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은 현재 진행형이다’ - 《테라 인코그니타》를 읽고

 

《테라 인코그니타 Terra Incognita》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고고학은 현재 진행형이다’ - 《테라 인코그니타》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고고학이란 학문이 단순히 새로운 유물을 발굴하고, 기록되어 있는 역사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나의 편견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자기계발과 기업인문학이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업화된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의 본질은 외면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내 고고학자가 써내려간 《테라 인코그니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고고학이란 학문 자체에 대한 나의 무지와 만나는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이란 학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새롭게 환기시켜 주었다. 이 책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저자가 국내 일간지에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연재했던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는 시도를 한다. 우선 1부에서는 강자의 역사가 어떻게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통해 편견을 심어 놓았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식인 풍습에 관한 사례들이 흥미로웠다. 2부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보다 구체적인 진실에 접근한다. 온돌이나 고조선의 모피, 그리고 흉노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최근에 드러난 유물과 연구 결과를 통해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 역사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열어준다. 3부에서는 역사 속에서 상상과 신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세계문명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아틀란티스의 신화를 비롯하여 근대의 히틀러가 남긴 편견의 틀을 보여준다. 여기에선 인류의 무지가 어떻게 신화와 결합되어 당대의 삶을 규정했으며,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3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고학이란 학문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이용되어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사례가 모두 흥미로웠지만, 과거의 국가들이 차별과 배제의 장치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지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빈 던바 교수가 언급했던 것처럼, ‘정치적’인 인류는 역사를 통틀어 신화와 종교의 의식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타심과 이기심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둘은 하나의 쌍으로 언제나 공존하는 듯하다. 개인 혹은 집단이라는 ‘경계’를 기준으로 이들의 관심이 그 경계의 안에 머물면 이타심일 수 있는 반면, 경계 밖의 존재에게 경계 안에 있는 존재의 행위는 이기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개체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공동체의 생존가능성을 늘릴 수 있다면, 공동체 전체에 있어 이득일 것이다. 이런 공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되는 서양인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시각뿐만 아니라 카니발리즘이란 표현은 저자의 지적대로 지극히 악의적인 왜곡에 기반 한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오랜 시간동안 고착되어 후대의 삶에도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식인풍습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흥미로운 대목을 읽다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한 장면을 떠올렸다. 소설에서 화자 이슈메일은 여인숙에서 작살잡이 퀴퀘그와 같은 침대를 쓰게 된 상황이었다. 한 침대를 쓰게 된 ‘문명인’ 이슈메일은 식인종이자 ‘야만인’ 퀴퀘그를 관찰하면서 ‘저 남자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 술 취한 기독교인과 같은 침대를 쓰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게 낫지’ 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충격이 덜 할지 모르나, 1850년대 미국의 백인이 이 말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상당히 도발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모비 딕》의 발췌문에 나온 것처럼 허먼 멜빌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몽테뉴가 이미 500년 전에 식인종과 직접 대화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세이에 식인 풍습에 대해 편견을 걷어 내고 기록해놓았다는 점이다. 몽테뉴는 자신이 속한 문명인들이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야만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자의 역할이란 결국은 500년 전의 몽테뉴처럼 편견을 줄이기 위해 ‘경계’의 안과 밖을 공평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 강인욱 역시 ‘식인 풍습은 미개한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식인 풍습이 드물긴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증오심에서 보다는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에게 체화되길 바라는 ‘사랑의 발로’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식인 풍습이 점차 문명이 형성되고 신화와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더해져서 적대감으로 인간을 죽이게 되고, 나아가 대량학살에 이르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카니발리즘이란 표현은 “실제 식인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비하하여 붙여진 이름(70)이라고 일러준다. 루쉰은 중국 역사에서 발견되는 식인 풍습에 대해 ‘인육의 잔치는 지금도 베풀어지고 있다’라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카니발리즘이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기작에 활용되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루쉰의 관점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비하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 주제에 관한 한, 다소 편협했거나 무지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식인 풍습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줄곧 고고학이란 학문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는 고고학이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문화재를 강탈하면서 발달한 근대 이후의 학문(278)이라는 고고학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대 국가 사이의 분쟁과 약탈의 행보를 살펴보면 고고학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곧 ‘우리의 고고학’은 서양이 규정해 놓은 차별과 배제의 프레임을 벗어나 이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아울러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이 만들어 놓은 왜곡되고 자기모순적인(나는 ‘엽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역사관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역사’란 이미 상당히 검증을 거쳐 정립된 분야가 아닌가하고 말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강대국이 규정해버린 편견과 역사관을 어떤 의심이나 비판적인 검토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제는 고고학이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학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또 고고학은 우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도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고학은 이 땅 위에 살다간 수많은 세대, 겹겹이 쌓인 삶의 흔적을 한 겹 씩 들어내어 인간의 삶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작업일 것이다. 절대 다수가 문자로 기록된 역사보다도 유물과 유적이라는 물성으로서만 남아 그 안에 수많은 진실을 간직하고 있으며 더 폭넓은 인류의 역사를 비쳐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후대인의 목적에 맞게 왜곡되어 해석되고 이용될 여지도 다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테라 인코그니타》에서 고고학은 우리의 역사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각 지역과 서로 활발히 상호작용하고 연결되어 있던 역사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고고학적 자료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의 방향과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풍부한 사료와 함께 보여주었다. 나아가 자국 중심의 역사를 넘어 보편성에 근거하여 세계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를 위해 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타자를 배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과 ‘새로운 자료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를 기억해두기로 한다.

