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길 위에 피어난 자신의 별을 찾아간 여정’ <단테>

 

‘유랑길 위에 피어난 자신의 별을 찾아간 여정’

《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박상진 지음 | [아르테]

우리 살아가는 길 반 고비에

나는 어느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네.

곧은 길이 사라져버렸기에.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구나.

(《신곡》 「지옥」 1곡 1-6행)

단테가 지나갔음직한 길을 700년이 지나 어느 학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때로는 머뭇거리며 따라간다. 나는 책을 덮고 그가 남긴 발자국을 눈으로 쫓는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펼쳐 이 문장을 만났다. 표현이 지닌 무게를 새삼 실감한다. 단테 알리기에리. 이탈리아의 중부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오늘날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그리고 괴테와 함께 4대 시성으로 불리는 시인이자 철학자, 정치가였다. 인생의 정점에 오른 36세의 전도 유망한 젊은 정치가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을 낳아준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유랑의 길 위에서 써내려간 단테의 《신곡》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위에 인용한 싯구의 앞부분은 인생의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잃고 도망자의 신세가 된 한 인간의 황망하고 암담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이어지는 문장들에선 일탈을 겪은 한 인간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것이 얼마나 무거운 운명의 장난인지를 두려움과 함께 토로했다.

단테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길 위에서 씌여졌다. 문학연구자인 저자는 단테가 지나간 길을 따라 나섰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순례자와 같이 단테가 지나갔을 법한 장소와 그 길을 그리고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가 쳐다보았을 법한 풍경과 밤하늘을 바라보고 그의 모습과 생각을 상상해본다. 저자는 단테의 작품과 자신의 현실 사이를 하나의 직물처럼 촘촘하게 짜넣는다. 단테가 태어난 피렌체가 직물 산업으로 유명했음을 상기해주듯이 말이다. 저자는 작품의 중요도에 비해 인간 단테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도 시인의 작품을 통해 그가 두려움과 일말의 희망, 소중했던 기억에 의지하여 써내려갔을 문장들을 정성껏 꺼내놓는다. 그러므로 단테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서 시인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를 저자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며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저자가 몇 문장으로 정리한 다음 부분이 시인의 면모를 종합해보고 상상해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단테는 뛰어난 상상력과 시적 언어의 감각을 지닌 작가였고, 합리적 사고와 역사의식을 소유한 지식인이었다. 또한 세속적 연애감정과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연결할 줄 아는 비범한 통찰력을 가진 철학자이자, 세상의 정의를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세우고자 했던 실천가였다.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지칠 줄 모르는 관심으로 관찰하여 재현했고, 이치를 통찰하여 체계적 이해에 도달했다. 그는 인간에 대해 품은 한없는 애정과 연민을 고도로 절제된 언어로 담아냈다.(215면)

