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신간 《H2O와 망각의 강》,《젠더》

 

 

《H2O와 망각의 강》

이반 일리치 지음 | 안희곤 옮김 | 사월의책

《젠더》

허택 옮김 | 사월의책

이제는 나오지 않을 줄만 알았던 이반 일리치의 책을 몇 년간의 공백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반 일리치를 검색하면 대부분의 결과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검색되곤 하여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이반 일리치는 물론 다른 사람이다.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일리치는 뭐랄까 상당히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타이틀을 뭐라고 딱히 정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상가의 면모와 역사가의 면모에 ‘한 때’ 카톨릭 사제이기도 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일리치의 저작을 단지 몇 권만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나는 일리치를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는 문제아’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일리치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를 극대화한다. 그리고 해결책 혹은 답을 독자에게 주지는 않는다. 악동처럼 독자에서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미셸 푸코를 알고 싶어서 그의 책을 두어 권 읽어보았는데, 일리치와 푸코는 물론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몇 가지 유사한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현대의 어떤 문제점을 분석할 때,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계보학적 관점에서 과거의 언어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작업을 한다.두 사람 모두 1926년 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두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에는 ‘전문가의 문제’도 있다. 다만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전략적 위치에 주목하고 눈여겨본 바가 있다. 반면 일리치는 전문가가 지녀온 권력, 우리가 전문가라는 집단에 권위를 맡겨버린 현상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라는 집단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서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이 두 사람을 어설프게만 알고 있다고 미리 자백하겠다. 그러니 두 사람의 철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는 척을 하지는 않겠다.

이반 일리치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생각거리, 질문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 때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의 옆집에 살면서 절친으로 지내기도 했던 일리치는 주장의 독특함으로 인하여 실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우파로부터 총격을 받기도 하고, 천주교 사제이면서도 교황청을 비판하여 마찰을 빚다가 사제직을 관두기도 했다. 또 좌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많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라는 사람이 이 정도라면 그는 인성이 이상한 사람이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질만도 하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일리치에게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다시보기’와 ‘다르게 보기’의 대상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의심해보고 따져보고 질문을 던져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리치의 여러 저작을 떠올려보면, 그는 대체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푸코가 권력 개념에 기반하여 병원, 정신병원, 감시 시설, 통제,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 등의 주제에 대해 문제제기와 분석을 했다면, 일리치 역시 병원, 학교의 문제, 남녀문제 등을 현대 문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푸코의 철학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 현대 문명에 대해 다시 보고, 다르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는 일리치의 사상 역시 진지한 독자들에게 ‘유의미한’ 생각 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는 우리가 물의 화학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H2O가 ‘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몇 년 전에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이반 일리치,데이비드 케일리 지음, 권루시안 옮김, 물레2010)를 읽다가 《H2O와 망각의 강》이라는 텍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궁금했더랬다. 아마도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중에서 9장 ‘질료가 제거된 세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물’의 의미를 따지며, 그 의미의 변천을 따라가는 내용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식하는 이 ‘물’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분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 영감을 주는 신화적 상상력의 ‘물’이 있었다면, 과학혁명을 지나 물이 H2O라고 ‘인식’된 이후의, 혹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서 ‘물’이 갖는 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내 짐작이 맞는지를 알아보려면 읽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텍스트가 과연 번역되어 나올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결국 《H2O와 망각의 강》을 통해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반가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