 

 

 

[발췌문]

"4대 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활보할 때 만들어졌다." (22p)

 

 

"카니발리즘은 실제 식인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비하하며 붙여진 이름이었다." (70p)

 

 

"식인 풍습은 미개함과 관련이 없다." (72p)

 

 

 

"문명을 유지하고 번성하는 가장 큰 관건은 외모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었다." (155p)

 

 

"고대에 사람들이 교류하고 공존했던 사실을 현대 국가의 영토로 치환하여 논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본군국주의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일이다." (298p)

 

 

"실제로 형제국가라는 표현은 터키 건국 직후 일본이 세운 ‘만주국‘과 친선관계를 수립하면서 등장했다." (337p)

 

‘생명을 다시 쓰는 시시포스의 과업’ -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Paul Nurse) 지음 | 이한음 옮김 | [까치]

 

생명을 다시 쓰는 시시포스의 과업

 

대학 시절에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본질적인 특성을 설명해보려는 시도였다. 물론 슈뢰딩거가 활용하는 다양한 물리학 개념을 따라가기엔 벅찼지만, 생명 또는 생명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에 대한 슈뢰딩거의 신념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신념은 종교적 신념과는 달랐다. 그 대신 열역학법칙이나, 볼츠만의 통계적 관점에 토대를 두고 타당한 논리를 구성하여 설명해보고자 했다. 물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한 물리학자의 대담한 제언이 얼마나 많은 자연과학도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떠올려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양한 학자들이 동일한 제목을 걸고 생명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후대의 우리는 많은 이들이 생명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고 고심했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작업을 요구하는지는 지금까지 나온 책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한 생물학자가 이 커다란 주제를 건드린 셈이다. 이번에는 영국 유전학자 폴 너스가 집필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대 생물학이 바라보는 생명 현상을 살펴본다. 그는 세포 분열의 조절에 관한 주제를 오래 연구했고, 암치료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지만 그는 효모균을 주요 실험 대상으로 하여 세포 분열 주기에 관한 메커니즘을 연구했고, 여기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을 읽은 후의 인상은, 저자가 슈뢰딩거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시각을 반영했던 기획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대신 저자가 생명 현상을 정의하는 여러 측면을 일관되고 통합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정리하고자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부단히 발전하고 있는 최신 생물학의 이해에 바탕을 둔 설명이기에 새롭게 배운 부분은 상당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밝혀진 세부 사항과 지식들을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이 책은 생물학 서적이지만 보통 등장하는 세포 혹은 유전자를 설명하는 그림은 단 한 점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물 흐르듯 다섯 가지 키워드를 따라 생명 현상을 설명하지만, 어떤 문장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마 몇 시간의 수업과 책을 읽어야 하는 밀도 있는 내용들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가 핵심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설명해 나가기 때문에 책이 빨리 읽히진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책의 성격상 저자가 설명하고자 했던 생명 현상의 특징적인 다섯 가지 측면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간추려 각각 두 문장 정도로 요약해보았다.

 

(1) 세포: 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기능적 기본 단위로서, 이 세포의 분열은 생물이 성장 및 발달하는 토대가 된다. 우리는 엄청난 수의 신체 세포와 그 외의 세포가 모여 끊임없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하는 존재다.

