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수 있는 자유'를 돌아본다

 

<사피엔스의 미래>

(Do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

Alain de Boton | Malcolm Gladwell | Steven Pinker | Matt Ridley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얇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2015 11 캐나다 토론토에서 벌어진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라는 토론회의 일환으로 참여한 이들의 면모도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에 대한 주제 역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토론회는 캐나다 금광 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피터 멍크와 멜라니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 부터 열어온 프로젝트라고 한다. 기업가와 재단이 이러한 공공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점에 주목을 해본다.

 

우선 길지 않은 토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론 참가자일 것이다. 책에 제공된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 내용을 재정리해보겠다. 우선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는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리들리(Matt Ridely)이다. 스티븐 핑커 캐나다 출생으로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과학자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두꺼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폭력성이 얼마나 감소해왔는가, 우리는 꾸준히 진보한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시사하여 토론의 참가자로 선정되었을 법하다. 한편 리들리 영국 출생의 과학저술가, 사업가, 저널리스트로서 영국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물학으로 박사를 받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게놈>이라는 책을 통해 많이 알려진 과학 저술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물음에 낙관적이지 않다라는 입장을 가진 토론 참여자는 알랭 보통(Alain de Botton)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다. 알랭 보통 스위스 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던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나 국내에 알려진 작가로서 지적인 유머와 철학을 겸한 글쓰기로 많은 팬이 있다.  말콤 글래드웰 영국 출생으로 캐나다 토론토 대학과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미국 <워싱턴 포스트> 경제부 과학부 기자를 거쳐 <뉴요커> 기자로 활동하며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지만, 아마도 국내에는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통해 <1 시간의 법칙> 관련한 붐을 타고 알려진 작가이다.

 

가만히 참가자들의 면모를 보면 구성이 자뭇 흥미롭다. 우선 토론 참여자들에 관한 관찰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면, 인류의 낙관적 미래에 ‘YES’라고 말하는 이들(이하 ‘YES’) 모두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험과학에 충실한 과학자들이며 넓게 보면 서양의 계몽주의적 관점의 계승자라고 하겠다. 반면 ‘NO’라고 말하는 토론자(이하 ‘NO’)들은 모두 역사학을 공부하여 인문적 시각을 갖고 있다. 토론 중에 참가자들이 서로의 외모에 대해 놀리는 발언과 이에 대한 재치있는 응수를 하기도 하는데, 알랭 보통과 상대편의 매트 리들리는 대머리이고 말콤 글래드웰과 스티븐 핑커는 곱슬머리이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토론 중에 어리석을 정도로 낙천적인 캐릭터인 폴리아나 부부’(‘YES’팀을 빗댐),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그리스 신화의 공주 이름을 카산드라 부부’ (‘NO’팀을 빗댐)라고 서로를 부르며 조롱하기까지 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YES’팀의 출생연도는 모두 50 대이며, ‘NO’팀의 출생연도는 모두 60년대라는 점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나오듯이 시대에 따른 분위기와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마도 50 대에는 인류가 전쟁을 겪으면서 과학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가 크던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전후 세대의 미래에 대한 낙관, 희망을 갖는 분위기도 한몫 했을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60 대의 서구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히피문화 68혁명, 베트남 반전 분위기 등의 영향을 받고, 모순된 감정과 삶의 질에 대해 더욱 숙고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적게는 5 가장 크게는 15살의 나이 차가나는 명의 토론 참가자들은 알랭 보통이 스위스 출생이라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모두 영국, 미국 동부, 캐나다에서 공부하거나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개인을 이해하는 참고가 있을 것이다. 서두가 다소 길었지만, ‘인간은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라는 명제를 인정한다면, 개개인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토론에서 참가자들이 주장하는 태도와 근거를 이해하는 분명히 도움이 것이다.  