단테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물론 저자가 표현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테의 작품을 직접 감상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정리한 단테의 행적을 따라가며 한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를 그려낼 수는 있었다. 단테보다 많이 앞선 시인 호메로스가 그려낸 문학 세계 속에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등장한다. 단테처럼 오디세우스 역시 오랜 세월 집을 떠나 유랑했다. 트로이 전쟁과 지중해 주변의 섬들을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20년을 모험과 유랑으로 떠돌았지만 결국 가족과 일상이 있는 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반면, 19년을 길 위에서 보냈던 단테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의 후반에 이르러 안정된 기반 위에 있지 못했던 단테에게 ‘구원’의 문제는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에서 단테의 작품들은 현실에 기반하여 현실의 언어로 길 위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사의 신과 달리 인간은 가사자(可死者) 혹은 필멸하는 존재다. 그리고 크고 작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의 전환점을 겪는다. 그것이 작은 상처를 입는 신체의 변화일 수도 있고,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삶 또는 신변의 변화일 수도 있으며, 죽음과 같은 인생사의 마침표일 수도 있다. 단테는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 순간 자신을 낳아준 도시로부터 추방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삶에 가장 큰 분수령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추방 전과 추방 후로 명료하게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추방 직전, 단테는 피렌체의 최고위원의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 이렇게 도시에서 인정받고 두각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추방 전의 삶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한 인간에게 있어 삶의 정점에 이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속적인 권력 다툼에서 패한 자는 내리막길만이 유일한 출구였다. 그에겐 일방통행로였던 것이다. 교황권을 지지하는 궬피파에 속해있었음에도, 단테는 탐욕스러운 교황들의 행보를 지지하지 않았고, 이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신념이 있는 자’는 흔히 부러지거나 꺾이기 쉬운 존재로 기록되었고,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추방 후 단테의 삶은 어둠 속에서 별 빛 하나에 의지한 채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삶으로 이어졌다. 단테는 《신곡》에서 ‘어두운 숲’의 막막함과 두려움을 노래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단테의 추방 후의 삶에 큰 빚을 지게 되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망명의 길 위에서 위대한 문학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삶의 정점에 오르면서 벼려두었던 단테의 지성은 자기 성찰의 힘을 통해,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별’로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테는 내리막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걸었기 때문일까. 단테의 언어는 주도면밀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오롯이 현실을 담고 있다.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하며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현실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단테는 객지에서 단순히 자신의 외로움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신곡》을 썼을까. 이것이 부수적인 효과일 수는 있겠지만, 단테의 글쓰기 행위는 보다 더 의도적이고 실천적인 행위로 보인다. 모든 것을 잃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던 불안정한 삶 속에서 글쓰기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의지하고 지탱해주는 길 위의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길 위에서 지속된 단테의 글쓰기는 스스로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실존적인 실천 행위였음을 생각해본다.

생전에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무죄를 인정받지 못해서일까. 단테는 사후에도 피렌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단테를 품었지만 결국 추방해버렸던 피렌처는 단테의 사후 그의 유해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700년 동안 단테의 마지막을 지키고 보듬었던 라벤나는 그의 유해를 넘겨주지 않았다. 단테의 영혼은 자신을 환대했던 라벤나에서 마침내 안식을 찾았을 것 같다. 아니면 그 곳에서도 여전히 길 위에서 유랑하고 있을까? 우리는 시인이 남긴 토스카나 지방의 속어를 통해, 그가 남긴 목소리를 듣는다. 지금도 전 세계의 어디에선가, 어느 길 위에서 수많은 언어로, 누군가의 입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귀로 정성껏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사후 700년이 되도록 여전히 우리에게 와 닿고 있음을 느낀다. 내년인 2021년은 단테의 사후 7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해외로 여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나는 잠시나마 저자의 어께 너머로 단테의 삶을 따라가며 여행해볼 수 있었다.

단편적인 인용구를 통해서이지만 저자가 꺼내준 《신곡》의 문장들에서 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들, 그 민낯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로 상징되는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철학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인간의 죄악을 비롯한 삶의 모습들, 총체적으로 파악되는 삶의 국면을 분주히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지점은 단테의 스승 라티니가 해준 말이었다. ‘너만의 별’을 찾아 기준으로 삼고, 이를 따라가라는 메시지. 평범한 인간인 우리들은 각자의 별을 찾아 나아가는 길이 또 하나의 고통과 근심의 길임을 안다. 하지만 단테가 남긴 시와 흔적, 여행지에서 저자의 상상력과 우연히 마주친 사건들, 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발견의 과정이 이 책에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또한 각자 나름대로 지속될 것임을 예감한다. ‘탄생과 종말, 죽음이 공존하는 곳… (…) 나는 대상을 카메라에 담아 가져온다. 그리고 내 마음은 거기에 내려놓는다.’ 묘지가 있는 어느 사원을 방문한 저자가 인간의 죽음을 생각하다가 누군가의 결혼식 안내 문구를 보고 새로운 삶의 시작도 떠올리는 대목이다. 우리 각자의 길 위에서 인간은 삶의 마지막과 시작이 공존함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테의 스승이 해준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700년 전 한 시인의 삶이 오롯이 담긴 《신곡》은 단순히 과장된 내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단테가 《신곡》 의「지옥」,「연옥」,「천국」 각 편의 마지막 문장에 새기듯 써넣은 ‘별 stella’을 통해 여전히 시인과 접속한다.

