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복, 이제야 출발선에 서다」 - 촌평을 읽고
「암 정복, 이제야 출발선에 서다」
창작과비평 187호(봄호) ‘촌평’
최형섭 지음 | [창비]
계간지 《창작과비평》에는 각호마다 새로 발간되는 도서들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가 짧게 쓴 서평이 실린다. 지난 호부터 여러 주제에 걸친 서적들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있는데, 나름 읽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과학 분야 서적에 대한 서평이 궁금해서 주로 과학 도서에 대한 글을 먼저 읽는다. 이번 호(187호)에서는 암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과학자가 직접 쓴 책에 주목했다.
암이라는 질병은 이제 우리 생활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다. 가까운 지인, 친척 들만 해도 암을 진단받은 분들이 상당 수 있어서, 이제 암은 마치 성인병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일본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신의 방광암 수술을 계기로 암 연구를 취재하여 2007년에 펴낸 《암, 생과 사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다》만 하더라도 당시 암연구의 최전선을 소개해주었다. 이번 호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남궁석씨가 쓴 《암 정복 연대기》를 소개 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취재 이후 그 동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을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서평을 쓴 저자는 수전 손택이 쓴 《은유로서의 질병》을 언급한다. 암과 같은 질병에 대해 대중이 갖는 위상의 역사성에 대해서 짧게 언급한 부분을 소개하는데, 손택은 책에서 ‘과거에는 암이 인과응보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서평의 저자가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희생자가 자신의 세계와 자신 스스로에게 저지른 일의 결과”라는 표현이 마치 손택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 보이도록 해 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표현은 칼 메닝거라는 사림이 주장한 내용을 손택이 자신의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었다. 과거에 암을 비롯한 질병은 개개인들의 도덕적 품성의 결과이자 심판이었다는 생각이 퍼져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카시의 책 《암, 생과 사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다》에서는 세계 최초로 암유전자 RAS를 발견한 로버트 와인버거 교수의 말을 소개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암을 낳는다. 암은 다세포 생물의 숙명’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로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세월이 흘러 많이 바뀐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암을 바라본다. “암은 나의 내부에 있는 적이다. 당신의 암은 당신 자체다” 라고 말이다.
다치바다 다카시처럼, 서평의 저자 역시 암 연구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암 정복 연대기》에서는 ‘암 연구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치료도 그렇지만 암이라는 대상 자체에 대한 이해가 최근에야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평의 저자는 《암 정복 연대기》의 예비 독자들이 눈여겨볼 사안 두 가지를 간결하게 조망한다. 하나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암 치료제들이 아주 최근에 개발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연구와 발전이 이전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기초 연구에 빚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주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안들, 물음들을 던져주는 셈이다.
여기에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며 다른 과학서들과의 맥락을 덧붙인다. 이를테면 《암 정복 연대기》는 한국의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 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한다. 이 말은 연구에 전념해온 국내 학계가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나머지 비전문가, 일반인들과의 소통에 다소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요즈음에는 해외의 좋은 도서들도 많이 번역이 되고 있고, 국내 전문가 필진들도 조금씩 들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말로 다시 쓰는 분위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가 더 확대되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초파리 과학자 김우재의 저서도 함께 소개하며 연결짓는 독서를 권하고 있다. 이런 언급은 국내 필자가 문제 의식을 갖고 쓴 글들에 주목하고 맥락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학창시절 생물학 개론을 들은 적이 있는데, 유전학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유전자는 일종의 스위치’라는 개념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는 유전자가 정보로 들어 있지만, 대부분은 ‘발현’되지 않는 무용해보이는 유전자라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특정한 환경적 요인이나 내부적인 조건의 변화로 이렇게 잠을 자던 유전자들이 스위치처럼 켜져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전자가 방사능이나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등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아니면 노화로 인해 돌연변이가 발생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세포 분열 기능과 세포 파괴 기능의 변형 등이 얽혀 암을 만드는 조건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암 정복 연대기》는 암이란 대상 자체에 대한 물음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왔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학창시절 배운 지식과 많은 지인들이 경험하는 이 질병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성, 그리고 암 발병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과 환경에 관한 물음들을 지니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암이란 개개인의 신체 내부에서 드러나지만, 그 그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속한 환경 및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도 책을 읽어가며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