 

책의 본문 구성은 멍크 디베이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시작으로 토론의 본격적인 내용을 전한다. 그리고나서 2장에서는 토론의 사회자인 러디어드 그리피스가 토론 참가자들을 토론 직전에 개별적으로 만나서 나눈 짧은 대화록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정부 산하 기관의 연구원인 앨리 와인이라는 사람이 전문가 논평을 덧붙인다. 나는 토론 개별 대화록인 2장을 먼저 읽었다. 토론 중에 대화가 끊기는 염려 없이 참가자들의 관점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본론인 1장을 읽고 3장의 전문가 논평 순으로 읽어나갔다. 토론을 여기서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토론의 주제에 관한 입장은 앞에서 개개인의 참가자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토론에서 내가 주목하게 점들을 위주로 생각해본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데이터, 수치에 의존하여 과학적인 접근을 보여준YES

우선 ‘YES’팀의 경우,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는 과학자 답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데이터 수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점을 있다. 말하자면 부인할 없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매트 리들리가 저는 배가 고프며서 불행한 것보다는 먹으면서 불행한 상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중요합니다.”(84)이라고 말한 것에서 이들이 주장하는 태도의 방향성을 엿볼 있다. 아울러 스티븐 핑커가 저술한 1400페이지에 달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있듯이, 300페이지에 가까운 참고문헌과 주석만 보더라도 저자의 수치, 데이터, 증거 대한 신뢰를 엿볼 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핑커의 데이터 그리고 과학에 대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믿음, 나아가 신앙과도 같은 태도를 토론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있었다. 단적으로 핑커가 세계의 운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실과 수치를 살펴보는 ”(35)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핑커나 리들리는 인류가 낙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데에 가시적으로 보여줄 있는 빈곤국가의 경제변화 공통적으로 주목한다. 핑커가 언급한 아프리카의 경제 기적이라는 표현처럼, 현재의 선진국에서 둔화되고 있는 경제 발전 지표를 제시하기보다 과학과 세계무역의 역할로 인하여 세계 극빈층이 이제는 10% 불과한다는 점을 이들의 희망에 대한 근거로 든다. 핑커와 리들리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과학적 지식과 경험의 축적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 ‘의심하는 자유 보여준 인문학적 접근을 보여준 'NO'

‘NO’팀의 참가자는 의심하는 이다. 통계적인 데이터의 허점을 지적하고, 데이터에 제시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 주목한다. 이들의 경우 미래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는 않는다. 다만 누구나 인정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혜택을 받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그와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노출되어있다는 입장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미래에 대해 나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며 다만 미래의 세상은 달라질 것이며 좋아질지 아닌지 알수없다라는 다소 불가지론적 입장을 내비친다. ‘NO’팀은 다소 온건적이긴 하지만, 과학기술자와 경제학자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 광고 번쯤 멈추어서 의심하고 의문을 가져보아야한다라는 입장이 보다 적절한 설명이라고 하겠다. ‘YES’팀의 핑커와 리들리가 절대빈곤 개선한 대한 데이터에 주목하고 있다면, ‘NO’팀은 상대적빈곤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선진국의 하나인 스위스에서 살았던 알랭 보통은 절대적 빈곤이 해결된 국가에서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라고 전한다. 다시말하면 경제성장 지표에 나타나지 않는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가 제시한 인류진보의 10가지 증거(평균수명 증가, 보건 향상, 절대빈곤 퇴치, 평화, 안전, 자유, 지식의 축적, 인권, 성평등, 지능) 들어 인류의 미래는 기본적으로 희망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알랭 보통은 소설(<안나 카레니나>) 나오는 어떤 인물도 핑커씨가 이야기한 10가지 때문에 고통을 받지는 않습니다. ”(92)라며 이에 제동을 건다. 알랭 보통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뇌를 결함있는 호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한다고 말한다. ‘NO’ 관점을 간단히 표현해보자면 다음과 같이 알랭 보통이 정리한 대목을 보면 것이다. “우리가 존재의 가혹한 사실들을 정면으로 적절하게 직시할 있을 비로소 문제에 대처할 있는 어떤 낙천성과 능력을 가질 있다.”(154) 이들의 견해를 부정적시각이라 일축할 있겠지만, 자신은 낙담주의자나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유쾌한 현실주의자라고 알랭 보통이 말하 것처럼 우리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기후문제에 관해

