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찾은 시간들 -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서점 이야기

 

 

<되찾은: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금호동 서재지기의 창업과 1년 간의 일기]

손에 감기는 아담한 한권을 손에 넣었다. 책의 저자는 서점 주인으로서 소규모 독립출판물 중고도서를 판매하는 서점 루스트의 서재주인장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책의 제목과 서점의 상호는 저자를 닮은 서점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기억으로 거의 20 금호동에 고구마라는 중고서점이 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차례 교과서나 인문과학서적을 구하곤 했던 서점이었는데, 내가 가본 중고서점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중고서점이었다. ‘고구마 보유하던 책이 당시에 20 권이 넘었으니까. 요즘 인기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유하는 수가 평균 3-4 권이라고 ,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 5-6 점에 해당할 만큼 많은 책이 있었다. 당시 고구마 마침 중고서적의 온라인 검색 시스템을 시도했던 곳이었다. 온라인 검색 시스템으로 책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해도, 실제로 책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날씬한 사람만이 지나갈 있었던 책장 사이의 더미들, 복도에 수직으로 쌓인 책을 뒤적뒤적하며 먼지를 털어내고, 마른 기침을 하며 책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런 헌책방이 많이 사라져서 서점의 오래된 책냄새를 맡을 있는 곳이 많이 남아있지않다. 물론 깨끗한 중고서점이 편하고, 검색도 편하지만 원하는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와 비교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고전적인 헌책방에서 책을 구하면 종종 누군가 어느 가을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둔 팔았는지, 마른 나뭇잎이 들어있었다. 누군가 책의 여백 곳에 메모해둔 흔적,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서 말로하기 멋쩍은 마음을 글로 표현해둔 메모를 년이 지난 타인이 발견하고 미소를 짓게 되는 일은 오랜 헌책방이 아니면 이제는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오랜 기억을 더듬어본 이유는 90 , 저자도 역시 헌책방 고구마에서 점원으로 책을 정리하며 일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젠가 그와 나는 각자 찾는 책을 찾느라 분주히 서로를 지나쳤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분명 고구마라는 헌책방에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고구마 이전을 하면서 서점을 관두고 대형 서점에서도 여전히 책과 관련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간의 준비를 마치고, 오래 살던 금호동에 '프루스트의 서재'라는 책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인장을 처음 보고 고구마 듣는 순간 오래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친구의 안부를 전해 들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2015 1월에 서점 문을 처음 열고 1 간의 일기를 이번 <되찾은:시간> 모아 책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쓰기를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이라 말한다. 월세를 내고 14,500원의 순이익이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다음에 많이 팔아야겠네하며 격려해주던 젊은 날의 서점주인을 떠올리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온다. 주인장의 글쓰기는 화려하거나 산만하지 않다. 간결한 표현 속에 정제된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드러내는 것만 같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그의 글과 마음 씀씀이에 호감이 간다. 저자는 아직 개발이 늦은 동네에 조그마한 책방의 문을 , 오히려 책방의 운영을 걱정해주고, 비가 오면 내놓은 책을 비닐로 덮어주거나, 꽃을 놓아두고 가는 이들을 발견한다.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마을은 마음의 여유야 인간미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원한테 막말을 하고, 심지어 자살로 까지 몰아간 강남의 어느 동네를 떠올려보면 아직 이러한 마음씀씀이가 있는 동네가 남아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동네에 조그마한 책방을 열고 생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저자의 고민들이 진솔하게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2015 서점을 열기 , 그리고 열고 1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자신이 뛰어든 서점의 가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왔을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프루스트의 서재' 존재이유를 주인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나는 헌책과 새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거나 잊혀질 생각과 기록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점이 중고책과 독립 출판물이 공존하는 프루스트의서재 존재 이유다.”(63)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견지해나가려는 저자의 노력과 다짐을 느낄 있었다.

 

 

<되찾은:시간>에는 서재 주인이 지난 2015 1 침묵 속에서 남겨둔 기록을 보여주고있다. 단편들이긴 하지만, 일관된 저자만의 생각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매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들의 사연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공간이 되어가는 같아 다행한 마음이 든다. 나라의 인구 절반 가까이가 대도시에 모여살며 파편화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우리는 원래 서로 잇닿아 있는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일을 이런 공간과 사람들이 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서로의 연대 재확인하는 일이 앞으로 필요한 일이며 과제가 같다. 서울의 서쪽 신촌, 홍대 주변에서 이러한 작은 서점이나 공방이 모여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면, 금호동과 같은 서울의 동편에 프루스트의서재 같은 작은 서점들과 공방 등이 새로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는 오늘도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일기를 썻을 것이다. 말주변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좋아한다는 그의 나직하고 정제된 문장을 떠올려보며, 저자의 서재가 운영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덮으니 표지에 그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닮은 정제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책은 사람을 이어준다.

