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모비 딕》 읽기와 쓰기에 관한 보고서

 

《사악한 책, 모비 딕》

(원제: Why Read Moby-Dick?)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지음 | 홍한별 옮김 | [고유서가]

 

한 작가의 《모비 딕》 읽기와 쓰기에 관한 보고서

- 「사악한 책, 모비 딕」 (2020)을 읽고

 

이 책 《사악한 책, 모비 딕》의 원제는 ‘모비 딕을 읽는 이유’다. 벽돌 같은 소설 한 권을 여러 번 읽고, 그 소설과 관련한 사건에 대해 글을 쓰고, 심지어 그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에서 여생을 살고 있는 덕후 작가가 이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답으로 나아간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은 허먼 멜빌이 쓴 불후의 고전 《모비 딕》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 생생한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작가 멜빌 주변의 인물과 기록들(편지들)을 참고하고 이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창작 과정의 단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상적인 ‘글쓰기’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기와 쓰기’라는 키워드로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허먼 멜빌이 《모비 딕》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읽기와 쓰기’에 대해, 또 후대의 독자로서 우리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독자이기도 한 후대의 작가들이 이 《모비 딕》 ‘쓰기’를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를 구분해서 살펴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앞에서 이 책의 저자를 ‘덕후’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멜빌의 소설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 작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목적은 후대의 독자가 ‘《모비 딕》을 읽게 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작가 자신이 이 책을 읽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독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 책을 얼마나 아끼며, 어떻게 읽었는지를 이 책의 독자들과 나눔으로써 말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4년에 이미 《모비 딕》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낚여버렸다고 고백하는 대목이었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딱 한 권을 읽었던 나와는 매우 다른 행복한 시간을 가졌던 사람 같다. 이렇게 학창 시절에 ‘인생책’을 만나는 일은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최근에 출간된 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의 평전 《수전 손택》에는 그녀가 ‘전미도서상’을 수상할 때 촬영된 사진이 나온다. 이 사진에서 손택과 나란히 서있는 너새니얼 필브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미도서상’에 수전 손택 옆이라니! 게다가 사진에서 필브릭이 들고 있는 책이 바로 《모비 딕》의 모티프가 된 ‘에식스호 사건’을 다룬 논픽션 《바다의 한 가운데서 In the Heart of the Sea》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창작 과정 - 읽기와 쓰기

 