 

(2) 유전자: 유전자는 생명의 설계도로서, 생명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하는 명령문이다. 이중 나선 구조로 이루어진 유전자는 생물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하며, 오랜 시간을 견딘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

 

(3)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자연선택은 다윈이 제안한 모든 생물의 진화 메커니즘이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생명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지려면, 개체가 번식할 수 있어야 하고, 유전 체계를 지녀야 하며, 이 체계에 다양성이 존재하여 변이를 허용해야 한다.

 

(4) 화학으로서의 생명: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화학적 관점(특히 생명을 물리·화학적 기계로 바라봄)에서 설명한다. 선형 단백질 중합체 사슬이 3차원 구조를 갖추며 독특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갖게 되어, 생명활동에 토대가 되는 촉매 역할을 비롯한 모든 화학 반응을 수행하게 되었다.

 

(5) 정보로서의 생명: 전체로서 기능하는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의 이동과 저장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세포막으로 구분하는 생명 내부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외부 세계와 내부 상태의 정보를 끊임없이 모으고 활용하여 이에 대응한다.

 

저자는 이렇게 생명현상을 몇 가지 주요 키워드에 입각하여 설명했는데, 각각이 사실상 따로 떨어진 내용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는 단지 관점을 옮겨 생명의 다른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저자 폴 너스는 오랜 시간 (효모)균의 세포 분열을 기반으로, 그 중에서도 세포 주기를 제어하고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고 그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가 분열하는 현상 그리고 외부 세계와 분리하는 세포 막 내부의 모든 화학 반응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연구 결과는 암세포에 대한 이해와, 치료에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었다. 책에서 줄곧 드러나듯이 그는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더할수록 우리가 생명 활동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입장을 취한다.

 

‘자연선택’ 개념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생명의 진화 기작이다. 이번 독서는 유전학의 발전 이후 세포 혹은 분자 수준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적 측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과 동일한 대상으로 ‘분열’하는 원핵생물과 달리 대부분의 다세포 생물들은 진핵생물로서,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 체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곧 진화의 관점에서 어떤 생물 집단의 유전 체계에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변이의 가능성이 높고 이를 대물림할 수 있다면 그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저자가 언급한 사항 세 가지 중 마지막 항목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생물이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 변이체를 지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생물이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 변이체를 지닐 가능성이 있는 다음 세대가 그들을 대체할 수 있게”(79)되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이 격어야만 하는 현상인 ‘죽음’이 내겐 새롭게 다가왔다. 다시 말해 자연은 각 개체가 소멸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매번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변이를 도입하거나 발현하여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자연이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생명체에게 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우연’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죽음’이란 현상을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생물학을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스토아 학파나 몽테뉴처럼 죽음에 초연해지는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계(세포막) 밖의 세계에 대응하여 경계 안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생존해야 하는 입장에서, 생명의 소멸, 죽음 역시 생명 활동의 일부라는 점에 비로소 수긍이 간다.

 

저자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다섯 단계를 지나 생물학 연구의 의미와 역할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전체적인 인상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과학자로서, 과학자가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생명의 화학적, 정보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생명을 이해하는 능력뿐 아니라, 생명 활동에 개입하는 능력도 늘어난다.”(165) 그는 앞선 장에서 시도한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새로운 장에서 새로운 기술 가능성과 그 기대를 이야기하고, 이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들도 언급한다. 다만 유전학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인지, 황금벼와 같은 유전자 변형(GM)작물과 합성생물학에 대해 낙관으로 일관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부분은 아직 보다 공정하고 지속적인 후속 연구를 통해 활용 가능성과 우려 사항, 가능한 부작용 등에 대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에 의한 인위적 선택으로 품종을 개량해온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현대 생물학에서 유전자 편집 등을 통해 생물체에 변이를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결과가 인간이 자연에 주고 있는 ‘스트레스’에 한 가지 더 추가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우려는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 준 사례들을 고려할 때 타당하며, 그래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비전문가 모두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전자 변형 작물이나 새롭게 만들어낸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사는 모든 생물과 환경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는 분명히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이 부분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이런 사항들은 사회 전체가 주도하여 공공의 논의와 다양한 관점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생명 현상에 대한 개별적이고 세세한 지식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부분을 넘어 생명을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을 이해하는 다섯 단계의 개념 중에서도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 현상을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본인이 언급한 바에 비추어 이해해보면, 생명은 복잡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계라는 시각에서 더 나아가 ‘목적을 가지고 전체로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화학적/물리적 정보 기계’이다. 곧 생명은 외부와 내부의 정보를 관리하고 조정하며 제어하는 존재로서 바라보고 있다.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가능해진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은 유전자나 촉매 반응에 주로 의존하는 효소가 일종의 ‘스위치’로서 기능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스위치 제어는 생명이 존속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유지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대물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 책은 아주 간결한 언어로 담백하게 생명 현상에 대한 특징들을 담아 낸 책이다. 물론 ‘간결한 언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쉽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유전학자이자 암 연구에 오래 매진해온 대가 나름의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명 현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맥을 짚어준다고도 정리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쩌면 이 작업은 결코 도달하기 힘든 목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생명 현상을 다시 쓰는 이러한 작업은 인류가 생명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깊게 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시도해야할 ‘시시포스의 과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뱀장어와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The Gospel of Eels: Sons, Fathers, and the World's Most Mysterious Fish)