 

결국 책이란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사물이므로 사람을 이어주는 책이야 말로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되찾은:시간> 서점 곳을 알게해준 책뿐만이 아니라, 서재지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어줄 것이다. 조만간 주인장의 안부를 물으러(사실 그가 내려주는 커피 얻어마시러) ‘프루스트의 서재 다시 들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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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의 재발견에 관한 대장정 <바퀴, 세계를 굴리다>

 

 

 

 

 

<바퀴, 세계를 굴리다>

(원제 The Wheels: Inventions & Reinventions )

리처드 불리엣(Richard W. Bulliet) 지음 | 소슬기 옮김 | MiD출판사

 

 

바퀴달린 이동수단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기원전 4000 경에 남겨졌다.

(148)

 

실증적인 1 증거물들에 매달리는 고고학자들과 역시 1 사료에 기반하여 역사학자들은 이와같은 평가를 내린다. 리처드 불리엣은 역사가로서 바퀴라는 대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추적해나가는 역사 탐정과 같은 인상을 준다. 독자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고고학자 내지는 역사 탐정이 것처럼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줄곧 흥미를 자극했다.

 

 

 

(바퀴를 바라보는 가지 형태)

저자가 정리한 가지 형태의 바퀴는 바퀴를 잇는 축과 바퀴가 일체형을 이루어 같이 돌아가는 바퀴 형태인 윤축(wheelset)’, 바퀴가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독립차륜(independently rotating wheel)’, 그리고 캐스터(caster)’라고 하는 수직축과 수평축을 통해 바퀴가 보다 자유도를 가지고 움직일 있는 바퀴가 있다. 역사적으로 윤축을 적용한 사례는 광산에서 사용되어 무거운 석탄 등을 나르던 광차 기차가 예일 것이며, 독립차륜은 마차바퀴, 자동차 바퀴를 연상하면 된다. 이에 더하여 윤축 형태의 바퀴보다 다소 늦게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 동안 인기를 누린 바퀴의 형태는 바로 독립차륜방식의 바퀴로서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바퀴의 형태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앞의 바퀴 형태와는 달리 캐스터’는 가구 이동용 바퀴처럼 개의 수직회전축과 개의 수평회전축을 가진 바퀴의 형태로서 비교적 짧은 역사로서 170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설명대로 바퀴의 형태를 크게 부류로 나누고 나니 길을 가다가도 무심히 유모차는 독립차륜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1개의 중에서 캐스터 관한 장은 마지막 11장에 간단히 언급되므로 사실상 <바퀴, 세계를 굴리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윤축 독립차륜 형태의 바퀴와 관련한 사항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심리전의 중요한 요소로서의 이륜전차)

언젠가 이집트 파라오의 전차(Chariot) 주제로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기억이 있다.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현재 남아있는 유물과 기록들을 토대로 실제 파라오의 전차를 재구성하여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책에서 바퀴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히 마리 말이 이끄는 람세스2세의 이륜전차는 매우 놀라운 기술의 집약체였다. 이제 책을 통해 이집트 파라오의 전차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가 기원전 1600-1200년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의 전차는 당시의 전술에서 실용적인 쓰임 뿐만 아니라 적에게 그리고 아군에게 어떻게 보일지 고려한 심리적 전술의 하나로서 중요한 전쟁 무기였다는 점이었다. 사륜 마차 또는 수레와 달리 비교적 소형의 이륜 마차의 가장 장점은 방향 전환이 보다 용이해짐으로 인하여 전시에 빠르게 적진에 침투하여 치고 빠지는전술이 가능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었다. 다만 저자는 어느 시점에서 전차가 무용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바로 이륜 전차가 조그만 장애물이 있어도 진행에 지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전차의 진행을 방해하고, 말의 발굽을 공격하는 장애물을 던져 설치함으로써 이륜전차의 실용성에 급격한 타격을 입히게 되었던 모양이다. 