《사악한 책, 모비 딕》을 읽고나면, 훗날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미국의 성서’라고 불리게 될 《모비 딕》을 쓰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주홍 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필브릭은 호손이 멜빌에게 “문학적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감정적 영감의 원천(59)이 되어 주었다고 그 영향을 보다 세밀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 이유를 찾아보려면, 아마도 멜빌이 《모비 딕》초고를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1850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멜빌의 창작 단계에서 이 시기의 《모비 딕》초고에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 에이해브 선장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성실한 인물로 묘사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같은 인물만으로 고래와 대결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특히 멜빌은 열다섯 살 연상인 호손을 1850년 8월에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이 때는 마침 역사상 마녀사냥으로 유명했던 세일럼이라는 도시 출신 너새니얼 호손이 《주홍 글씨》를 완성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였다. 멜빌은 그의 작품을 읽고, 작품에 대한 비평을 쓴 다음 셰익스피어에 눈길을 돌린 것이 우리가 지금 읽게 되는 《모비 딕》을 빚어내는 방향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게 바로 하나의 ‘우연’이자 ‘신의 한수’가 아니었을까. 물론 멜빌이 젊은 시절에 상선의 선원, 교사, 포경선 선원, 해군으로 일한 경험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저자 필브릭은 《모비 딕》의 ‘진정한 시작점’이 1849년 2월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 즈음 멜빌이 총7권으로 나온 큰 활자판 셰익스피어 희곡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모비 딕》원문을 참고해보면,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표현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멜빌에 대한 호손의 영향이 ‘문학적이기 보다 감정적인’ 이유는 아마 호손의 비밀스럽고 우울한 무언가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운명적인 우울감을 읽어내고 창작에 중요하게 적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모비 딕》초고처럼 ‘에이해브’가 등장하지 않는 《모비 딕》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필브릭의 책에는 멜빌이 창작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책과 논문 등의 읽을거리를 수집하고 닥치는 대로 읽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모비 딕》의 본문 이전에 나오는 ‘인용문’과 ‘발췌록’만 봐도 멜빌이 각종 고전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최신 이론인 진화론에 관한 초창기 버전의 이론까지도 섭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 셰익스피어, 밀턴, 베르길리우스 등의 책을 게걸스럽게 읽었던 점, 구입했던 셰익스피어 희곡집의 뒤쪽 면지에, 에식스호의 생존자 오언 체이스의 기록이 담긴 도서의 뒤에 상당한 메모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 두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따라서 “웅장한 책을 쓰려면 웅장한 주제를 골라야 한다(79)라는 이슈메일의 선언처럼, 멜빌은 이 거대한 ‘카샬로 블랑슈(흰색 향유고래)’ 이야기를 쓰기 위한 준비과정과 노력이 실로 어마어마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음은 멜빌의 집필과정, 그러니까 그의 글쓰기에 좀 더 주목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모비 딕》은 젊은 시절 멜빌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된 작품이다. 하지만 수많은 책을 읽은 만큼, 이 책들로부터 글쓰기에 관한 실질적인 영감을 얻은 것도 물론이다. “멜빌에게 글쓰기 과정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취합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일이기도 했다.(30) 호손이 멜빌에게 큰 (감정적)영향을 주었다는 필브릭의 견해는 아마도 멜빌이 호손의 작품을 읽고 비평을 쓴 것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폭포수처럼 자기 생각을 쏟아놓는’ 멜빌과 달리 호손은 ‘말없이 온화하게 받아들여주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호손은 솜씨좋게 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 상당히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멜빌은 호손의 정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호손의 작품을 면밀히 읽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간파했을 것 같다. 호손의 작품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고 나서야 멜빌은 1년 남짓 전에 사두었던 셰익스피어 희곡집에 다시 관심을 돌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후에라야 《모비 딕》에는 ‘어둠의 힘, 파멸로 나아가는’ 인물 에이해브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필브릭은 이렇게 표현했다. “호손은 멜빌이 셰익스피어의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빠져들도록 추동하는 인물이었다.(59) 그러므로 멜빌의 글쓰기, 특히 《모비 딕》이 세상에 나오게 되기까지 호손(감정적 영향)과 셰익스피어(문학적 영향)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노동이라는 것은 여러 작가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광대한 대양을 배경으로 거대한 리바이어던의 이야기를 쓰고 말겠다는 야심을 지녔던 멜빌에게 글쓰기는 지독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필브릭은 이 책 《사악한 책, 모비 딕》에서 ‘멜빌이 나중에 “내 사악한 예술”이라고 부른 것을 쏟아 붓는 과정은 온 정신을 소모하고 갉아먹는 경험(63)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공감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글쓰기’란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다만 멜빌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일은 집필 과정에서 눈을 크게 상하게 만든 것 같다. 눈을 지나치게 혹사한 나머지 어떤 날에는 눈을 거의 감다 시피한 채로 글을 썼다고도 한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혹평을 하기 전에 작가가 겪었을 법한 창작의 고통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앞으로는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한 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호손과 셰익스피어를 ‘재발견’한 이후, 멜빌은 달라진 눈으로 초고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첫 소설의 대성공 이후 멜빌은 집필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역할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와 부인, 네 자녀를 건사해야하는, 글을 쓰는 가장으로서 느낄 법한 고충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멜빌은 호손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이 일 저 일이 계속 저를 훼방합니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차분하고 느긋하고 조용하고 풀이 자라는 환경이 저에게는 도무지 주어지지 않네요.(130) 지금도 그렇지만 전업으로 글을 쓰는 일이란 20대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평생 여행과 공부에 몰두 할 수 있었던 데카르트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다수의 ‘작가들’에게는 현실적인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모비 딕》이란 엄청난 작업을 한 작가는 이 일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임을 약간의 좌절감과 더불어 말하기도 한다. 멜빌은 호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책도 초고일 뿐 ?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입니다(80)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필브릭의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독자의 《모비 딕》읽기 그리고 ‘쓴다는 것’