패트릭 스벤손(Patrik Svensson) 지음 |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뱀장어와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자로서 현대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여겨진다. 그는 터키 연안의 큰 섬 레스보스에서 머무는 동안 동물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자신이 저술한 《동물의 역사》가 17세기 까지 자연 과학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상황을 다르게 보면, 인간의 자연과학 탐구 방법론이 2,000년 넘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특히 생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뱀장어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뱀장어의 내부 장기 배치와 아가미 구조에 대한 글을 방대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혁신했던 프로이트 역시 젊은 시절 뱀장어 연구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청년 프로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 관찰 기법에 따라 아드리아해 뱀장어를 연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 사이에는 2,000년의 시간 격차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뱀장어를 매우 진지하게 연구했다.

 

스웨덴의 신문 기자 패트릭 스벤손은 자신의 책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에서 줄곧 유럽 뱀장어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고, 이 뱀장어가 얼마나 신비에 싸인 존재인지 설명한다. 이 책의 뚜렷한 특징은 저자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교대로 전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홀수 장에서 뱀장어에 대한 연구와 역사적 자료를 소개한다. 이어서 짝수 장에서는 가족과 관련된 개인적인 기억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와 추억을 뱀장어를 매개로 회상하고 있다. 평생 도로포장 인부로 일했던 아버지와 보육원을 운영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노동자 계층의 자녀였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했던 기억을 돌아보며 뱀장어가 자신과 아버지 사이를 이어준 연결고리였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뱀장어가 우리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통찰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며 두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우리에게 식당 메뉴에서 흔히 보는 존재이지만, 의외로 뱀장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특히 이들은 비밀스럽고 독특한 본성 때문에 오랫동안 산란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설 제목처럼 대서양에 위치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유럽 뱀장어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정도다. 그렇다면 알에서 깨어난 조그만 뱀장어들은 저자의 고향까지 6,000 km가 넘는 대장정을 거쳐 왔다는 의미가 된다. 도대체 몇 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뱀장어들이 대서양의 서쪽 한복판에서 어떻게 북유럽 해안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신기하지만 뱀장어가 여러 번 변신을 하고, 바닷물과 민물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알게 되면 뱀장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동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뱀장어의 비밀스러운 기원과 생태를 알아내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탐구와 그 여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알에서 부화한 후 네 번의 변태를 거쳐 다시 태어난 산란지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뱀장어의 엄청난 이동거리를 고려한다면 이 작고 평범해 보이는 뱀장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인간은 뱀장어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여정을 따라 이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저자는 아마도 인간이 이 질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뱀장어는 멀리 떨어진 강과 웅덩이가 있는 민물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도 어느 시기에 알을 낳기로 결정하면 자신의 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뱀장어의 특성을 보고 “사람도 뱀장어처럼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49)라고 묻기도 한다. 인간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뱀장어의 관점에서 이 존재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해양 생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의 집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뱀장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슈미트는 뱀장어의 유생 상태를 찾아 그 산란지를 밝히기 위해 대서양에서 20년 가까이 뱀장어를 추적했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요하네스 슈미트의 경이로운 행적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넓어졌다면, 분명 슈미트와 같이 ‘분명한 목표를 가졌던 사람’ 덕분일 것이다. 이 인물이 보여준 삶의 행적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는 뱀장어의 본능과 숱한 실수와 방황을 겪으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교차되어 내게 다가왔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뱀장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 채 태어나 나이가 먹고, 자손을 낳으며 소멸에 이른다. 하지만 저자는 슈미트의 삶을 보고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96)라고 평가한다. 내게는 저자의 언급이 《파우스트》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조물주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라고 말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좌충우돌하고 방황하는 존재이지만, 뜻하는 바가 있는 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게다가 슈미트는 오랜 방랑 끝에 인류에게 뱀장어에 관한 많은 중요한 사실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뱀장어는 아마도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저자와 아버지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뱀장어에 대해 탐구해왔던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저자는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92)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단지 뱀장어의 기원만을 염두에 둔 언급이 아닐 것이다. 회고적인 성격의 글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근원 또한 탐색한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정은 악성 종양 때문에 소멸(죽음)로 나아간 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의 산란지로 되돌아가는 뱀장어들의 여정과도 닮아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뱀장어는 자신이 부화한 곳에 이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이 ‘좌절된 열망’이 어쩌면 ‘방황하는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뱀장어와 인간 모두는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뱀장어의 신비로운 생태에 더하여 이들 앞에 큰 시련이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 위기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로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향으로 뱀장어가 바이러스와 기생충에 감염되고, 확산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만든 산업용 독성 물질을 비롯하여 발전소의 수문과 둑 같은 물리적 장애물이 개체 감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뱀장어 포획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가 뱀장어의 멸종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모든 요인들이 뱀장어의 생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뱀장어의 멸종 위기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뱀장어는 그 생태적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멸종 위기종의 판정처럼 번식개체수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뱀장어가 정확히 얼마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하며, 생물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배워온 저자는 독자에게 뱀장어의 소멸에 대한 경각심을 마지막으로 일깨워 준다.