 

 

 

(바퀴와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

바퀴를 주제하는 연구자들은 인류역사에서 바퀴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바퀴 자체만으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바라보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인간의 속에서 바퀴가 자체만으로 발전할 잇는 대상이라기 보다는 바퀴가 달린 수레나 마차가 지나갈 있는 길의 인프라 구축 또한 병행해야한다는 점이 먼저 해결되어야 했다. 기원전 3000 전에는 이미 장장 8000 km 이르는 실크로드가 유럽과 중국을 이어주는 대륙 내의 통로로서 활발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기술이 발달해왔던 것은 아니다. 말이 끄는 수레가 주로 다니던 길에는 말발굽에 의해 길의 훼손되거나, 또는 기타 가축의 배설물이 쌓이는 문제가 있었으나 자동차가 발명되고, 좋아진 도로 포장으로 자동차가 더욱 빠르게 보급되자 동물의 배설물이 도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빠르고 편리한 수단을 얻었지만 교통수단이 점점 빨라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오히려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지적한바대로 현대 사회는 반생산성 특징으로 하는 사회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바퀴달린 운송수단이 사회에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있을 것이다.

 

윤축을 기반으로하는 기차는 제한된 길인 선로를 따라 움직인다. 윤축을 사용하는 운송수단은 저자에 따르면 단위거리당 수직거리, 선회반지름의 제약이 따른다. 다시말하면 일정한 수평거리 수직거리의 변화는 동력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윤축에 기반한 운송수단은 독립차륜을 사용하는 수단에 비해 회전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거리를 회전해 가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윤축 운송수단의 제약이 현대의 풍경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달리 표현하면 기차의 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언덕이나 산을 깎아 보다 평평하게 선로를 건설하는 경우를 있다. 이와 더불어 독립차륜 방식에 바탕을 두는 자동차의 발달과 빠른 보급으로 도시 내의 풍경도 새롭게 바뀌었음을 있다. 가지 바퀴의 방식에 기반한 운송수단은 인간의 수직적 환경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평적 환경도 변화시켰다. 다시 말하면 철도는 선로를 중심으로 양쪽의 세계를 나누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저자는 철도가 공동체를 둘로 갈라놓는 결과를 흔히 초래한다’(38)라고 까지 언급하고 있다. 결국 바퀴에 의존한 운송수단은 도시를 비롯한 우리의 삶에 분열적 생태계를 구축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동물이나 사람의 왕래를 우선 방해하고, 철로를 중심으로 쪽은 부유자들이 사는 지역, 다른 쪽은 극빈자들이 모여사는 지역과 같이 우리의 삶을 분열시킨 사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바퀴의 섹시즘 그리고 마차의 유니섹스화)

