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녀 이야기 Kathy & Giselle
서른이 넘어 갑작스럽게 사진이란 걸 접하게 되었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30년동안 내 소유의 카메라하나 가져보지 못한 내가 어느 순간 난 80년된, 50년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찍고있으니까. 불과 3-4년 전까지만해도 생각도 하지 못하던 일들을 지금 하고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것도 인연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못하겠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은 더
왕성해져가고 여전히 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더 배우고 싶어진다.
오늘은 지난 늦여름 스코틀랜드 축제에서 알게된 이 모녀의 이야기를 좀더 해보려고 한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이 곳 나이아가라 폭포지역에 정착하게된 스코틀랜드 혈통의 할머니 Kathy,
미국의 대공황시기에 태어나신 할머니는 평생을 이 곳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을 떠나신적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의 딸 Giselle 아주머니는 이 곳 지역 Weaver's guild (양모같은 털로 직접 실을 뽑고 스웨터같은 옷등을 직접 만드는 일종의 모임)의 회원이다.
지난 늦여름 스코틀랜드 축제에서 알게된 인연으로 이번엔 Alpaca Festival에 나를 초대했던 것.
알파카 (Alpaca)는 남아메리카 원산인 양과 낙타의 중간 형태같은 (낙타과) 귀여운 동물이다. 순하지만 상당히 예민해서 일반적으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한다고 사육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Giselle은 이 모임에서 알파카의 털로만든 제품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일을 하고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 모녀의 이야기를 생각해낸 이유는 최근 새벽에 일어나서 Kathy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행사중에 할머니는 명함같은 종이를 내게 보여주신 적이 있다. 거기에는 내가 졸업한 대학의 병원 주소와 정보가 나와있었다.
Kathy할머니는 "내가 죽으면 너가 졸업한 여기 대학 병원에 가게 될꺼야."라고....
나는 좀 당황해서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워져요.'라고 대답했었는데,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나는 뭐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두렵진 않아."라고..
Kathy할머니의 무표정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평범한 한 개인의 인생의 한 단면이 내 가족이 겪었던 지난 일을 떠올렸고,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순간 눈물이 쏟아졌던 경험도
사실 Kathy할머니와의 대화가 떠올랐고, 내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딸인 Giselle은 엄마인 Kathy할머니한테 가끔 짜증섞인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하곤 했다.
Giselle 아줌마 혼자 모델로 사진찍는 것은 개의치 않아했는데 유독 엄마인 Kathy할머니와 같이 사진찍는 것을 싫어했다.
같이는 사진 찍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이유를 바로 묻지는 않았지만 왜 싫어할까 한동안 궁금했었다.
이 모녀와 반나절을 같이 얘기하고 있으면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딸인 Giselle아줌마가 문득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조용히 하던 말이 기억난다. "엄마하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슬퍼져."라고 말이다.
내 생각에 Giselle아주머니는 사실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픈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때문에.
지난 늦 여름 스코트랜드 축제 사진 을 보여줬을 때, 사진 중의 하나는 두 모녀가 함께 웃고있는 사진이 있었다.
Giselle아줌마가 보내왔던 답장중에 기억나는 구절이 떠올랐다.
'엄마가 아프고나서 한동안 우리(모녀)가 함께 웃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진 보내줬서 고마워." 라고...
사진이란 것과 30이 넘은 나이에 인연을 갖고 그 이후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내겐 사진이 내가 경험하고 바라보는 일상사(daily history)의 한 단면을 기록하는 수단이다.
남들처럼 기발하거나 예쁜사진을 찍을 줄 아는 것도 아닌, 나와 그 연장선 상에 있는 대상을
기록하는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사진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영상 기록물이상의 개인적인 의미를 내게 주고있다.
나의 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활동이 삶에대한 보편성을 가슴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된 것 같다. 거리에서 처음만나게 된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그들의 이야기가 곧
내 삶의 한 부분이기도하고, 이들의 고민과 걱정이 결국 나의 그것이었음을 확인하게되곤한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처음 나를 스스로 이곳에 던져넣었을 때 느꼈던 그 이질감이
이제는 우리가 평범한 인간으로서, 생각보다는 더 많은 공통점들을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1999년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새해를 맞이하던 순간,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던 이 곡을 들으며
친구와 내 방에서 맥주를 마구 들이키면서 울던 그 때가 떠올랐다.
사랑과 회한의 노래 (Songs of Love and Regret)
다음엔 언제 다시 이 두 모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시작하는 기나긴 겨울을 건강히 지내고 내년 봄에도 이 두 모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