가지 놀라웠던 점은 스티븐 핑커의 태도였다. 핑커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과학자로서 독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도, 자신이 제시하는 데이터의 대부분은 경제학자 제시하는 견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문제 토론의 화제로 떠올랐을 , 스티븐 핑커는 기후문제는 절대적으로 경제문제다”(99) 라고 단언한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야만 문제를 해결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국제 탄소세 제도 시행하여 저탄소 에너지원을 사용하도록 유도할 있다고 말한다. 리들리는 기후문제의 해법을 벌금 부과하여 문제를 억제할 있다고 보는 견해와 다를바 없다. 이에 대해 말콤 글래드웰이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선, 첫째 경제학자들이라고요? 도대체 어떤 상상의 세계에 살고 계시길래, 우리 삶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구할 번째 집단으로 경제학자들을 떠올릴 수가 있는 거죠? ”(81) 스티븐 핑커가 경제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말콤 글래드웰이 얼마나 경악했을지 생생히 느낄 있다. 전세계적인 문제에 관한 해법으로 경제학자의 견해를 언급한 점은 다소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수치와 데이터에 대한 태도를 고려하면 이해가되는 부분이다.

 

정리하면 기후문제에 관해 핑커나 리들리는 어떤 지구적/경제적 규제를 통해 구조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있다. 물론 이들이 토론회에서 기후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방향을 제시하였다. 반면 글래드웰과 보통은 앞으로의 기후변화 과거의 기후변화에 의한 인류의 피해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위협을 내포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물론 이들은 ‘YES’팀과 같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앞으로 맞이하게될 기후변화 자연의 변화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을 의미하므로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하고자 하였다.   



상호연결성과 세계무역에 대해

세계의 상호연결성에 대해 팀이 보여주는 상반된 관점은 흥미롭다. 마치 컵에 물이 반이 있을 , 가지 상반된 태도로 물이 반이나 차있다라고 하는 것과, ‘물이 반밖에 없다라고 반응하는 것과 유사하다. ‘YES’팀은 상호연결성을 현대사회의 긍정적 특성으로 바라본다. 상호연결적 특성으로 혼란에 빠질 있는 소동을 견대게 하는 방법을 마련할 있다’(핑커)라고 밝히거나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이전보다 빨리 교차 배양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해법을 찾아 있다.’(리들리, 181)라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세계의 연결성이 커지면서 붕괴 위험에 대한 취약성이 낮아진다라는 입장이다.

 

반면 ‘NO’팀은 오히려 상호연결성으로 인한 새로운 위협을 우려한다. ‘디지털 911’ 같이 네트워크를 통한 교통장애와 같은 위협,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IS테러활동의 증가 등을 언급한다. 자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전지구적인 생존 위협을 예로 들었다. 글래드웰은 이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위험입니다’ (68)라고 말한다. 토론 중에 ‘NO’팀은 상대방의 논리적 취약점을 지적하고 비판적인 관점으로 일관했지만, ‘YES’팀은 상대방이 지적하는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부인하기 힘든 데이터와 수치를 근거로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한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간의 의견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던 부분은 세계무역에 관한 ‘YES’팀의 신조였다. 매트 리들리는 국제무역덕분에 국제 기근이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해짐(97) 언급했다. 어느 지역에 기근이 발생한다고 해서 지역 사람들이 대거 사망하지는 않을 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지구적인 상호연결성의 증가와 맞물려 세계무역의 증가는 인류의 생존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신념을 드러내었다. 아울러 명의 불가리아 꼬마 해커가 전력망을 교란시킨 예를 말콤 글래드웰의 우려에 대한 문제점은 바로 무시한 , 전지구적으로 아직도 10 명이나되는 사람들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논점을 회피하곤 하였다. 다시 말하면 ‘YES’팀의 경우는 양면적일 있는 과학기술과 지식의 축적에 대해 기능에 대한 우려는 회피한 , 오직 기능만을 풍부한 데이터, 통계적 수치를 이용하여 주장하는 전략을 취한다.          