바퀴에 대한 역사를 더듬어 가면서 눈에 띄는 쟁점하나는 바퀴를 사용한 운송수단이 성에 따른 차별의 역사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도 끊임없이 조롱받는 기사계급의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도 두드러지게 성차별적 요소를 보여주는 같다. 기사계급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사실은 여성 특히 상류층 여성을 억압하는 핵심 계급이 되었던 시대가 중세라고 수도 있겠다. 저자에 다르면 독립차륜방식이었던 마차는 진정한 남성(기사) 말을 타고 이를 호위하는 동안 여성들만의 으로 인식되었고, 마차는 쇠퇴하고 비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5-17세기 중반을 통해 마차혁명이 일어남을 여러 언급하고 있다. 이는 남성들에 의해 비하의 대상이 되었던 마차가 시기 이후 남자 귀족들에 의해 이용되면서 마차가 위상을 회복한 계기로 파악해볼 있다. 다시말하면 마차가 더이상 여성들의 전유물 되지 않고, 유니섹스화 되었던 계기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이쯤에서 나의 놀라움이 끝나지 않는다. 중세 유럽의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비해,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여성 받지 않았던 구속으로서 여성이 유목 민족 사이에서 고유한 역할 마을의 수레를 책임짐 수행하였다. 다시말하면 중세 유럽 여성들이 억압을 두드러지게 받게된 시기는 기사도의 흥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세 유럽 여성들(특히 귀족 여성들) 기사도와 중세 기독교의 억압에 받기 시작했다면,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여성이 억압을 받게 되는 계기는 산업혁명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봐야할 같다. 나는 바퀴에 관한 마차혁명의 계기가 유럽의 흑사병 이후, 달라진 인본주의적 관념 또한 중세시대 여성들 만의 것으로 여겨지던 마차 타는 남성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로지스틱 곡선으로 대변되는 혁신의 전파 그래프에서 저자가 전하듯, 중세가 끝나던 시키의 마차의 출현 바퀴와 관련한 운송수단의 기술변화와 무관하다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보다 중요한 관점은 유럽의 (상류층)남성이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바라보는 태도/관점의 변화에 기인한다’(188) 하는 점이다. 이는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에서 어떠한 종류의 세계관의 변화가 이루어 졌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저자 리처드 불리엣은 이러한 배경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 요소로서 다소 엉뚱하게 화약무기의 개발에 관여한 헝가리 기술자를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흥미롭게 읽어나가다가 저자의 주장을 만나니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없었다. 저자가 ‘1450-1650 사이에 유럽에서의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라고 물을 , 나는 엉뚱하기는 하지만 좀더 포괄적인 역사를 떠올려보았다. 나의 엉뚱한 생각은 유럽의 흑역사, 흑사병의 출현 닿았다. 근거로 유럽에서는 1340년대 흑사병의 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 해당하는 2500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고 한다. 하나의 사건은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던 신의 시대에 신의 권위에 대한 의혹을 조금이라도 품게 하지 않았을까? 마을이 흑사병으로 몰살당하고, 한명이 혼자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본다. 그럼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모두 빼앗아간 신을 원망하지 않을까. ‘흑사병 유럽에 미친 영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흑사병의 유행을 거쳐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좀더 많은 확률적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이는 확률 기반으로하여 혁신의 전파 양상을 보여준다는 로지스틱 곡선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보다 적은 생존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와 빠른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기가 바로 흑사병이 잦아든 이후의 유럽이 아닐까. 

 

 

 

(바퀴와 오리엔탈리즘)

미국의 역사학자인 저자에게서 동양에 대한 편견을 읽어내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히려 중동역사를 전공한 저자가 바퀴에 얽힌 솔직한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재확인해본다. 중국의 외바퀴 수레 아니라 일본의 인력거에 대한 서양인의 반응은 혐오감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아시아인으로서 나는 오히려 소가 끄는 수레를 주거지로 사용하며 마을을 구성하는’(168) 알란족훈족 (169), 그리고 몽고의 무자비한 침략을 받았던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과 혐오의 연장선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시말하면 유럽인이 인력거에 혐오감을 드러내었다라기보다, 유럽인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혐오의 대상을 인력거라는 사물을 통해 드러내었다라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바퀴, 세계를 굴리다(원제: The Wheels: Inventions& Reinventions)> 바퀴 달린 운송수단의 5500년의 역사를 독자에게 흥미롭게 보여준다. 책의 방점은 아마도 윤축 독립차륜사이에 벌어진 운송수단의 경쟁과 인간의 삶에 영향에 있다고 있겠다. 특히나 책에서 마차혁명이라는 개념은 가장 중요한 모티프일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마차혁명 주로 염두해 두며 다음과 같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고려요소들 사이의 여러 가지 상호 연관성을 분명히 하면서, 바퀴의 이야기는 발명이 누가 무엇을 처음으로 생각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260)

이와 관련하여 책의 부제가 발명(inventions) 그리고 재발명(reinventions)’이라는 점에 다시 주목해본다. 이렇게 부제를 붙인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고 보니, 기존의 것에 대해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좀더 구체적으로 퍼즐을 맞추어보면 바퀴의 재발명이라는 것은 바퀴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마차혁명 심리적 성격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해주는 것으로 파악해도 것이다. 바퀴의 역사와 흑역사 살펴봄으로써 좀더 보편적으로 얻은 교훈은 우리 인류의 역사는 일종의 편견을 가진 지배자의 역사였다는 ,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편견을 깨고 변화해간 도전자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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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할 수 있는 자유'를 돌아본다

 

<사피엔스의 미래>

(Do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

Alain de Boton | Malcolm Gladwell | Steven Pinker | Matt Ridley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얇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2015 11 캐나다 토론토에서 벌어진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라는 토론회의 일환으로 참여한 이들의 면모도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에 대한 주제 역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토론회는 캐나다 금광 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피터 멍크와 멜라니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 부터 열어온 프로젝트라고 한다. 기업가와 재단이 이러한 공공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점에 주목을 해본다.

