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대면하고 치유의 길로 이어주는 마법’ – 피해자와 가해자가 용서와 자유에 이르는 여정

용서의 나라

(원제: South of Forgiveness)

토르디스 엘바/ 스트레인져 지음 | 권가비 옮김 | [책세상]

 

 

 

과거를 대면하고 치유의 길로 이어주는 마법’ – 피해자와 가해자가 용서와 자유에 이르는 여정

 

 

잃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시절

기억에서 기어 나오며 나는 잃어버린 세월의 황량함에 몸을 떨었다. (…) 사랑의 나라로 처음 뛰어내렸는데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 피처럼 붉은 대문자들이 나의 추락을 그림처럼 선명하게 묘사해 넣었다.”(146)

 

성폭력 피해자이자 <용서의 나라> 저자인 30대의 토르디스 엘바가 열여덟 생일날 아침에 시를 다시 들여다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은 폭력은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들의 세포 하나 하나에 선명히 각인되어 끊임없이 피해자들을 따라다닌다. 

 

<용서의 나라> 저자는 때의 연인이자, 성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면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있는 일이기에, 특히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보살핌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람을 대면하게 해줄 있게 해준 매개체는 책의 제목에도 드러나듯, ‘용서라는 화두로 가능했다. 책은 흔히 합의라는 이름의 경제적 보상으로 폭력사건의 가해자가 면죄부를 받고 새사람으로 변신할 있는 대한민국 사회를 떠올려볼 , 진정한 용서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며 우리가 눈여겨볼만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등장하는 저자이자 성폭력 피해자인 토르디스 엘바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여성이며, 다른 저자이자 성폭력 가해자인 스트레인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남성이다. 사람은 각각 10 후반이자 20 초반이었던 16 사람 사이에 있었던 성폭력 사건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이와 직접 대면하기위한 준비를 한다.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장소로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을 선택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케이프 타운은 소수의 백인 남성이 주도했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폭풍을 겪은 곳이면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반평생을 감옥에서 갇힌 풀려나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기에, 케이프타운에서 이루어진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매우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을지 모르지만 성적으로나 삶의 경험으로나 아직 미숙하던 10 후반, 20 초의 저자들은 사건직후,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정 반응을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할 있다. 토르디스는 자신이 겪은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었던 연인에게서 당한 일이었음을 믿지 않으려 했다. 한편 톰의 경우, 토드디스와 절교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게 되어 아이슬란드를 떠나며 상황을 회피하였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덮으려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톰에게는 회피기작으로 인해 어떤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토르디스가 톰에게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톰의 가해 사실을 전달할 때까지는 말이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성폭력은 우리 주변, 특히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많이 자행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여러 성폭력 관련 사건을 살펴봐도 그렇다. 무작위로 성폭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토르디스가 책의 초반에 말문을 열며 언급하는 대목도 정확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강간사건은 우리가 피하라고 교육받는 그런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강간 사건은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믿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친척, 배우자, 친구 등에 의해서 일어난다.”(33)

특히 톰의 경우 성폭력 가해자가 되리라고 짐작해볼만한 단서를 찾기힘들다. 우리가 성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있다라고 믿는한 그렇다. 그러나 톰은 사랑이 넘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에서 충만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교육도 충분히 받았고, 부모로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다. 여성을 혐오할만한 부정적인 경험을 적도 없어보이며, 오히려 성장과정에서 톰에게 긍정적인 여성상도 많았다. 경우를 보면 누군든 성폭력 가해자가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일깨워준다. 아울러 성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할 있음을 사례는 다시금 분명히 보여준다.

 

토르디스는 남자가 여자를 범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사회구조에서 찾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 사회구조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 부분은 책의 후반에 사람이 남아공의 강간위기센터를 방문했을 , 곳의 담당자였던 시릴라가 남아공의 현실에 대해 언급한 내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시말하면 남아공은 소수 백인(남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영향과 상처를 아직 치료중이라는 것인데, 시릴라는 아파르트헤이트가 가부장제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지적하였다. 여성 인권이 극히 취약하면서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폭력 발생률을 보이는 남아공-케이프타운의 현실을 고려해본다면, 본질적으로 현상(아파르트헤이트와 높은 성폭력 발생률) 서로 모종의 연관을 갖는다는 점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시릴라의 말대로라면 강간은 힘과 지배 문제이기에, 성폭력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가해자에 대한 교화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배울 있다.

