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하는 책읽기, 삶을 열어주는 책읽기’

《탐독가들》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박수밀 지음 | [카모마일북스]

 

‘삶을 지탱하는 책읽기, 삶을 열어주는 책읽기’

 

조선 시대의 왕 중에서 정조는 호학 군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여러 지식인들의 독서와 삶을 다룬 책 《탐독가들》에 따르면, 정조는 또한 다양한 배경의 지식인들을 등용하어 업적을 남길 기회를 마련했다. 정조는 다산 정약용으로 하여금 자신의 강력한 개혁 정책을 돕게 했고, 다산은 거중기를 발명하여 수원 화성의 축성을 단축했다. 또 정조는 규장각에 검서관을 설치하여 이덕무와 같은 서얼 출신의 실력 있는 학자들을 등용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에서 한 가지 주목하게 된 지점은 정조가 승하한 후의 사건이다. 이른바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1801)이 일어났던 것인데, 주축이 된 노론 세력이 천주교를 믿던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천주교를 믿는 이가 있었던 다산의 가문에는 시련과 고난이 시작되었다. 둘째 형과 막내인 다산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심지어 셋째 형은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동안 5백 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중세의 말기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신곡》을 완성한 것이 집이 아닌 길 위에서였음을 떠올려보게 한다. 《탐독가들》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일부인데, 여기에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자신들은 망한 가족이며, 망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두 아들에게 ’너희들이야말로 진짜 독서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다(57)고 용기를 주었다.

다산이 아들에게 이런 언급을 한 까닭은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다(58)는 다산의 지론에서 나왔다고 한다.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마당에 자녀들에게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서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 “(독서는) 날짐승과 벌레의 무리를 초월하여 큰 우주를 지탱한다. 독서야말로 우리의 본분이다(58)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산에게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행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정조가 매우 아끼던 이덕무는 서얼 출신으로 검서관으로 공직에 나아가기 전까지 어떤 기회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았다.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굶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과였으리라. 겨우내 이불하나를 뒤집어쓰고 입김이 보이는 추운 방안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추위를 이겨내곤 하던 이덕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겨울에 추운 외풍이 들어오니 《논어》로 병풍삼아 바람을 막고, 《한서》한 질을 이불 위에 늘어놓아 또 다른 이불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입김이 나오는 방에서 밤을 나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당장 내일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모르는 여건에서 살았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덕무와 정약용의 독서가 이들의 삶에 미친 영향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들에게 독서는 고난과 시련에도 이들을 견디게 하고, 현실을 극복할 힘을 길러주는 삶의 과정이었다. 두 사람의 예만 보더라도 독서는 지식을 주고, 직업을 얻는데 유용한 것을 너머 삶을 이어가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반대로 삶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은 자만이 독서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다산의 생각에는 독서가 삶의 일부이자 연장선에서 함께 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책에는 독서가 다양하게 삶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교산 허균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던 것인지, 공직에 부임한지 10여일 만에 불교를 숭상한다는 혐의(불교 서적을 읽었기에)로 파직을 당하기도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결국 역모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허균이 당대에 규정된 독서를 하지 않고,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세상의 모순과 진실을 절실히 깨우쳤기 때문이다.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허균처럼 책을 읽기 전과 후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다른 사람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 결은 조금 다르지만, 저자는 전쟁에 임했던 충무공 이순신의 마음가짐은 유교 경전의 책읽기뿐만 아니라 역사서와 소설책, 병법서 등 폭넓은 독서를 통해 형성된 바가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은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인데, 후대에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규정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 말은 책 읽는 무사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독서가 조선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들의 독서는 각자의 시련을 이겨나가는데 큰 힘을 주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울러 《탐독가들》에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독서법이 소개되어 있다. 일일이 여기에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저자가 관심을 둔 지식인들은 대체로 ‘실천적인 책읽기’를 한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 지식의 쓸모뿐만 아니라, 이들의 독서의 행위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주목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독서란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일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삶과 상호작용하는 방편이었다. 이 독서가들의 지향점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것’에 모아진다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독서가 곧 ‘사물 읽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허균의 진보적 사상을 담은 《유재론》《호민론》에는 인간의 평등적인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생각은 담헌 홍대용의 현실 비판적인 사상, 인간과 사물이 모두 소중하다고 본 생각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시대 독서가들의 독서론에서는 ‘의문을 품는 독서’, ‘밑바닥 까지 캐는 독서’를 이들의 공통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독서관은 현실에 기반을 둔 과정이기에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관심 없이는 지속하기 힘든 독서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들에게 독서는 삶에 닿아 있어야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던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관 중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실학자의 독서론’에서 연암 박지원이 저자의 마음(고심처)을 읽을 것을 주문한 대목이었다. 동양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사기》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당한 상태에서 저술한 책이다. 사마천이 흉노족에 항복한 장군을 변호하다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저자는 연암이 언급한 ‘나비 잡는 소년’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가짐이란,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으려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고 다가갔다가 망설이는 순간 나비를 놓쳤을 때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나비를 놓쳐서 겸연쩍어 웃다가도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인 것이다. 연암은 이 아이의 마음을 《사기》를 읽을 때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개 궁형을 당한 이들은 자살을 하게 마련이지만, 사마천은 그 울분을 참고 《사기》를 완성해 내었다. 어떻게 보면 연암의 비유는 사마천이 겪은 일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사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속상해하는 마음을 넘어서 울분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나갔을 사마천을 상상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죽만 읽지 말고 작가의 고심을 읽으라는 주문이었다. 아마 우리 시대의 표현으로 하면 ‘공감의 독서’를 하기 위해 정신을 기울이고 상상할 것을 당부하는 말이 될 것이다.