 

우선 길지 않은 토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론 참가자일 것이다. 책에 제공된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 내용을 재정리해보겠다. 우선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는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리들리(Matt Ridely)이다. 스티븐 핑커 캐나다 출생으로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과학자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두꺼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폭력성이 얼마나 감소해왔는가, 우리는 꾸준히 진보한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시사하여 토론의 참가자로 선정되었을 법하다. 한편 리들리 영국 출생의 과학저술가, 사업가, 저널리스트로서 영국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물학으로 박사를 받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게놈>이라는 책을 통해 많이 알려진 과학 저술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물음에 낙관적이지 않다라는 입장을 가진 토론 참여자는 알랭 보통(Alain de Botton)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다. 알랭 보통 스위스 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던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나 국내에 알려진 작가로서 지적인 유머와 철학을 겸한 글쓰기로 많은 팬이 있다.  말콤 글래드웰 영국 출생으로 캐나다 토론토 대학과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미국 <워싱턴 포스트> 경제부 과학부 기자를 거쳐 <뉴요커> 기자로 활동하며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지만, 아마도 국내에는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통해 <1 시간의 법칙> 관련한 붐을 타고 알려진 작가이다.

 

가만히 참가자들의 면모를 보면 구성이 자뭇 흥미롭다. 우선 토론 참여자들에 관한 관찰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면, 인류의 낙관적 미래에 ‘YES’라고 말하는 이들(이하 ‘YES’) 모두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험과학에 충실한 과학자들이며 넓게 보면 서양의 계몽주의적 관점의 계승자라고 하겠다. 반면 ‘NO’라고 말하는 토론자(이하 ‘NO’)들은 모두 역사학을 공부하여 인문적 시각을 갖고 있다. 토론 중에 참가자들이 서로의 외모에 대해 놀리는 발언과 이에 대한 재치있는 응수를 하기도 하는데, 알랭 보통과 상대편의 매트 리들리는 대머리이고 말콤 글래드웰과 스티븐 핑커는 곱슬머리이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토론 중에 어리석을 정도로 낙천적인 캐릭터인 폴리아나 부부’(‘YES’팀을 빗댐),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그리스 신화의 공주 이름을 카산드라 부부’ (‘NO’팀을 빗댐)라고 서로를 부르며 조롱하기까지 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YES’팀의 출생연도는 모두 50 대이며, ‘NO’팀의 출생연도는 모두 60년대라는 점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나오듯이 시대에 따른 분위기와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마도 50 대에는 인류가 전쟁을 겪으면서 과학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가 크던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전후 세대의 미래에 대한 낙관, 희망을 갖는 분위기도 한몫 했을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60 대의 서구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히피문화 68혁명, 베트남 반전 분위기 등의 영향을 받고, 모순된 감정과 삶의 질에 대해 더욱 숙고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적게는 5 가장 크게는 15살의 나이 차가나는 명의 토론 참가자들은 알랭 보통이 스위스 출생이라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모두 영국, 미국 동부, 캐나다에서 공부하거나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개인을 이해하는 참고가 있을 것이다. 서두가 다소 길었지만, ‘인간은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라는 명제를 인정한다면, 개개인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토론에서 참가자들이 주장하는 태도와 근거를 이해하는 분명히 도움이 것이다.  

 

책의 본문 구성은 멍크 디베이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시작으로 토론의 본격적인 내용을 전한다. 그리고나서 2장에서는 토론의 사회자인 러디어드 그리피스가 토론 참가자들을 토론 직전에 개별적으로 만나서 나눈 짧은 대화록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정부 산하 기관의 연구원인 앨리 와인이라는 사람이 전문가 논평을 덧붙인다. 나는 토론 개별 대화록인 2장을 먼저 읽었다. 토론 중에 대화가 끊기는 염려 없이 참가자들의 관점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본론인 1장을 읽고 3장의 전문가 논평 순으로 읽어나갔다. 토론을 여기서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토론의 주제에 관한 입장은 앞에서 개개인의 참가자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토론에서 내가 주목하게 점들을 위주로 생각해본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데이터, 수치에 의존하여 과학적인 접근을 보여준YES