 

 

 

 

수인(囚人)으로서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

있고난 직후 토르디스와 톰에게 일어난 반응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현실에 대한 부정 혹은 현실 회피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피해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이런 폭력을 당할 있는가? 그리고 가해자는 아마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은연중에 내리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 겪은 일의 후폭풍은 사람 모두가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토르디스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우울증, 스스로 강간을 자초했다는 자괴감 뿐만 아니라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등으로 장기간 고통을 받았다. 가해자입장이었던 톰도 이후 쉽지 않은 세월을 보내게  된다. 수치심, 그리고 끊임없이 몸에 새겨져 스스로를 갉아먹는 죄책감의 감정과 떳떳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두려움 속에서 살게되어 스스로를 수인(囚人)으로 만들어 버렸다. 피해자를 무의식중에 회피하고 살아가더라도, 묻혀있던 죄책감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어 가해자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할지 모른다. 결국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타인과의 관계가 원할하기 힘들게 됨은 미루어 짐작할 있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상대방을 위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있겠는가. 토르디스가 과거를 마주대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은 입장임에도, 톰이 동안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를 짐작하는 대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토르디스는 톰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혐오하며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다 보면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거꾸로 보살핌 받기가 힘들어진다.”(223)

 

결국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피하고, 잊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톰처럼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원활한 대인관계를 맺고 타인을 위하는 마음가짐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수치심을 너머 가해자였던 이들에게도 평생의 짐을 지우고,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토르디스는 이미 스스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며 깨닫고 있었다.

 

 

 

 

피해자가 다른 가해자가 되는 프레임 -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무자비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사진을 수백 보고 나니 사람에게 딱지를 붙인다는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이 이상 사람이 아닐 백인혹은 흑인 되고, ‘박해자혹은 피해자 되는 것이다.”(115)

 

아파르트헤이트의 참상을 고발하는 박물관에 들른 사람은 케이프타운에서 벌어진 인간의 다른 폭력의 역사를 접한다. 여기에 피해자 새로운 가해자 수도 있는 구조를 보여준다. 바로 딱지표 붙인다는 , 달리 이야기하면 누군가의 행동으로 상대방 자체에 공고한 낙인 찍어버리는 행위의 위험성을 다시금 생각할 있다. 젊은 시절 때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평생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을 들어야한다면, 과연 언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준비할 있을까. 토르디스는 과거의 가해자에 대해 영구적인 딱지표 붙이는 대신 이런 역사적/관습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용서라는 것이 필요함을 오랜 숙고와 과거의 자신과 대면을 통해 확신하게 된다. 성경에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리아 여인이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였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는 놀라운 가르침을 전해준다. 평범한 우리들이 타인에 대해 비난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종종 우리의 허물과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망각하곤 한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마녀사냥 결국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분노와 두려움이 억눌린 감정이 내부로 향하면 토르디스와 톰과 같이 죄책감과 자책, 심지어는 자해로 이어질 있을 것이며, 감정들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결국 타인에 대한 비난과 딱지표 붙이기와 같은 행위를 초래하게 것이다. 결국 피해자마저도 가해자가 있는 가능성을 본질적으로 내포한다.