《탐독가들》에는 연암의 독서법 말고도 세종대왕과 정조의 독서법에 대해서도 소개가 되어 있다. 물론 이들은 통치자로서의 입장에서 독서를 한 사례를 보여준다. 또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경지에 이른 독서가 김득신의 사례를 만날 수 있었다. 번번이 과거에 떨어졌지만, 부지런히 읽고, 꾸준히 공부하여 김득신은 59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공직에 나아갔다고 하다. 부족함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한 김득신의 독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번에 읽게 된 《탐독가들》에서는 무엇보다 독서가 책을 읽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한 조선 지식인들의 독서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금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서는 위로가 되어 주고, 삶을 계속 살아갈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여러 독서가들이 독서가 이들에게 미친 삶의 양상에 주목해서 따라가다 보면, 인간에게 어느 한 가지 견해를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데다 불가능하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유교 경전만이 옳고 이 경전들만을 읽으라고 한다면,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앎에 이르고 독서가에게 자유로움 또한 준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겠다. 제도로 사람들의 삶을 구속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정신까지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산 허균이 시대를 너무 앞서서 태어나긴 했지만, 허균이 고심했던 사안들(평등한 삶, 차별, 신분제약 철폐 등)은 대략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이슈다. 비록 허균은 당대의 관습에 굴복하여 처형당했지만, 후세인들은 그의 사상과 작품을 여전히 읽고 감상하며,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한다. 이번에 《탐독가들》을 읽으며 여러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독서법뿐만 아니라 독서가 삶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따금씩 나의 독서 목적과 독서 방식도 점검해볼 수 있었다. 독서가 우리에게 어떤 행위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마무리로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로 정리해본다.

