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과 크리스마스의 기억



(11월 어느 날의 이야기)

토요일날 밤새 일하고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일에 지쳐서 퇴근하던 날이었다.

차를 몰다보니 크리스마스가 되기 아직 한달이나 남아있음에도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끊이지않고

흘러나오고있었다. 11월 세째 주 목요일부터 시작하는 추수 감사절이후로는 이곳은 어느 덧 크리스마스와 함께

연말을 맞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올해도 역시나 주파수를 맞추는 채널마다 빙크로스비나 시나트라 혹은

카펜터즈의 캐롤뿐아니라 마이클 잭슨이나 여러 가수들의 리메이크한 캐롤까지 익숙한 멜로디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곤함을 뒤로한채 크리스마스 캐롤을 따라 흥얼거리면서 운전하는 도중,

하마터면 도로에 누워있는 큰 사슴을 칠뻔 했다. 사슴을 피하려다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져있던 트럭을 또 받을 뻔

했다.


운전하던 곳은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한국처럼 흔하지가 않고, 사슴이 많은 동네라서 고속도로에서도 가끔 차에

치여있는 사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사슴을 지나친 곳은 한 고속도로에서 다른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거의 90도로 꺾여있는 곡선구간이라

사슴이나 동물이 나타나면 피하기도 힘든 곳이었다.


2차선 진입로였는데, 커브를 타고 진입하는 순간 우측 차선에는 커다란 사슴이 피를 흘린 채 누어있었고, 그 순간
 
1차선으로 재빨리 넘어왔는데, 1차선 외각 갓길에 커다란 트럭이 한 대 서있었기 때문에 사슴을 피하다가 트럭과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던 것이다.


아마 사슴과 방금 부딪힌 트럭으로 보였다. 경찰이 아직 오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순간 멍한채로 놀란 가슴을 안고 운전하다가 진입로를 빠져나오고 다시 캐롤 노래소리에 정신이 들었더랬다.


지금까지 차에 부딪힌 사슴은 수도 없이 봐왔지만, 어제 그 사슴은 마치 10년전 내 모습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10년전 가을, 제대가 다가온 다는 기대와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드려야
 
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후 3주만에 전역을 한 후, 슬픔을 느꼈다기보단, 아버지를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사실,

이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막막함과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엄습했던 것 같다.



차가운 콘크리트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사슴처럼 이 세상에 이제 나 혼자 던져진 느낌.



복학 전까지 당장 알바든 뭐든 해야한다는 위기감에 조그만 일식집에서 웨이터겸 주방 보조로 잠깐이었지만

일하게 되었는데, 식당에서 일하면서 음식 배달은 원래 하지 않았지만, 근처 단골 가게에서 음식을 부탁하면

커다란 쟁반을 들고 음식을 배달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커다란 쟁반에 계란찜과 미소국 그리고 우동이나 덮밥류의
음식들을 배달 할 때면 무거운 것은 둘째치고라도 금속으로되어있는 쟁반을 겨울 밤에 배달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더우기 고등학교 동창이라도 지나갈 때면 왠지 모를 수치스러웠던 느낌에 얼굴을 돌리곤 했던 것이다.


어느 덧 12월이 되었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그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 있다가 거리고 쏟아져 나왔는지 그 날은 저녁내내 화장실 한 번 못가고 정신 없이 주문을

받고 주방일을 도와야만 했었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음식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주방에서 그릇을 씻으시는 아주머니를 도와서 그릇과 쟁반 그리고 수저를

씻느라 자정을 넘어 새벽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었다. 주방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쟁반과 그릇들이
 
널부러져있었다.


가게 문을 닫으면서 사장님이 수고했다고 가족들하고 먹으라고 초밥 도시락을 하나 건네주셨는데,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 날이었고, 새벽 미사를 다녀오신 어머니와 이침에 가족이 모여 초밥을 같이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안계시던 첫 해 내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다.

그 이후로도 크리스마스는 단지 내가 일하던 날중 하나였을 뿐이다. 내 인생에 일복이 너무나 많은가 보다. -.-;



지금도 라디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 10년전의 기억에
 
더불어 도로에서 죽어가던 그 사슴이 또 생각나게 될 것 같다.




North Tonawanda, NY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