 

필브릭의 책에서 우리는 관찰자로 《모비 딕》의 탄생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독자가 멜빌의 소설을 읽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모비 딕》읽기 철학을 전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모비 딕》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만들어낸 개인적 예술의 힘을 이해하려면 이 편지들을 읽어야 한다.(128) 여기서 이 편지들은 멜빌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말하는데, 특히 너새니얼 호손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손은 《모비 딕》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다. 멜빌의 서간집이 나와 있다면,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실 《모비 딕》을 읽어나가는 일도 벅찬 일인데, ‘서간집이 웬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서간집은 작가 멜빌과 그의 작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주홍 글씨》의 과묵하고 은둔자적인 작가 호손과 그 작품을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필브릭은 자신의 ‘의욕’을 다소 누그러뜨리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을 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읽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 긴박하고 긴요한 할 말이 있어 불쑥불쑥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책을 쓰는 동안 멜빌의 몸을 타고 흘렀던 다양한 목소리에 이입해 글을 느끼는 것이다.(19) 실제로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멜빌이 쓴 원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시를 읽는 것처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소리를 들어보고 또 ‘폭포수처럼 자기의 생각을 꺼내놓는’ 멜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모든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군데에서 마치 랩을 듣는 것 같은 리듬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멜빌의 문장을 읽던 순간은 제한적일지 몰라도 문자의 아름다움이 내용뿐만 아니라 짜임새와 소리를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또 내용적인 면에서도 독자에게 한 가지 더 당부를 하는데, 그것은 흰 고래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진짜’라는 점이다. 그래서 백과사전이나 다른 글에서 흔히 말하듯 ‘흰 고래가 무얼 상징하는지 고민하는 일을 그만두기 바란다(131)라고까지 일러주는 것이다. 흰 고래는 실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기로 하자.

 

그렇다면 독자이기도 한 다른 작가들은 멜빌이란 작가 혹은 《모비 딕》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필브릭은 윌리엄 포크너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언급한다. 포크너는 《모비 딕》이 ‘자기가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단 하나의 작품(16)이라는 아쉬움 섞인 극찬을 한 적이 있다. 또 허먼 멜빌이라는 작가는 말년이 다가오던 헤밍웨이에게 ‘넘어서고 싶은 작가’로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이외에도 다른 유명 작가들 상당수는 멜빌과 《모비 딕》에 남다른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 평전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에도 색스가 청년 시절 자신을 사로잡은 소설로 《모비 딕》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모비 딕》만으로도 족하다’(해당 책, 237면)라고 까지 언급했던 것이다. 한 신경과의사에게 멜빌과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허먼 멜빌에게는 셰익스피어와 호손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했던 셈이다.

 