 

 

 

"이탈리아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는 오래된 시인이다."- (11면)

"(단테는) 최후의 중세 시인인 동시에 최초의 근대 시인"

: 프리드리히 엥겔스

서양의 근대는 단테와 셰익스피어에 의해 나눠진다.

: T.S. 엘리엇
- (22면)

"피에솔레 언덕에서 바라보는 피렌체는 ‘꽃피는‘, ‘번성하는‘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이름답게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16면)

"그에게 구원이란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원만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167면)

"너의 별을 따라간다면, 영광의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하리."

: 스승 라티니가 단테에게 해준 조언- (211면)

"별은 그에게 희망이며 길이다. 그의 삶은 별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였다."- (236면)

 

“호기심과 인간애가 충만한 삶을 보고 싶다면, 올리버 색스를”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로런스 웨슐러(Lawrence Weschler) 지음 | 양병찬 옮김 | [알마]

&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김승욱 옮김 | [알마]

“호기심과 인간애가 충만한 삶을 보고 싶다면, 올리버 색스를”

오늘은 올리버 색스에 관한 책 두권을 위주로 살펴보려 한다. 올리버 색스의 사망(2015) 이후 이제 5년이 지났다. 그 와중에 작년(2019)에 미국의 문학 중심의 잡지 <뉴요커>의 전속작가였던 로런스 웨슐러가 올리버 색스 평전 《And How Are You, Dr. Sacks?》을 세상에 내놓았다. 국내에는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 나왔다. 박식하고 박물학자와 같은 면모를 지닌 색스는 평생 호기심어린 관찰자로서 지냈다.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쓴 《엉클 텅스텐》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노년에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반추해본 자서전 《온 더 무브》를 흥미롭게 읽었더랬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타인이 바라본 올리버 색스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올리버 색스의 평전을 저술한 로렌스 웨슐러는 색스가 30대일 때 처음 만나 그가 82살에 세상을 뜰 때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교류를 한 인물이다. 올리버 색스의 임상기록보다도 더 개인적인 일기(《오악사카 저널》)와 제3자가 기록한 평전을 동시에 읽으면서 한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보다 선명히 그려볼 수 있었다. 다만 대상에 대한 묘사를 사후 기록만으로 파악하여 전달하는 경우보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고 부담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을 옆에서 오래시간 지켜보고 교류해왔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글에는 거짓이나 지나친 미화가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상대방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습관, 성향 등을 파악하고 있기에 평전을 읽게 될 독자에게 대상이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 것인지를 분명히 고민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색스의 면모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은 다른 평전과 달리, 저자가 색스와 반 세기에 가까운 교류를 통해 모아둔 메모와 함께 색스가 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제공하고 있고, 저자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와 가정사가 색스와 함께 하나의 직물처럼 짜여 있다. 저자의 가족들도 색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올리버 색스라는 인물을 재구성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저자인 웨슐러는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이 점은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온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이자 글을 쓰는 올리버 색스와 많은 점에서 잘 통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나누던 두 사람의 대화 기록과 메모는 계속되었지만, 처음 색스의 전기를 쓰려던 1984년에 색스의 요청으로 이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무려 30년이 지나 색스가 사망하기 직전인 2015년에 색스는 저자에게 전기를 마무리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웨슐러가 쓰려고 했던 전기에 30여 년에 걸친 교류가 이번 평전에 더 추가된 셈이다.

웨슐러가 그려내는 색스의 모습은 무엇보다 엄청난 다독가로서의 모습이다. 자신의 전공인 신경학은 물론이고, 시와 소설 등의 문학과 철학, 그 밖의 논픽션 등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독서가의 이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저자가 기록하는 색스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독서의 유일한 가치는 ‘지식 습득하기’가 아니라 ‘새로운 의문 품기’였어.”(282면)

올리버 색스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그가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이 인물의 천진난만한 호기심과 상상력뿐만 아니라 강박증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색스의 독서는 엄청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강박적인 독서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중시했던 것은 결국 저자들이 제공하는 지식의 권위에 압도되기 보다 여기에 맞서는 것, ‘의혹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로 요약해볼 수 있다.

