창조론자들의 경우,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종들과 그 변종들이 사실은 모두 원래 그 모습대로 창조되어 변화없이 지금까지 유지된다고 본다. 당연히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변이들을 설명할 수 없다. 다윈은 여기에서 더 과감하게 나아가 여러 종과 변종들은 사실 ‘공통 조상’으로부터 변화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1장에서도 다윈은 동식물을 사육 또는 재배하는 사람들이 개입하여 품종 개량 과정을 거치며 변화를 겪은 개체들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재배자, 사육자들도 이 종들에게 ‘공통 조상’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당대의 정황을 고려하면, 다윈이 이 ‘공통 조상’ 개념을 명시한 것은 상당히 과감한 시도였다는 의미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 ‘공통 조상’을 놓아 두었다면, 반대쪽 끝에는 종과 변종, 종과 아종, 그리고 변종들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 차이를 만드는 기작으로 ‘자연 선택’이란 개념을 염두에 두며 이 표현을 살짝 노출시키고 있다.
“부모보다 약간 달라진 상태에서 점점 더 달라지는 상태로, 어떤 분명한 방향으로 구조적 차이들을 누적시켜 나가는 자연 선택의 작용 때문에 변종의 계대(passage)가 이루어진다고 본다.”(105면)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계대(passage)’는 ‘계통적으로 세대를 이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자연 선택의 작용 때문에 각 개체는 계통의 (공통적인) 특징을 이어 받으면서도 (개별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의미다. 이 개념을 설명하면서 다윈은 ‘발단종(incipient species)’이란 개념도 언급하고 있다. 다윈에 따르면, 발단종이란 ‘뚜렷한 특징을 가진’ 변종을 의미했다. 옮긴이(장대익 교수)는 발단종을 ‘개체의 단순 변이에서 아종이나 종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 변이에 비해 뚜렷한 영속적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어느 부모 새로부터 태어난 자손에 어떤 새로운 ‘차이’가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이 차이가 자손 세대에서만 나타나고 후대에 유전이 되지 않는다면 이 자손 새는 ‘발단종’이 아니다. 발단종은 분명한 특징이 유전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당시에 통용되던 ‘종’ 개념은 모호하기에 ‘변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다윈은 지적하기도 한다. 유전과 관련한 이 개념은 현대유전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유전자 수준’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보다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아직은 나 역시 분명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신중을 기하는 다윈은 자신의 과감한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자신의 논리를 준비했는지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윈은 수많은 지인 및 전문가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비판하고 형성해나가며, 이 사항을 《종의 기원》에 치밀하게 짜넣었다.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신의 주장에 끌어 들여 자신의 논증에 허점을 줄이고, 이 논증에 찬성하는 이들을 아군으로 혹은 반박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 셈이다. 예를 들면 알퐁스 드 캉돌을 비롯한 몇 명은 ‘넓은 분포 영역을 갖는 식물에 대체로 변종이 있음을 보였다. 그 이유로 다윈은 ‘넓은 영역에 분포해 있는 식물이 보다 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다른 유기체 집단과 서로 경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바라보았다. 이것 역시 우연적인 요소와 빈도의 문제로 이해해볼 수 있다. 보다 넓은 영역에 분포해 있는 어느 식물은 이 식물에 영향을 주는 환경 요소가 보다 더 다양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이유 때문이다.
제2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에는 변이의 발생 빈도에 영향을 주는 조건들에 대한 서술이 있다. 이를테면 ‘분포지역이 넓고 흔히 볼 수 있는 종에서 변이가 대단히 잘 일어난다’는 의미로, 바로 앞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곧 변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과 가능성이 좁은 곳에서 드문드문 변종이 발생할 가능성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수긍하기에 어려운 논리는 아니다. 다윈이 언급한 또 다른 ‘변이 요인’에 대한 진술은 ‘큰 속(genus)에 속한 종(species)은 작은 속에 속한 종보다 더 잘 변이한다’는 것이다. ‘속(genus)’은 생물 분류의 단위로 가장 마지막 단위인 종(species)과 속보다 큰 단위인 과(family)사이에 위치하며, 한 무리의 근연종으로 이루어진다. 다윈은 다양한 생물종들과 변종들을 조사하고, 여러 학자들과의 서신 교환 및 토론을 통해 창조설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부정하고 있다. “만일 종이 각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유사성을 설명할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113면) 비글호 항해를 비롯하여, 다윈이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애초에 다윈이 ‘창조설’을 부정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보다는 비글호 항해를 통해 설명하기 힘든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 형태들을 수집하고 목격하면서 자신의 신념에 균열이 생겼다고 보는 쪽이 옳다. 그리고 이 의문을 평생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수많은 고민을 했을 거이다. 물론 명확하게 연관성을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윈의 건강상의 문제와 이런 심리적인 고민 사이에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다윈은 당대에 굳건하던 믿음을 흔드는 큰 문제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다윈은 제2장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언급한 변종이 발생의 빈도와 관련한 서술을 기반으로 하여 또 다른 소결론을 내린다.
“변종은 새로운 별개의 종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113면)
이 경향성에 대한 주장으로 다윈은 ‘큰 속이 더 커지고, 우세한 형태들은 우세하게 변화된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되어 더 우세해질 것’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러면서 ‘큰 속은 또 작은 속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음을 아울러 이야기하며 마무리한다. 다시 말해 (아직은) 이 변이 현상에 대한 기작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세한 생물 형태의 집단은 점점 더 커지고, 다양하게 변이체를 만들어내고 분기하면서 또 뚜렷한 특징을 지닌 작은(하위) 집단으로 나뉘어 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그렇게 생명체의 종은 또 다른 변종을 만들어내고, 또 그 사이의 새로운 변이체가 생겨나며 생명체가 다양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생명체들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염두에 두면 더욱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까지 다윈은 인간의 개입이 반영된 생물체의 (빠른) 변이 현상과 자연에서 발견되는 (느린) 변이 현상을 이야기 했다. 생물체 집단이 더 커지고, 변이를 거듭하여 다양해짐에 따라 야기되는 문제는 희소한 자연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될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나올 제3장 생존투쟁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이번 장에서 살짝 선을 보인 ‘자연선택’이란 표현은 그 다음 나오는 제4장 전체를 통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윈은 1장과 2장을 서술하면서 이 이야기를 무척 하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