지금까지 멜빌과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한 작가의 《모비 딕》읽기 그리고 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따라가 보았다. 창작의 고통, 눈을 비롯한 육체의 고통, 가장으로서의 역할 및 현실적인 고충, 아내와의 불화 등등을 겪으면서도 멜빌은 소설과 시를 쓰고, 끊임없이 읽기를 계속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너새니얼 필브릭은 멜빌과 호손과의 관계, 그리고 멜빌이 주변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곁들여 《모비 딕》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필브릭은 《모비 딕》에서 터번을 쓴 마닐라 출신 주술가 페달라의 역할을 깨달았다고 시인했다. 에이해브를 파멸로 이끄는 동인으로서, 또 ‘부추기고 다그치는’ 존재로서 페달라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구도가 멜빌과 호손사이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곧 에이해브에게 악으로 향하도록 추동하는 페달라가 있었다면, 멜빌에게는 우울과 암흑의 심연을 보여준 호손이 있었던 것이다. 필브릭은 “호손의 불가해한 본질이 《모비 딕》사방에 존재 한다(60)라고 언급하며 멜빌의 작품에 대한 호손의 전 방위적인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말년에 뉴욕 26번가의 책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에서 세상을 뜰 때까지 읽고 쓰는 습관을 이어나갔을 멜빌의 그림자를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남아 있다. 바로 이 책의 원제, ‘모비 딕을 읽는 이유’에 대한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의 답변이다. 지금까지 멜빌의 창작과정에서 멜빌의 읽기와 쓰기 과정, 그리고 독자로서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정작 저자의 생각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는 책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발췌문]

[1]

"《모비 딕》도 태평양으로 고래를 잡으러 떠난 항해에 대한 소설이자 또한 남북전쟁을 향해 광분하듯 치닫는 미국, 그리고 그 이상을 말하는 소설이다." (15면)

 

[2]

"이 소설은,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내 안에서 점점 자라난다. (...) 미국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양 문학의 본질이 담겨 있는 책이다." (18면)

 

[3]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읽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 긴박하고 긴요한 할 말이 있어 불쑥불쑥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책을 쓰는 동안 멜빌의 몸을 타고 흘렀던 다양한 목소리에 이입해 글을 느끼는 것이다." (19면)

 

[4]

"멜빌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지만, 다른 작가들의 글을 엄청나게 훔쳐오기도 했다." (30면)

 

[5]

"멜빌은 호손에 대해 글을 쓰면서 셰익스피어를 이용해 에이해브를 위한 초석을 닦은 셈이다." (58면)

 

[6]

"호손은 멜빌에게 문학적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감정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59면)

 

[7]

"에이해브 선장이 이렇듯 강력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세상을 상징적으로 바라보는 에이해브에게서 멜빌이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61면)

 

[8]

"《모비 딕》을 읽는다는 것은 포경선에서 여러 해 동안 강렬한 경험을 하고, 자기가 본 것 전부를 마음에 새기고, 7년쯤 더 지나 셰익스피어, 호손, 성서 등등을 읽고 흡수한 다음, 젊은 시절의 경험을 앞날에 공포할 목소리와 방식을 찾아낸 작가를 마주하는 일이다." (87면)

 

[9]

"이 일 저 일이 계속 저를 훼방합니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차분하고 느긋하고 조용하고 풀이 자라는 환경이 저에게는 도무지 주어지지 않네요." (130면)

 

[10]

"흰 고래는 상징이 아니다. 나나 여러분 같은 진짜다. (...) 그러니까 흰 고래가 무얼 상징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그만두기 바란다." (131면)

 

[11]

"멜빌은 늘 그러듯 신의 섭리와 미래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 그뿐 아니라 인간의 이해 범위 밖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논하며 자기는 ‘소멸될 결심을 거의 굳혔다‘고 알렸다. (...) 그가 줄곧 고집스럽게(나와 알고 지낸 이래로 늘 그랬고 아마 한참 전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그 황무지 위를 헤매려고 하는 게 이상하다. 우리가 앉아 있는 모래 언덕 만큼이나 음울하고 단조로운 곳을. 멜빌은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너무 정직하고 용감해서 어느 한쪽이든 버릴 수가 없다. 그에게 종교가 있었다면 그는 최고로 신심 깊고 경건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고결하고 고귀한 사람이다. 우리 중 누구보다도 불멸을 누릴 자격이 있다." (147면)

- 영국에서 멜빌을 만난 호손이 남긴 일기 기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