우선 ‘YES’팀의 경우,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는 과학자 답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데이터 수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점을 있다. 말하자면 부인할 없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매트 리들리가 저는 배가 고프며서 불행한 것보다는 먹으면서 불행한 상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중요합니다.”(84)이라고 말한 것에서 이들이 주장하는 태도의 방향성을 엿볼 있다. 아울러 스티븐 핑커가 저술한 1400페이지에 달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있듯이, 300페이지에 가까운 참고문헌과 주석만 보더라도 저자의 수치, 데이터, 증거 대한 신뢰를 엿볼 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핑커의 데이터 그리고 과학에 대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믿음, 나아가 신앙과도 같은 태도를 토론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있었다. 단적으로 핑커가 세계의 운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실과 수치를 살펴보는 ”(35)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핑커나 리들리는 인류가 낙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데에 가시적으로 보여줄 있는 빈곤국가의 경제변화 공통적으로 주목한다. 핑커가 언급한 아프리카의 경제 기적이라는 표현처럼, 현재의 선진국에서 둔화되고 있는 경제 발전 지표를 제시하기보다 과학과 세계무역의 역할로 인하여 세계 극빈층이 이제는 10% 불과한다는 점을 이들의 희망에 대한 근거로 든다. 핑커와 리들리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과학적 지식과 경험의 축적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 ‘의심하는 자유 보여준 인문학적 접근을 보여준 'NO'

‘NO’팀의 참가자는 의심하는 이다. 통계적인 데이터의 허점을 지적하고, 데이터에 제시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 주목한다. 이들의 경우 미래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는 않는다. 다만 누구나 인정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혜택을 받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그와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노출되어있다는 입장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미래에 대해 나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며 다만 미래의 세상은 달라질 것이며 좋아질지 아닌지 알수없다라는 다소 불가지론적 입장을 내비친다. ‘NO’팀은 다소 온건적이긴 하지만, 과학기술자와 경제학자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 광고 번쯤 멈추어서 의심하고 의문을 가져보아야한다라는 입장이 보다 적절한 설명이라고 하겠다. ‘YES’팀의 핑커와 리들리가 절대빈곤 개선한 대한 데이터에 주목하고 있다면, ‘NO’팀은 상대적빈곤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선진국의 하나인 스위스에서 살았던 알랭 보통은 절대적 빈곤이 해결된 국가에서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라고 전한다. 다시말하면 경제성장 지표에 나타나지 않는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가 제시한 인류진보의 10가지 증거(평균수명 증가, 보건 향상, 절대빈곤 퇴치, 평화, 안전, 자유, 지식의 축적, 인권, 성평등, 지능) 들어 인류의 미래는 기본적으로 희망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알랭 보통은 소설(<안나 카레니나>) 나오는 어떤 인물도 핑커씨가 이야기한 10가지 때문에 고통을 받지는 않습니다. ”(92)라며 이에 제동을 건다. 알랭 보통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뇌를 결함있는 호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한다고 말한다. ‘NO’ 관점을 간단히 표현해보자면 다음과 같이 알랭 보통이 정리한 대목을 보면 것이다. “우리가 존재의 가혹한 사실들을 정면으로 적절하게 직시할 있을 비로소 문제에 대처할 있는 어떤 낙천성과 능력을 가질 있다.”(154) 이들의 견해를 부정적시각이라 일축할 있겠지만, 자신은 낙담주의자나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유쾌한 현실주의자라고 알랭 보통이 말하 것처럼 우리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기후문제에 관해

가지 놀라웠던 점은 스티븐 핑커의 태도였다. 핑커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과학자로서 독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도, 자신이 제시하는 데이터의 대부분은 경제학자 제시하는 견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문제 토론의 화제로 떠올랐을 , 스티븐 핑커는 기후문제는 절대적으로 경제문제다”(99) 라고 단언한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야만 문제를 해결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국제 탄소세 제도 시행하여 저탄소 에너지원을 사용하도록 유도할 있다고 말한다. 리들리는 기후문제의 해법을 벌금 부과하여 문제를 억제할 있다고 보는 견해와 다를바 없다. 이에 대해 말콤 글래드웰이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선, 첫째 경제학자들이라고요? 도대체 어떤 상상의 세계에 살고 계시길래, 우리 삶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구할 번째 집단으로 경제학자들을 떠올릴 수가 있는 거죠? ”(81) 스티븐 핑커가 경제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말콤 글래드웰이 얼마나 경악했을지 생생히 느낄 있다. 전세계적인 문제에 관한 해법으로 경제학자의 견해를 언급한 점은 다소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수치와 데이터에 대한 태도를 고려하면 이해가되는 부분이다.