 

정리해본다. 이 책은 뱀장어에 대해 알고자 했던 사람들의 탐색 과정을 따라가면서도 저자의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저자는 뱀장어가 매력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아마도 이 대상이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37)이라고 언급한다. 이건 존재를 이해하는 일에 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어쩌면 끝나지 않을 탐색 과정으로 남게 되는 일인지 모른다. 유럽 뱀장어에게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한편으로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물론 개체 대부분은 이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멸된다. 인간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뱀장어가 모두 같은 목적지를 지향하지만 저마다 다른 능력을 지니고, 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정확히 같지도 않다고 전한다. 뱀장어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밟아가는 삶의 여정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그 근원인 죽음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이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지만, 여기에 이르는 여정은 각자가 다르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여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뱀장어의 이야기는 놀라운 지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은유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통찰을 ‘믿기’로 한다.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뱀장어와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들은 내게 줄곧 이런 삶의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이 책은 지금 내 삶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발췌문]

"그런 세상에 대한 이해는 뿌리가 끊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을 언급하며- P27

"나는 왜 뱀장어가 매혹의 원천으로 여겨지는지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성격, 본질을 언급하며- P37

"뱀장어가 물고기와 다른 모든 동물을 예외로 만드는 점은 유생단계에서 하는 엄청난 규모의 장거리 이동이다."- P90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 P92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P94


"세상은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부조리한 곳이다.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P96

"모든 문이 당신에게 열려 있지는 않으며,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부족하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라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P102

"너는 뱀장어이니 뱀장어로 돌아갈 것이다."
- 창세기에 나오는 표현- P142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 어쨌든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존중이 필요한 책임이었다. 동물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우리 책임에 대한 존중이."- P158

"뱀장어는 좀처럼 으스대지 않는다. (...) 뱀장어는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먹는다. 뱀장어는 멀찍이서 방관하며,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 뱀장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유난을 떨지 않는다."- P165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생을 시작했듯이, 우리 하나하나가 바다의 축소판인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동일한 삶을 시작한다."- P171

"출생지로 돌아가는 긴 여정은 여전히 대부분의 뱀장어에게 좌절된 열망이었다."- P217

"간단히 말해 어쩌면 뱀장어는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목표 달성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미와 방법을 가진 개체일 수 있다."- P219

"인간이 뱀장어에 가까워질수록, 뱀장어가 우리 생활에 노출될수록, 뱀장어는 빠르게 죽어간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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