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 처음 만난 오라시오 키로가 읽기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오라시오 키로가(Horacio Quiroga) 지음 |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사랑은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랑과 죽음은 우리 삶의 본질적인 이면이다. 이 둘을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광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루과이의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는 사랑과 죽음을 이어주는 광기가 여러 무늬의 형태로 등장한다. 인간사회의 부조리나 야생의 모습으로 또는 자연의 법칙과 지배를 받지만 불가해한 모습을 띠고서 말이다. 처음 접해보는 키로가의 작품은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매력적이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삶의 순간들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고 여기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하는 작가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줄에 삶의 강렬한 인상을 담는 것’을 자신의 모토로 여겼던, 간결하지만 강렬한 작품들을 내놓은 이 키로가라는 인물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키로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사랑과 실패의 고통이 담긴 「사랑의 계절」 같은 작품도 있지만, 이 책의 무게는 ‘죽음’에 좀더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다양한 작품 속에서 ‘죽음’에 대한 저자의 강박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저자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죽음의 체험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키로가는 우루과이의 유복한 상류계급 출신에, 그 자신이 우루과이 영사를 지내기도 했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한 살 때 총기사고로 사망한 아버지를 시작으로, 형과 누나는 장티푸스로 사망했고, 첫번 째 아내는 음독자살했으며, 대통령이었던 지인의 자살을 지켜보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결투의 증인으로 총을 검사하다 총이 격발되어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사람에게 죽음의 저주라는 것이 정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키로가의 삶에는 죽음이 언제나 그의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이런 비극적인 원체험에서 키로가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죽음 뿐이라고 확신했던 것일까. 그는 위암으로 진단받고 음독자살한 이후에야 비로소 죽음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키로가의 삶이 오롯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바로 오라시오 키로가였다.
여러 작품에서 ‘죽음’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죽음은 삶의 우연성 속에서 다가오는 ‘불-시’의 죽음이다. 여기에 다양한 ‘광기’가 개입한다. 「목 잘린 닭」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인간 존재의 부조리라는 이해불가능함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강렬한 잔상효과로 다가온다. 반면 「표류」, 「일사병」, 「천연꿀」과 같은 작품은 인간 사회와 다른, ‘야생’이라는 광기앞에 무기력한 존재의 죽음을 볼 수 있었다. 죽음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밖의 작품으로부터 작가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키로가는 죽음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관찰자인 듯하다. 하지만 여러 작품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의 내면 어딘가에는 언제나 ‘호기심’과 ‘공포’가 함께 자리하는 듯하다. 바로 죽음을 바라보는 키로가의 내면에서 ‘벽돌담’이라는 인식의 경계를 바라보는 백치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 너머의 세계는 호기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무지의 세계다. 무지가 주는 공포는 언제나 호기심과 한 쌍을 이룬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밀림의 세계에도 작가의 호기심과 공포가 함께 교차하고 있었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다양한 죽음과 광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드는 작품을 고른다면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선택하겠다. 이 작품이 항상 어긋나고 실패하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유일하게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기묘한 사랑이야기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뿐만 아니라 ‘관계’에 대해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이 사랑’ 역시 일종의 꿈 도는 착란은 아닌가. 나는 사랑이라는 그림자를 쫒도록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사이보그 내지는 이동기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혹은 내가 이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뇌막염 증세로 착란증세를 겪는 마리아와 이를 매개로 소심한 엔지니어 두란이 관계를 맺는 기발한 사랑이야기는 소크라테스의 한 마디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욱 신에 가깝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 속에 신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쩌면 ‘착란증세로 가장한 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이유다.
자신들의 기묘한 만남을 회상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에는 일반적인 사랑의 모습과 다른 점이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일반적인 사랑의 모습은 「사랑의 계절」의 ‘여름’ 편에 나오듯 젊은이들의 자존심과 허영심이 벌이는 게임과 같은 모습이 아니다. 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대립하며, 고민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철없는 시절의 사랑이 더이상 아닌 것이다. 오히려 ‘행위와 실천’이 선행하여 사랑에 이르는 ‘아나키즘적’인 사랑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관계의 문제’를 내게 던져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그리고 사람과 사물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 인형과 결혼식을 올린 어느 청년의 실화를 떠올려본다. 혹은 고장난 돌봄 로봇을 애도하던 어느 노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대상과 맺게되는 색다른 관계 혹은 사랑의 모습을 이 소설로부터도 상상해볼 수 있다.
오라시오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는 사랑과 죽음을 마주하는 여러 인물과 동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웅들은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과 마주하지만, 각자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도 하는 주체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키로가의 인물들은 운명에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죽음에 격렬히 저항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이미 삶의 경계 밖에 있는 죽음이란 현상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 체념하는 존재에 더 가까운 듯하다. 작가는 이 존재들을 혹은 이들의 시선에서 운명을 무감하게 바라보는 방관자이다. 하지만 키로가의 작품에서 희망적인 단서를 하나 찾을 수 있다면, 담담하게 사랑을 바라보게 된 그의 시선을 통해서 일 것이다. 나는 인간들의 숱한 오해와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가는 행위라는 점을 키로가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삶에서 순수한 추억보다 아름답고, 우리를 단단하게 단련시켜주는 것은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말 인용- P39 "서서히 남자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목요일이던가.... 그리고 남자의 숨이 멎었다." - <표류> P112 "단 한 줄에 삶의 강렬한 인상을 담아야 한다." - 오라시오 키로가의 말 (번역자의 해설에서 재인용) P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