 

정리하면 기후문제에 관해 핑커나 리들리는 어떤 지구적/경제적 규제를 통해 구조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있다. 물론 이들이 토론회에서 기후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방향을 제시하였다. 반면 글래드웰과 보통은 앞으로의 기후변화 과거의 기후변화에 의한 인류의 피해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위협을 내포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물론 이들은 ‘YES’팀과 같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앞으로 맞이하게될 기후변화 자연의 변화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을 의미하므로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하고자 하였다.   



상호연결성과 세계무역에 대해

세계의 상호연결성에 대해 팀이 보여주는 상반된 관점은 흥미롭다. 마치 컵에 물이 반이 있을 , 가지 상반된 태도로 물이 반이나 차있다라고 하는 것과, ‘물이 반밖에 없다라고 반응하는 것과 유사하다. ‘YES’팀은 상호연결성을 현대사회의 긍정적 특성으로 바라본다. 상호연결적 특성으로 혼란에 빠질 있는 소동을 견대게 하는 방법을 마련할 있다’(핑커)라고 밝히거나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이전보다 빨리 교차 배양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해법을 찾아 있다.’(리들리, 181)라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세계의 연결성이 커지면서 붕괴 위험에 대한 취약성이 낮아진다라는 입장이다.

 

반면 ‘NO’팀은 오히려 상호연결성으로 인한 새로운 위협을 우려한다. ‘디지털 911’ 같이 네트워크를 통한 교통장애와 같은 위협,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IS테러활동의 증가 등을 언급한다. 자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전지구적인 생존 위협을 예로 들었다. 글래드웰은 이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위험입니다’ (68)라고 말한다. 토론 중에 ‘NO’팀은 상대방의 논리적 취약점을 지적하고 비판적인 관점으로 일관했지만, ‘YES’팀은 상대방이 지적하는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부인하기 힘든 데이터와 수치를 근거로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한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간의 의견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던 부분은 세계무역에 관한 ‘YES’팀의 신조였다. 매트 리들리는 국제무역덕분에 국제 기근이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해짐(97) 언급했다. 어느 지역에 기근이 발생한다고 해서 지역 사람들이 대거 사망하지는 않을 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지구적인 상호연결성의 증가와 맞물려 세계무역의 증가는 인류의 생존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신념을 드러내었다. 아울러 명의 불가리아 꼬마 해커가 전력망을 교란시킨 예를 말콤 글래드웰의 우려에 대한 문제점은 바로 무시한 , 전지구적으로 아직도 10 명이나되는 사람들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논점을 회피하곤 하였다. 다시 말하면 ‘YES’팀의 경우는 양면적일 있는 과학기술과 지식의 축적에 대해 기능에 대한 우려는 회피한 , 오직 기능만을 풍부한 데이터, 통계적 수치를 이용하여 주장하는 전략을 취한다.          

 

나의 논평

내가 생각하는 토론이란 진실의 여부를 따지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얼마나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상대방의 논리를 격파하는가가 주요한 활동이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핑커와 리들리의 주장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할 있겠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데이터와 수치에 대해 반박하기 힘들다는 점은 사실이다. 반면 인문학적인 접근 태도로 상대팀의 견해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NO’팀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과학과 물질적 진보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신척 측면에서도 논의해야한다는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YES’팀이 주도하던 논제를 전환하려고 시도했던 같다. 토론 주제에 대한 투표결과 찬성이 71%였던 것이 토론 73% 소폭 상승한 것은 아마도 뚜렷한 예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YES’팀의 전략이 성공적이었으며 ‘NO’팀의 노력이 다소 역부족이었다라고 보인다.

 

토론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영양에 대한 관점으로 얘기해볼 있다. ‘YES’팀은 우리의 건강과 관련하여 음식물의 영향을 고려할 , 거시적인 영양 칼로리에 의존하여 건강을 관리하려는 접근방식 같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칼로리가 얼마가 되는지, 비만 상태가 되지 않도록 식단을 칼로리에 초점을 맞추어 건강한 식단을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칼로리라는 평가항목 이외에 수많은 영양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은 누구나 것이다. ‘NO’팀은 뚜렷하게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음식의 영양을 생각할 미시적인 영양, 소량이긴 하지만 우리 몸에 필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