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ft alone

N. Tonawanda, NY 2010



집 앞에서 아이는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도로를 지나 맞은 편 집 앞까지 건너왔다.

작은 도로지만, 차들이 세워져있고, 무심코 지나가들 차들을 보면 이 작은 도로도 이 아이에겐 작은 도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차들이 오는지 좌우를 살피고, 뒤에 서있는 형을 한 번 뒤돌아 본 후에야

아이는 비로소 도로를 건너기 시작한다.


읽어버린 공을 찾기 위해선, 나도 내 앞에 놓여져있는 두려움을 무릎써야 할 것이란 걸 느꼈다.

많은 경우에 두려움이란 우리가 스스로 키워낸 이미지일 뿐.

세계적인 그룹 듀폰의 김동수 아시아-태평양 회장이 말하듯, 우리의 "Box Breaking"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두려움을 깨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듯이.


가끔은 혼자 지내봐야만 그 두려움이란 것이 실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닌 이상, 여행을 하는 여행가라면, 가끔은 혼자 여행하는 것도

그러한 자신을 알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유학오기 전까진 서울은 너무나 복잡하고 바쁘게만 돌아가는 도시였다.

언제나 사람들을 만나고, 바쁜 스케줄에 허덕였다.

유학온 이후로는, 여전히 바쁘다고 하더라도, 뉴욕의 한 복판에 살지 않는 이상

내가 30년을 살아온 서울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이 조용하고 인간관계나 행동반경이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번잡한 노이즈가 다 걷어지면,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억누르고 있던 슬픔과 아픈 기억, 내가 간직하고 있는 죄책감들이 되살아나고, 감정에 좀더 충실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럴 시간이 어딧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물어보겠다.

한국에서와같이 일만 하거나, 공부만 하러 왔다면 그리고 관광하러 이곳에 왔다면,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가 말이다.

그런 일들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외적인 스펙을 높이기위해 유학왔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다. 목적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발전시킨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누구인가를 대답해주지는 않는다.


내 일은 나의 첫 번째 우선 순위이다. 그 다음에는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

작은 도로로 걸어나온 아이처럼 편안함을 떠나 나 자신을 좀더 알고 싶었다.

남들에겐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이 특히 필름을 주로 사용하기때문에 그저 값비싼 놀이로 보이겠지만,

내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바라본 상대방의 순간 순간의 삶 속에 나 자신이 보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는 것을... 나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바라본다.

행복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을 찍으면서...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들처럼 절절한 고통이나 슬픔을 담지는 못하지만

거리에서 우리가 지나치는 거리에서 나는 사람을 찍는다.

아버지의 어께에 올라탄 아이와 가족을 보고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나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본다라는 것을...

이전에는 사람들이 하는 이런 말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이해가 된다.


사진을 찍고나서는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이 더 수월해졌다라고 할까.

그래서 성철 스님이 말씀하신 不欺自心 의 가르침이 더 와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