 

독서,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가장 맑은 일이다.(55)

-「두 아들에게」다산 정약용의 편지

 

 

 

[발췌문 모음]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다(58)

"(독서는) 날짐승과 벌레의 무리를 초월하여 큰 우주를 지탱한다. 독서야말로 우리의 본분이다"(58)

- 다산 정약용의 말

"무릇 책 읽기는 매번 한 글자라도 뜻이 분명치 않은 곳과 만나면 널리 고증하고 자세히 살펴 그 근원을 얻어야 한다."(59)

- 다산의 ‘격물‘의 공부(밑바닥까지 캐는 독서)

"독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실천하는 데 있다. 일을 살피지 않고 오롯이 앉아 책만 읽는다면 쓸데없는 학문이 된다."(115)

- 율곡 이이의 <자경문>

"예교가 어찌 자유를 구속하겠는가, 인생의 부침을 다만 정에 맡기노라. 그대는 그대의 법을 따르라,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129)

- 교산 허균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혐으로 공직에 임명된지 13일 만에 파직 당하고 쓴 소회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며, 보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다만 모아두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139)

- 창애 유한준이 지인 김광국의 수장품 <석농화원>의 발문에 쓴 문장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독움하며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서 다가갑니다. 잡을까말까 망설이는 순간 나비는 날아가고 맙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겸연쩍어 씩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입니다."(152)

- 연암 박지원이 저자의 고심처를 읽으라고 하면서 든 나비 잡는 소년의 비유

"젊을 때는 읽지 않는 책이 없어야 하고, 그 뜻을 궁구하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중요한 것을 선택해서 힘써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나중에 공부하기에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다시 가서 이해해서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내 지극한 곳까지 궁구하는 것이 좋다."(203)

- 18세기 성리학자 백수 양응수의 독서론

한 해를 마무리하며 ‘환대’의 전통을 생각한다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Jean Ziegler) 지음 |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환대’의 전통을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할퀴어버린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감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요순시대를 제외하고는 태평한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 어느 시대건, 지구상의 어느 곳이건 사람에게든, 동식물에게든 ‘태어나 살아가는 일’은 지난한 과업인 것 같다. 우리 조상도 어려운 시절에 서로 돕고 상대방을 품어주던 풍습이 있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우연히 고대 철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처음 접했다.

 

그 중에서 특히 플라톤은 특이하게도 대화형식을 빌어 자신의 철학을 문학작품처럼 집대성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인데, 여기에는 종종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환대(xenia, 크세니아)’의 전통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어떠한 이유로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타인 혹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상대방(주인)은 도움을 요청한 이(손님)를 환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전통이 고대 그리스의 정의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대의 전통은 시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인물들의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환대의 전통에 따른 당대의 정의관에 따르면, 주인의 도움을 받은 손님은 주인에 대한 빚을 적절하게 보답하는 것 또한 (기대되는) 올바른 응답이기도 했다.

국내의 여러 그리스 고전 연구자들이 쓴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크세니아)는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고, 제우스는 크세니아를 보호하는 신이었다.(41면) 그러니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주요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정의관을 어겼기 때문에 발발한 사건이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왕국에서 환대를 받고서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헬레네가 트로이 전쟁 중에도 파리스와 트로이의 보호를 받은 것 역시 이러한 전통이 양쪽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지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조금 책장을 넘기고 있는 플라톤의 자연철학을 담은 「대화편」《티마이오스》에서는 아예 자연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대화의 도입부에서 이 환대의 전통에 얽힌 상황이 등장한다.

 

티마이오스: “어제 당신에게서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은 마당에, 우리 남은 이들이 열의를 다해 당신께 보답하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온당치 않은 일일 테니까요.

(《티마이오스》, 17b, 김유석 옮김, 아카넷, 25면)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 명백하게 존재했던 ‘환대’의 전통을 장황하게 꺼내들은 이유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장 지글러의 신간 《인간 섬》의 주요 배경이 바로 그리스의 여러 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 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고대 그리스의 ‘환대’의 전통을 떠올렸다. 이 책은 유럽 연합이 유럽으로 유입될 수 있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전쟁과 고문, 국가의 파괴 등을 피해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12면) 핫 스폿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핫 스폿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게 해에 있는, 특히 소아시아 지역에 가까운 다섯 곳의 그리스 섬들을 가리킨다.