종종 등장하는 색스의 강박증적인 모습은 본인이 저술한 책들을 통해서 독자가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제3자가 쓴 평전을 통해서도 그려볼 수 있었다. 자신이 남다르며, 뛰어나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인지하고 고민했을 내밀한 생각들은 이렇게 웨슐러가 모아둔 메모를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

영재는 허영과 나르시시즘의 끔찍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법이야. (…) 나는 그 때부터 그런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아.”(460면)

이런 표현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쓰기란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웨슐러가 색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바라본 것은 재능이 많고 완벽해 보이는 인물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는 점이다. 웨슐러는 때로 엄살과 지나친 강박증 및 건강 염려증을 보이며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이를 신뢰와 애정어린 시선으로 색스를 한결같이 바라보았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했던 건 저자가 올리버 색스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이유였다. 이 정서는 과연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내가 공감이나 상상력이 부족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독후기록을 쓰면서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984년 말에 쓰려던 올리버 전기를 2019년에 마무리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523면)

만약 내가 유명인인 누군가와 반 세기 가까이 교류하며 그 사람의 많은 일상, 장점 및 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인간적인 애정과 존경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제 30년이 넘게 시간이 흘러서 이 지인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사람에 대한 전기를 오랫동안 쓰고 싶었는데, 진전없이 중단되었다가 이 사람의 죽음에 앞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가 그 대상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고 그에 대한 전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뻤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이 사람의 삶을 정리해보겠다는 일생의 목표가 다시 생기고, 이 사람과의 좋았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상대방의 현존을 놓치지 않고 계속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아마도 이 점에 우선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웨슐러가 올리버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린 배경에는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이런 감정과 소회가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웨슐러가 ‘나를 압도한 첫 번째 감정은 반가움과 고마움이었다.’(625면)라고 한 대목에서 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보다 개인적인 텍스트로 가본다.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은 아마추어 식물 애호가로서, 특히 소철과 같이 오랜 역사를 품은 양치식물을 좋아했던 색스의 색다르고 개인적인 여행 기록이다. “나는 지금 양치류 탐방여행을 위해 식물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마난려고 오악사카로 가는 중이다.”(13면)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의 흥분감과 기대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색스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독서가의 면모를 지녔지만, 무엇보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학문적인(지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는 글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세기 박물학 연구자들의 여행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다윈의 저서들 뿐만 아니라 다윈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알프레드 월리스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탐사여행기를 좋아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양치류에 열광하는 식물 덕후들이 멕시코의 오악사카로 날아가서 다양한 양치류를 살펴보고 자신들의 애정을 확인하는 여행에 관한 책이다. 물론 저자는 식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코르테스를 비롯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에 온 후 1500만 명이던 아즈텍인들이 50년 이내에 300만 명 정도로 감소한 역사에도 주목한다. 정복자들에 의해 학살당하고 노예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백인의 입장에서 색스는 반성적인 입장에 있는 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색스의 다른 저서에서도 이런 점들을 짧게 내비치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텍스트에서 풀어내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하는 색스의 입장은 백인으로서 이러한 역사의 문제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인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를 독자에게 제시해주는 ‘질문하는 자, 생각거리를 던지는 자’에 더 가깝다.

이 책은 식물과학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통찰이 담겨있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과 관찰을 놓치지 않는다. 바로 집단 속에서 느끼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빼놓지 않는다. 색스가 ‘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136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그가 평소에 담아두고 있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10일간 함께 한 무리 속에서 색스는 유일하게 동행인 없이 홀로 참가했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글쓰는 사람으로서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도 보인다. 내성적인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다소 불안해하곤 하는데, 유명인이면서 수많은 환자를 대하던 색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악사카에서 그가 만난 이 집단에 대한 감정은 무엇보다 기쁨이었다. 소속감에 대한 기쁨. 일행에는 레즈비언, 게이 커플도 있었는데, 참가자들 모두 서로 다른 조건과 무관하게 식물학에 대한 사랑만으로 상대방을 포용하고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색스의 평전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내가 보았던 색스의 ‘관심받고자 하는 내면의 어린아이’는 이 덕후들의 모임에서 비로소 편견 없는 관심을 받고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한편 나는 여행일기를 읽으면서 오늘날 현대인들이 자연과 얼마나 괴리되어버렸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색스는 오악사카에서 술을 전문으로 담그는 마을, 염색을 전문으로 하는 마을 등 1,000년 넘게 나름의 기술을 전통으로 유지해온 마을을 인상깊게 기록하고 있다. 소위 문명 사회에서 온 사람의 눈에 비쳤던 점들에 주목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색스는 이렇게 자신의 소회를 밝힌다.

