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좋음의 이데아를 향한 올바른 길을 모색한 철학자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

: 플라톤을 읽는 8가지 시선

강대진 7 지음 | [아카넷]

플라톤: 좋음의 이데아를 향한 올바른 길을 모색한 철학자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A.N. Whitehead)는 “서양철학사 2천년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 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 표현은 상당히 잘 알려져있긴 하지만 누군가 왜 그런지를 물으면, 막상 명확하게 대답하기 쉽지 않은 화두다. 표현대로라면 2500년 전 과거의 어느 철학자가 정리한 사상이 우리가 현재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과 그 자리를 규정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또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로서 플라톤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철학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에야 고대 철학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되었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 수많은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출현했고,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과거의 편견과 상식을 전복해왔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고대 철학자들의 세계관과 사유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 뿐만 아니라 호메로스와 같은 시인들과 희곡작가들의 작품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시간이 흘러도 고대 철학자들의 철학은 현대의 전문연구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조명되고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인간의 철학과 역사는 이렇게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은 국내의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정상급 연구자 8명이 저술한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를 만나본다. 이 책은 각 저자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특강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고대 사상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고 연구자의 강의를 공유하기도 하는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다양한 관심사와 연구분야를 선택한 플라톤 연구자들이 플라톤의 철학 및 그의 저작들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대한 독법을 제시한다. 현대의 관점에서라기 보다는 현대인에게 낯선 고대 그리스 당대의 문화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 사회를 바라보고자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각 연구자의 연구 주제와 관심사에 따라 8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분석해가며 고대 서양문화의 단면을 읽어내고자 한다. 전문 연구자인 저자들은 주석 작업을 포함한 원전의 번역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공동 독회 및 토론을 거쳐 번역본을 완성해냈기에 더욱 신뢰를 준다. 이책은 플라톤의 시기를 전후한 고대 그리스 사회, 곧 서양 문화의 기원이 된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 책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들지만, 문화라는 현상을 독립적인 주제로 떼어놓고 이해하는 작업은 불완전한 시도로 남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시대를 달리해도 다양한 측면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구성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고대 서양 문화와 철학의 입문자에게는 플라톤 저서의 핵심적인 주제를 선보이고 ‘개념 익숙해지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이 현대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숱한 논쟁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 과정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철학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플라톤 철학이 여전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저술이 거의 대부분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각 대화편에서 논의되는 중심 주제 혹은 질문에 대한 답이 명료한 결말로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철학은 일종의 ‘열린 철학’이라는 특징에 주목해본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플라톤을 읽는 한 가지 방법은 각 대화편의 결론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주고 받은 사유의 방식에 주목하는 일인 것 같다. 곧 대화와 토론을 어떤 논리 구조를 통해 사유를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눈여겨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재미있는 것은 플라톤의 저술이 단순히 철학서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이 나와 토론과 대담을 벌이며 주제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켜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인물은 자신의 논리가 먹혀들지 않자 화를 내기도 하고, 마지못해 상대방의 논리에 동의하기도 한다. 플라톤의 저술은 상당부분이 극적 요소가 잘 갖추어진 훌륭한 문학작품, 혹은 철학극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3장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플라톤은 선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작품과 시인을 비판하고,《국가》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시인을 추방해야한다’는 과격한 논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꽤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짙은 문학성을 보여주는 저작의 저자이자 철학자가 시인을 싫어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플라톤의 논리 이면에,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가가 될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학업을 위해 10대 후반에 아테나이로 왔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독배를 마시고 사망한 사건을 목격했을 것이다. 불합리한 다수결에 의해 한 사람의 대 철학자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플라톤은 허깨비같은 정치가의 자리를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정치 무대로 나갈 계획을 접고 플라톤은 대신 아테네에 학당을 열었다. 이 책《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 따르면, 플라톤은 그의 중기 저작인 《국가》에서 철인 정치가가 통치하는 ‘최선자 정체’를 주장하지만, 후기 저작 《법률》에서는 민주정과 귀족정이 섞인 ‘혼합정체’를 지향했다.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민주정을 옹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승 소크라테스는 민주정 성격을 갖춘 환경에서, ‘다수결’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정 하에서 융성했던 그리스 비극은 상당히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비극을 통해 토론교육의 역할이 이루어지는 것을 좋게 바라보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비극시인을 포함한) 시인을 아예 추방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한편 이 책에서는 에로스에 대해 논의하는 《향연》(2장), 용기라는 주제로 논의하는 《라케스》, 플라톤의 우주관 및 철학적 자연관을 보여주는 《티마이오스》와 같이 저자들은 플라톤의 저작 한 편에 집중하기도 하지만, 《국가》나 《법률》처럼 여러 저자의 논의에 교차되며 논의되기도 한다. 물론 동일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저자가 논하는 주제에 맞는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하기 때문에 보다 풍부한 해석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해석 방식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작품 《일리아드》《오디세이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그리고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처럼 여러 맥락에서 그리스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3장에서 오레스테이아의 비극을 논의의 소재로 하면서, 비극의 형식에 주목하여 비극의 ‘정치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는 그리스 비극이 아테나이를 찬양하는 기능, 그리고 토론 기술을 가르치는 역할도 했음을 언급한다. 반면 그리스의 법과 제도 에 대해 이야기하는 7장에서는 이 ‘오레스테이아 이야기’를 그리스 사회에서 획기적인 재판 제도의 성립을 알려주는 논의에 활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플라톤의 저작 중에서 가장 생소하고 흥미있게 다가온 논의는 플라톤의 자연철학이 담긴 《티마이오스》였다(8장). 이 책의 번역을 담당했던 저자는 플라톤의 관심이 그의 저작에서 대우주 천체에 대한 그의 이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소우주인 인간에 대한 이해로 돌아오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데, 저자는 자연과학자의 시선이라기 보다는 철학자의 눈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을 작은 우주로 보았던 플라톤의 신선한 시선에 새삼 놀라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플라톤이 천체와 인간의 몸, 그리고 건강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보다 ‘훌륭한 인간 공동체의 설명적 기반’을 확립하고자 했다는 설명이었다. 이건 분명히 자연현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개별적인 인간 신체에 대한 궁금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플라톤은 바로 ‘어떻게 하면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찾았을 것 같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볼 부분은 바로 ‘좋은 삶’이라는 지점이다.