 

나의 논평

내가 생각하는 토론이란 진실의 여부를 따지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얼마나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상대방의 논리를 격파하는가가 주요한 활동이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핑커와 리들리의 주장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할 있겠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데이터와 수치에 대해 반박하기 힘들다는 점은 사실이다. 반면 인문학적인 접근 태도로 상대팀의 견해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NO’팀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과학과 물질적 진보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신척 측면에서도 논의해야한다는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YES’팀이 주도하던 논제를 전환하려고 시도했던 같다. 토론 주제에 대한 투표결과 찬성이 71%였던 것이 토론 73% 소폭 상승한 것은 아마도 뚜렷한 예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YES’팀의 전략이 성공적이었으며 ‘NO’팀의 노력이 다소 역부족이었다라고 보인다.

 

토론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영양에 대한 관점으로 얘기해볼 있다. ‘YES’팀은 우리의 건강과 관련하여 음식물의 영향을 고려할 , 거시적인 영양 칼로리에 의존하여 건강을 관리하려는 접근방식 같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칼로리가 얼마가 되는지, 비만 상태가 되지 않도록 식단을 칼로리에 초점을 맞추어 건강한 식단을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칼로리라는 평가항목 이외에 수많은 영양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은 누구나 것이다. ‘NO’팀은 뚜렷하게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음식의 영양을 생각할 미시적인 영양, 소량이긴 하지만 우리 몸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영양분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려고 한다. 동일한 400칼로리의 식단이라도 햄버거나 스테이크로 이루어진 400칼로리와 과일, 채소 그리고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골고루 포함된 400칼로리 식단은 분명 다르다.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은 우리의 근육이나 골격을 형성하는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력을 키우고,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를 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YES’팀의 경우, 이전에는 100칼로리도 안되는 식단으로 연명하던 전세계 극빈층에 400칼로리의 햄버거를 먹을 있게 해주었다, 따라서 이는 진보이며 앞으로도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NO’팀은 우리가 400칼로리의 식단을 누구나 먹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성인병을 예방하고 올바른 식단에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영양분을 접할 있어야하고, 여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입장이라고 있겠다. 아울러 그런 관점에서 이들은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를 개선한 지표에 초점을 ‘YES’팀의 경우와, 상대적 빈곤의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었던 ‘NO’팀의 견해 차를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을 공부한 ‘YES’팀과 역사학을 공통적으로 공부했던 ‘NO’팀의 견해를 고려하면, 토론에서 다른 토론 주제를 이끌어낼 있지 않을까한다. 바로 진보라는 개념에 관해서인데, 우리가 과학에서 진보라는 개념을 적용하지만, 과연 역사에 있어서 진보라는 개념을 적용할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YES’ 처럼 교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데이터, 수치에 대한 태도를 고려하면 이들에게 역사는 진보하는 대상이다. 반면 오히려 역사학을 공부한 ‘NO’팀의 경우,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태도를 지닌 ‘NO’팀의 경우, 나는 의심하는 자유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반면 ‘YES’팀은 과학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지만, 철학적인 의문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그런데도 토론의 승패는 ‘YES’팀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토론에서 토론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하는 반문이 든다. 오히려 이러한 승패나누기로 인하여, ‘YES’팀의 주제 회피하기 방식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며, 보다 포괄적인 논의(과학적, 물질적인 대상 뿐아니라 정신적인 대상에 대한 논의) 있었을 가능성이 제한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 장의 전문가 논평에서는 앨리 와인이라는 사람의 논평이 짦막하게 곁들여진다. 앨리 와인의 배경을 보면 정부 산하 안보 연구원이라는 직책이 암시하듯, 다소 조심스럽긴 하지만 결국 ‘YES’팀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 언급하며, 여기에 나온 결론과 데이터를 제시해주지만, 말콤 글래드웰이나 알랭 보통의 책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스티븐 핑커의 책에 나온 게이츠의 찬사처럼 앨리 와인도 핑커의 책을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인류의 폭력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안보 연구원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아쉬운 점은 ‘NO’팀의 가치를 좀더 조명해줄 있는 다른 전문가의 논평이 곁들어져서 논평이 서로 균형을 이루었으면 어땠을가 하는 점이다. 스티븐 핑커가 무한한 신뢰를 보낸 경제학자들과 금광 재벌이 마련한 토론회는 기본적으로 핑커나 리들리의 견해에 더욱 친화적이지 않을까하는 점도 지적해볼 있겠다.