더 ‘발전’되었다는 우리 문화와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 문화에서는 누구도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법을 모른다. 펜이나 연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꼭 필요한 경우에 우리가 그것들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가?”(156면)

우리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도 거리를 걷거나 어느 장소에 가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 삶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지 모른다. 나의 생존 하나 하나가 타인의 손에 지나치게 달려있는 형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요소를 지나치게 ‘외주화’해버린 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타샤 튜터 할머니처럼 스스로 사과를 재배하여 수확하여 사과주스를 만들고, 양초를 직접 만들며, 다양한 채소를 키워서 식탁에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도시는 우리의 ‘자연’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전자기기를 다루는 능력 외에) 때로는 우리의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와 달리 일상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던 것을 너무나 쉽게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히 생각해볼 문제다. 책의 맥락과는 조금 벗어나게 되었지만, 색스가 한 말에서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경이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란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말이다. 그 자체로 불완전한 대상으로서(사실 이 표현 자체도 불합리하다) 인간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이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색스가 쓴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식물 탐사 여행기에서 역시 지식과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호기심이 책 전체에서 드러나는데, 이 모습은 우리가 사람, 타인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색스의 여행기록에서 그의 어린이 같은 호기심과 관심이 경탄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단서들을 확인해볼 수도 있겠다.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어쩌면 자연과 현대인을 이어주는 유일한 에테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인간은 우주의 시간에 비해 지극히 짧은 찰나의 순간을 사는 존재다. 나는 그 인간이 남긴 유산을 찾아보고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도 경이로움을 느낀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른 이들이 남긴 궤적을 찾아보면서 남은 나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내가 올리버 색스의 평전과 여행 기록 두 권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애정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노력 역시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나는 삐딱한 사람, 도덕률 폐기론자, 변절자, 영지주의자 등 기존 질서를 뒤집어엎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던 적이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도덕률 폐기론의 전통 - 사실은 전통 자체 - 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

(올리버 색스의 말)

-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P191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독서의 유일한 가치는 ‘지식 습득하기’가 아니라 ‘새로운 의문 품기’였어." (올리버 색스의 말)

-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P282

"내 경험에 비춰보면, 사람들이 ‘타인의 노예’처럼 행동하기를 멈추고 ‘자신에 대한 주인’이 되려고 노력할 때, 열정이 폭발하여 모든 ‘순간의 기억’들을 줄줄이 소환하여 이어 붙이게 된다." (저자 로런스 웨슐러 말)

-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P538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여 기뻐해야 한다. ‘삶의 난제’에 열정적으로 당당해 맞서 죽음을 얻어내리라 다짐해야 한다."

(저자의 딸 사라가 올리버의 부음을 듣고 저자에게 보낸 제임스 볼드윈의 구절)

-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P627

"나는 지금 양치류 탐방여행을 위해 식물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마난려고 오악사카로 가는 중이다."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첫 문장- P13

"더 ‘발전’되었다는 우리 문화와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 문화에서는 누구도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법을 모른다. 펜이나 연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꼭 필요한 경우에 우리가 그것들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가?"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P156

"데이비드와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들 사이의 인사를 나눈다.

‘황이철석!’

‘웅황!’