이 ‘좋은 ’이라는 표현은 1장에서 논의되는 ‘좋음의 이데아’와 연결지을 수 있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플라톤의 ‘좋음’이란 ‘영혼이 조화를 이루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46면)이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바람직한 정치체제를 언급하며 철인통치자를 내세웠던 것이나, 시인추방론을 주장한 것도 결국 ‘좋음의 이데아’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또 2장에서 에로스(eros)를 언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누구나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든 ‘결핍’이 있게 마련이다. ‘이데아와 그림자의 관계’처럼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해소할, 곧 ‘좋음의 이데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로 에로스를 이해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현대의 동성애와 달리 중장년의 연장자가 청소년인 연소자 사이의 사랑을 통해 젊은이를 이끌어주기도 했던 관계, 곧 ‘파이데라스티아(소년애)’를 이해하는데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아직 미숙한 소년이 경험과 지혜를 갖춘 연장자의 보살핌과 조언을 통해 보다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나만의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플라톤의 사상이 향하는 맥락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관련하여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플라톤의 종교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 1장에서 플라톤이 상당부분 계승하는 종교 사상이 바로 디오니소스-오르페우스 비교(批敎)와 관련 있다고 했다. 영혼 불멸을 믿었던 그의 영혼관에 당시의 비교(批敎)가 내세에서의 ‘좋음’에 다가가는 방안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 한 예로,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인 현실 세계에서 결핍을 느끼는 인간이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본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또 범죄의 교정가능성을 믿고 ‘모든 부정의한 행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보았던 플라톤의 인간관 및 정의관 역시 이런 이데아로 향하는 인간의 노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앞으로《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 언급된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어나갈 때 입문자는 이 책을 통해 해당 저작의 이해에 핵심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겠다.

물론 플라톤 해석이 여전히 학문적으로 완전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저서는 명료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는 플라톤의 의도를 따라가며 한 가지 대안으로서 각 저자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독서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점은, 플라톤이 ‘인간의 삶’을 ‘좋은 삶’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 검토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따져물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혼자만으로 생존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인간들’의 삶이 ‘좋은 곳’에 이르기 위해서 플라톤은 종교와 법, 사랑, 우주와 인간, 용기에 대한 모든 항목을 우선 철저하게 검토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나만의 주제넘은 해석일지 모르지만, 이번 독서를 통해 내가 이해한 플라톤 철학의 핵심 중 하나는, 플라톤이 ‘좋음의 이데아’로 향하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자 시도했다는 점이다. 나의 오독은 앞으로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어나가며 새롭게 검토를 하며 바로잡히길 기대해본다.

[참고]

책을 읽으면서 플라톤의 저서들이 집필 시기에 따라 보통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서 언급되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초기, 중기, 후기로 분류한 것은 다음과 같다.

초기

《리시스》, 《라케스》, 《변론》, 《크리톤》,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에우튀프론》

중기

《국가》, 《파이드로스》, 《파이돈》, 《향연》

후기

《티마이오스》, 《파르마니데스》, 《필레보스》, 《노모이》, 《소피스트》, 《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