 

<용서의 나라>에서는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오랜 시간의 대화와 고통스러운 상처 되돌아보기 과정을 통해 각자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보살피고 있다. 일종의 의식과 같은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풀어내고 궁극적인 용서와 화해 여정으로 있었다. 놀랍게도 토르디스는 불완전한 인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여유의 경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16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너를 강간범이라고, 적어도 나를 강간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 그렇지만 말이 너를 말하는 아니야. (…) 사람은 평생 살면서 좋은 일도하고 나쁜 일도 . 요지는 나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딱지가 아니고. 나라는 사람이 그날 일어났던 일로 축소될 수는 없어.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177)

 

 인간은 누구나 실수 혹은 잘못을 저지를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 그리고 상대방의 인간 분리해낼 있는 이런 분별력과 심리적 여유는 오랜 시간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토르디스는 용서 여정을 위해 과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필요한 과정인지를 숙고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용서의 핵심은 짐을 덜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것이야. 짐이 원래 사람의 몫이라하더라도 말이야. 돌을 소유한 사람이 바뀐다 해도 악순환이 계속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70)

 

토르디스와 톰이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과거의 상처를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는 과정은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로서도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만큼, 사람에게는 민감하고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서 이런 성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일방적 용서 완전한 해결책은 결코 아님을 또한 일깨워 준다. 결국 토르디스의 깨달음과 확신은 성폭력을 극복하려면 공동체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자라야 하고, 잘못된 생각을 다듬어내야 하고, 노력을 합쳐야 한다.”(352) 결론에 도달한다.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이다. 그것도 가해자, 피해자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사회의 구조를 새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만들어나갈 있도록 말이다.

 

 

 

 

나가며 소리내어 말하고, 웃어 넘기고, 그리고 그냥 다시 살아가기

토르디스에게 있어 용서 길은 험난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자해, 자존감 상실 등의 심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겪어내야했다. 또한 자책과 죄책감, 그리고 사회 생활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스스로 옭아매던 과정을 겪었다. 사람은 각자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케이프타운에서 과거를 대면하고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사람 모두 진정한 자유 얻었다. 사람이 만나 노력한 대화와 화해, 용서의 과정은 매우 낯선 과정이다. 낯선 , 낯선 방식으로 서로가 진심으로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는 노력은 사람에게 용기와 주변 가족의 도움 지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시 상기하지만 과정은 사람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하고 참여한 결과라고도 있다.

 

책을 덮으니 바로 떠오르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토르디스가 톰으로부터 받아 반평생을 속에 넣고 다니던 돌하나를 톰의 손바닥에 쥐어주는 장면이다.

 

그가 침을 삼켰다. 그와 마주친 시선을 떼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아 돌을 쥐어주었다. 그가 짧게 숨을 들이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손이 그의 주먹 손을 감쌌다. 그가 남은 손으로 위를 덮어 우리의 힘들었던 과거를 감싸 쥐었다.”(343)

 

16년의 세월동안 사람이 고통의 시간과 이메일로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그리고 최종적으로 케이프타운에서 직접만나 이르게 여정의 마지막에서 사람은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 있기 이전의 톰이 토르디스에게 쥐어주던 돌은 성폭행 사건 이후 토르디스에게는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로 무게감있게 자리를 잡았다.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마음의 짐을 몸에 새기듯 16년을 짊어지던 토르디스는 다시 돌을 톰의 손에 되돌려주며 진심어린 용서를 하고 스스로 짊어지던 마음의 짊도 내려놓았다. 이어서 톰은 돌을 거꾸로 나무 불리었던 바오밥나무 옹이에 남겨둠으로써 톰이 지니고 다니던 죄책감과 두려움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아주 상징적이지만, 낯선 의식은 사람에게 무엇보다 의미를 갖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남지만, 사람의 기이한 만남과 용서의 여정은 진정한 용서 어떤 모습일 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책의 여러 군데에서 사람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토르디스가 제안한 지혜는 결국 케이프 타운에서 사람의 모토가 된다.

 

 소리내어 말하고, 웃어 넘기고, 그리고 그냥 다시 살아가는 거라니까.”(224)

 

감정적으로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은 모토를 다시금 기억하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우리 내면에 숨겨져있는 상처와 불완전한 감정들을 대면하고 이를 인정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용서로의 여정 시작된다. 이후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고 웃어 넘김으로써 자신들에게 짊어지워진 죄책감 혹은 두려움을 벗고 스스로를 가볍게 하게 된다. ‘그냥 다시 살아가기 시작함으로써 이들은 비로소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서 평범한삶을 살아갈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평범한 삶의 위대함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유사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지하고 도움을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을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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