‘계관석!’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마지막 문장- P210

‘세포라는 작은 우주를 탐사하다’

《세포》

: 생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탐사기

남궁석 지음

‘세포라는 작은 우주를 탐사하다’

- 세포라는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최근에 읽게 된 생물학 교양서 《세포》에 대한 독후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생물학책을 손에 든 이유는 마지막으로 생물학 교과서를 읽은 지 대략 사반세기가 지난데다, 그동안 생물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발견과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져 일반 독자로서 점점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비전문가로서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생물학 연구 결과를 보면 이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첨단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전문가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일반 독자로서, 비전문가로서 노력해야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이지만, 외국의 지식을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오랜 관행인 시기가 있었다. 분명히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다만 학문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학자들이 대중을 위해 새로 발견된 사실과 지식을 소화하고 이를 우리의 언어로 생산해 낸 교양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포함하여 더 많은 연구자들이 대중 과학서를 써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저변의 확대와 논의가 축적되고 무르익어야 보다 풍부하게 우리만의 새로운 것을 다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독후기록을 남기려고 했는데 서두가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국내 학자가 쓴 생물학 교양서 《세포》를 읽으며 이 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1장과 2장에 대한 독후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우선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이 책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생물학 용어와 개념들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나의 무지로 인한 것이지만, 이 책에는 생물학의 역사가 촘촘하게 등장한다. 게다가 생물학 분야에서 나에게 생소한 90년대 중반 이후의 발전과 최신의 지식들이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날실과 씨실처럼 조직되어 있다. 과거 생물학 교과성의 관점과 달리 이 책은 저자의 개성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1장에서는 화학에서 원소의 주기율표가 원소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생물학에서는 세포를 화학의 원소들처럼 분류하려 한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이 때 세포의 분류기준이 ‘RNA의 조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세포 아틀라스 프로젝트’ 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일 세포 내의 RNA 염기서열을 파악하여 모든 인체 구성 세포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주 목적인 방대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보다 구체적인 목적은 여러 종류의 각각 다른 세포가 어떤 RNA를 만드는지를 알고 이를 기준으로 세포를 분류하는 일이다.

잠깐, 여기서 우리에게 더 익숙한 DNA가 아니라 RNA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이해한 바로는 RNA는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DNA의 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합성하고 나아가 세포를, 곧 다양한 특징을 갖는 세포들을 만들어내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구성요소다. 2010년대에 연구를 통해 추산된 인체의 세포수가 30조에서 37조 개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인체의 모든 세포를 분류하는 방대하고 야심 찬 계획이긴 하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

2장은 이 책의 대주제인 세포를 ‘볼 수 있게 해준’ 도구의 역사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현미경과 렌즈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전개된다. 인간의 기본 감각을 확장해주는 도구, 연장과 과학의 발전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재까지 알려진(발견된) 인류 최초의 렌즈가 기원전 700년 무렵 아시리아의 왕궁터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였다.

이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다고 알려진 인류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작가 호메로스의 시대에 해당한다. 그는 지금의 터키지역인 에게해 연안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공교롭게도 맹인으로 알려져 있어서 당시 렌즈가 사용되었다고 해도 이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연철학이 먼저 발달한 이오니아 지방과 아시리아 지방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어서 이 역사적인 정보는 제한된 것이나마 그 자체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아울러 이 호메로스의 시대에서 몇 세기가 지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호메로스의 시대에서 몇 세기가 지나 이오니아 지방과 멀지않은 북쪽의 해안과 섬에서 생물과 광물 등에 관한 집요한 자연관찰을 이어간 아리스토텔레스도 대상을 자세히 관찰할 때 배율이 있는 유리,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는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 시대와도 겹친다. 해양 생물에 대한 자세하고 꼼꼼한 관찰기록을 남긴 바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모습 역시 새롭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현미경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죽은 세포에서 살아 있는 세포를 발견했다. 또 식물의 세포와 동물의 세포를 각각 발견해간 역사도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대중에게 아직은 낯선 최신의 생물학 지식도 저자 스스로 소화하여 자신의 독특한 관점에 따라 새롭게 재배열되는 생물학 교양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넘겨보면 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이론이 등장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일이,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것 같다. 때로는 집중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우려를 의식하고 세심하게 살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작은 상당히 흥미진진 한다. 그토록 작은 ‘세포’라는 존재 속에 이처럼 광대한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새롭고 놀랍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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