 

유엔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하고,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핫 스폿 중 특히 가장 큰 섬인 레스보스 섬의 난민 시설을 방문하고 기록한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룬다. 책에는 사진이 없어서 그 현장의 충격이 덜하겠지만, 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과밀한 보트를 탄 채 에게 해를 건넜을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환대’의 전통을 갖고 있던 그리스가, 공식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생존에 대한 요청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핫 스폿, 특히 이 책의 주요 무대인 레스보스 섬에서 이렇게 ‘환대’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현실에 그리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이 책에는 유럽 연합의 자금을 받고 난민들을 몰아내는 그리스 경찰들도 나오지만, 난민 구조 및 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여러 시민 단체들의 활동도 언급되고 있다.

 

인간성의 극단을 시험하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이 화산섬 레스보스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섬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기원전 7-6세기에 유명했던 시인 사포의 고향이면서 레즈비언이란 용어의 기원이 된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섬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의 부름을 받고 펠라로 가서 어린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기 바로 전의 2년 간 머문 곳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섬에서 물고기와 철새들을 연구하며 《동물지》라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탐구방법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증거에 기반 한 보다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방법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는 서양생물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업을 했으며, 이 작업이 바로 이 섬에서 마련된 것이다. (참고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지음, 아르테, 92-104면)

 

이런 배경들을 고려해볼 때, 오늘날 환대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리스의 전통이 서양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자본’에 의해 무력화되고, 인간성의 위기를 겪는 모습을 《인간 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환대의 정의관에 따르면, 그리스는 공식적으로 ‘야만’의 길에 서기로 결정한 셈이다. 환대의 전통이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는 한 고전 연구자의 글에서 오늘날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레스보스 지역을 비롯한 그리스-터기 지역은 지진이 특히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난 10월에도 강도 7.2의 강진이 그리스-터키 지역에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핫 스폿에서 난민 대기자들이 코로나 팬데믹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경험했을 지진을 상상해보려 했다. 우리도 전쟁과 공포, 배고픔을 극복하고자 터전을 떠난 조상의 역사가 있었음을 떠올려본다면, 이 난민 대기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일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당장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우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이 느낄법한 감정들을 이해해보도록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환대’를 응당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님과 주인과의 관계가 인간사에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인간 섬》을 읽고, 저물어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올해를 마무리하는 생각으로 ‘환대의 에토스’를 떠올려보았다. 내년에도 우리는 한동안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모두가 어렵지만 내년에는 나부터도 내 주변을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등불을 뒤로 들고 나아간 어둠 속의 여행자’를 만나다

 

 

등불을 뒤로 들고 나아간 어둠 속의 여행자’를 만나다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2020)를 읽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미 선진국이 됐을 거야.” 몇 년 전 회사업무로 어느 중소기업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 임원이 내게 했던 말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던 그 임원의 역사 인식에 충격을 받았다. 이 당혹스러운 주장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나는 대꾸할 한 마디도 떠올릴 수 없었다. 오히려 내 빈약한 논리와 무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던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시민이자 생각하는 인간으로 지니고 있을 법한 기본적인 인식도, 나만의 논리나 언어마저 결여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사건들, 예를 들면 소녀상 건립 문제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관련한 기사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리영희의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는 이런 자각의 연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그의 대표적인 글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았다. 이제 리영희의 10주기가 되는 시점에서 3-40년 전 저자가 남긴 글이 나와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가 남기고간 유산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책을 읽으며 줄곧 염두에 두었던 물음이었다.

 