 

토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토론 참가자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알랭 보통이나 말콤 글래드웰이 바로 앞에서 흥분하며 상대방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는 흥미진진하고 속도감있게 토론의 진행과정을 따라 갔던 같다. 아울러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수많은 자료와 데이터를 근거로 내린 결론이 우리의 폭력성이 감소했다라는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는데, 토론을 따라가다보니 핑커의 면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토론의 주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우리 사회에서 논의할 분위기나 여지가 될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당장 우리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우리는 너무나 바빠보인다. 금광 재벌이 기획한 토론회라는 점도 주목해볼만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문조차도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것은 아닐까 반문해본다. ‘의심할 있는 자유 마련되어있지 않은 사회에서 2 최순실이 등장하여 나라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나타날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양상으로 언제나 되풀이될테니까.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는 일의 효용도 바로 개인으로서 의문을 갖는 능력 키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역자의 역할에 대해

역자가 서두에서 토론의 쟁점을 정리하고 적극적으로 텍스트의 전면에 개입한 점에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든다. 책을 읽기 , 토론 참가자의 배경을 보고 토론 개별적인 인터뷰가 실린 2장을 보고 들었던 생각들이 서두에서 역자가 정리해두어 토론 참가자들이 하는 발언에 대해 더욱 이해가 잘되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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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신간]<낯선 이와 느린 춤을>: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원제: Slow Dancing with a Stranger: Lost and Found in the Age of Alzheimer’s)

메릴 코머(Meryl Comer) 지음 | 윤진 옮김 | MiD

 

 

 

공교롭게도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읽기 시작한 , 옆지기의 회사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컴퓨터 대의 하드드라이브가 사라져버렸다’. 컴퓨터는 하드드라이브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모든 데이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내는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컴퓨터 기사의 답변만 들을 있었다고 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만, 컴퓨터 시스템의 경우 우리는 미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백업 해둘 있다는 점이 사람과 다르다. 만물의 영장을 가능하도록 해준 뇌신경의 가소성 백업 복구 불가능한 원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책의 뒷표지에는 치매를 예방하려면 읽고 쓰고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한다.’라고 조언한 추천사도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치매의 경우에 도움이 되는 말일 있으나, 책의 저자인 메릴 코머의 남편 하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하비는 저명한 의학박사로서 수십년 끊임없이 읽고 쓰고 꾸준히 머리를 써왔을터이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은 경력의 정점에 올라있던 가장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아마 추천사를 썼던 분은 책을 읽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조발성 알츠하이머성 치매. 병은 비교적 이른시기에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치료법은 현재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이 퇴행해가며 인간이 구축해 놓은 인격, 정체성, 추억 모든 것을 백지화해버리는 병이었다. ‘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했던가. 책을 읽기 전까진 나는 치매의 문제가 그저 개인의 문제로만 받아들였던 같다. <낯선 이와 느린 춤을>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남편을 옆에서 간호하며 절절히 적어내려간 간병기이며, 하비의 병은 결코 개인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음을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하비의 알츠하이머병에 관하여]

