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라는 작은 우주를 탐사하다’
《세포》
: 생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탐사기
남궁석 지음
‘세포라는 작은 우주를 탐사하다’
- 세포라는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최근에 읽게 된 생물학 교양서 《세포》에 대한 독후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생물학책을 손에 든 이유는 마지막으로 생물학 교과서를 읽은 지 대략 사반세기가 지난데다, 그동안 생물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발견과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져 일반 독자로서 점점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비전문가로서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생물학 연구 결과를 보면 이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첨단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전문가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일반 독자로서, 비전문가로서 노력해야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이지만, 외국의 지식을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오랜 관행인 시기가 있었다. 분명히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다만 학문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학자들이 대중을 위해 새로 발견된 사실과 지식을 소화하고 이를 우리의 언어로 생산해 낸 교양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포함하여 더 많은 연구자들이 대중 과학서를 써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저변의 확대와 논의가 축적되고 무르익어야 보다 풍부하게 우리만의 새로운 것을 다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독후기록을 남기려고 했는데 서두가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국내 학자가 쓴 생물학 교양서 《세포》를 읽으며 이 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1장과 2장에 대한 독후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우선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이 책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생물학 용어와 개념들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나의 무지로 인한 것이지만, 이 책에는 생물학의 역사가 촘촘하게 등장한다. 게다가 생물학 분야에서 나에게 생소한 90년대 중반 이후의 발전과 최신의 지식들이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날실과 씨실처럼 조직되어 있다. 과거 생물학 교과성의 관점과 달리 이 책은 저자의 개성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1장에서는 화학에서 원소의 주기율표가 원소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생물학에서는 세포를 화학의 원소들처럼 분류하려 한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이 때 세포의 분류기준이 ‘RNA의 조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세포 아틀라스 프로젝트’ 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일 세포 내의 RNA 염기서열을 파악하여 모든 인체 구성 세포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주 목적인 방대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보다 구체적인 목적은 여러 종류의 각각 다른 세포가 어떤 RNA를 만드는지를 알고 이를 기준으로 세포를 분류하는 일이다.
잠깐, 여기서 우리에게 더 익숙한 DNA가 아니라 RNA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이해한 바로는 RNA는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DNA의 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합성하고 나아가 세포를, 곧 다양한 특징을 갖는 세포들을 만들어내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구성요소다. 2010년대에 연구를 통해 추산된 인체의 세포수가 30조에서 37조 개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인체의 모든 세포를 분류하는 방대하고 야심 찬 계획이긴 하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
2장은 이 책의 대주제인 세포를 ‘볼 수 있게 해준’ 도구의 역사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현미경과 렌즈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전개된다. 인간의 기본 감각을 확장해주는 도구, 연장과 과학의 발전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재까지 알려진(발견된) 인류 최초의 렌즈가 기원전 700년 무렵 아시리아의 왕궁터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였다.
이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다고 알려진 인류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작가 호메로스의 시대에 해당한다. 그는 지금의 터키지역인 에게해 연안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공교롭게도 맹인으로 알려져 있어서 당시 렌즈가 사용되었다고 해도 이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연철학이 먼저 발달한 이오니아 지방과 아시리아 지방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어서 이 역사적인 정보는 제한된 것이나마 그 자체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아울러 이 호메로스의 시대에서 몇 세기가 지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호메로스의 시대에서 몇 세기가 지나 이오니아 지방과 멀지않은 북쪽의 해안과 섬에서 생물과 광물 등에 관한 집요한 자연관찰을 이어간 아리스토텔레스도 대상을 자세히 관찰할 때 배율이 있는 유리,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는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 시대와도 겹친다. 해양 생물에 대한 자세하고 꼼꼼한 관찰기록을 남긴 바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모습 역시 새롭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현미경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죽은 세포에서 살아 있는 세포를 발견했다. 또 식물의 세포와 동물의 세포를 각각 발견해간 역사도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대중에게 아직은 낯선 최신의 생물학 지식도 저자 스스로 소화하여 자신의 독특한 관점에 따라 새롭게 재배열되는 생물학 교양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넘겨보면 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이론이 등장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일이,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것 같다. 때로는 집중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우려를 의식하고 세심하게 살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작은 상당히 흥미진진 한다. 그토록 작은 ‘세포’라는 존재 속에 이처럼 광대한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새롭고 놀랍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