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의 차이?

일반적인 정서의 차이를 생각해보기는 쉽지 않다. 섣불리 내 견해만을 앞세워 내 경험에만을 비추어

성급하게 일반화를 해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이라는 것은 사실 상당부분 사람인 이상 공유하는 것들이 많고, 약간의 차이는 문화적인 배경에서

오기 때문일 것이므로 이것도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고는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최근 지도 교수와의 여러번의 대화를 통해서 점점 느껴지는 것은, 내가 한국적인 문화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서인지 교수가 원하는 학생으로서의 모습을 그동안 깨닫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는 점이다.

우선 대한민국 군대에서 복무를 하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남자로서 사람마다 사고 방식이 다를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견해나 사고틀, 특히 집단 속에서의 개인의 모습을 생각해볼 때, 나는 지극히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수동적인 행동양식에 익숙해져있었던 것이다. 바꿔말하면 단순히 수업을 듣고, 주어진 숙제를
 
하고 정해진 날짜에 시험을 보고 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 수동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공부를 얼마나

어떻게 하는 가의 문제는 분명 능동적인 활동여지가 있는 부분이긴하지만, 이건 연구 활동과 비교하면 여전히

수동적인 측면이 있다. 즉, 연구 활동에는 마감 일이든,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든,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수동적으로 나보다 경험이 더 많은, 선임자의 요구나 명령에 '따르는'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연구 활동이라는 행위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첫 만남이었고, 넘어야할 산이었던 것이다.  나는 교수에게 어떤

일을 어떤식으로 맡을지 다소의 견해나 충고를 해주길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교수가 원하는 연구활동이라는 '코드'는 그런 것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공기부여를 하고,  매일 매일 교수와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일들을 하겠노라고 교수에게

요구할 정도의 연구활동을 요구했던 것이다. 나에게 지금까지의 내 행동과는 다른 상당히 공격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분 1초를 낭비하지말고 끊임없이, 쉼없이 나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난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교수의 기대치와는 다른 나의 행동들이 줄곧 교수와 마찰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행동들이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고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교수에게 그저 '게으른'

학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대다수의 미국인 교수들과는 다른 기대치이다. 그리고 나에겐

이것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 셈이다.

대학원 학생으로서 가장 힘들일 중의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제외하고) 어떻게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해서 매일 매일 정진하고있고 공격적으로 무언가를 알아 가느냐하는 문제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