하비가 병에 걸리고 10 뇌사진으로부터 알아낸 사실은 기간동안 뇌가 현저히 위축되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노인반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이상 침착물이 존재하였으며, ‘신경섬유 농축체라고 하는 타우단백질이 비이상적으로 형성된 섬유다발이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나이가 많이 들어 뇌에 특별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노인의 경우, 뇌신경의 퇴행과 더불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이야기하곤한다. 그러나 하비의 경우에는 누구보다도 뇌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였으며, 나이에 비해 일찍 병을 얻었다. 조발성 알츠하이며병진단을 받은 하비는 생활습관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유전적인 문제로 봐야할 것이다. 희귀한 유전 질환 사례를 기술했던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에서와 같이 개인의 유전자 내부의 특정 위치에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 돌연변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단백질합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나아가 비정상적으로 합성된 단백질의 다발이 재생이 불가능한 뇌세포를 영구적으로 손상시킴으로서 뇌가 관여하는 모든 기능을 상실해나가는 모양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일관되게 저술해간 기록]

우리가 흔히 보는 환자의 투병기나 완치기록, 혹은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처럼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다양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환자, 보호자, 의료진, 과학자 ) 조명한 책이 있다면, 책은 오로지 환자를 옆에서 지켰던 보호자의 관점으로 기록된 책이다.

 

우선 저자인 메릴은 치매 환자의 보호자로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편 하비의 병에대한 당혹감과 절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암과 같이 많은 이들이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환자와 함께하려는 활동이 많은 경우가 있는 반면, 치매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듯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 보호자들은 대부분 너무 지쳐있거나 도움을 받지 못해 고립되어 있다.”(17)

하비는 나와 함께하지만 그의 정신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깝게 있지만 또한 각자 고립되어 있다.”(21)

나는 철저히 혼자다.”(302)

 

가족이 있고, 아들의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있던 메릴에게 환자의 보호자로서 당면문제는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마저도 이들과의 우정어린 노력에서 가장 힘든 부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 ‘홀로 자신만의 고독한 현실로 되돌아 오는 이었다고 고백하듯, 메릴은 철저히 혼자였다. 자녀들은 그들의 아이들의 육아로 인해 메릴 자신만큼 남편과 어머니에게 도움을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점점 악화되는 재정문제에 더하여 치매 환자 뿐만 아니라 고립되어 절망감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취약하다는 점에도 주목해본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매에 걸린 부모를 과연 어느 선까지 돌볼 있을 것인가. 치매 환자가 자신의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데다, 하비처럼 끊임없이 돌아다니거나, 절제력을 잃어 공격적인 성향까지 지닌 상태가 된다면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간호할 있을까. 2-3년은 버틸 있을지 자신이 없다. 메릴의 친척이나 친한 친구들이 그녀에게 만약 하비가 보호자의 입장이었다면 그녀처럼 간호해줄 같으냐?’라고 반문할 , 메릴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하비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다. 내게 중요한 인간으로서 신뢰와 책임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해야한고 느끼는 일들이 무엇인지였다.’(180면)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역량과 시간을 남편 하비의 간호에 집중한다.

 

메릴이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도 변해버린 환자의 모습을 보고 방문객들은 발길을 끊게 된다.’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중으로 소외와 고립를 가져다준다. 책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미국에만 540 , 세계적으로 4400만명 정도가 고통을 받고 있어 통계적으로 68초마다 치매 진단을 받는 셈이라고 한다. 암과 버금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고통받고 있는 병인데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암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 나에겐 하나의 의문임과 동시에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유독 알츠하이머병은 타인에게 알리지 않는병이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치매환자가 있는 가정은 보호자가 환자만큼이나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있겠다. 보호자로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환자를 보면서, 나와 공유하던 추억과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환자를 보면서 보호자가 받는 심리적인 고통은 이루말할 없을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보호자는 이러한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다. 책은 치매를 앓고 있는 보호자의 입장을 상세히 알려 병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가져오는 변화와 의미를 우리가 있도록 해주었다.