우선 리영희 선생이 밟아 온 삶이 궁금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에 출생하여 해방을 맞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입대, 전방에서 만 7년을 복무했다. 전장에서 성직자가 하는 기도에 대해 회의했던 사례는 향후 그가 어떤 삶을 취할지 짐작하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었다. 리영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했던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군복무 이후에는 언론인 혹은 학자로서의 소명을 발견한 것 같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었다. 또 노신을 사상적 스승으로 삼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했다. 이후 자신이 관찰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본질을 파고들어, 주체적인 앎을 평생 추구했다. 이런 모습은 리영희의 자기 성찰적 사유와 정신이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남게 된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리영희가 사유했던 주제들을 두 가지 큰 틀에서 이해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일제의 식민주의와 그 영향이며, 다른 하나는 반공주의(냉전체제)가 미친 영향이다. 물론 현대사의 여러 국면에서 이 두 가지가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예를 들면 ‘정치 검찰’, ‘체제 언론’,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이 식민주의의 잔재와 반공주의가 구축한 질서 모두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주의와 그 영향이 뚜렷한 주제에 관해서는 앞서 언급한 ‘임원의 발언’을 떠올리며, 우선 저자의 사유와 지혜를 발견하고자 했다.

 

식민주의와 관련한 주제는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저자의 논평을 참고할 수 있겠다. 저자는 문제의 시작이 한국전쟁 직후, 일본 정부에 대한 미군정의 재군비 명령에 있다고 보았다. 한 나라의 교과서는 해당 사회 내지 국가의 ‘이데올로기의 집약’이기에,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 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개정하는 일은 과거를 왜곡하고 국민을 세뇌하기에 문제가 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를 끊임없이 왜곡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작년에 일본 기업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후 나타난 ‘일본 상품 불매’ 움직임은 이미 1984년에도 있었다. 이제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극일’을 외치며 또다시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준엄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는 공감과 동시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진실로 해방되지 못했다’고 우려했을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한편 저자는 “해방 이후 30년간, 이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한 가치관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주의다(40면), 라고 글에서 밝혔다. 이 문제는 그의 글이 반공법에 위반되어 체포된 후 수감상태에서 작성한 ‘상고이유서’와 되풀이해서 불거지는 핵무기·미사일 위기의 원인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단독 군사 패권주의의 행보로 군산복합체가 짜놓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 한반도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알게 되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한반도가 미국 군사력의 실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정황적 인식은 충격적이었다. 곧 평화를 두려워하는 미국 주전 세력의 분열증에 전 세계의 평화가 달려 있었다. 북한에 대한 지나친 경제 제재와 편파적 태도, 한-미 팀스프리트 훈련을 통해 본 미국은 언제든 북한에 대한 공격구실을 마련할 수 있는 국가였다. 리영희였다면 우리가 ‘진실에 토대한 인식능력이 있는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한일관계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을 비롯하여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과의 국제 문제는 무엇보다 식민주의의 잔재와 냉전체제, 특히 광신적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일본의 통치 방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국민을 통제하는데 앞장서서 활용했던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남긴 유산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들이 지금 내 삶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리영희는 개별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현상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치열하게 파헤치고, 깨달은 인식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식민주의, 반공주의에 뿌리 내린 세계 질서에 더하여, 국경을 초월하여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산다. 이에 대해 리영희는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399면)할 때라고 답하지 않을까싶다. 지금 내 삶을 좌우하는 사회의 관습과 수많은 ‘당연함’에 대해 그것이 왜 그래야 하는가를 따져 묻고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리영희의 선집을 읽은 시간은, 그의 문제의식과 사유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고,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낀 시간이었다.

 

선집의 글을 따라가다 헤매던 순간, 시인 단테가 쓴 《신곡》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당신은 등불을 뒤로 들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현명하게 만드는,

어둠 속의 외로운 여행자셨지요.

- 단테, 《신곡》 연옥편, 22곡, 박상진 옮김

 

시인 스타티우스가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말하는 대목이었다. 리영희 역시 스타티우스가 묘사한 베르길리우스처럼, 뒤따르는 이들의 발길을 밝혀주기 위해 등불을 뒤로 들고 앞장서며 어둠 속을 나아간 여행자처럼 보였다.

 

 

 

 

"해방 이후 30년간, 이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한 가치관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주의다" (40면)

"독서를 통해 자신의 단단한 지적 몽매가 한구석씩 깨어지는 순간의 감격은 거의 종교적 희열과 가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 (399면)

- 자유인이 되기 위한 독서를 당부하는 선생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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