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플라스틱을 새롭게 바라보기
「플라스틱 중독 시대 탈출하기」를 읽고
창작과비평 187호(봄호) ‘특집’ – 생태정치 확장과 체제전환
김기홍 지음 | [창비]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플라스틱을 새롭게 바라보기’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은 한국 사회의 변화 한 가지는 배달 업무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배달물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배달에 필요한 포장 재료 또한 증가했다는 의미다. 포장 재료에는 종이를 사용한 박스도 많지만, 플라스틱 제품도 많이 사용된다. 최근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과 비닐봉지 사용, 미세먼지 증가와 관련한 문제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한층 더 플라스틱 제품에 의존하게 된 것 같다. 김기홍 교수의 글 ‘플라스틱 중독 시대 탈출하기’에 우선 눈길이 간 이유는 최근 배달물량이 증가하여 일회용 제품이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사용량이 2015년 기준 세계 2위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2015년 예상된 2020년 수치는 1인당 67.41킬로그램으로 역시 세계 2위이다. 포장용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1인당 전체 플라스틱 사용량으로도 한국이 세계 최대 수준이다.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은 연간 460개(2017년 기준)로, 한국인 전체 사용량 235억개는 한반도를 70퍼센트 뒤덮을 수 있는 양이며, 연간 플라스틱 컵 사용량 33억개를 늘어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도달 가능하다.”(62면)
매주 한 박스 가득 생겨나는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내다놓으면서 놀라곤 하는데, 김기홍 교수가 쓴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단적으로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사용되었을 2900만 켤레의 비닐장갑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제품은 과연 어디로 가겠는가.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뤄낸 이면에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도 놓치지 말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자가 탄소경제와 플라스틱 사용 환경과의 관련성을 설명한 대목과 연관지어볼 때, 저자가 언급한 자료는 우리가 얼마나 ‘석유 기반 탄소민주주의’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무한 경제성장’에 순응하고 안주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북극과 갈라파고스 군도, 알프스와 같은 산악지대 뿐만 아니라 포획되는 어류와 수돗물, 시판되는 소금에서도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우리가 특히 책임을 더 느껴야 하는 이유다.
저자가 탄소경제를 언급하면서, 석탄과 대비되는 ‘석유 기반 경제의 정치성’에 주목한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같은 탄소 기반 경제이긴 하지만, 석탄에 기반한 경제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개입이 가능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반면 석유 기반 경제에서는 송유관과 해상운송로의 통제와 함께 노동자들의 정치적 개입이 차단되게 되었다. 석탄 기반 경제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배제되는 ‘노동자 소외’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1979년 마거릿 대처 정권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영국에 처음 시험 도입하는 과정과 연결지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탄광노조가 와해되고 탄광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석탄 기반 경제에서 석유 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노동자들의 정치적 개입이 무력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권력화된 기업들이 석탄이 아닌 석유를 ‘구태여’ 선택한 이유를 다시금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저자가 석유 기반 경제의 특징으로 언급한 ‘개인주의적이고 탈정치적 이념이 체화’되었다는 것은 개인화된 기업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무한 경제 성장을 욕망할 수 있는, 기업중심 세계가 되었다는 점을 시사할 것이다.
이 문제가 특히 중대한 이유는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된 중심이 기업 권력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과거의 국가 권력보다 사유화된 기업 권력이 더 우위에 서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제는 전세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빈부격차의 심화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를 보다 더 근본적으로 배제시킨 개인화된 기업이 에너지 자원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석유에너지 자원 확보와 수송문제를 둘러싼 송유관, 해상운송로의 통제 문제는 국가간 무력 충돌과 전쟁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제 이 문제는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난민 증가 문제와 전세계 테러리즘의 증가 문제와도 맥을 같이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할 때 이런 문제들과 결부되어 이미 많이 논의되어 왔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관련한 이번 특집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우리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플라스틱을 걱정하는 사이, 여기에 얽힌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축으로하여 시리아의 난민 문제와 유럽 등지에서 증가하고 있는 테러리즘과도 연결지을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문제와 난민 및 테러리즘의 문제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저자는 이런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석유 기반 경제와 결부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우리가 접하는 플라스틱 문제는 분명히 환경만의 문제는 분명히 아니라는 인식도 더 확장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이번 특집에서 다룬 플라스틱 문제는 보다 큰 지구적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저자는 ‘과도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이 탄소경제 전반, 그리고 기후위기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며, 무제한적 성장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탈성장’ 담론을 제시한다. 나아가 실천 방법으로서 경제보다 인간을 더욱 중시하는 라뚜슈의 ‘탈성장 선순환체계’나 영국 저널리스트 루시 시글의 ‘플라스틱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여덟가지 원칙을 정리해 두었다. 이러한 방법들은 사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방안들이다. 하지만, 앞서 저자가 제시한 대한민국의 플라스틱 사용량 자료를 본다면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과 실천이 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우리가 행동해야할 때라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탈성장에 근거한 공동체의 복원만이 플라스틱 문화를 급진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다만 독자로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안이 ‘탈성장’ 담론 밖에 없는지 아니면 다른 논의들도 거론되어 온 것인지 밝히지 않은 점은 궁금증으로 남는다. 또한 ‘탈성장’을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방안들은 무엇일지가 독자로서 새롭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현재 지구인은 ‘무한성장만이 답이다’라는 경제구조에 적응하고 이를 신조로 받아들여 왔다. 이런 경제 구조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 어떻게 우리가 처한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할 것인가, 그리고 개인화된 권력 기업의 독주를 어떻게 견제하며 함께 생존을 위한 노력을 끌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문제다. 어쩌면 이 문제는 지구인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생존 기회와 직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플라스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은 우리의 생존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출발점이자 반드시 필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