 

 

 

[‘ 누구인가? – 정체성의 문제]

책을 읽으며 가지 주목한 점은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정체성 문제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아마도 지구상의 인류가 생긴 시점에서 지금까지 해답이 주어지지 않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생을 질문과 함께 살아간다.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삶의 근본이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란 두터운 책에 보면, 전기고문 기술자가 인간의 기억을 완전히 말소시키기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매우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전기고문을 통해 뇌세포를 포맷해버림과 동시에 새로운 인성이 자라길 기대했던 것이다. 전기고문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소리가 차단된 어두운 방에서 자신의 몸도 건드리지 못하게 묶어두는 , 사람이 대한 물리적 감각(오감을 통한 자기 확인) 공간성(나는 어디에 있는가?) 차단함으로써 정체성을 파괴시킬 있었다. 인간의 기억 개인이 겪게되는 경험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세계를 탐색하도록 한튼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나의 기억 내가 인식하는 시간성 본질을 이루고 있을 것이며, 나의 오감과 직관을 통한 나의 경험들은 외부 세계를 인지함으로써 자신과 내가 존재하는 공간성을 확립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기억이라는 대체될 없는 중요한 인자를 기반으로 하여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를 마련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인간으로서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살면서 이를 다시 불러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영원을 살수 있다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서 하비는 자신의 정체성 비가역적으로 상실해갔다. 지갑이나 열쇠, 신문 등을 찾지 못하거나 자신이 찾던 논문을 끊임없이 찾는 증상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아끼던 노란색 포르쉐를 타고 10 거리이던 직장까지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기 시작했다. 나아가 하비는 운동조절능력을 상실해갔으며, 절제력마져 잃으면서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지 장애가 나타나며 환청 환각에 시달리는 아니라 부인인 메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던 . 이쯤 되면 하비는 그를 정의해주던 그만의 특질, 인성마저 상실했던 것이다. 뇌가 손상을 입어가면서 뇌가 관여할 있는 모든 기능, 기억, 인성이 사라져가며 결국에는 낯선 되어버렸다.

 

내가 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기억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뇌의 가소성 같이 무한해보이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서 인간이 경험하고 감각하고 세상과 교류한 모든 것의 총체로서 이해할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동일한나이면서 이미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다른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비롯된 가족과 친척, 내가 경험하고 나와 상호작용을 거친 모든 세상의 흔적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현상은 바로 기억 의존하고 있으며, 기억의 축적을 통해 내가 나임을 잊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병은 나를 정의하는 모든 기반인 기억 아울러 지우기에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불리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나를 정의하는 기반이 무너질 저자 메릴이 나와 집에 사는 남자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사람이 아니다.”(13)라고 쓰고 있듯이 세상에 낯선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면, 사람과 사적인 관계는 성립할 없어요.”(316)

메릴이 말은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닌 정체성 무게를 보다 숙연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삶과 죽음의 문제]

우리는 죽는다라고 괴테가 말했던가. 나는 말을 괴테의 다른 문장과 비교하곤 한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내가 살아 있는 , 알게 되었네.”(전영애 교수의 번역) 표현은 상당한 이질감을 주지만 사실 엄정한 인생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온도의 개념을 떠올려볼 , 우리가 말하는 차가움 뜨거움 다른 이름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손은 100 끊는 물에든 영하 196도의 차가운 액체 질소에서든 모두 동일하게 화상을 입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의 끝을 떠올릴 ,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있다. 앞에서 괴테가 말한 진술로부터 교훈을 다시 정리해 보면, ‘내가 살아 있을 , 해처럼 맑게, 꿈꾸고 사랑해야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