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뒤로 들고 나아간 어둠 속의 여행자’를 만나다
‘등불을 뒤로 들고 나아간 어둠 속의 여행자’를 만나다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2020)를 읽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미 선진국이 됐을 거야.” 몇 년 전 회사업무로 어느 중소기업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 임원이 내게 했던 말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던 그 임원의 역사 인식에 충격을 받았다. 이 당혹스러운 주장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나는 대꾸할 한 마디도 떠올릴 수 없었다. 오히려 내 빈약한 논리와 무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던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시민이자 생각하는 인간으로 지니고 있을 법한 기본적인 인식도, 나만의 논리나 언어마저 결여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사건들, 예를 들면 소녀상 건립 문제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관련한 기사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리영희의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는 이런 자각의 연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그의 대표적인 글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았다. 이제 리영희의 10주기가 되는 시점에서 3-40년 전 저자가 남긴 글이 나와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가 남기고간 유산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책을 읽으며 줄곧 염두에 두었던 물음이었다.
우선 리영희 선생이 밟아 온 삶이 궁금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에 출생하여 해방을 맞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입대, 전방에서 만 7년을 복무했다. 전장에서 성직자가 하는 기도에 대해 회의했던 사례는 향후 그가 어떤 삶을 취할지 짐작하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었다. 리영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했던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군복무 이후에는 언론인 혹은 학자로서의 소명을 발견한 것 같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었다. 또 노신을 사상적 스승으로 삼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했다. 이후 자신이 관찰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본질을 파고들어, 주체적인 앎을 평생 추구했다. 이런 모습은 리영희의 자기 성찰적 사유와 정신이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남게 된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리영희가 사유했던 주제들을 두 가지 큰 틀에서 이해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일제의 식민주의와 그 영향이며, 다른 하나는 반공주의(냉전체제)가 미친 영향이다. 물론 현대사의 여러 국면에서 이 두 가지가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예를 들면 ‘정치 검찰’, ‘체제 언론’,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이 식민주의의 잔재와 반공주의가 구축한 질서 모두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주의와 그 영향이 뚜렷한 주제에 관해서는 앞서 언급한 ‘임원의 발언’을 떠올리며, 우선 저자의 사유와 지혜를 발견하고자 했다.
식민주의와 관련한 주제는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저자의 논평을 참고할 수 있겠다. 저자는 문제의 시작이 한국전쟁 직후, 일본 정부에 대한 미군정의 재군비 명령에 있다고 보았다. 한 나라의 교과서는 해당 사회 내지 국가의 ‘이데올로기의 집약’이기에,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 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개정하는 일은 과거를 왜곡하고 국민을 세뇌하기에 문제가 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를 끊임없이 왜곡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작년에 일본 기업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후 나타난 ‘일본 상품 불매’ 움직임은 이미 1984년에도 있었다. 이제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극일’을 외치며 또다시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준엄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는 공감과 동시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진실로 해방되지 못했다’고 우려했을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한편 저자는 “해방 이후 30년간, 이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한 가치관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주의다”(40면), 라고 글에서 밝혔다. 이 문제는 그의 글이 반공법에 위반되어 체포된 후 수감상태에서 작성한 ‘상고이유서’와 되풀이해서 불거지는 핵무기·미사일 위기의 원인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단독 군사 패권주의의 행보로 군산복합체가 짜놓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 한반도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알게 되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한반도가 미국 군사력의 실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정황적 인식은 충격적이었다. 곧 평화를 두려워하는 미국 주전 세력의 분열증에 전 세계의 평화가 달려 있었다. 북한에 대한 지나친 경제 제재와 편파적 태도, 한-미 팀스프리트 훈련을 통해 본 미국은 언제든 북한에 대한 공격구실을 마련할 수 있는 국가였다. 리영희였다면 우리가 ‘진실에 토대한 인식능력이 있는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한일관계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을 비롯하여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과의 국제 문제는 무엇보다 식민주의의 잔재와 냉전체제, 특히 광신적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일본의 통치 방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국민을 통제하는데 앞장서서 활용했던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남긴 유산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들이 지금 내 삶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리영희는 개별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현상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치열하게 파헤치고, 깨달은 인식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식민주의, 반공주의에 뿌리 내린 세계 질서에 더하여, 국경을 초월하여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산다. 이에 대해 리영희는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399면)할 때라고 답하지 않을까싶다. 지금 내 삶을 좌우하는 사회의 관습과 수많은 ‘당연함’에 대해 그것이 왜 그래야 하는가를 따져 묻고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리영희의 선집을 읽은 시간은, 그의 문제의식과 사유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고,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낀 시간이었다.
선집의 글을 따라가다 헤매던 순간, 시인 단테가 쓴 《신곡》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당신은 등불을 뒤로 들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현명하게 만드는,
어둠 속의 외로운 여행자셨지요.”
- 단테, 《신곡》 연옥편, 22곡, 박상진 옮김
시인 스타티우스가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말하는 대목이었다. 리영희 역시 스타티우스가 묘사한 베르길리우스처럼, 뒤따르는 이들의 발길을 밝혀주기 위해 등불을 뒤로 들고 앞장서며 어둠 속을 나아간 여행자처럼 보였다.
"해방 이후 30년간, 이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한 가치관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주의다" (40면) "독서를 통해 자신의 단단한 지적 몽매가 한구석씩 깨어지는 순간의 감격은 거의 종교적 희열과 가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